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불교 ⑤

경제개발과 민주화 세력이 맞서면서 각자의 세를 불리고 공고히 해가, 오늘의 보수와 진보의 명분이 되게 한 연대가 1970년대다. 1961년 5 · 16쿠데타로 집권한 군사독재 정권은 조국의 근대화를 명분으로 내걸었다. 이듬해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순차적으로 수립하고 총력으로 밀어붙이며 1970년대 산업화시대에 들어섰다.

가난을 몰아낸 경제성장을 내세우며 집권을 영구화하기 위해 1972년 군사정권은 ‘10월 유신’을 단행,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마저 제한하려 들었다. 이런 초법적 독재에 맞서 민주화 세력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연대가 1970년대다. 산업화에 따른 도시와 농촌의 격차, 도시로 몰려든 인구들에 의한 빈민 등 소외층 대두, 노동문제 등이 불거지며 사회 각층에서 터져 나온 민주화 요구에 부응하며 민주화 세력이 세를 불려간 연대이기도 하다.

우리 문학의 시도 이런 시대 분위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니 그런 시대의 징후를 누구보다 먼저 읽고 이끌고 위무하는 것이 우리 시의 영예롭고 당당한 역사적 책무 아니었던가. 하여 1970년대 우리 시는 독재에 맞서며 경제와 성장 제일주의에 소외당한 이웃과 인간 본디의 마음자리 돌보게 해줬다.

엄혹했던 독재 치하에서 시대와 사회 상황과 유리된 순수문학은 그 입지를 잃은 연대가 1970년대이기도 하다. 1960년대 순수문학과 예리한 논쟁을 벌였던 참여문학이 대세를 이루며, 대신 예리한 선전 선동의 이념이나 목적성을 순화해 서정성을 띠어간 연대이기도 하다.

정희성(1945∼  )
풀을 밟아라 /  들녘엔 매 맞은 풀 / 맞을수록 시퍼런 /  봄이 온다 /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룰 수 없어 / 봄은 스스로 풀밭을 이루었다 / 이 나라의 어두운 아희들아 / 풀을 밟아라 /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 /
풀을 밟아라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정희성 시인의 초기 시 〈답청(踏靑)〉 전문이다. 유신독재 시대의 어둠을 걷고 봄을 부르자는 메시지가 어렵잖게 읽히는 시다. 그러면서도 직설적이지 않고 시의 미학, 규율을 충실히 지키는 시이기도 하다.

이렇듯 유신독재와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와 소외된 민중이 나뉜 1970년대 우리 시단에는 많은 시인이 나와 시대와 함께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하는 불교의 수행 덕목을 시를 통해 실천했다. 또 순수와 참여, 불교의 깨달음과 시가 불이(不二)임을 1970년대 출신 시인들의 불교적 시편들은 보여주고 있다.

윤후명‐차안(此岸)에서 꿈꾸고 실현하는 피안(彼岸)의 유토피아

지금 또 내 겨울새는/ 야수의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빙하 끝에서/ 생명의 불씨를 물고 온다./ 부리에 가득히 물고 온다./ 꺼져가던 여리고 여린 목숨을 되살려/ 당신과 함께 내 그림자를 띄워 보낸/ 가을 강 위의 목마른 높은 바람을 불러세우며/ 발갛게 빙하 끝에서/ 내 인류와 치열을 당신의 젖은 눈매와 내 천년의 불씨를, 당신과 나의 새 원천을/ 부리 가득히 물고 날아온다.

윤후명(1946∼  )
윤후명 시인(1946~ )의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빙하(氷河)의 새〉 마지막 대목이다. 양성우 시인이 읊었듯 군사독재 치하는 ‘겨울 공화국’이었고 빙하기였다. 그래도 시인들은 빙하에서도 생명의 불씨를 물고 오는 존재 아니던가. 그런 시대의 당위성을 떠나 존재론적으로도 고해(苦海)와 화탕(火湯) 지옥 같은 현실에서도 생명과 해탈을 구하는 몸부림이 우리네 삶 아니겠는가. 당선 소감에서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며’ 산다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이야기로서 내 모든 소유를 바쳐 그런 시간을 향유하고 싶다”고 다짐했듯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대자대비한 불심으로 창작에 여일한 작가가 윤 시인이다.

윤 시인은 1969년 임정남과 강은교, 그리고 김형영, 박건한 시인과 시 동인지 《70년대》를 창간했다. 1960년대와는 분명 다른 시를 보여주기 위해 동인 명칭을 그렇게 잡은 동인에는 승려 출신 석지현 시인과 정희성 시인도 동참해 시의 시성(詩性)과 시대성의 균형을 잡아나갔다.

날새의 제일 유심히 반짝이는/ 두 눈깔을 꿰뚫음에/ 공명(共鳴)하며 하룻밤을 흔들린 이의/ 사무치는 뜬 눈의 웃음/ 드넓고 광포해라,/ 새가 온 들을 채어 쥐고/ 한 기운으로 푸드드득 오를 때/ 활짝 당겨 개이는 먼오금/ 숲과 들을 벗어나 휘달려/ 그는 죽음의 사랑에 접근한다

1977년 펴낸 첫 시집 표제작인 〈명궁(名弓)〉 부분이다. 온 들판을 채어 나는 새의 반짝이는 두 눈깔과 활시위를 당기는 듯 팽팽한 시인의 마음이 긴장되게 공명하고 있다. 윤 시인은 현상이 아니라 사물의 ‘눈깔’, 본질적 핵심을 꿰뚫으려 한다. 그러면서 현상과 본질, 사랑과 죽음의 이율배반을 넘어 불이의 세계에 들어서려 한다.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산역(山役)〉이 당선돼 1983년 첫 소설집 《돈황의 사랑》을 펴내며 소설에서도 그런 문학세계를 펼쳤다. 표제작에서 한 가난한 중년 실직자 ‘나’는 꿈속 세계로 여행한다. 서역 타클라마칸사막과 그곳을 건너가는 한 마리 사자와 신라승 혜초와 둔황벽화 속의 비천녀 옷자락 등 환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나’의 하루를 그리며 현실과 꿈, 영원과 찰나, 과거와 현재 등 2분법을 뛰어넘어 세상과 삶의 본질을 꿰려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가려고 했던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이 어디인지 몰라서 떠돌다가/ 젊어서도 늙어 있었고/ 늙어서도 젊어 있었습니다/ 무지개가 사라진 곳에 있다고도,/ 사랑이 다한 곳에 있다고도,/ 슬픔이 묻힌 곳에 있다고도,/ 짐짓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인지 그곳은 끝끝내 멀고 아득하여/ 세상 길 어디론가 헤매어갑니다/ 꽃 한 송이 필 때마다 그곳인가 하여/ 영원히 머물면서 말입니다

그런 윤 시인의 삶과 문학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최근 시 〈고향〉 전문이다. 윤 시인은 젊어서도 늙어서도 세상 길 어디론가 항상 헤매어가고 있다. 아니 머묾과 떠남이 함께하는 헤맴의 영원한 출발선상에 있다. 인간의 순수 혼, 사랑과 그리움의 근원 혹은 고향의 참모습을 유토피아 혹은 피안이 아닌 이 세상 차안에서 보여주고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란 《임제록》의 화두를 풀어내고 있는 게 윤 시인의 삶이요 시와 소설이다.

조정권‐동서양 사상과 종교, 문학 궁극의 정신으로 맞닿은 불교

7/ 먹으로 흰 꽃을 그리다// 8/ 세이각(洗耳閣) 문고리/ 소리 하나 없이 공하다// 9/ 연못바닥 환하고 공하게 드러나니 두 번 겨울눈이 온다// 10/ 내 화두는 추위 한 점 안 먹은 달/ 설월(雪月)의 처마 끝

조정권(1949~2017)
조정권 시인(1949~2017)의 시 〈청빙가(聽氷歌)〉 한 대목이다. 197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조 시인은 ‘설원의 처마 끝’, 은산철벽(銀山鐵壁)에서 위 시 제목처럼 쇠같이 단단하면서도 하얀 얼음같이 빛나고 투명한 100% 순도의 도(道)를 구가한 시인이다. 불교와 한학에 정통한 김달진 시인의 영향을 받은 조 시인은 이 물질문명의 시대에 〈청빙가〉를 화두 삼아 정신의 궁극을 보여주고 간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십삼 촉보다 어두운 가슴을 안고 사는 이 꽃을/ 고사모사(高士慕師) 꽃이라 부르기를 청하옵니다./ 뜻이 높은 선비는 제 스승을 홀로 사모한다는 뜻이오나/ 함부로 절하고 엎드리는/ 다른 무리와 달리, 이 꽃은/ 제 뜻을 높이되/ 익으면 익을수록/ 머리를 수그리는 꽃이옵니다./ 눈 감고 사는 이 꽃은/ 여기저기 모여 피기를 꺼려/ 저 혼자 한 구석을 찾아/ 구석을 비로소 구석다운 분위기로 이루게 하는/ 고사모사 꽃이옵니다.

첫 시집에 실린 위 〈코스모스〉 전문에는 조 시인의 시작 태도가 공손하면서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코스모스를 음상(音像)에 따라 “고사모사”라 부르자며 지조 높은 선비의식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구석을 비로소 구석다운 분위기를 이루게” 한다며 선비의 높고 넓고 깊은 정신들을 다 껴안은 불법(佛法)의 원융함도 드러내고 있다.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 벼랑 꼭대기에 있지만/ 예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숴버린 이.

조선조 선비 이언적이 경주에 낙향해 지은 독락당을 소재로 한 〈독락당〉 전문이다. 다섯 행의 이 짧은 시에서 조 시인은 자신만의 정신적 정자를 짓고 있다. 선가에서 화두가 막힐 때 흔히 쓰는 ‘은산철벽’이니 ‘백척간두 진일보’니 하는 관념 그대로가 빛나게 구체화되고 있다.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중략)// 한때는 눈비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한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그리고 다시 한때는 물과 불의 형상으로 오던 나날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헛된 휴식과 오랜 기다림/ 지치고 지친 자의 불면의 밤을/ 내 나날의 인력으로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둠은 존재의 처소에 뿌려진 생목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 누르지 않는다면.

연작 장시 〈산정묘지 1〉 처음과 마지막 대목이다. 동서고금의 견인주의 사상과 종교, 그리고 고전과 낭만주의 시혼과 톤이 웅혼하게 빛나는 시다. 온 길, 갈 길 다 끊긴 은산철벽 벼랑 끝에서 오로지 심혼에서 길어 올린 시다. 그런 심혼이 궁극엔 불교에 맞닿고 있다. 이런 정신의 궁극에서 나온 시로 한 천 년이 다음 천 년으로 넘어가던 지난 세기말 혼란기, 인간의 위의를 지켜내게 한 시인이 조정권 시인이다.

나태주‐어린애 같은 맨몸 맨 마음으로 드러내는 불심의 시편

아이들 몽당연필이나/ 깎아 주면서/ 아이들 철없는 인사나 받아 가면서/ 한 세상 억울한 생각도 없이/ 살다 갈 수만 있다면/ 시골 아이들 손톱이나 깎아 주면서/ 때 묻고 흙 묻은 발이나/ 씻어 주면서 그렇게/ 살다 갈 수만 있다면.

나태주(1945∼  )
나태주 시인(1945~ )의 시 〈초등학교 선생님〉 전문이다. 40여 년간 공주 등 지방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지내다 정년퇴직한 시인이어서 그런가. 마음의 고향인 동심, 초심(初心)을 열망하고 있는 시다. 말년의 피카소가 “아이들처럼 그림 그리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늙었다고 말했다”며 나 시인은 “아이의 감성으로, 아이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해서 시인은 자신의 시에 대해 쓴 시론시로 볼 수 있는 〈시〉 전문에서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이라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다. 버려진 마음의 보석들이 시라고. 마음의 본디에 대해 수행자처럼 처음부터 물고 늘어진 시인이 나 시인이다.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대숲 아래서〉 첫 장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며 온갖 세상과 사물을 낳는 마음에 집착하고 있는 시다.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차츰 버리고 그냥 어린애같이 맨몸, 맨 마음으로 써 내려가며 외려 독자들과 큰 공감을 나누는 시인이다.

내 이승에서 빚진 마음들을 모두 갚게 되는 날,/ 너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백발로 졸업하게 되는 날/ 갈꽃 핀 등성이 너머/ 네가 웃으며 내게 온다 해도/ 하낫도 마음 설레일 것 없고/ 하낫도 네게 들려줄 얘기 이제 내게 없으니/ 너를 안다고도/ 또 모른다고도/ 숫제 말하지 않으리.// 그 세상에 흔한 이별이며 눈물,/ 그리고 밤마다 오는 불면들을/ 내 모두 졸업하게 되는 날,/ 산에 다시 와서/ 싱그런 나무들 옆에/ 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비교적 초기시인 〈다시 산에 와서〉 마지막 대목이다. 속세의 인연을 끊고 또 끊으며 산문(山門)에 드는 수도승의 결기가 엿보인다. 이렇게 세상과의 이러저러한 연, 언어와 시에 묻어날 수밖에 없는 의미의 연을 끊으며 맨몸 맨 마음으로 다가오는 시가 나 시인의 시편이다.

숨을 들이쉰다/ 초록의 들판 끝 미루나무/ 한 그루가 끌려 들어온다// 숨을 더욱 깊이 들이쉰다/ 미루나무 잎새에 반짝이는/ 햇빛이 들어오고 사르락 사르락/ 작은 바다 물결 소리까지/ 끌려 들어온다// (중략) // 산 위에 두둥실 떠 있는/ 흰 구름, 저 녀석/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몸 안에서/ 뛰어놀던 바로 그 숨결이다.

그런 나 시인의 시적 자세가 잘 드러난 〈멀리까지 보이는 날〉 부분이다. 통과제의(通過祭儀)라 했던가, 우리가 나이 들어 사회에 편입돼 아등바등 살아가며 잃어버리게 마련인 유년의 고향, 삼라만상과 거리감 없는 동무로 일체가 돼야만 우러날 수 있는 시다.

‘흰 구름’을 ‘저 녀석’이라 부르며 동무 삼아 초록 들판, 미루나무, 햇빛, 바다 물결 소리, 뻐꾸기 꾀꼬리 울음, 봉숭아 꽃나무, 산 등과 함께 숨을 들이쉬고 내어 쉬고 있지 않은가. 그것들을 대상으로 보아 뭐라 꾸미고 해석하려 들지 않고 그냥 그대로 맨몸으로 어울리고 있다.

무심히 지나치는/ 골목길// 두껍고 단단한/ 아스팔트 각질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새싹의 촉을 본다// 얼랄라/ 저 여리고/ 부드러운 것이!// 한 개의 촉 끝에/ 지구를 들어올리는/ 힘이 숨어 있다.
— 나태주 〈촉〉 전문

나태주 시인의 그런 맨몸 맨 마음의 시학은 ‘얼랄라’라는 동심과 여리고 부드러운 마음, 어느 곳에 갇히지 않고 어느 것에도 걸리지 않은 천진난만에서 나온 것이다. 《불교문예》 주간을 맡아 불교와 문학을 구체적으로 접목하려 애썼던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 불교의 고단위 추상과 관념들도 한층 살갑게 다가온다.

이성선‐설악을 도량 삼아 일군 우주와 겹쳐지는 찰나의 시학

내가 지금 아픈 것은/ 어느 별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밤늦게 괴로운 것은/ 지상의 어느 풀잎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토록 외로운 것은/ 이 땅의 누가 또 고독으로 울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하늘의 외로운 별과 나무와/ 이 땅의 가난한 시인과 고독한 한 사람이// 이 밤에 보이지 않은 끈으로나/ 서로 통화하여 앓고 지새는// 병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여.

이성선(1941~2001)
이성선 시인(1941~2001)의 시 〈별의 아픔〉 전문이다. 사랑에 아파하는 독자들에겐 위안이 되는 연시(戀詩)로 읽힐 수 있다. 우주는 한 끈으로 연결된 한 생명체, 불교의 인드라망이나 자신은 물론 중생을 구하는 실천덕목인 대자대비(大慈大悲)가 아무런 작위 없이 그대로 드러난 시이기도 하다.

설악산을 도량으로 삼아 오르내리며 사랑의 아픔을 황홀로 바꿔나간 시인이 이 시인이다. 1971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 시인은 설악산 자락 고성에서 태어나 설악산에서 살다 백담계곡에 뿌려져 그대로 설악산이 된 시인이다.

설악은 하늘의 첫 마음을 받은 산. 그러기에 단풍 빛이 가장 곱고 산의 자태 또한 신성하다. 이런 때 설악 어디를 찾아가든 도량 아닌 곳이 있으랴. 산 전체가 큰 절이다. (중략) 길 따라 흐르는 물의 백 개 연못에 백 번 얼굴을 비치고 백 번 마음을 고쳐야 열리는 산문(山門). 연꽃보다 더 오묘한 구중심처의 이 산문 깊숙이 들어서면 귓가에 넘치는 물소리가 모두 부처님 설법으로 들리고 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전부 오도송이며 우거진 쑥대풀과 억새꽃이 다 시다.

설악이 단풍으로 붉게 물들 때 신문에서 청탁받아 쓴 위 〈설악 찬가〉 한 대목처럼 설악산은 이 시인에게 우주와 교호하는 불법을 깨쳐준 도량이었다. 그런 깨달음을 얻어 ‘산시(山詩)’ 연작 시편을 쓰면서 확실히 자신이 설악의 주인임을, 아니 자기 자신이 곧 설악임을 각인시키고 간 시인이다.

“당신을 껴안고 누운 밤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돌 하나 품어도/ 사리가 되었습니다”(〈산시 5〉 전문) 설악의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바람소리, 벌레 한 마리 등등 삼라만상은 다 시인에게 부처님으로 보이고 설법으로 들렸다. 자신은, 자신의 시는 그들이 노래하는 통로이기에 그 통로를 맑게 비워내는 일이 시 쓰기였다.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이/ 절 마당을 쓴다/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산에 걸린 달도/ 빗자루 끝에 쓸려 나간다/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 이성선 〈백담사〉 전문

위 시에서처럼 스님이 도량을 쓸 듯 시인은 마음을 닦았다. 그래서 맑게 비워지면 비워질수록 더 차오르는 것들,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실한 세상을 살다 갔다.

달빛 젖은 강물 위로 꺼질 듯/ 작은 생명 하나 불꽃 시를 쓰며 가는구나/ 어둠의 강가강에 혼자 앉아 다짐한다/ 이제 삶이 무엇인지 더 묻지 않으리라/ 내가 누구인지도 다시 묻지 않으리라/ 시인의 강물인 대지 위를 흐르며/ 저 꽃등처럼 목숨 사루어 시를 쓰며 떠가면 되리라

말년, 인도를 여행하며 성지 바라나시에 흐르는 강가강에서 얻은 시 〈깊은 강〉 마지막 대목이다. 삶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등 물음을 떠난 곳에서 나온 것이 이 시인의 시다. 물음과 언어의 사다리는 걷어치우고 만물과 황홀하게, 혹은 서럽게 어우러지는 찰나를 살며 시로 붙잡다 간 시인이다.

작은 날개로/ 길을 다 지우고 가 버려서// 그가 떠난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가지 위에 떨림 하나/ 그것도 잠깐 만에 사라졌다// 그의 삶/ 불립문자(不立文字)/ 황홀한 조도(鳥道)

말년에 오도송(悟道頌)처럼 쓴 시 〈조도(鳥道)〉 전문이다. 나는 새는 허공 길에 족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했던가. 불법의 세계는 말로 전할 수 없어 부처님도 입적하시며 ‘나는 한마디도 안 했다’고 했던가. 이성선 시인도 그래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불립문자의 삶이라 해 소원대로 몸은 백담계곡 물에 뿌려졌지만, 시인이 남긴 시를 통해 독자들은 물론 삼라만상이 불법의 황홀한 떨림에 오늘도 젖어 들고 있다.

최동호‐불립문자(不立文字)와 불이문자(不離文子)의 극서정

황하(黃河) 강변 모래바람/ 날 흐리게 불어/ 보오얀 산그리매를/ 우이동(牛耳洞) 큰 바위산 너머로/ 떠메어 가고// 깊은 갈증의 밤을/ 만년필에/ 맑은 물처럼 담으면/ 사그럭거리는 모래 소리에// 이 한낮/ 황사바람이 창문을 때리니,/ 해말간 살결을/ 잔잔한 햇빛 속에 잠그면/ 거대한 강물이 소리 없이 흐른다.

최동호(1948∼  )
최동호 시인(1948~ )이 1976년 펴낸 처녀시집 《황사바람》의 표제작 부분이다. 고교 시절 조정권 시인과 동문으로 함께 시를 공부하고 썼던 둘은 우리 현대시사에서 정신주의 시 세계를 드높인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도 등단한 최 시인은 동양의 사상과 종교, 문학론을 섭렵하며 정신주의 시학을 정립하고 시적으로 실천해가는 시인이다.

위 시에서도 황사바람의 흐릿함 속에서도 현상 너머 우주를 운항하는 본질, 도(道)를 갈구하는 시적 자세가 잘 드러나고 있다. 구도(求道)의 갈증의 밤을 맑은 물처럼 만년필에 담아 도의 세계를 사각사각 구체적으로 전하려 하는 게 최 시인의 시 세계다. 그런 시인의 구도적 자세는 또 자연스레 불법에 이르고 있다.

저물녘까지 공을 가지고 놀이하던 아이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고, 공터가 자기만의/ 공터가 되었을 때/ 버려져 있던 공을 물고/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와 놀고 있다// 처음에는 두리번거리는 듯하더니/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혼자/ 공터의 주인처럼 공놀이하고 있다/ 전생에 공을 가지고 놀아본 아이처럼// (중략) // 어둠이 빠져나간 새벽녘/ 이슬에 젖은 소가죽 공은 함께 놀아줄/ 달마를 기다리며 버려진 아이처럼 잠든다

2002년에 펴낸 시집 《공놀이하는 달마》 표제작 부분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라는 선가(禪家)의 대표적 화두를 부제로 내건 ‘달마’ 연작시를 통해 우리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불법을 파고들어 간다. 위 시에서 소가죽 공과 아이들과 개는 인연설에 의해 하나가 되고 있다. 또 공은 통통 튀는 실제의 공이면서 공터의 공(空)이기도 하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示空 空卽示色)’이란 고단위 관념을 공놀이하듯 가지고 놀며 구체화하고 있다.

아침 딱따구리 계곡의 나무를 둥치 큰 나무를 흔드는데/ 졸면서 마당 쓰는 동자승 바라보고/ 빙그레 미소 짓는 부처님 살풋한 눈빛// 법당의 큰스님 자기 해골 두드리는 소리/ 산과 계곡으로 퍼져나가/ 세상의 햇살이 아기 걸음마처럼 화창하다

‘달마’ 연작인 〈해골바가지 두드리면 세상이 화창하다〉 전문이다. 원효 스님은 당나라로 구도 유학을 가다 갈증 나 달게 마신 물이 해골바가지 물임을 알고 크게 깨쳐 이 땅에 주저앉아 한국의 자체적 불교를 일궜는데, 위 시에서는 온 머리통으로 억센 나무를 두드려 밥을 얻는 딱따구리 소리, 큰스님 자신의 머리통 해골을 두드리는 듯한 목탁 소리에서 한소식 하고 있다. 정신과 구도의 극한 해골바가지가 내는 소리 같은 게 최 시인의 시이기도 하다.

새벽바람을 불러오는/ 목탁소리// 먹물 든 산 그림자를/ 지우고 있는 사람// 마당을 북처럼 두드리다/ 바다로 가는 빗방울// 머리에 피뢰침을 꽂고 간/ 요절 시인

《유심》 2010년 11/12월호에 발표한 〈빗방울〉 전문이다. 같은 지면에 발표한 〈트위터 시대와 극서정시(極抒情詩)의 길〉이란 시론에서 최 시인은 장황하고 난삽하며 소통 부재의 시들이 갖는 몽환적 속박으로부터 우리 시를 구하자며 극서정시를 제창했다. “극도로 정제된 서정시, 다시 말하면 단형의 소통 가능한 서정시”를 쓰자며 그 본보기인 양 위 시를 발표했다.

위 시에는 수식어가 없어 장황하고 난삽한 감상이 끼어들 틈이 없다. 새벽바람, 목탁 소리, 산 그림자, 마당, 빗방울, 피뢰침, 시인 등 사람이든 사물이든, 죽은 것이든 산 것이든, 시간이든 공간이든 모두 시어들이 지칭하는 대상에 착 달라붙어 무등하게 주인으로 행동하고 있다. 그런 우주와 예민하게 만나러 피뢰침 꽂고 스러져가는 시인이란 아주 인상적인 종결이 언어도단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시란 불립문자의 도니 불법마저도 언어로 전해야 한다. 해서 시는 불립문자와 불이문자 사이의 벼락 흐르는 피뢰침 같은 긴장에 놓이게 된다. 그런 긴장된 깨우침을 극서정, 해골의 시학으로 전하고 있는 시인이 최동호 시인이다.

정호승‐일상에 밴 불교를 차용한 시의 대중적 공감력과 시적 깊이

그는 모든 사람을/ 시인이게 하는 시인/ 사랑하는 자의 노래를 부르는/ 새벽의 사람/ 해 뜨는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고요한 기다림의 아들.// (중략) // 날마다 사랑의 바닷가를 거닐며/ 절망의 물고기를 잡아먹는 그는/ 이 세상 햇빛이 굳어지기 전에/ 홀로 켠 인간의 등불.

정호승(1950∼  )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호승 시인(1950~ )이 1982년 펴낸 시집 《서울의 예수》에 실린 시 〈시인 예수〉 부분이다. 유신독재와 5 · 18광주민주화운동 학살의 참상에 질린 가슴들을 위무하고 속죄하기 위해 예수님을 내세우고 있는 시다. 어둠과 절망을 살라먹는 햇살처럼 어두운 시대 사랑으로 인간의 등불을 밝히는 시를 쓰겠다는 시적 자세도 엿볼 수 있다. 이런 정 시인의 사랑의 시학은 불교의 소재와 언어, 그리고 불교의 역설적 문법을 만나며 우리 일상 속에서 대자대비 보살심을 구체적으로 나투게 한다.

나는 그대의 불전함(佛錢函)/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는 배고픈 불전함/ 동전 한닢 떨어지는 소리가 천년이 걸린다// 내가 손을 내밀지 않아도/ 내 손이 먼저 무량수전 마룻바닥을 기어가듯/ 천년을 기어가/ 그대에게 적선의 손을 내미나니/ 뿌리치지 마시라 부디/ 무량수전이 어디 부석사에만 있었던가

무릎과 팔꿈치에 타이어 조각을 덧대고 기어 다니며 구걸하는 걸인을 소재로 한 시 〈걸인〉 부분이다. 그런 걸인을 죄업을 사하고 적선(積善)의 기회를 줘 영원한 극락세계에 이르게 하는 부처님과 동급으로 보고 있다. 지하철 바쁜 일상도 무량수전 같은 도량임을 자연스레 일깨우고 있는 시다.

돌아오라/ 날개를 잃고 저물도록 겨울 숲으로 날아간 새들아/ 돌아와 내 야윈 가슴을 맛있게 쪼아 먹어라/ 내 오늘 한평생 걸쳤던 맛없는 옷을 벗고/ 통나무로 만든 헌식대에 알몸으로 누워/ 쓸쓸히 밤하늘 별들을 바라보느니/ (중략)/ 내 비록 한 사람도 사랑하지 못한 더러운 몸/ 내 비록 돈을 벌기 위해 평생 동안 잠 못 이루던/ 더러운 마음이지만/ 돌아오라 새들아 밤안개를 데리고/ 고요히 미소를 지으며 돌아와 나를 쪼아 먹어라/ 오늘 밤에는 극락전 너머로 첫눈이 내린다

불심 가득한 티베트의 조장(鳥葬)을 떠올리게 하는 시 〈헌식대에 누워〉 부분이다. 지치고 아픈 새들, 삼라만상 뭇 생령들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 자체를 쪼아 먹고 기운차리라는 시다. 삶에 지치고 다친 우리 독자들의 영혼에 바치는 희망의 양식이기도 하다. 일상 속에서 대자대비의 적극적 실천행위, 그런 행위 자체가 극락임을 보여주고 있는 시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마음의 설산뿐이다

2013년에 나온 11번째 시집 《여행》 표제작의 전문으로 나오자마자 널리 낭송되고 있는 시다. 우리네 삶 가운데 이러저러한 여행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면서 제목부터 대중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권유형과 명령형의 단호한 어조가 여행에 초대하고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마음으로의 여행이 삶이라는 것을 쉽게 환기하고 있다. 삼라만상의 본체는 오직 마음뿐이라는 불교의 유심(唯心)을 여행에 실어 쉽고도 단호하게 전하고 있다. 이처럼 불교적 소재와 문법을 시를 위해 차용해 들이고 있으나 되레 우리네 일상의 삶과 사랑 속에서 불교적 요체를 쉽고 인상적으로 독자 대중들에게 널리 전하고 있는 시인이 정호승 시인이다.

최승호‐세속 도시문명에 맞선 날 선 자의식을 버리며 만난 불교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중략) /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최승호(1954∼  )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최승호 시인(1954~ )이 1983년 펴낸 첫 시집 《대설주의보》에 실린 시 〈북어〉 전문이다. 표제시에서 조용한 산간에 내린 대설을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이라 표현했듯 위 시도 군부독재에 짓눌린 시대를 아가리 쫙쫙 벌린 북어를 통해 부르짖고 있다.

케케묵은 먼지 속 꼬챙이에 꿰인 북어와 시대와 문명에 짓눌린 인간을 한 쾌로 보며 도시와 문명을 비판하며 인간, 자아의 본모습을 찾고 있는 시이기도 하다. 최 시인은 이렇게 도시와 문명을 비판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불교와 만나게 된다.

아마 무너뜨릴 수 없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빈 듯하면서도 공터는/ 늘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공터에 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때때로 바람은/ 솜털로 싸인 풀씨들을 던져/ 공터에 꽃을 피운다/ 그들의 늙고 시듦에/ 공터는 말이 없다/ (중략) / 공터는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아마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공터를 소재로 삼아 도교와 불교의 핵심인 ‘공(空)’을 깨달아가고 있는 〈공터〉 부분이다. 꽉 찬 세속의 문명도시에서 텅 빈 고요의 공터를 바라보며 명상하는 것은 진아(眞我)를 찾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도시문명의 황폐화, 비인간성을 인상적으로 비판하며 날 세운 자아의식이 이렇게 불교와 접목되며, 또 그 자의식에의 집착마저 떨쳐내며 참진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

자루의 밑이 터지면서 쓰레기들이 흩어진다, 시원하다./ 홀가분한 자루, 퀴퀴하게 쌓여서 썩던 것들이/ 묵은 것들이 저렇게 잡다하게 많았다니 믿기 어렵다./ 위에도 큰 구멍, 밑에도 큰 구멍, 허공이 내 안에 있었구나./ 껍데기를 던지면 바로 내가 큰 허공이지

1987년에 펴낸 세 번째 시집 《진흙소를 타고》에 실린 시 〈세 번째 자루〉 전문이다. 〈공터〉에서 공을 말했다면 이 시에서는 그 공에 이르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불교에서 선시나 화두로 자주 보이는 ‘진흙소’란 실제 소냐 진흙으로 만든 허상이냐의 구분도 넘어서는, 생각이 있기 전의 진여자성(眞如自性)의 절대경지를 깨우치기 위한 비유다.

위 시에서는 몸과 마음에 쌓인 것들을 버려야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배설행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똥만 가득 찬 육신은 물론 무엇에 집착하는 마음, 욕망도 버리라는 것이다. 그래야 큰 허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세속도시의 현대 문명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인간의 정체성을 치열하게 탐구하는 시적 작업이 어떻게, 어떤 문법으로 불교와 만날 수밖에 없는가를 최승호 시인의 시편들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청화‐구도 과정의 깨달음과 실천의 서정화

타는 목마름에 커진/ 두 귀를 기울이고// 출가는/ 먼 물소리 따라/ 물 찾아가는 길.// 손에 감아쥔/ 금송아지 고삐를 놓아라// 출가는 출가는/ 저기 저기 저 설산 너머의/ 눈부신 물 만나러 가는 길.

이청화(1944∼  )
197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시단에 나온 이청화 시인(1944~ )의 시 〈출가〉 전문이다. 이 시인은 1962년 출가해 조계종 교육원장과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며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길을 걷고 있는 승려다. 청평사 주지로 있을 때 시인 몇과 함께 배 타고 소양강 건너 이 시인을 뵙고 시와 불교에 대한 설법을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위 시는 ‘출가’라는 일대 사건을 다루면서도 시인답게 운율 등 시의 덕목을 십분 살리면서 낭만적으로 시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설산 너머의 눈부신 물로 부처님을 형상화하며 그 물소리를 따라가겠다는 구도를 향한 갈애(渴愛), 출가의 의지도 제대로 드러내고 있다.

누가 때리거든/ 개처럼 맞지 말라/ 개는 맞으면 깨갱 비명을 지르고/ 꼬리를 내리고 도망하더라// 이왕이면 종처럼 맞아라/ 세게 맞을수록/ 소리가 커지는 종// 매를 맞는다고 해서/ 깨져버리는 유리그릇이 된다면/ 부러지는 나뭇가지가 된다면/ 내일의 태양은 어디서 뜬단 말이냐

독재의 암울하고 억울한 시대에 나온 시 〈죄 없어도 때리는 이 있거든〉 전반부다. 자신은 물론 삼라만상을 깨우는 쇠북 종을 치며 암울한 시대도 앞장서 일깨우는, 이른바 민중시 계열로 볼 수 있는 시다. 이 시인은 이처럼 하화중생의 대승적 불교를 시와 행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실천한 시인이기도 하다.

바람같이/ 끝내는 날아가 버릴/ 황금빛 날개의/ 새를 키워 무엇하리/ 파도는 오고 또 오는데/ 이 바닷가의 모래 위에/ 모래탑을 쌓아 무엇하리/ 가자, 가자/ 풀꽃 하나 흔들고 가는/ 그 한 가닥 바람같이

머물지 않고 구름처럼 물처럼 자재로 흐르는 운수납자(雲水衲子)의 불심이 서정화 된 시 〈바람같이〉 전문이다. 〈출가〉에서 “손에 감아 쥔/ 금송아지 고삐”나 이 시에서 “황금빛 날개의/ 새” 등 허상 혹은 무상 등에 대한 불교적 비유가 시에 들어와 쉽게 쉽게 서정화되며 이 시인의 시편들은 더 큰 울림을 준다. 시대와 사회의 부조리를 타개하면서도 이청화 시인은 이렇게 구도 과정의 깨우침을 서정화해가며 중생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이상에서 요약해 살펴본 1970년대 출신 주요 시인들의 불교적 시편에는 시대가 시대인지라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불교적 실천 덕목이 눈에 띈다. 또 산업화시대 문명사회에 맞서 불변의 인간성을 찾다 자연스레 불교에 접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상구보리의 불립문자 지경과 하화중생의 불이문자 지경을 아우르려는 언어적, 문법적 모색이 치열하게 이뤄지며 시의 현대성과 선적 직관이 만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해체시와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돼 횡행한 1980년대 시에 외연적으로 더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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