(재) 만해사상 실천선양회 Home
불교평론 소개 l 지난호 보기
 
 인기키워드 : 사색과 성찰, 청규, ,
> 뉴스 > 기획시리즈 > 현대시에 나타난 불교
     
80년대, 그 백척간두에 찾아온 불성과 선
특별기획 |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불교 ⑥
[75호] 2018년 09월 01일 (토) 이경철 abkcl@hanmail.net

부처님이 되려거든
중생을 여의지 마라
극락을 가려거든
지옥을 피치 마라
성불(成佛)과 왕생(往生)의 길은
중생과 지옥

만해 한용운이 1928년 강단에 서서 가르치던 불교전수학교(동국대 전신) 학생들이 펴내던 교우회지 《일광(一光)》 창간호에 권두시로 발표한 〈성불과 중생〉 전문이다. 민족의 핏줄에 흘러든 시조의 혼과 운율로 대승적, 실천적 불교정신에 입각해 일제하 민족운동과 독립정신을 일깨운 시다.

유신독재의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의 총탄에 죽고 정권 공백기에서 민주화 열기가 꽃 피는 듯하던 1980년 서울의 봄은 잠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다. 1980년 5 · 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전두환 신군부가 도륙하고 정권을 잡으며 1980년대는 열렸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유대인 출신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두고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과 최소한의 양심으로 한 말이다. 학생과 선량한 시민들이 무차별 총격과 총검으로 자신들의 군대에 무참히 학살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어찌 서정시가 한 줄이라도 써질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우리 현대문학사는 1980년대를 시가 어느 연대보다 융성했던 시대로 기록하고 있다. 많은 시인이 쏟아져 나왔고 그들이 쓴 시에 수많은 독자가 호응했던 시의 연대가 1980년대였다.

1980년 7월 신군부정권에 의해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등 주요 문예지들이 폐간되자 우후죽순처럼 창간된 부정기 간행물인 무크지와 시 동인지들이 1980년대 시를 견인했다. 이념의 스펙트럼에 따라, 또는 지역별로 소규모로 모여 펴내며 잘못된 현실을 곧바로 증언하고 바로잡으려는 유격성이 강했던 것이 특징이다.

또 다른 한편에선 소위 ‘해체파’가 등장해 기존의 시 문법을 파괴하며 광주 참상을 부르고 못 막은 기성 권위에 도전해나갔다. 기성의 틀이나 답습된 시대사조가 갑갑해 아방가르드는 어느 시대에나 튀어나오게 마련이지만, 1980년대 해체파는 5월 광주가 잉태했을 정도로 강한 정치성을 띠고 있다.

노동문학이 주체적으로 떠오른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이다.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드러나기 시작한 사회의 제반 모순을 민족 주체적, 민중적 시각에서 형상화해나가자는 1970년대 민족 · 민중문학에서 이제 노동자들이 직접 주체가 되는 노동문학 시대가 떠오른 것이다.

이런 1980년대 시문학의 특징은 기존의 시에서 탈피해 형식이나 내용, 창작자 측면에서 시의 시성(詩性)을 확장시켰다. 그러면서 다각도로 시의 정치적, 사회적 응전력을 확산, 강화시키며 많은 독자의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만해의 위 시 가르침대로 신군부의 폭압적 정치 사회 상황에서 중생과 지옥에서 성불과 왕생의 길을 시는 기꺼이 걸어 1980년대를 시의 연대로 기록되게 한 것이다. 그런 전위(前衛)와 투쟁의 벼랑 끝에 선(禪)과 불심(佛心)이 들어 있음을 1980년대 등장한 주요 시인들의 시편들은 잘 보여주고 있다.

황지우‐시적인 것이 선적인 것임을 입증하는 전위적 시편들

   

황지우(1952∼  )

여기는 초토입니다

그 우에서 무얼 하겠습니까

파리는 파리 목숨입니다

이제 울음소리도 없습니다

파리 여러분!

이 향기 속의 살기에 유의하시압!

황지우 시인(1952~  )이 1983년도에 펴낸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실린 시 〈에프킬라를 뿌리며〉 전문이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단에 나온 황 시인은 1980년대 시의 제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 대표적 시인으로 꼽힌다.

5 · 18 광주민주화운동의 피해자이기도 한 황 시인은 학살로 열린 1980년대 억압적 현실을 파리나 모기 목숨보다 못한 ‘초토(焦土)’로 보고 있다. 해충을 박멸하는 에프킬라에 비유, 조롱하며 쓴 시이지만 국민 대중을 때려잡는 신군부 폭압임을 당대 상황에서는 누구든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런 억압적, 환멸적 상황에서 무얼 할 수 있었겠는가. 탈출구는 기성 권위의 해체. 광고문구, 기사, 예비군소집통지서 등을 그대로 시로 인용해 기성 시의 문법을 파괴하고 풍자와 야유와 욕설 등 불경스러운 말이 난무해 독자들을 당혹게 하며 ‘형태 파괴’니 ‘해체’라는 말을 낳게 한 시인이다. 그런 해체시에 대해 황 시인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교란하는 언어의 난센스’ ‘검열의 장벽을 넘는 수화(手話)의 문법’ 등이라 밝힌 바 있다.

이렇게 전위적으로 해체시를 쓰다 황 시인은 전위로서는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막혔을 때 《임제록(臨濟錄)》을 읽고 정수리가 빠개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면서 시적(詩的)인 것이 선적(禪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기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선도 기성의 권위를 깨뜨리는 것이고 미소 지으며 연꽃을 들어 보인 부처의 미소도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는 수화의 문법 아니겠는가. 이처럼 황 시인은 절체절명의 1980년대 상황에서 해체시로 자연스레 선에 이르며 이후 아방가르드와 선을 접목한 창작과 논의의 길을 튼 시인이다. 

2
게 눈 속에 연꽃은 없었다
보광(普光)의 거품인 양
눈꼽 낀 눈으로
게가 뻐끔뻐끔 담배연기를 피워 올렸다
눈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연꽃을
게는, 그러나, 볼 수 있었다

3
투구를 쓴 게가
바다로 가네
포크레인 같은 발로
걸어온 뻘밭
들고 나고 들고 나고
죽고 낳고 죽고 낳고
바다 한가운데에는
바다가 없네
사다리를 타는 게,
게좌(座)에 앉네

선적인 깨달음을 많이 담고자 애썼다며 펴낸 시집 《게 눈 속의 연꽃》 표제작 2, 3장이다. 파주 보광사 불당 벽에 그려져 있다는 게를 소재로 한 3장의 시로 뻘밭 같은 한계상황의 현실에서 선적인 깨달음에 이르고 있다.

낮은 곳이나 높은 곳이나, 더러운 곳이나 깨끗한 곳이나 차별 없이 비추는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보광. 게는 그런 보광을 거품처럼 물고 있다. 내뿜는 담배 연기로 그런 게와 시인은 하나가 돼가고 있다. 그러나 2장에선 원만한 불성(佛性)으로서의 연꽃은 눈 속엔 들어 있지 않고 바라만 볼 뿐이다.

3장에선 그런 게가 바다로 가고 있다. 지옥 같은, 실존의 한계상황 같은 뻘밭을 투구를 쓰고 죽을힘을 다해 기어가고 있다. 이르려는 바다는 들고 남도 없고, 나고 죽음도 없는 화엄의 바다다. 거기에 이르려 게는 투구나 사다리를 방편으로 사용하나, 이르러서는 그런 방편의 사다리마저 치우고 게좌, 우주의 운항과 같이하는 성좌(星座), 불성이 된다.

1
적설 20㎝가 덮은 운주사(雲舟寺),
뱃머리 하늘로 돌려놓고 얼어붙은 목선(木船) 한 척
내, 오늘 너를 깨부수러
오함마 쇠뭉치 들고 왔다
해제, 해제다 (중략)

3
운주사 다녀오는 저녁
사람 발자국이 녹여놓은, 질척거리는
대인동 사창가로 간다
흔적을 지우려는 발이
더 큰 흔적을 남겨 놓을지라도
오늘 밤 진흙 이불을 덮고
진흙 덩이와 자고 싶다

넌 어디서 왔냐?

3장으로 된 〈산경(山經)을 덮으며〉 부분이다. 빚고 다듬다 만 듯한 천불천탑이 있는 전남 화순 운주사. 누운 와불이 일어나면 구름 속으로 배를 띄워 화엄세상으로 간다는 그 절을 겨울에 다녀와 쓴 시다. 그런 절을, 배를, 약속을 깨부수고 해제하기 위해 쇠망치를 들고 운주사에 갔다 와 도심 사창가로 간다는 시다.

소재며 주제, 그리고 시적 용어들이 참선과 맞아떨어진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며 참진 세계에 들려 하고 있다. 잃어버린 소, 참마음을 찾아 떠났다 소를 찾아 돌아와 다시 저잣거리로 나서는 십우도 줄거리도 떠오르게 하는 시다. 부처도 중생도 다 차별 없이 평등한 곳이 화엄세상 아니던가. 똥방석에 앉아 참선만 하는 자세를 꾸짖고 중생과 지옥에서 부처와 극락을 찾는 대승적 자세로 1980년대 학살의 광주에서 화엄광주를 일궈낸 시인이 황지우 시인이다.

이성복‐해체를 통해 이른 이언절려의 선적 시세계

   

이성복(1952~  )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 우리는 누구냐
우리의 하품하는 입은 세상보다 넓고
우리의 저주는 십자가보다 날카롭게 하늘을 찌른다
(중략)
농담과 환멸의 꺼지지 않는 불덩이를 폐차의 유리창 같은
우리의 입에 말하게 하라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1977년 《문학과지성》에 〈정든 유곽에서〉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온 이성복(1952~  ) 시인이 1980년 펴낸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 실린 시 〈다시, 정든 유곽에서〉 한 부분이다. 유곽(遊廓), 창녀촌 같은 타락한 현실을 그대로 까발리며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가를 묻고 있다.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그해 가을〉 부분)라며 아버지로 대표되는 기성 권위를 폐차의 유리창 같은 입으로 욕하고 농담하고 환멸을 느끼고 부숴버린다. 그래 1980년대 시의 한 흐름이었던 살부시(殺父詩)란 조류까지 낳게 했다. 대학 시절부터 시우였던 황지우 시인과 함께 해체시를 열어나간 시인이면서도 이성복 시인은 욕하고 저주한 그 시대를 함께 아파한다.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그날〉 부분)에서처럼 병들어 신음하는 현실인데도 아파하지 않는 것을 더 아파했다. 유마거사의 법문처럼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것을 타락한 현실에서 절감한 것이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1986년 펴낸 세 번째 시집 《남해금산》 표제작 전문이다. 1980년대 벽두부터 해체시의 전위에 섰던 시인이 한용운과 김소월 등의 한국 전통적 시와 동양사상을 공부하며 펴낸 시집이어서 많은 독자가 애송하는 위 표제작처럼 사랑과 이별의 정한이 서정적으로 묻어나고 있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사랑의 슬픔을 읊으면서도 돌과 여자와 시인이 한 몸이 되는, 슬픔 없는 화엄의 세계도 아득히 열고 있는 시다.

내 혼은 사북에서 졸고
몸은 황지에서 놀고 있으니
동면 서면 흩어진 들까마귀들아
숨겨둔 외발 가마에 내 혼 태워오너라

내 혼은 사북에서 잠자고
몸은 황지에서 물장구 치고 있으니
아우라지 강물의 피리 새끼들아
깻묵같이 흩어진 내 몸 건져오너라

2013년에 펴낸 일곱 번째 시집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에 실린 〈정선〉 전문이다. 불교의 무슨 경(經) 한 대목 같기도 한 시집 제목은 신라 향가 〈풍요, 공덕가〉의 한 구절 “오다, 서럽더라”로 풀이된 이두문자. 시인은 ‘래여애반다라’를 “이곳에 와서(來), 같아지려 하다가(如), 슬픔을 보고(哀), 맞서 대들다가(反), 많은 일을 겪고(多), 비단처럼 펼쳐지고야 마는 것(羅)”이라며 자신의 경험적 삶을 담으려 했다. 그러면서 또 ‘만다라’와 ‘여래’와 ‘열반’ 등을 합친 불교적 음향이 울리고 있는 말이라며, 의미보단 음향으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세계에 이르려 한다.

시인이 특히 아끼는 위 시는 강원도 정선에 놀러 갔다가 말장난처럼 언어들이 들러붙어 나온 시라고 밝힌다. 이언절려(離言絶慮)라, 말을 떠나고 생각이 끊긴 자리에서 말들이 제 홀로 뛰놀고 있는 시, 이게 바로 선시(禪詩) 아니던가. 위 시에서 몸 따로 혼 따로 삼라만상 각자 따로 놀고 있으면서 또 서로서로 통하고 있지 않은가. 시인 특유의 가없이 서러운 서정적 음향에 만물이 조응(照應)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라
우리가 어떤 누구인지,

어디서 헤어져서,
어쨌길래 다시 못 만나는지를”.

표제 연작시 〈래여애반다라 6〉 마지막 부분에서처럼 시인은 우리는 누구인지를 시종 화두로 내걸어오고 있다. 어디서 온 어떤 누구들이기에 지금 헤어져 못 만나는 서러움으로 우리네 본성과 분별없는 화엄세상을 가없이 환기시키고 있는 시인이 이성복 시인이다.

박노해‐우주적 인드라망으로 나가는 순정한 혁명정신

   

박노해(1957∼  )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중략)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 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줏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박노해 시인(1957~ )이 1984년 펴낸 첫 시집 《노동의 새벽》 표제작 첫 연과 마지막 연이다. 시인의 얼굴 사진도 없이 “15세에 상경하여 현재 기능공”이란 약력만 간단히 소개한 《노동의 새벽》은 서슬 퍼런 신군부 5공 정권의 금서(禁書) 조치에도 불구하고 1백만 권 넘게 팔려나가며 1980년대를 시의 시대로 이끈 시집이다.

1983년 동인지 《시와 경제》에 〈시다의 꿈〉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온 박 시인은 노동자로서 노동의 실상과 좌절과 꿈을 현장에서 탁월하게 그려나갔다. 위 표제작에서도 첫 연에서는 노동자 개인적 서정이 비장하게 펼쳐지더니, 끝 연에서는 그 비감들이 연대해 노동자의 햇새벽을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 시인은 빼어난 시적 자질을 발판 삼아 기성 문인들이 책상머리에서 머리나 굴리는 관념적 통박놀음인 소시민적 민중문학에 경종을 울렸다. 나아가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창작하는 노동문학을 본격문학의 장으로 들어오게 하며 문학주체 논쟁까지 불러일으켰다. 얼굴 없는 시인으로 숨어 다니며 시를 발표하고 노동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을 이끌던 박 시인은 1991년 이적표현물 제작 등 국보법 위반으로 체포돼 투옥됐다가 1988년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찬 새벽
고요한 묵상의 시간
나직이 내 마음 살피니

나의 분노는 순수한가
나의 열정은 은은한가
나의 슬픔은 깨끗한가
나의 기쁨은 떳떳한가
오 나의 강함은 참된 강함인가

우주의 고른 숨
소스라쳐 이슬 떨며
나팔꽃 피어나는 소리
어둠의 껍질 깨고 동터오는 소리

시인이 옥중에서 쓴 시 〈나는 순수한가〉 전문이다. 경주교도소 수감 중 저 너머 감은사에서 들려오는 새벽종 소리를 들으며, 우주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마음 닦으며 쓴 시다. 체포 당시의 포효하는 맹수 같았던 시인의 모습은 석방 때는 8년 용맹정진 끝에 토굴을 나서는 수도승 같았다. 감옥에서 1만 권의 책을 읽고 명상했다는 시인의 얼굴이 해맑았듯 이 시도 참 맑고 순수하다.

감옥에서 나온 박 시인은 전북 무주 대안학교 목사님, 남원 실상사 스님 등 전국의 현자를 찾아 어울려 잘사는 사회를 위한 지혜를 구하려 다녔다. “21세기 진보란 개인의 자유가 이기적 개체로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의 바탕 위에서 지구적인 ‘큰 개인’으로 실현되는 것”이라며 지구촌 곳곳 소외당한 지역을 찾아다니며 인류 공동체를 향한 새로운 희망 찾기에 나서고 있다.

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된 그물이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어떤 구슬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에 그 울림이 연달아 퍼진다 한다-화엄경
(중략)

지구 마을 저편에서 그대가 울면 내가 웁니다
누군가 등불을 켜면 내 앞길도 환해집니다
내가 많이 갖고 쓰면 저리 굶주려 쓰러지고
나 하나 바로 살면 시든 희망이 살아납니다

《화엄경》에 나오는 인드라망을 인용하며 대동세계, 화엄세계를 이루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시 〈인다라의 구슬〉 부분이다. 노동자, 피지배자들이 겪는 고통에서 벗어나자는 투쟁의 연대에서 이제 하나로 연결된 지구촌, 우주적 생명의 연대인 인드라망으로 나가고 있는 시인이 박노해 시인이다.

백무산‐혁명의 막다른 길에서 만난 공(空)과 화엄의 대동세계

   

백무산(1955~  )

무슨 밥을 먹는가가 문제다
우리는 밥에 따라 나뉘었다
그 밥에 따라 양심이 나뉘고
윤리가 나뉘고 도덕이 나뉘고
또 민족이 서로 나뉘고

(중략)

그대들은 무슨 밥을 먹는가
게으른 역사의 바퀴를 서둘러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지상의 모든 노동자들이여/ 형제들이여!

백무산 시인(1955~  )이 1988년에 펴낸 첫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 표제작 부분이다. 1984년 무크지 《민중시》 1집에 〈지옥선〉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온 백 시인은 현대중공업 노동자 출신이다. 두 번째 시집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는 1988년 말부터 4개월여 벌인 울산 현대중공업 파업을 한 편의 장시로 엮어 노동계급의 투쟁을 올곧게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백 시인을 박노해 시인과 함께 1980년대를 대표하는 노동자 시인으로 꼽히게 했다.

위 시에서도 먹는 밥에 따라 계급을 나누며 만국의 노동자계급이 단결해 자본계급을 몰아낼 것을 선동하고 있다. 광주학살로 열린 1980년대는 노동계급과 자본계급 등 사회 모든 세력을 피아로 나눠 대립각을 선명히 해 투쟁을 부추길 수밖에 없었다. 민중을 학살하는 절대 악을 물리치는 게 급선무였고 백 시인도 그런 시대적 상황에 복무했다.

누가 이런 길 내었나
가던 길 끊겼네
무슨 사태 일어나 가파른
벼랑에 목이 잘린 길 하나 걸렸네

(중략)

아, 나 이제 경계에 서려네
칼날 같은 경계에 서려네

나아가지도 못하나 머물지도 못하는 곳

아스라이 허공에 손을 뻗네
나 이제 모든 경계에 서려네

1996년 펴낸 시집 《인간의 시간》에 실린 시 〈경계〉 부분이다. 1990년대 들어 소련의 붕괴 등으로 현실의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또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며 민주와 반민주 세력 등 우리와 적을 구분하는 1980년대식 혁명의 길, 시간은 끊겼다. 이런 시대에 백 시인은 칼날 같은 경계에 서 아스라이 허공에 손을 뻗겠다 한다. 백척간두에 서서 허공을 응시하겠다는 자세가 용맹정진하는 선과 같다. 실제 이때부터 백 시인의 시에는 불교적 시어와 사유가 곳곳에 드러난다.

이 쬐그만 풀씨는 어디서 왔나
무성하던 잎을 비우고
환하던 꽃을 비우고
마침내 자신의 몸 하나
마저 비워버리고
이것은 씨앗이 아니라
작은 구멍이다
이 텅 빈 구멍 하나에서
어느 날 빅뱅이 시작된다

씨앗을 텅 빈 구멍으로 보고 있는 시 〈풀씨 하나〉 부분이다. 1980년대 같았으면 씨앗을 새 생명, 새 세상의 희망, 혁명 등 낙관적으로만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구멍은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자신마저 비워버리고 얻은 구멍은 불교의 요체인 공(空)과도 같다. 우주창생을 낳은 빅뱅의 대폭발같이 사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통해 혁명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 이르고 있는 시다. 이렇게 1980년대 노동문학, 혁명시에도 화엄적 세계관이 배어들어 인간과 세상을 향한 본원적 혁명의 진정성과 보편성을 띠게 하고 있다.

공광규‐일상 속에서 사실적으로 만나는 불교적 세계

   

공광규(1960∼  )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에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비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나무문살 꽃무늬단청 스치는
바람소리를 냅니다

1986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한 공광규(1960~  ) 시인의 시 〈무량사 한 채〉 전문이다. 등단 이후 공 시인은 《실천문학》 등에 항쟁과 노동현장시 등을 발표하고 진보적 문학단체 활동도 하는 진보적 시인. 그러면서도 《불교문예》 등의 주간을 역임하고 위 시와 같이 우리네 일상을 불교적으로 바라보고 사는 시세계를 펼치고 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무량(無量)’이란 말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과 시간을 뜻한다. 영원한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이 무량수불(無量壽佛)이다. 위 시에서는 아내가 곧 그런 무량수불의 현현(顯現)임을 하찮은 일상에서도 깨닫게 하고 있다.

양수강이 봄물을 산으로 퍼올려
온 산이 파랗게 출렁일 때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햇볕에 날아간 살과 뼈
눈과 비에 얇아진 몸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몸이 부서지는 맑은 쇠.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산턱에 있는 수종사를 그리고 있는 시 〈수종사 풍경〉 전문이다. 푸른 나뭇잎 물결인지 강 물결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산과 물길이 어울리는 절이 수종사(水鍾寺)다. 그런 절 처마 끝에 매달린 작은 종 풍경(風磬)을 소재로 하는 시다. 비울 대로 비운 마른 몸을 치며 내는 소리가 쇠까지 바스러뜨린다며 참선의 한 지경을 풍경을 통해 전하고 있다.

고향에 돌아와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중략)

공시가격 구백만 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 영주가 되었다

담장을 허물고 대문을 떼어내니 자연과 우주와 일체가 된 듯한 한 소식의 실감을 전하고 있는 〈담장을 허물다〉 부분이다. 이런 일상 속 한소식을 의뭉스럽지 않고 직설적으로, 사실적으로 전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게 공광규 시인 시세계의 특장이다.

윤제림‐인지상정의 일상과 풍경이 드러내는 불심

   

윤제림(1959~  )

소 당번이 도망갔다.
걸레질 몇 번 하고 다 했다며
가방도 그냥 두고 가는 그를
아무도 붙잡지 못했다.

‘괜히 왔다 간다.’
가래침을 뱉으며
유유히 교문을 빠져나가는데
담임선생도
아무 말을 못 했다.

1987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한 윤제림(1959~  ) 시인의 시 〈걸레스님〉 전문이다. 계율에 얽매임 없는 파격적 행보로 승적까지 박탈당한 중광 스님의 자호(自號)가 걸레스님이고, 말년 백담사에서 보내다 “괜히 왔다 간다”며 입적했다. 승속도 출세간과 세간도 분간 않는 걸레스님의 막힘없는 무애(無碍)를 불량학생의 행보로 해학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시다.

이처럼 윤 시인의 시편들은 우리네 일상, 세간의 일들과 풍경을 인간적으로 출세간의 화엄세상 그것으로 화해 놓는다.

할머니를 심었다.
꼭꼭 밟아주었다.
청주 한 병을 다 부어주고
산을 내려왔다.
광탄면 용미리, 유명한 석불 근처다.

봄이면 할미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009년도 불교문예작품상 수상작인 〈꽃을 심었다〉 전문이다. 두 연으로 된 짧은 이 시는 평범한 일상을 그대로 전하면서도 생사 구분 없는 윤회를 아주 비범하면서도 자연스레 전하고 있다. 첫 연에서는 할머니를 묻는 장례를 속도감 있게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묻는다’ 대신 ‘심는다’는 시어 하나가 둘째 연으로 이어지며 “봄이면 할미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짧지만 단단한 구성의 시가 시인의 불교적 세계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공양간 앞 나무백일홍과,
우산도 없이 심검당 섬돌을 내려서는
여남은 명의 비구니들과,
언제 끝날꼬 중창불사
기왓장들과,
거기 쓰인 희끗한 이름들과
석재들과 그 틈에 돋아나는
이끼들과,
삐죽삐죽 이마빡을 내미는
잡풀꽃들과,

목숨들과
목숨도 아닌 것들과.

나무 백일홍, 비구니, 기왓장, 이름, 이끼, 잡풀, 꽃들이 ‘과’라는 접속조사로 대등하게 연결되는 시 〈함께 젖다〉 전문이다. 귀한 것이나 하찮은 것, 생물이나 무생물 등이 구분 없이 활물화(活物化)돼 한 목숨으로 모두 함께 젖고 있다. ‘함께 젖다’라는 제목이 시인의 화엄적 세계관을 그대로 구체화시키고 있는 시다.
이처럼 잘 짜인 시로 정 많은 우리 일상에서 화엄세상을 드러내는 시인이 윤제림 시인이다.

반상합도(反常合道)라, 상식을 벗어난 지독한 패러독스나 아직 미숙해 의뭉스러운 시만이 선시나 불교시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 우리네 평범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비상한 시선의 한 활구(活句)가 아연 선시의 진정한 반열에 오를 수 있음을 윤제림과 공광규 시인의 좋은 시편들은 보여주고 있다.

송찬호‐반야에 이르려 용맹정진하는 언어와 이미지와 상상력

   

송찬호(1959∼  )

지의 사람들이 땅을 열고 그를 봉해 버린다 간단한
외과 수술처럼 여기 그가 잠들다

(중략)

오래 구르던 둥근 바퀴가 사각의 바퀴로 멈추어 서듯
죽음은 삶의 형식을 완성하는 것이다
미래를 예언하듯 그의 땅에 꽃을 던진다
미래는 죽었다 산 자들은 결코 미래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산다는 것은 얼마나 찬란한 한계인가

1987년 무크지 《우리 시대의 문학》 6집에 시를 발표하며 시단에 나온 송찬호(1959~  ) 시인이 1989년 펴낸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표제시 일부다. ‘장지’ ‘죽음’ ‘산 자들이 도달할 수 없는 미래’ 등에서 1980년대 시대적 징후가 드러나면서도 흙 등 원초적 물질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다. 동서양의 상상력을 망라해가며 ‘존재의 현현과 구원’이라는, 시는 물론 철학과 종교 등 인문학의 심부를 꿰뚫고 있는 시인이 송 시인이다.

“말은 이 세계를 찾아온 낯선 이방인이다
말을 할 때마다 말은
이 세계를 더욱 낯설게 한다”.

첫 시집에 실린 시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마지막 부분이다. 원초적 이미지, 사물과의 합일된 교감을 드러내기에 말, 언어는 이방인과 같다. 말하는 순간 그 원초적 감각 혹은 느낌이나 깨침은 가뭇없이 날아가 버린다. 해서 송 시인은 이언절려의 찬란한 한계의 순간을 잡는 언어와 이미지와 표현에 심혈을 기울이며 선과 만나고 있다.

“대가리를 꼿꼿이 치켜든 독 오른 뱀 앞에
개구리 홀로 얼어붙은 듯이 가부좌를 틀고 있다
(중략)
예서 길이 끝나는구나 벼랑 끝에 서고 보니
길 없는 깊은 세상이 더 가까워 보이는구나”

(〈문 앞에서〉 부분)처럼 목숨 걸고 길 없는 길을 가며 본질 탐구에 용맹정진하고 있다.

멀리서 보니 그것은 금빛이었다
골짜기 아래 내려가 보니
조릿대 숲 사이에서
웬 금동 불상이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누고 있었다

어느 절집에서 그냥 내다버린 것 같았다
금칠은 죄다 벗겨지고
코와 입은 깨져
그 쾌변의 표정을 다 읽을 수는 없었다

다만, 한줄기 희미한 미소 같기도 하고 신음 같기도 한 표정의 그것이
반가사유보다 더 오래된 자세라는
생각이 잠깐 들기는 했다
가야 할 길이 멀었다
골짜기를 벗어나 돌아보니 다시 그것은 금빛이었다

비교적 근래에 발표한 〈금동반가사유상〉 전문이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은 문자 그대로 반쯤 앉아 깊은 생각에 빠진 상. 절집에서 내다 버린 그런 상을 있는 그대로 본 느낌을 그리며 시인은 생각을 버리고 있다.

우선 금빛이었다가 금칠은 죄다 벗겨졌다가 다시 금빛이라는 ‘이다, 아니다, 이다’ 식의 고승들의 화두 문법 같은 시적 진행이 눈에 띈다. 다음 반가사유상의 그 사유, 생각보다는 표정이 더 오래된 자세라는 각성에서 지식 등에 물들지 않은 원초적 마음으로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인의 자세가 잘 드러나고 있다. 이렇듯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자세나 언어가 반야의 지혜와 겹쳐지는 시세계를 펼치고 있는 시인이 송찬호 시인이다.

장석남‐시성이 곧 불성임을 서정적으로 보여주는 시

   

장석남(1965∼  )

봄은
참았던 말들 다 데려다 어디서 어디까지 웅얼대는 걸까
울컥
떠오르는 꽃 한 송이가 온
세상 흔드는 것 보겠네

오래 서 있으면 뿌리가 아프고
어둠은 어느새 내 뿌리 근처에 내려와 속닥거리고
내 발소리 어둠에 뒹굴다 별이
되면 거기
내 뿌리가 하얗게 글썽임에 젖고 있네
살아 있는 것이 글썽임이 아니라면 온
하늘 별로 채워진들
아름답겠나 그렇게 봄
들판은 나를 불러 봄 들판이게 하고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장석남(1965~  ) 시인이 1991년 펴낸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에 실린 시 〈들판이 나를 불러〉 부분이다. 봄도 살아 있고 말도 살아 있고 꽃 한 송이도 살아 있다. 덩달아 시인도 살아 나무뿌리가 되고 별도 되고 봄 들판도 된다. 물활론적 상상력에 의해 우주 삼라만상이 서로서로 젖어들고 있다.

장 시인은 이렇게 시인과 사물과 하나가 된 말들을 잘 부리며 서정주 시인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네 전통서정을 꿋꿋하게 잇는 시인이다. ‘너와 나의 외로운 마음이 만나는 순간의 시학’이 서정의 요체라면 그런 서정시학과 불교의 연기설과 대동의 화엄세계를 순하게 잇고 있는 시인이다. IMF 외환위기로 개봉하지는 못했지만 영화 〈성철〉에서 타이틀 롤 성철 스님 역을 맡아 온몸과 혼으로 연기하며 불교에 몰입한 이래, 시에서도 알게 모르게 불교에 빠져들고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중략)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수묵화의 번짐 기법을 소재로 한 〈수묵정원 9. 번짐〉 부분이다. 화선지에 먹이 잘 번져 형태와 여백, 선과 면의 경계를 없애듯 서로 잘 번져 경계 없이, 차등 없이 사랑이 충만한 화엄세상을 그리고 있다. 언뜻 사랑시로 읽혀도 좋을 시이면서도 만물이 생장 순환하는 이치도 순하게 전하고 있다.

새로 짓는 집에
지고 다니던 문을 내려놓다

경첩을 달고 문을 맨다
수평자를 대고 문을 고친다

안팎으로 문은
사람과 사물을 가리지 않고
달과 바람을 가리지 않고
식욕과 성욕을, 짐승과 꽃을 가리지 않고
어둠과 빛을
놀람 없이 들이고 보낸다

가끔 문을 잠그고
적적한 어둠속에서
아이를 만든다

최근 나온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에 실린 시 〈문을 내려놓다〉 전문이다. 시집을 받고 읽어나가다 2부 ‘한 소식’에 실린 이 시에 이르러 나도 몰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물활론적 세계를 열어가던 언어가 이제 그런 언어의식도 없이 우주창생의 태초의 말로 돌아가 한 소식하고 있다고. 부처님의 염화미소를 언어로 그대로 형상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모든 경계를 넘어 서로서로를 들이고 내보내며 세상을 낳는 위 시의 언어와 문법을 보시라.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무량한 불법의 그 오묘한 세계를 그대로 품고 있는 시 아닌가. 이게 시성(詩性)이고 불성(佛性)임을 서정적으로 여실히 보여주는 시인이 장석남 시인이다.

이상에서 살핀 것처럼 5 · 18 광주민주화운동을 학살하고 열린 1980년대에 등단한 시인들의 시에는 해체와 투쟁이 시대의 한 양식과 내용으로 떠오른다. 기성 권위를 철저히 부정하고 해체해버리는 해체시는 시대적 아방가르드로 그 막다른 지점에서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선과 만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노동과 자본, 지배와 피지배 등 피아를 나눠 투쟁하며 민주의 대동세계를 건설하려 한 투쟁시는 불교를 만나 그 적의(敵意)를 버리고 우주상생의 인드라망으로 나가며 더 깊어지고 있음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론 우리네 일상적 삶이나 풍경에서 자연스레 불성을 깨닫고 환기시키는 시편들도 만날 수 있다. 평상심시도나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시불(卽心是佛)이 시로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이다. 대승적이든 소승적이든, 주제적 측면이든 표현적 측면이든 시심이 곧 불심임을 잘 드러내고 있는 이런 시편들은 세기말과 21세기 밀레니엄, 사이버 신유목 시대들 맞아 정처 없는 마음들의 정처, 항심(恒心) 돼가며 확산, 심화해가고 있다. ■

 

이경철 
문학평론가 · 시인. 동국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2010년 《시와시학》(시) 등단. 저서로 《천상병, 박용래 시 연구》 《미당 서정주 평전》 등과 시집 《그리움 베리에이션》이 있다. 현대불교문학상(평론 부문), 질마재문학상 등 수상. 현재 동국대 대학원 문창과 겸임교수. 

ⓒ 불교평론(http://www.budreview.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댓글달기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수(0)  
전체기사의견(0)
불교평론 소개독자투고불편신고구독신청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135-887]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12-9번지 MG타워빌딩 3층 | Tel 02-739-5781 | Fax 02-739-5782 | 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사성
Copyright 2007 불교평론.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udreview@hanmail.net
불교평론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