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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중계]조오현 시의 선(禪)과 인식론적 경향
활구(活句)를 욕망하는 시*
[75호] 2018년 09월 01일 (토) 김관용 kwanyong6@hanmail.net

편집자
✽ 이 글은 “민족문학의 전진적 화합성 모색”을 주제로 개최된 2018 만해축전 학술세미나(만해축전추진위원회 주최, 창작21작가회 주관, 8월 11일, 만해마을)에서 발표되었다.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 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피모대각(披毛戴角)이라는 열반송

지난 5월 26일 오후 5시 11분. 설악산 신흥사 조실이었던 무산 대종사께서 원적(圓寂)에 들었다. 1932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출생했으니 법랍 60세에 세납이 87세였다. 대종사는 법호로는 설악(雪嶽)을, 법명으로는 무산(霧山)을 썼다. 외람되게 세간에 남겨진 우리는 예기치 못한 이 사건으로 견고한 두 버팀목을 잃은 셈이다. 그중 하나는 한국불교를 지탱하던 큰스님으로서의 무산 스님이고, 다른 하나는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고산문학상, 한국문학상 등을 수상한 시조시인 조오현이다. 어떤 경우는 한 사람의 부재가 주는 여진이 유독 오래간다. 그것은 그가 세상에 투신했던 열정이 남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두 사람 이상의 몫을 살았다. 육신을 해탈하기 이전에 이미 그는 무애도인으로 알려져 있었고, 무애도인은 열반송에서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다는 말을 남겼다.

열반송이라고 하는데 이건 무슨 의미일까. 단지 시인의 자유로운 정념에서 돋은 상상력의 언어일까. 어쩐지 좀 석연치 않다. 시로만 읽으려니 어딘가 거친 느낌이고 선기(禪氣)가 서린 게송으로 읽으려니 시인으로서 여백이 너무 크다. 콜리지는 상상력과 공상을 구분하는 변별점을 현실과의 관계 여부라고 하지 않았던가. 선승(禪僧)이며 동시에 시인의 삶을 살았던, 혹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인격체의 삶을 향유했던(실제 그의 행적과 보살행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한 인물을 마주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조오현이라는 텍스트의 선과 시 그리고 현실에 집중할 것이다. 그의 시는 어떤 내적 풍경 아래서 작동하며 그 스펙트럼이 분광하는 빛은 어떠한가. 물론 그동안의 연구 성과로 그의 면목이 하나씩 드러나기는 했지만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게 또 그가 가진 세계의 너비이기도 하다.

논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그가 역해한 《무문관》 제47칙 도솔의 관문(兜率三關) 본칙을 인용한다.

도솔종열 화상이 세 가지 문제를 만들어 수행자에게 물었다.
번뇌를 뽑아내고 그윽함을 찾는 것은 본성을 보기 위함인데 지금 그대의 본성은 어디에 있는가?
자성을 알고 나야 생사를 벗어난다는데 눈의 광채가 땅에 떨어졌을 때는 어떻게 해탈할 수 있는가?
생사를 벗어나면 가는 곳을 안다고 했는데 사대가 각각 흩어질 때 어디로 가는 것인가?

연기된 존재로서 중생은 고해에 빠져 있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수행자의 길로 들어선다. 도솔이 제자로 보이는 수행자에게 던진 질문은 본성의 문제, 그리고 해탈의 방법론과 지향성의 문제다.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석가세존께 질문하더라도 대답은커녕 게으른 수행에 대한 핀잔만 듣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의 각도를 조금 바꿔보자. 조오현 시의 본성은 어디에 있으며, 그의 시론은 어떤 형태로 완성되었고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지.

앞서 그의 열반송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다. 불교의 유식론(唯識論)에는 거북이 털과 토끼의 뿔에 관한 비유[披毛戴角]가 등장하는데 앞서 언급했던 구절은 거기서 연유된 듯 보인다. 어떤 의도에서 이런 게송을 세상에 던진 건지 참구하는 것에서부터 조오현 시를 탐색하는 작업은 시작될 것이다. 그 사이 우리는 이런 시들을 경유해야 한다.

서울 인사동 사거리
한 그루 키 큰 무영수(無影樹)

뿌리는 밤하늘로
가지들은 땅으로 뻗었다

오로지 떡잎 하나로
우주를 다 덮고 있다.
— 〈된바람의 말-무자화 5〉 전문

절창에 가까운 이런 시를 음미할 때 우리는 수행승이 쓴 시조이기에 선시조라 불리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시편이 갖추고 있는 선적인 혹은 불교적인 사유를 탐구해야 한다. 그래야 “오로지 떡잎 하나로 우주를 다 덮고 있”다는 본래면목에 근접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앞으로 조오현이란 텍스트를 두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의 의식이 머물던 공간의 크기를 관측하고 창작을 통해 그가 지향했던 바는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것은 조오현 문학이 어떻게 생성되었는가의 선행 조건을 만족시킨 후 그의 문학은 어떻게 생존하는가의 문제로 전향한다. 거창하게 생존이란 말까지 꺼냈지만, 그의 시엔 어떤 절실함이나 위태로움 같은 것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 〈아지랑이〉 전문

주의할 점이라면 가령 이런 것, 그의 시적 표현을 함부로 우의적이라거나 알레고리라고 한정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수행자 조오현은 사라지고 시인 조오현만 남게 된다. 그의 시에 침윤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하이데거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는 바로 그 도구성을 상실하는 순간 본래의 사물성을 드러낸다는 요지의 말을 한 적 있다. 이런 전언을 조오현식으로 옮긴다면 ‘있는 그대로’를 보라가 될 것이다.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는 내적 소요가 쉽게 각인되는 이유는 생존에 관한 강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말처럼 ‘있는 그대로’ 볼 때 해석 불가능하던 아포리즘은 현실이 된다.

이런 고백은 어떤가. “그 옛날 내가 소 머슴으로 절에 들어왔을 때 처음 나를 불문(佛門)으로 이끌어준 인월(印月) 스님이 틈날 때마다 들려주던 안수정등(岸樹井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가 역해한 《무문관》에서 사족으로 달았던 글이고, 안수정등은 절벽에 겨우 붙어 있는 위태로운 나무(岸樹)와 우물에 드리운 가는 등나무(井藤)라는 뜻이다. 그는 이처럼 절박했다.


일수사견(一水四見)의 존재론
 
피모대각(披毛戴角)은 여러 경전에서 논설되지만 주로 관념과 언어의 허망함과 그것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라는 의도에서 전개된다. 만법은 오로지 식(識)이 작용한 소산이라고 보는 유식은 인간의 마음 형태와 세계의 실상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唯識三性說]. 원성실성(圓成實性), 의타기성(依他起性),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거북이 털과 토끼의 뿔은 변계소집에 속한다. 변계소집이란 명칭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편적인 분별에 의해 분별된 것’을 의미한다. 언젠가 조오현 시인이 권영민 교수에게 농으로 던졌던 “허망하고 쓸데없는 언어의 그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연구자가 인정하듯, “허망하고 쓸데없는 언어의 그물질”이라는 표현은 조오현 시론의 근간이다. “자기 혼이 담겨야 제 글”이다. 간밤에 폭포를 타고 오른 물고기를 잡겠다고 그물을 던진들 거기에 무엇이 걸리겠는가. 물고기는 이미 용이 되어 승천했는데 말이다. 한마디로 헛짓이다. 그야말로 변계소집이 한 일이며, 듣는 이에겐 경종이면서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했던 문학적 규범이다. 이즈음 우리는 조오현의 자기규정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저는 문학을 전업으로 하기보다는 불교와 겸업으로 하는 사람이라서 가끔은 혼돈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중략)…… 굳이 불교와 문학, 훌륭한 수행승과 훌륭한 시인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시인보다는 스님을 택할 것 같습니다. 말은 겸업이지만 어디까지나 저의 본업은 수행자라는 뜻이지요.

선행 연구가 상당수 있음에도 혼란을 빚는 건 그가 선(禪)의 나라와 시의 나라라는 이중국적자이기 때문일 터다. 그의 원래 국적이 어디였는지는 그러므로 중요하다. 그곳에서 그는 모국어를 발견했고 그것을 훈습했다. 그가 인식하는 세계와 사유를 지탱하는 체계는 모두 거기서 비롯된다. 그는 7살에 소 머슴으로 절간에 들어갔으며, 이후 그의 전 생애는 줄곧 그곳을 중심으로 궤적을 그렸다. 부처에 귀의했고 깨달음에 대한 욕망이 그의 의식을 채웠다. 이런 사실은 우리를 보다 심층으로 이끈다.

다시 유식이다.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말이 있다. 동일한 것을 보고도 업력(業力)에 따라 서로 다른 네 가지 견해를 낸다는 의미다. 유식론에 따르면(唯識論云) 같은 하나의 물일지라도(且如一水) 네 가지 견해로 차별을 이루는데(四見成差) 천인들은 이것을 보배로 장엄한 땅으로 보고(天見是寶嚴地), 사람은 이것을 물로 보며(人見是水), 아귀들은 이것을 불로 보고(餓鬼見是火), 물고기는 이것을 집으로 본다(魚見是窟宅). 인식이란 그런 것이다. 달리 보면 어떤 제한적 틀이나 형식의 한계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은 존재를 규정하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당겨 말하자면 인식은 존재 규정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적어도 불교에서는 그렇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가 아니라 그렇게밖에는 볼 수 없다는 논리의 측면에서다. 수행을 통해 자신의 업(業)을 정화시키기 전에는 말이다. 동일한 사물을 보고 그것을 물이라 여긴다면 그는 분명 사람이다. 그것이 자신이 밟고 다니는 땅을 보인다면 그는 분명 천신이다. 이를테면 인식은 이렇게 존재론으로 나아간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 〈아득한 성자〉 전문

선승인 조오현은 저녁의 하루살이 떼를 보고 감응을 적었다. 충분히 인정된 작품이므로 더 이상의 논의는 새삼스러울 것 같다. 중생의 업력은 자신의 인식을 규정하고 인식은 곧 현실을 변계소집으로 만든다. 고로 실재가 아니다. 관념의 창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끝없이 과실을 범하는 것이다. 사실 불교의 교리적 입장에서는 절대적 실체라느니 이데아라느니 혹은 정념이라느니 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다. 그러나 이 시는 어떤가. 큰 매력이라면 시적 원근감이 조성하는 아련함이, 현실의 육체로는 닿을 수 없는 어떤 직관이 수행자의 눈을 통해 전달되고 있어서가 아닌가. 이런 시 앞에선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니 심행처멸(心行處滅)이니 하는 말들이 무화된다.

밤늦도록 불경을 보다가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먼바다 울음소리를
홀로 듣노라면

천경(天經) 그 만론(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란다
— 〈파도〉 전문

그 옛날 천하장수가
천하를 다 들었다 놓아도

한 티끌 겨자씨보다
어쩌면 더 작을

그 마음 하나는 끝내
들지도 놓지도 못했다더라.
— 〈마음 하나-일색변 결구 8〉 전문

서정의 발성들이지만 그의 문학에 관한 존재론으로는 손색이 없다. 오해 없이 그의 말을 수긍하자면,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해 《심우도(尋牛圖)》(1979) 이후 대여섯 권의 시집을 상자한 시인이었음에도 그가 스스로 고백한 국적은 불교였고, 그가 사유하고 발성했던 모국어는 1939년 입산 출가한 수행자였다. 이것이 조오현 문학의 첫 번째 단서다. 시 속에 등장하는 혜월, 보화, 임제 등 조사들이 그의 정신사적 배경이며 그의 시가 내장한 본성이다. 이러한 공간이 바로 그의 미학을 책임지는 중핵인 것이다.

강렬한 욕망이 형상화될 때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털갈이 길짐승 또는 날짐승이었다면/ 까마귀밥나무 또는 나무귀신 같은 부처여/ 그냥은 앉을 횃대도 죽을 목숨도 없구나”(〈금우반통〉)에서처럼 인식하는 대상을 실상의 관점에서 노래하는가 하면, “오직 저 하늘의 새벽별만 아는 일이다/ 하룻밤에 만 번 죽고 만 번 사는 그 이치를/ 하룻밤 그 사이에 절여놓은 이 산천을”(〈명성견성〉)이라며 자신의 미학을 세계의 각성된 층위로 환기시킨다. 전자의 시가 개별 현상[事]에서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이치[理]로 나아간다면 후자는 역(逆)의 방향에서 수렴해 들어온다. 교학의 입장에선 이(理)와 사(事)가 융섭해 있다는 의미에서 이사무애(理事無礙)라고 하는데, 여기서 좀 더 발전된 형태가 그가 간혹 언급했던 화엄에서의 사사무애(事事無碍) 경지다. 같은 말이 되겠지만, “서역 다 줘도 쳐다보지도 않고/ 그 오랜 화적질로 독살림을 하던 자가/ 이 세상 파장머리에 한 물건을 내놓았네.”(〈달마 1〉)와 같은 구절에서는 현존하는 내면의 위치를 과감하게 발설해 놓은바, 역대의 전적과 청허 휴정이 《선가귀감》에서도 언급한 ‘한 물건’이 바로 그것이다. 본래면목이라고 할까. 아마 전작에 걸쳐 표출하려던 것이 바로 이것이리라.

누가 내 이마에 좌우 무인(拇印)을 찍어놓고
누가 나로 하여금 수배하게 하였는가
천만금 현상으로도 찾지 못할 내 행방을.

천 개 눈으로도 볼 수 없는 화살이다.
팔이 무릎까지 닿아도 잡지 못할 화살이다.
도살장 쇠도끼 먹고 그 화살로 간 도둑이어.
— 〈심우(尋牛)-무산심우도 1〉 전문

고려 선사 지눌에 의지해 말하면, 맹구우목(盲龜遇木)이며 섬개투침(纖芥投鍼)이다. 인간 몸을 받기가 이토록 어려운데 이생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이랴.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될 시간에 찾아야 할 그 소라는 건[尋牛] 대체 무언가. “나로 하여금 수배하게 하”였고, “천만금 현상으로도 찾지 못할 내 행방”이란다. 나의 행방을 내가 찾고 있는 형국이라니. 결국 소는 소가 아니고, 소이면서도 소임을 깨닫지 못하는 소라는 역설이 성립된다.

〈무산심우도〉 연작에서는 이런 표현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세상을 물장구치듯 그렇게 산 엄적(掩迹)”이라거나 “과녁을 뚫지 못하고 돌아오는 명적(鳴鏑)”이란 시적 결과물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물론 여기서 소는 축생의 한 고리로서가 아니라 상징으로서 ‘한 물건’이다. 조오현 시의 본령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시집 곳곳에서 두 자아론과 만난다. 한 사람의 승려와 한 사람의 시인을, 어쩌면 두 사람의 인격을 동시에, 그러다가 하나로 혼합된 무(無)를 목도한다. 둘의 친연성은 결국 주체마저 사라지게 하는 강력한 계기가 된다. 이렇게 고정된 실체를 주장하지 않으며 그와 그의 시는 중도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정리하자. 19세기 중반에야 비로소 서양사에 등장했던 인식론은 2,500년 전 이미 초기불교 이래로 인도에 있었고 어린 시절 절간에 들어간 소년 오현을 강력한 자력장 안에 두었다. 이 경우 인간의 인식은 어떻게 성립하는가의 문제는 그것이 관여한 타당성의 문제와 진리성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냥 그렇게 보는 것이고 보이는 대로 진술할 뿐이다. 가령 이런 앎이라고 할까. 전 찰나 식(識)의 상속에 의해 직접적으로 생기는 지각[現量]과 간접적으로 생기는 추리[比量]의 결과는 결국 식 자신에 대한 앎 즉 자기인식을 말하는 것이다. 유식에서 말하는 일체가 공임을 깨닫는 원리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 하며 이는 그의 시를 가장 조오현답게 해석하고 감응하는 방식이다.

 시의 장(場), 선(禪)의 모색

이제 조오현의 시세계에서 선(禪)적인 경지를 논하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그는 선과 시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언제나 “내게 선은 나무의 곧은 결이요 시는 나무의 옹이 점박이결 같은 것”이라는 대답을 하곤 했는데, 평자에 따라 이 전언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 이 문장을 이렇게 이해하는 건 어떤가. ‘곧은 결’과 ‘옹이 점박이결’은 현실태로서 조오현에 귀결된다. 나무란 조오현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불교식으로 전도시켜 보자. 나라는 주체가 있어야 수행을 하고 시도 쓸 것 아닌가. 조금은 다른 느낌을 주는 듯한 “선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고, 시는 인생이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하는 것이라는 표현 역시 의도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 조오현 시를 선적인 경계에서 파악하고자 했을 때 그것들의 내적 층위는 언제나 동일할 수밖에 없다.
“조오현의 시조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은 선(禪)의 경지”라고 언급한 평론가 권영민의 말을 먼저 인용한다.

조오현의 새로운 시법은 구어의 직접적인 수용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말들의 현장인 삶의 일상적 공간을 그대로 시적 공간 속에 재현한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이들 살아 있는 말들은 서로 뒤섞이면서 다양한 목소리의 대화 상황을 연출한다. 이 대화적 공간이야말로 조오현의 시가 창조해내고 있는 새로운 시적 영역이다. 이 공간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의 충동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살려내고 그 충동을 다시 시적 긴장으로 변용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말과 말들의 대화이다. 이 대화는 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상호 충돌하면서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문학사상사에서 출간한 시집 《적멸을 위하여》(이하 《적멸》)는 총 3부로 구성되었는데, 이 중 1부는 〈절간 이야기〉 1~31 연작으로 채워져 있다. 권영민의 탁월한 감식안은 조오현의 새로운 시법을 “살아 있는 말들을 서로 뒤섞으면서 다양한 목소리의 대화 상황을 연출한다.”는 말로 진동시켰다. 다양한 목소리의 대화 상황을 연출한 시 한 편이다.

어제 그끄저께 일입니다. 뭐 학체 선풍도골(仙風道骨)은 아니었지만 제법 곱게 늙은 어떤 초로의 신사 한 사람이 낙산사 의상대 그 깎아지른 절벽 그 백척간두의 맨 끄트머리 바위에 걸터앉아 천연덕스럽게 진종일 동해의 파도와 물빛을 바라보고 있기에
“노인장은 어디서 왔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아침나절 갈매기 두 마리가 저 수평선 너머로 가물가물 날아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여태 돌아오지 않는군요.”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초로의 그 신사는 역시 그 자리에서 그 자세로 앉아 있기에
“아직도 갈매기 두 마리가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했더니
“어제는 바다가 울었는데, 오늘은 바다가 울지 않는군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 〈갈매기와 바다-절간 이야기 2〉 전문

다음은 《벽암록》 제53칙 백장의 들오리(百丈野鴨子)의 본칙이다. 두 작품의 외형과 내적 울림이 사뭇 비슷하다. 느낌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설정된 상황이나 화자와 청자가 주고받는 대화의 밀도에서 그렇다.

마조 화상이 어느 날 백장과 길을 가다가 들오리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화상이 백장에게 물었다.

“저것이 무엇이냐?”
“들오리입니다.”
“어디로 갔느냐?”
“저쪽으로 갔습니다.”
그 순간 마조 화상은 백장의 코를 힘껏 잡아 비틀었다. 백장은 아픔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이때 마조 화상이 백장에게 말했다.
“가긴 어디로 날아갔단 말이냐!”

어떤 시적 기획이 있었던 것인가. 《벽암록》은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로 여길 정도로 칭송되는 심서(心書)요 보서(寶書)이다. 이를테면 설두중현이 100종의 화두를 선별하여 각각 송을 붙였고 원오극근이 텍스트로 삼아 후진 양성을 위해 강의를 했던 책으로, 말하자면 화두집이다. “다양한 목소리의 충동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살려내고 그 충동을 다시 시적 긴장으로 변용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상기해 본다. 선가(禪家)에서는 이런 것을 활구(活句)라고 한다. 말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과 깊은 연기적(緣起的) 관계를 갖는데, 들뢰즈가 생각했던 ‘내재성의 장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강밀도(intensity)의 연속체’로서만 존재의 의의를 갖는다. 활구를 통해서만 개인은 우주와 다르지 않고 우주는 개인을 위해 복무한다.

그의 눈은 목숨의 내부에 있다. 곧 의식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인식의 방법에서 뛰어난 솜씨를 보이고 있다. 그의 직관은 다분히 비전문적이고 비문학적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시인들이 금기로 삼아온 세계를 그가 먼저 문을 따고 들어선 것인지도 모른다.

첫 시집 《심우도》에 수록된 내용으로, 당대 신춘문예를 석권하고 유수의 문학상을 휩쓴 이근배의 탁견이다. 어딘가에서 받았던 시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사람의 생각이 우주의 자장을 뚫고 만물의 언어를 캐내는 것”이라는 대답은 허언이 아니었을 터. 우리는 이 시인을 좀 더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조오현은 어디서 시를 가져왔는가. 그의 비방은 적어도 신시 70년사 속에는 들어 있지 않다. 조오현은 고려 선승들의 게송을 터득한 것이다. 조오현이 승적을 갖고 있고 그가 시보다는 영혼의 세척에 더 많은 시간을 몰입하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안다면 그가 어떻게 오늘의 한국시에 새로운 유형으로 맞서고 있는가는 쉽게 간파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조오현 선시에 관한 직접적인 탐구와 더불어 불교적 사유를 통해 그의 문학적 세계를 엿보려는 시도가 여럿 목격된다. 또한 그의 작업은 민족문학인 시조와 선을 결합해 사상 최초로 선시조를 개척한 공로로 새로운 문학 양식을 정립시켰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이근배가 말하는 “의식으로 사물을 보는” “인식의 방법”은 어떤 것인가. 대체로 초기불교에서는 인식의 영역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특징이 있다면 인식을 여섯 영역(六入 혹은 六處)으로 나누었고, 여기서 현량(現量, 직접 지각)과 비량(比量, 추론)의 개념이 형성되었다. 두 번째가 더 중요하다. 육처 인식론의 특징은 ‘자아(自我)’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니저러니 사량분별하지 않고 단칼이 두 동강을 내야지 아주 맑아지는 법. 원오극근의 말이다.

현량과 비량 중 비량이 사량분별에 속한다. 우리의 인식은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를 기만하는데, 속고 속이는 게 결국 ‘나’라는 존재라니 얼마나 허망한가. 환(幻)과 망집(妄執)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세상은 바로 보인다. 이 점을 이근배는 개안(開眼)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시집 《적멸》 2부는 연작시 〈무산심우도〉 1~10편, 〈무자화〉 1~6편, 〈일색변〉 1~7편과 결구 8, 〈무설설〉 1~6편, 〈달마〉 1~10편, 〈만인고칙〉 1~18편, 〈일색과후〉 1~5편, 〈해제초〉 1~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훨씬 더 게송의 모습에 다가간 느낌을 준다. 이는 이근배의 언급대로 고려 후기의 게송을 살펴보면 보다 선명해진다. 다음은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를 노래한 고려의 선승 나옹(懶翁)의 작품이다.

십여 년 동안 강호를 두루 돌아다녔는데
갑자기 가슴속이 절로 활짝 열렸네
청평에서 그 일 묻는 이 있으면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며 피곤하면 잔다’ 하리라
 — 〈청평산에 머물면서(住淸平山偶題)〉

다음은 백운경한의 게송이다.

고산의 산 밑은 몸 기르기 좋아서
쌀 흔하고 땔감 많아 온 이웃이 풍족한데
무심한 촌늙은이 수단이 적어
불씨를 남에게 빌어 남에게 주네
— 〈산에 살다(居山)〉

고려 후기에 이르러 특히 선가에서 활발히 창작되던 게송은 도(道)와 선(禪)의 일상성을 추구했다. 게송이 일상문화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주목되며, 일상성으로부터 창작되었고 게송에 담긴 도의 내용까지 일상적인 차원으로 나아간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적멸》 1부가 《벽암록》의 본칙과 같은 육성을 가지고 있다면, 2부는 게송과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까지도 흡사하다.

가사, 삼천대천세계의 그 칠보를 다 갖는다 해도
풀 먹인 살림살이 마삼근(麻三斤)도 빳빳했거늘
진실로 풀 그것까지 빨아내는 것만 할까
— 〈동산삼근-만인고칙 2〉 전문

《무문관》 제18칙 같은 제목의 본칙이다. 동산 화상에게 한 수행자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동산 화상이 대답했다. “마가 세 근쯤 되지.” 같은 장에 수록된 게송이다.

갑자기 불쑥 마 삼 근이라고 말하니
말도 친절하지만 뜻은 더욱 친절하다.
여기에 찾아와 시비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시비에 떨어진 불쌍한 녀석이다.

한문의 번역에 따라 의미의 격차가 생길 수 있으나 내적인 기류가 다르지 않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때 조오현은 사족으로 《금강경》 사구게를 달았다. “모양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모양을 모양 아닌 것으로 보면 곧바로 여래를 보리라.(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이 또한 조오현 시론의 지향점이다.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 여래는 형체나 음성으로 알 수 있는 외부가 아니며 지칭해야 하는 대상은 더욱 아니다. 그의 시에서 선문답의 향기가 느껴지는 건 이런 이유에서이다. 어쩌면 권영민이 적시한 “조오현의 새로운 시법”이란 여기서 그 발원을 모색한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선은 여래의 경지로 바로 들어가는 경절문(徑截門)이어서 에둘러 가는 법이 없다. 그래서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라 한다. 단도직입이다. 그러니 사량분별을 놓으랄 밖에. 그는 《무문관》 제37칙의 사족에서 “선문답은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이 아”님을 단호하게 역설한다. 그것이 “삶의 본질에 관한 중요한 문제의 질문과 답변”이라는 주장은 그렇게 설득력을 갖는다.

그렇지만 선문답은 상황에 따른 응대이므로 정답이 있거나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유형별로 정리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는 직설적이고 긍정적인 대답이다. 부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대가 바로 부처’ ‘마음이 바로 부처’ 또는 ‘평상심이 곧 도’라는 식으로 알기 쉽게 답변해 주는 것이다. 이는 근기가 무르익은 사람을 만나 꼭지만 따줄 때 쓰는 방식이다.

둘째는 반어적이고 부정적인 대답이다. 무엇이 부처인가를 물으면 ‘똥 묻은 막대기’ ‘마음도 부처도 아니다’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식으로 상식을 뒤엎어 주는 것이다. 소리를 지르거나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이미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을 응대하는 수법이다.

셋째는 상징과 중의(衆意)가 포함된 대답이다. 무엇이 부처인가를 물으면 ‘삼베가 세 근’이라든가, ‘찰간을 꺾으라’든가 ‘수레바퀴의 굴대를 빼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일상 너머에 있는 사물의 본질을 살펴보라는 독려이다. 이 문답은 고난도의 함의와 상징을 동원함으로써 일상적인 분별심을 타파하는 탁월한 수단으로 채택된 것이다.

이렇게 보니 조오현의 시들이 선문답의 원리에 의해 창작되고 작동한다는 가설은 바야흐로 사실로 수렴된다. 두 번째 단서에 다다른 것 같다. 그의 시는 때로 직설적이며 긍정적이고, 때론 반어적이고 부정적이다. 특히 시집 《적멸》의 2부에 실린 시들은 상징과 중의로 단단히 뭉쳐져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그의 시가 어떻게 완성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 같다. 우리가 궁금했던 것, 지금까지 확인한 조오현의 기획물들을 종합해보면 시는 선(禪)이 펼쳐지는 장이란 소실점으로 모인다.

수행의 외진 길에서 그가 만난 시는 그러므로 세계를 응시하는 가장 예민한 감각이었고 프레임에 갇힌 세계에서 주체를 모색하려는 투철한 자기인식이었다. 이때의 자기인식이란 자신의 감각으로부터도 이탈한 자의 순수감각이어야 한다.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는 그런 감각 말이다. 조오현 역시 중국에서 성립한 조사선(祖師禪)의 특징을 ‘일상성’으로 보았다. 어떠한 진리도 일상성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선은 그런 것에조차 얽매이지 않는 법. 비유비무(非有非無)이기 때문이다.

탈주와 해탈의 시학

비유비무는 존재의 양상이다. 적어도 불가에서는 그렇게 본다. 비유비무임을 깨닫기 위해 우리는 의심한다. 우리는 본성에 대한 의심을 화두에서 찾으며, 조오현은 시를 통해 의심을 달성한다. 본래면목을 밝히려면 화두를 들고 그것에만 간절히 사무쳐야 한다. 화두 하나만 오롯이 남을 때까지. 이때 어떤 계기를 만나면 몰록 본래 모습을 깨치게 되는 것이다. 깨치게 되면 원래 그것은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던 것임을 확연히 알게 될 것이고 인과(因果)를 벗어나 대자유를 얻을 것이다.

비교하자면, 우리는 이미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자 했던, 그렇지 않고서는 어떠한 확고함에 도달할 것 같지 않았던 의심. 데카르트 역시 끝없이 의심했다. 그런데 의심을 하면 할수록 자명해지는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생각하는(의심하는) 나였고, 성공 여부를 떠나 근대 이성은 여기서 촉발되었다. 바로 이즈음에서 우리는 길을 잃는다. 방향만 같아 보일 뿐 코기토와 화두는 근본적으로 다른데도 말이다. 전자가 의심할수록 선명해지는 ‘나’가 있음[有]을 확인하는 작업이라면 후자는 진공묘유(眞空妙有)로서의 나, 무아로서의 나로 전력 질주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화두에서 발견되는 나는 연기된 존재로서 자성이 없음[非有非無]을 깨달은 나이다. 그러니 엄연히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것 아닌가.

이제 지향성의 문제로 넘어갈 때가 되었다. 눈치챘겠지만 선승 조오현과 그의 시들이 지향하는 바는 결국 화두다. 그 스스로 화두가 되려고 했고 각각의 시편들에서 날 선 화두를 던진다. 시집 《심우도》의 자서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수록된 제1부는 60년대 말 백수(白水)의 영향을 받고 그때의 심경에 일고 지는 희비의 어룽을 그려본 것들이고 제2부는 70년대 초 경허(鏡虛)와의 만남에서 얻어진 것들이다.

비구(比丘)나 시인으로는 경허를 만날 수 없었다. 동대문시장 그 주변 구로동 공단 또는 막노동판 아니라면 생선 비린내가 물씬 번지는 어촌 주막 그런 곳에 가 있을 때만이 경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 곳은 내가 나로부터 무한정 떠나고 떠나는 길목이자 결별의 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비구나 시인이길 원하지 않는다. 항상 나로부터 무한정 떠나고 싶을 뿐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바로 “나는 비구나 시인이길 원하지 않는다. 항시 나로부터 무한정 떠나고 싶을 뿐이다”라는 구절. 이제 그가 소속된 국적은 어디에도 없다. 모국어조차 놓아버린다. 순수한 화두이며 무국적의 아나키스트로 남을 뿐 다른 모든 것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욕심을 버리는 게 아니라 무용하기에 취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선택은 위험하지만 그러므로 더욱 묘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첫 시집에서부터 ‘결별의 순간’을 논한 것인데, 이처럼 탈주는 자신과 시로부터 차츰 가속화된다. 데리다라면 모순인 구조에서부터 탈중심화가 진행되는 중이라고 격양된 어조로 말했을 테지만, 대상으로부터의 탈중심화가 아니라 중심 자체를 완전히 소각시켜버리는 무화로서의 극복이라고 조오현은 오히려 담담해진다. 사실 원래 없던 자리 아닌가. 언어의 구조는 원래가 시뮬라시옹이며 변계소집인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강물도 없는 강물 흘러가게 해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 범람하게 해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뗏목다리
— 〈부처-무자화 6〉 전문

원래 없던 강물이 어떻게 흘러갈 것이며 어떻게 범람한단 말인가. 그야말로 은산철벽 같은 이런 의단은 거듭될수록 “본업은 수행자”라던 말에까지 미친다. 물론 한참 지난 후의 이야기지만 이렇게 토로하기도 한다. “절에 부처 없다. 각자 자기 자신이 미완의 부처다.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 즉 선에도 집착하지 말고 악에도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성스럽게만 여겨왔던 수행의 길마저 차별이나 분별심과 함께 한꺼번에 베어버린다. 화두는 취모검의 구실도 하는 법이니까. 화두의 핵심이 이 세계에 성스러운 진리[第一義諦]란 없으니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일에 충실할 것에 집중되어 있다면, 화두의 기능은 의심 그 자체에 있기에 일체의 사량분별을 멈추게 하는 일에 매진한다. 자신의 본래면목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오의 제자 대혜종고(大慧宗杲)는 “마치 절벽을 마주하는 것처럼 화두 앞에 의심을 세우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언어나 사유 활동이 사라지고 인간이 본래적으로 간직한 청정자성(淸淨自性)이 오롯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삶의 즐거움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 〈적멸을 위하여〉 전문

선승이자 시인인 조오현의 열반송은 우리에게 강렬하게 인식되었다. 한데 피모대각(披毛戴角)은 조오현이 자주 쓰던 말이었다고 한다. 정지용문학상을 받은 시집 《아득한 성자》에서 특히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는데, 수상소감으로 할애된 지면에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 페이지 책 끝에 보이는 시자에게 주는 〈등걸불〉이란 시는 이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담는다. “지금껏 씨떠버린 말 그 모두 허튼 소리/ 비로소 입 여는 거다, 흙도 돌도 밟지 말게/ 이 몸은 놋쇠를 먹고 화탕(火湯) 속에 있도다”. 무얼까, 성찰이라기보다 반성에 가깝고 긍정이라기보다 부정이라는 감정이 더 짙게 배어 있는 이런 발성은. 이런 발성에 휘청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또한 그가 시를 만들어내는 다른 자리인가 생각하며 깊어질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적멸이고, 그것이 조오현 문학의 세 번째 단서이겠다.

많은 담론이 또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조오현 문학을, 정확히 말해 그의 선시조를 심우(尋牛)에서 적멸(寂滅) 사이를 운행하는 어떤 정신의 흐름이라고 이해한다면, 앞서 언급한 열반송도 그 어디쯤 위치할 것이다. 이는 비구나 시인이라는 어떤 양태적인 구조에도 걸리지 않겠노라는 뚜렷한 욕망의 표출이지만, 그것의 내적 층위에서는 에고로서 욕망이 아니라 에고를 벗어나려는 욕망으로 작동한다. 요약하자. 그의 선과 시 그리고 현실은 한 점으로 모인다, 그 한 점이 화두다. 위태롭지만 그는 화두를 통해 생존하려 했다. 그의 시업을 한마디로 옮기면 이런 것 아닐까. 게송으로서의 화두는 감상의 차원으로 전시되는 게 아니라 각성을 목표로 던져진다. 사구가 아니라 활구의 차원인 것이다. 만약 그의 시가 정말 우리에게 던진 화두였다면 두고두고 다시 읽으며 곱씹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일이니 말이다. ■

 

김관용 
시인. 201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울산대학교 철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과정 수료(화엄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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