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인권의 불교적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1. 들어가며

안옥선

처음 글을 청탁받고 나서 안옥선에 대해 알아보다가 놀란 것은 그분이 필자의 학부 시절 은사인 안기섭 교수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자료 조사하다가 다시 한번 놀랐는데,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보다 안옥선의 학문세계나 그 지향성이 무척 깊고, 선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유고집 서간문에 나타난 안옥선은 어린 조카에게 세심하고 다정하게 엽서를 보내는 이모이기도 했고, 여동생에게도 늘 격려와 지지를 보내는 언니이기도 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접촉해 본 전남대 강사 시절의 제자들도 하나같이 안옥선의 인품과 학문적 역량에 대해 깊이 흠모하고 있었다.

인문학을 하는 학자로서 이러한 인간적인 심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학문적 소양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이란 말 그대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성찰케 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늘 닦는 거울이 훨씬 맑듯이, 잘 갖춘 인품의 그릇이 더 많은 사색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안옥선은 1995년에서 2010년에 이르는 학계 활동 기간에 Compassion and Benevolence(Peter Lang, 1998), 《불교윤리의 현대적 이해: 초기불교윤리에의 한 접근》(2002), 《불교의 선악론》(2006), 《불교와 인권》(2008) 등 네 권의 저서와 다섯 권의 공저, 그리고 세 권의 역서를 남겼다. 논문은 총 51편으로, 주로 초기불교의 교설, 불교의 인권개념, 불교와 덕 윤리, 불교와 페미니즘 등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이 글은 안옥선의 학문적 업적과 지향을 돌아보고, 그 인품과 선구적 시각을 기억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참고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전남대 철학과의 이중표 교수께서 안옥선의 행적에 관한 자료와 강연문, 서간문 등을 모아 《안옥선 교수를 기리며》라는 제목으로 낸 유고집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 글의 성격이 고인에 대한 추모보다는 연구업적을 밝히는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안옥선의 인품을 기리는 서술 대목에서는 몇 사람의 육성을 대신 빌렸다.

필자 또한 글을 쓰기 위한 자료를 조사하면서 개인적으로 부족한 초기불교 연구를 많이 채울 수 있었거니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성찰해 볼 좋은 기회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이 작은 글을 통해 안옥선의 학문을 향한 열정과,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자비를 확장시켰던 그의 연구가 널리 전해지길 빈다.


2. 안옥선의 삶

원고청탁을 받고 나서 주변의 여러분에게 안옥선의 생전 행적에 대해 문의했다. 무슨 인연인지, 안옥선은 필자가 졸업한 학부 은사의 여동생이었고, 당시 이웃 학과의 교수로 계셨던 안진오 교수의 따님이기도 했다.

안옥선의 오라버니 되는 안기섭 선생(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께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더니, 깜짝 놀라 반가워하며 누이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을 담은 손편지를 유고집과 함께 보내오셨다. 편지 구절 중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누이 옥선이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똑똑했다. 담임은 안옥선을 남자 반장보다 더 소중히 여기셨다. 부반장은 여자라 맡았었지. 천사같이 살았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옥선이 떠난 뒤에 그러더라. 학처럼 살다가 학처럼 갔다고. 우애하고 효성이 지극했다. 우연한 기회에 복막염을 얻어서 수술을 받았고, 내 추측이지만 그것이 독신이 되게 한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하와이에 유학하면서도 고생했다. 집안이 가난하니 독력으로 살면서 제때에 식사도 안 하고 공부만 했던 것 같다. 그것이 갑자기 위암 말기 선고를 받고 회복하지 못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떠나기 전 집안에 발생한 우환이 충격이 되어 병을 악화시켰다고 생각된다. 쓸데없는 넋두리지만 가슴에 묻고 살아가고 있다.

안옥선이 떠난 뒤 이중표 교수가 낸 유고집 안에 실린 편지글-조카 선우나, 언니, 여동생, 제자 등에게 보낸 글- 등을 보면 세심하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성품이 행간마다 배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법보신문〉 2009년 11월 23일 자 기사에 따르면 안옥선은 전형적인 ‘학구형’ 학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강의와 식사시간, 매일 아침 1시간여의 산책과 6시간의 짧은 수면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서재에 묻혀 지낸다고 했다. 이처럼 천생 학자인 안옥선이 처음 불교학을 시작한 것은 유학자이면서 불교에도 밝았던 부친 안진오 교수(전남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오라버니 되는 안기섭 선생도 전남대 중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어서 자연스럽게 가풍의 훈습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고집에 적힌 대강의 행장을 살펴보면, 안옥선은 1962년 6월 9일 보성 우산리 택촌에서 출생하여, 광주에서 전남여고를 졸업하고 1981년에 전남대 심리학과에 입학, 1984년에 졸업했다.

1985년에 동국대 인도철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으며, 석사 논문은 〈바가바드기타의 박티 사상에 관한 연구〉였다. 1990년도에 하와이대 박사과정에 입학, 1995년 10월에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박사학위 논문은 “A Study of Early Buddhist Ethics: In Comparison with Classical Confucianist Ethics(초기불교윤리의 연구: 선진유교 윤리와 비교의 관점에서)”였다.

하와이대에 입학한 1년은 도서관 아르바이트로, 나중에는 연구조교로 근무하며 악착스럽게 공부했다. 세계적인 석학 칼루파하나(David J. Kalupahana) 교수를 스승으로 불교 원전 언어를 비롯해 초기불교에 대한 이해를 차근차근 다져나갔고, 서양철학과 윤리학 전반에 대해서도 새롭게 익혔다. 그렇게 5년간의 노력 끝에 초기불교와 선진유교 윤리 연구로 1995년 마침내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1996년 이후, 연세대 국제대학원, 순천대, 전남대, 조선대 강사, 학술진흥재단 연구교수를 역임하다가, 2003년 8월부터 순천대 철학과에 재직했다. 이때부터 여러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면서 활발하게 학계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건강에 무리가 따르기 시작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2009년 5월에 하나뿐인 여동생 용미가 사고로 세상을 뜨면서 심적 고통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9년 11월에 동서양 철학 간의 학문적 가교를 굳건히 한 공헌을 인정받아 청송학술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10월 27일에 지병이 악화되어 학문에 대한 열정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안옥선의 유택은 영락공원 개나리묘역 3,512호에 마련되었다.

〈법보신문〉 이재형 기자와의 생전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안옥선은 자신이 닮고 싶은 학자로 주디스 버틀러와 한나 아렌트를 들고 있다. 독창적 · 비판적 사상으로 자기 자신의 삶 문제를 드러낸 실천성 때문이라 했는데, 수년 전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당시 한국의 사회현상과 결부되면서 한나 아렌트 붐이 일었던 현상을 생각해보면 안옥선의 안목이 시대를 미리 읽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남대 강사 시절 제자인 김현구는 안옥선의 학자로서 열정과 모든 생명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며 사셨던 삶을 잊지 않겠노라고 짧게 고인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모든 생명을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삶……” 여기에 더 이상의 미사여구를 보태는 것은 의미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3. 안옥선의 학문세계와 지향

안옥선의 저술을 살펴보면 ‘불교윤리’라는 명제 안에 인권과 윤리는 물론 페미니즘까지 모두 포섭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피차별자로서 여성은 물론 동물을 비롯한 모든 유정 중생들의 행복추구까지 다 배려하고 있었던 것이 안옥선의 ‘불교윤리’ 개념이었던 것이다.

안옥선의 불교윤리론은 불교 계율이 단지 신앙적 의무만이 아닌 인간 개별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의 개념까지 갖고 있음을 설파한 키온의 이론에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제 안옥선이 지향하는 불교윤리 개념을 인권, 윤리, 페미니즘의 세 관점에서 들여다보겠다.

1) 인권의 문제

안옥선은 2009년에 불교윤리와 인권 개념 연구의 업적을 인정받아 청송학술상을 수상했는데, 그 기념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로 발언하고 있다.

불교는 세상을 이해하는 틀 아닌 틀을 제공해주기에 일상을 살아가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특히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삶인가’에 대해서 불교는 어떤 기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불교를 접했기 때문에 저는 처음부터 불교를 실용적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실용적 성향은 불교를 윤리적 관점에서 접근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불교를 ‘윤리’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저는 불교의 핵심을 ‘윤리적 인간이 되는 것’ 혹은 ‘일상의 한가운데서 선한 삶을 사는 것’으로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중략)
모든 존재는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의 쾌/행복을 지향하며 함께 ‘하나의 생명과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불교 인권은 이러한 황금률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 인권 개념은 인간세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가 각자의 자리에서 생명권을 갖습니다. 인간과 동물을 넘어온 존재계가 인권의 범위로 들어옵니다. 불교 인권 개념이 인간에 국한되는 1, 2, 3세대 인권을 넘어서 4세대 생태적 인권까지 지향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만 말하자면, 인간의 진정한 권리는 다른 존재의 안녕이 함께 보장될 때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 긍정’과 ‘상호 세움’의 불교인권론은 《불교와 인권》(2008)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불교적 관점에서의 진정한 자기 긍정 내지 자기 세움은 자기 혼자서만 가능하지 않고 타인과 함께일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살의 보시와 인욕 또한 타인의 안녕과 권리세움 그리고 자신의 안녕과 권리 세움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보살은 모든 이에 대한 안녕과 권리 보장을 실현함으로써 자신의 안녕과 권리 보장을 추구한다.

무엇보다도 안옥선이 해석하는 불교의 인권론은 그 주체가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 존재에까지 확장된다는 데에 가장 큰 특징이 있다. 안옥선이 보는 ‘인권’은 인간 밖에서 혹은 인간과 별개로 주어진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고안품일 뿐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의 인권을 지향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규정해 갈 것인가는 유동적이다. 또한 존재론적으로 불이적인 인권은 인권을 인권에 국한시키지 않으며, 동물권, 식물권, 존재권 등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즉 인간의 권리는 동물의 권리, 식물의 권리,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권리에 대한 인정에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불교적 관점의 인권이 무생물까지를 포함한 온 존재 존중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안옥선의 논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실상이 불이(不二)라는 교의에 기반하고 있다. 불이의 관점에서는 다른 이나 다른 종의 안녕을 전제하지 않고는 나 자신이나 우리 인종의 안녕이 온전할 수 없고, 다른 동물 종에 대한 합당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는 인간 종의 권리 또한 온전하게 보장할 수 없게 된다.

불이적 관점의 이러한 인권은 그 개념 적용에 있어서 경계가 없는 확장을 요구하기 때문에 전 존재 포괄적인 ‘무경계적 인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안옥선이 보는 인권은 온 존재 존중적인 생태적 인권을 지향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인간과 동물 이외의 모든 존재에 대한 존중이나 안녕을 전제하지 않고는 온전한 인권을 말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사유구조에 근거하여 안옥선은 인권과 동물권, 그리고 모든 유정중생의 존재 존중을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2) 페미니즘의 과제

불교를 비롯한 전통종교의 근본 경전이나 교단 운영에서 많이 나타나는 반페미니즘적 요소는 여성학 연구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주요 표적의 하나가 되고 있다. 특히 불교의 경우에는 여성학 연구자들은 물론 불교계 내부에서도 비구와 비구니 간의 위계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격론이 진행되어 왔다.

그렇다면 안옥선은 불교와 페미니즘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안옥선은 불교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10여 편의 글을 발표했으며, 불교계뿐만 아니라 철학계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해왔다. 안옥선은 페미니즘을 “보다 많은 사람이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사회의 실현을 위한 하나의 도구” 정도로 이해한다. 페미니즘은 의식과 제도의 차원에서 여성차별을 철폐함으로써 여성의 평등한 지위와 삶의 실현을 목표로 하지만 동시에 여성차별적 의식과 제도가 사라진 정의로운 사회에서의 남성의 진정한 행복 달성까지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옥선은 인간이 불교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면 타인이 부당하게 대우받고 무시될 때 편안할 수 없으며, 자신의 안락이 타인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전제로 한 것일 때는 더욱 그렇기 때문이라고 불교와 페미니즘을 연결 짓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불교의 교의에 충실하다면 반페미니즘적인 사고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입장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안옥선은 연기, 공, 무아가 내포하고 있는 비실체주의적이고, 비규정적이며, 반결정론적 특징은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실체적으로 보지 않으므로 여성에 대한 어떠한 결정론적 혹은 관습적 규정에 대하여 반대한다고 보았다. 여성성이든지 남성성이든지 고정된 실체성이 없기 때문에 여성 혹은 남성에 대하여 그 특징이나 역할을 고정해 놓을 수는 없다. 인간의 사회적 역할은 물론 인간의 본성이나 성품도 가변적인 것으로 이해되므로 성별에 따라 역할을 규정하고 성품에 대해서도 단언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성성이든지 여성성이든지 본래부터 결정되어 우리에게 각인된 것이 아니며, 이것은 오히려 사회적으로 혹은 개인의 노력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불교의 핵심 사상은 인간의 성에 대하여 어떠한 형태의 단언적이거나 결정론적 태도도 거부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핵심교리들이 이처럼 고정되고 규정된 형태의 성 정체성(sexual identity)을 거부한다면 불교는 고정되고 결정된 성 정체성에 근거한 어떠한 형태의 성차별적 담론과 제도도 거부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안옥선의 입장이다.

안옥선은 불교와 페미니즘에 관한 글들에서 이러한 입장을 명료하게 전달해왔다. 10여 편에 이르는 페미니즘 관련 논문에서 안옥선이 제시하는 논의구조들을 간결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붓다의 정신은 근본적으로 모든 존재에게 비차별적이다.
②당연히 여성의 성불과 수행에도 차별적이지 않다.
③붓다가 설한 무아, 연기, 공의 진리에 비추어본다면 남성이나 여성이나 그 성별이 고정되고 불변의 것일 수 없다.
④실체성이 없는 성별에 근거하여 차별을 둔다면 그것은 명백하게 비불교적인 것이다.
⑤불자라면 당연히 비불교적인 차별의 담론과 제도를 거부해야 한다.
⑥무아와 불이의 정신에 입각한다면 남성 역시 여성이 차별받는 세상에서 행복할 수 없다.

이러한 논의구조를 통해 안옥선이 말하고자 한 바는 간단한 것이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성별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의 의식과 삶 속에서 붓다/불교의 본래 정신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또한 안옥선은 ‘여성성불 불가설’에 대해서도 초기불교 교의의 입장에서 반박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설이 붓다가 내세운 무아, 공, 연기, 중도의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며, 성차에 상관없이 불교가 인간 모두의 수행법임을 밝힌 붓다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교 페미니즘은 기존 남녀 이분법적 권력관계 내지 불평등 관계의 분열과 전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녀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롭게 되는 것을 지향하게 된다.

조승미는 〈안옥선의 ‘불교와 페미니즘’ 연구 리뷰〉에서 안옥선의 불교와 페미니즘 윤리에 관한 글들을 한데 묶어서 책으로 출판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데, 필자 역시도 이에 적극 동의한다. 안옥선의 학문 속에는 페미니즘이 시종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페미니즘과 젠더 관련 글들은 모두 10여 편으로 이 자체만으로 상당한 분량인데다가, 한국 불교학계에서 불교와 페미니즘 연구의 거의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학자이기 때문에 그 출판의 의미도 클 것으로 생각된다.

3) 깨달음 혹은 열반이라는 소명

이 장에서는 안옥선이 불교의 궁극적 지향이라 할 수 있는 ‘깨달음’ 혹은 ‘해탈’의 문제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불교윤리와 접맥시키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필자는 안옥선의 글들에서 어느 불교학자보다 강한 ‘실용적 접근’을 감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난한 것으로 생각하는 ‘깨달음’이나 ‘열반’ ‘해탈’ 등의 개념-심지어 불교도들마저 현실과 유리시킨 채 막연하게 여기는-들을 불교윤리와 연결 지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론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안옥선은 빨리어 경전에 근거하여 탐진치와 그 유사개념들에 대한 의미를 밝히고, 행위와 선악 구분에서 탐진치의 역할 그리고 탐진치 지멸의 방법론, 이 탐진치의 지멸이 불교윤리 차원에서 갖는 의미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초기불교 교의에 근거하면, 탐심은 감각적 욕망/쾌락을 추구하는 만족을 모르는 마음이며, 진심은 쾌락에 대한 좌절로부터 발생하는 싫어함/혐오 혹은 성냄/분노의 마음이다 치심은 무상 · 고 · 무아 · 사성제 혹은 연기 · 공 · 무아의 실상에 대한 무지의 마음이다. 탐심이 좋아하여 끌려가며 즐기려는 마음이라면, 진심은 싫어하여 물리치고 성내는 마음이다. 탐심과 진심은 쾌에 대해서는 환락 · 집착하며 고통에 대해서는 거부 · 혐오하는 마음작용으로서 그 대상에 대한 무지/치심의 마음을 전제로 한다.

기실 탐진치는 하나의 마음작용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은 치심이다. 치심으로 인하여 탐심과 진심도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모든 행위를 가르는 기준도 탐진치의 유무이며 선악을 가르는 기준도 탐진치의 유무이다. 모든 행위는 탐진치의 행위와 무탐진치의 행위로 나뉘며, 선악은 탐진치의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안옥선은 〈‘행(saṅkhāra)의 그침’에 대한 한 이해〉에서 열반과 유관하며 필수적인 것은 번뇌나 탐진치 지멸이라고 밝히고 있다. 행 그침의 의미도 실질적인 신 · 구 · 의 업/행위나 행 자체의 그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번뇌나 탐진치 지멸을 통해서 구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선악의 기본 기준은 탐진치의 유무이며, 최고선은 탐진치가 완전히 지멸된 상태, 즉 열반의 상태에서 성취된다. 열반은 윤리적 목표로서 삶의 토대를 떠난 신비주의적인 체험도 아니며, 어떤 유형의 삶 속에서든지 탐진치 지멸의 성품 상태가 유지될 때 언제든지 가능하다. 즉 열반은 일상의 한가운데서 일순간도 놓치지 않고 탐진치 지멸의 성품으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게 될 때 구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안옥선이 주장하는 윤리의 완성점이다.

초기불교 관점에서 ‘도덕적인 삶이 무엇인가’ 혹은 ‘마음을 청정히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응답은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안옥선은 이 물음에 대하여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가장 근원적인 형태로 표현하자면 ‘탐진치 지멸의 삶’이라고 답한다. 인간의 행동과 결부시켜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할 때 ‘몸 · 말 · 생각의 영역에 있어서 선함[淸淨]’이라고 할 수 있고,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할 때 ‘자비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탐진치 지멸의 성품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열반을 성취하고 아라한이 되었다는 것은 도덕적이고자 의도적으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선하기만 한 성향으로 변형된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서 선행은 무의식적으로 자연히 일어난다.

안옥선의 시각에서 보면 윤리를 뺀 불교는 존립할 수도 없거니와 무의미하며, 열반 역시 윤리를 의미한다. 열반은 ‘탐 · 진 · 치가 없는 청정한 자애의 성품 완성’이 이루어진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바로 불교윤리의 중심이며, 궁극적 목적으로서 자유를 의미한다. 결국 탐진치 지멸=불교윤리의 중심=자비의 완성=열반으로 이루어지는 구도가 안옥선이 보는 불교의 궁극적 구원관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안옥선이 해낸 일, 그리고 이루고 싶었던 일

불교 연구자가 학계에 자신의 족적을 선명하게 남기기도 힘들지만, 책과 글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더욱 지난한 일이다. 하지만 안옥선은 그 두 가지를 다 이루고 싶어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자의 경우에는 불교윤리와 인권, 페미니즘 논의로 이미 선도적인 입장에 서 있었으므로 15년에 걸치는 학계 활동만으로도 상당히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후자의 경우에도 ‘깨달음’과 ‘열반’을 고원(高遠)한 위치에서, 윤리라는 현실적 개념으로 끌어오려는 노력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실천적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점이 눈에 띈다. 불교를 모르는 이라도 안옥선의 책을 읽은 이라면 ‘열반’과 ‘깨달음’이 바로 자신의 삶에서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이룰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 점에 눈이 열렸으리라 생각된다.

실제로 《불교윤리의 현대적 이해: 초기불교 윤리에의 한 접근》(2002)에서 안옥선은 두 가지를 말하고 싶어 한다. 첫째, 초기불교의 핵심을 윤리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 교설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거나 이 응답에 이르기 위한 설명들로 보고 있다.

둘째로, 안옥선은 초기불교 윤리가 다양한 윤리적 사유 흔적을 가지며 나름대로 독특한 윤리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그 주된 특징은 덕 윤리의 패러다임이라고 보고 있다. 도덕 판단의 방법이 다양한 특징을 가질지라도 그것들 모두는 결국 덕 윤리의 패러다임 안으로 포섭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06년 출간된 《불교의 선악론》은 비불교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불교윤리의 핵심을 현대적 용어로 설명해보려 노력했던 점이 잘 드러난다. 일반에 잘 알려진 윤리 용어들을 이용하여 불교 교리를 설명했던 것은 그 한 가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안옥선은 전문 수행자가 아닌, 평범한 일상인의 관점에서 불교윤리를 실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다음 2008년에 출간한 《불교와 인권》을 통해 이룬 업적은 아래 원불교 100년 기념성업회 사무총장 정상덕 교무의 추모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옥선 교수의 《불교와 인권》에 감사합니다. 부처님의 근원의 진리를 바탕으로 풀어주신 인권의 해석은 감동이었습니다. 사람 중심의 인권 존중을 넘어 동물권까지 이르는 깊고 넓은 고뇌는 인권 해석의 새로운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2002년 원불교 인권위원회를 창립하고 초대 사무총장의 길을 가면서 교수님이 주신 인권에 대한 새로운 방향은 늘 저의 글과 말들에 대한 스승이었습니다. 무아의 길에서 퍼 올린 인권의 깊은 샘물은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 부처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 근거였습니다.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안옥선의 불교인권에 관한 새로운 해석은 이웃 종교들에도 깊은 울림과 함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러한 동물권으로까지의 불교 인권의 확장적 사유는 자비를 불교의 황금률로 해석하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불교의 자비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은 ‘자리이타’이다. 자리이타의 자비는 자기보전, 자기존중, 그리고 자기애 등의 자연적 욕구에 근거하여 자신을 보살피는 마음을 타인에게 확대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여기에서 활용되는 주요 원리는 ‘해침 받고 싶지 않고 보호받고 싶은 마음’을 타인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불교의 ‘황금률’, 그리고 타인의 상황에 자신을 이입시켜서 타인의 상태를 똑같이 느끼는 동정심을 매개로 한 ‘자신과 타자의 동일시’이다.

다시 말해, 불교윤리가 제시하는 올바른 세계인식은 ‘나’와 ‘타자’의 근원적 관계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곧 ‘나’의 존중이 곧 ‘타자’에 대한 존중이며, ‘타자’의 존중이 곧 ‘나’의 존중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유구조에 의해 인권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동물권 역시 존중되어야 하며, 여성이 차별과 억압을 받는 사회에서는 남성 역시 행복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학문적으로도 한국 불교학계에서 새로운 논의를 이끌어내고, 종교적 메시지를 사회변혁에 접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던 것이 안옥선의 인상적인 입적이라 할 수 있다.

안옥선은 불교윤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궁극적으로는 구속이 아닌 자유의 윤리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었으며, 구체적으로 불교와 인권, 불교의 현대윤리학 외에도 불교와 생태윤리까지 연구를 확장하고 싶어 했다. 또한 앞으로 불교윤리의 속성을 서양철학적 전통과 결부시켜 규명하고 나아가 불교윤리 문제를 집대성한 개론서를 편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건만 그 꿈을 이루지 않은 채로 떠나갔다.

만약 지금도 세상에 남아서 학문 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다면 그 실천적 사유의 범주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생전에 남긴 책과 논문만으로도 이미 적지 않은 업적을 이루었지만, 살아 있었다면 불교의 교의를 통해 세상을 변혁해보려는 메시지가 나직하게, 그러나 힘 있게 나올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6. 마치며

안옥선의 예의 〈법보신문〉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들도 꼭 읽어봤으면 하는 저술로 《초기불교에서 본 무아의 윤회》를 들고 있는데, 이는 그 안에 담긴 “개같이 살면 개가 되고 소같이 살면 소가 된다”는 업의 메시지를 수용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라고 하였다.

또한 스스로는 승찬의 《신심명》에 나오는 “애증심을 갖지 않으면 통연히 명백해진다(但莫憎愛 洞然明白)”라는 구절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산다고 했다. 자유는 마음의 애증 혹은 호오(好惡) 문제의 극복이라는 생각에서이다.

두 구절 모두 초기불교의 가르침과 일상에서의 도덕적 실천을 일치시키려 노력했던 안옥선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안옥선의 저술을 참고자료로 읽으면서 계속 그의 불교인권 논리에 설득되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동시에 이런 훌륭한 학자가 그토록 빨리 떠나버린 데 대한 아쉬움에 노상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 있었다.

글을 마치는 즈음에, 안옥선이 병상에서 쓴 명상노트 한 페이지를 들추며 그 마음을 들여다본다. 제목은 ‘제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로 되어 있지만, 안옥선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존재-인간은 물론 동물들까지-에게 주는 메시지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오늘이 힘들다고 하여
한시라도 좌절해서는 안 되네.
두려워하거나 걱정일랑은 추호도 하지 마세.
오직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에너지만으로 살도록 하소.
나도 그러하겠네.
— 안옥선 〈제자들에게 주는 메시지〉 중에서 ■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전남대 중어중문학과, 서울대 종교학과 대학원 졸업.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등 역임. 〈동아시아 염불결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아시아불교의 정토신앙 내지 종교문화 비교연구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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