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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원심력으로 번져나간 불교 / 이경철
특별기획 |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불교 ②
[71호] 2017년 09월 01일 (금) 이경철 abkcl@hanmail.net

김달진-겁외(劫外)의 도(道)가 천연히 빛나는 서정세계

   

월하 김달진
(1907-1989)

최남선이나 이광수 등 우리 현대문학 초창기 문인들은 불교적 감화를 그들의 작품으로 드러내려 했다. 불교문학을 확실히 뿌리내린 한용운도 불교 교리를 시를 통해 중생에 친밀하게 펴려 했다. 그러나 그들 바로 아랫세대인 김달진 시인(1907~1989)은 감화나 교리의 구심적 차원보다는 불법의 원심적 차원에서 겁외의 도, 자연으로서 온전한 서정의 시 세계를 펼친 시인이다. 문학사적으로는 감상이나 기교로 흐르기에 십상이었던 우리 초창기 서정에 도의 시학을 불어넣은 시인이 김달진이다.

불빛 아래 비치는 흐릿한 모습
팔십 세의 내 늙은 시력을 안타까워하다가
돋보기 쓰고 가까이 다가가니
처음 보는 그 얼굴의 주름살이여.

중도 아닌 것이, 속인도 아닌 것이
그래도 삼십여 년 불경을 뒤적였네.
부처보기, 사람보기 부끄러워라.
중도 아닌 내가, 속인도 아닌 내가.

기나긴 어둠의 이 밤 언제 샐런가
다시 얻기 어려운 덧없는 이 몸을
천만시름 속에 몸부림치네.
어둠을 깨치는
새벽 종소리는 언제나 들릴런가.

— 김달진 〈모월모일(某月某日)〉 전문

김달진 시인 1주기를 맞는 1990년 나온 유고시집 《한 벌 옷에 바리때 하나》에 실린 시 〈모월모일(某月某日)〉 전문이다. 말년 시인의 모습과 심사를 있는 그대로 쓴 시이다. 평생 중도 아니고 속인도 아니게 살며 무명(無明)을 깨친 시인이 김달진이다. 그래서 얻은 것은 일체 꾸밈없는 것으로서의 본성, 자연이었다.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시인은 어릴 적부터 한학을 배우고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서울에서 중학교 수학 과정 중 일본인 교사 추방 운동에 앞장서다 퇴학당하고 낙향해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교사 생활을 하며 1929년 《문예공론》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3년 처자를 버리고 홀연 금강산 유점사로 가 승려가 됐고 1935년 함양 백운산 화과원(華果院)에 들어가 백용성 스님을 모시고 반선반농(半禪半農)의 수도생활을 했다. 1936년에는 유점사 장학생으로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 거기서 서정주와 함형수 시인 등을 만나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유점사에서 광복을 맞은 시인은 서울로 와 동아일보 기자 생활을 하며 문단 활동을 펼치다, 시류에 오염되거나 흔들리지 않을 마음을 잡기 위해 낙향해 교편을 잡았다. 관념이나 이념에 휘둘리지 않을 순수시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1962년 고향에서 중학교 교장직을 정년퇴임하고는 이후 입적할 때까지 역경(譯經) 일에 몰두해 원고지 15만 장 분량의 불경을 번역했다.

그리는 세계 있기에 그 세계 위하여
생(生)의 나무의 뿌리로 살자
넓게, 굳세게, 또 깊게
어둠의 고뇌 속을 파고들어
모든 재기와 현명 앞에 하나 어리석은 침묵으로……
그 어느 겁외(劫外)의 하늘 아래 찬란히 피어나는 꽃과
익어가는 열매 멀리 바라보면서……

— 〈그리는 세계 있기에〉 전문

승려와 교육자, 그리고 불경 번역자로 살며 시인이 그리는 세계는 무엇이었는가. ‘겁외의 하늘 아래 피어나는 꽃과 열매’이다. ‘모든 재기와 현명’은 물론 영겁의 시간까지도 초월하는 그 법을 시인은 그린 것이다. 그것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 마음 그대로의 움직임을 편 시인의 서정시였다.

어디서 우는 무슨 새소리
읽던 책을 펼쳐둔 채
그 소리 그칠 때까지
가만히 들어본다.

어디서 우는 무슨 새소리
가만히 나가 살펴봤으나
소리는 멎고
새는 안 보인다.

게으른 걸음으로 앞뜰을 거닐다가
지팡이 멈춰 서서 먼 산을 바라보니
아름아름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속으로
아름아름 떠오르는 시름이 있다.

— 〈새소리〉 전문

선의 세계를 그린다는 시인들 거개는 부처님 말씀 같은, 원음 같은 새소리에 불경을 읽는 것이 뭐란 말인가 하고 책을 덮어둔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책을 펼쳐둔 채 그 새소리를 나가 살펴보니, 소리도 없고 새도 없다 한다. 그리고 시름만 아름아름 떠오른다며 있는 그대로, 자연 그대로를 그리고 있다. 같은 불교시, 서정시이면서도 이런 자연, 순수 서정에 시인만의 겁외의 도가 천연스럽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 한 자연아(自然兒)가/ 그대로 와서/ 그대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갔다.// 풀은 푸르라/ 해는 빛나라/ 자연 그대로// 이승의 나뭇가지에서 우는 새여./ 빛나는 바람을 노래하라.”

말년에 써놓고 간 〈비명(碑銘)〉 전문이다. 어찌어찌 해보겠다는 마음까지 놓아버린 대자연인, 대자유인이 김달진 시인이다. 그리하여 만물은 물론 나의 본성은 하나로 같고 그 본성이 자체로 빛나는 자연이라는 도에 이른 서정을 삶과 시로 펼치고 간 시인이다.

서정주-풍류로 불교를 육화시켜 연 현대시 최고 경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 〈국화 옆에서〉 전문

   

미당 서정주
(1915-2000)

우리 국민에게 가장 친숙하고 또 가장 많이 낭송되고 인용되고 있는 시이다. 소쩍새와 천둥과 먹구름과 무서리 등 삼라만상의 협동과 소통으로 한 송이 국화꽃은 피어난다. 그런 꽃을 피우기 위해 시인은 잠도 자지 않고 온몸으로 예민하게 동참하고 있는 시이다.

무엇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이란 자연스러우면서도 절묘한 표현으로 젊음의 뒤안길을 걷고 있거나 이제는 돌아왔을 모든 독자를 자신의 시인 양 끌어들이고 있는 시이다. 우리말 가락과 아름다움도 잘 살려내 ‘국민시’로 읽히고 있다.

다시 읽어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 삼라만상이 그물코같이 연결된 한 몸이라는 ‘인드라망’을 떠올리는 시이기도 하다. 인도 신화에서 인드라 신이 사는 세상을 수호하기 위해 하늘을 덮고 있는 그물이 인드라망. 그물코마다 구슬이 달려 있어 온 세상을 서로서로 비추고 한 구슬이라도 당기면 모든 구슬, 온 우주가 흔들린다는 그 그물에서 따온 말이다.

‘모래 한 알에도 온 우주가 담겨 있다’거나 ‘꽃 한 송이 피는데 내 몸에서 신열이 난다’는 각성이나 감각 등은 다 이 인드라망의 체현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불교에서 연기(緣起)나 대자대비(大慈大悲)도 이 인드라망에 엮여 있다.

하나는 곧 여럿이요 여럿은 곧 하나며, 하나 속에 온갖 것이 들어 있고 온갖 것 속에 하나가 들어 있는 것이므로 서로 통하여 장애가 되지 않는다. 영겁(永劫)과 찰나(刹那)가 다르지 않으며, 유정과 무정이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법계무진연기(法界無盡緣起)이다. 그런 연기로서의 인드라망의 우주적 각성과 감각이 개인적 체험에 의해 아름답게 구체화돼 있어 우리 국민, 나아가 인류 보편적인 정서와 소통하고 있는 시가 〈국화 옆에서〉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1915~2000)은 우리 민족의 정한(情恨)을 모국어의 혼과 가락으로 풀어낸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미당 시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우리 민족혼과 그 혼이 밴 모국어의 깊이와 넓이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시인들은 물론 많은 국민이 알고 있다. 그런 민족의 정한, 혼 속에 스며든 불교적 세계가 미당의 많은 시편을 통해 절절하게 구체화되고 있다.

내가
돌이 되면

돌은
연꽃이 되고

연꽃은
호수가 되고,

내가
호수가 되면

호수는
연꽃이 되고

연꽃은
돌이 되고.

1968년에 펴낸 다섯 번째 시집 《동천(冬天)》에 실린 〈내가 돌이 되면〉 전문이다. 법계무진연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흐르고 있는 시이다. 신라 정신과 불교 즉 영통(靈通)과 영교(靈交), 그리고 윤회전생(輪廻轉生)으로 이어지는 진경(珍景)을 보여주는 시집이 《동천》이다.
그 시집 뒤에 실린 글에서 미당은 “불교에서 배운 특수한 은유법의 매력에 크게 힘입었음을 여기 고백하여 대성(大聖) 석가모니께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런가, 시적 장치로서 이분법적인 감정이입이나 상징 없이 그저 훤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고승(高僧)의 어법처럼 자연스럽고 명징한 시이다.

1978년 캐나다 낭송회에 초청돼 가서 다른 몇 편을 낭송할 땐 덤덤하던 청중들이 이 시를 듣고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함께 “원더풀, 원더풀!” 외치더라고 미당은 자랑하곤 했다. 그저 자명(自明)한 이치, 우주운항의 도를 그대로 쓴 이 시에 무슨 번역의 어려움이 따르겠는가.

“내가/ 돌을/ 만들면// 돌은/ 연꽃을/ 만들고// 연꽃은/ 호수를 만들고// 하늘 밑에 있는 것은/ 이 호수뿐이니// 여기에서/ 알라스카까지// 애인아 나는 혼자/ 왼켠으로 돌아가고/ 알라스카에서/ 여기까지// 너는 혼자/ 바른켠으로 돌아오고”

《현대문학》 1966년 8월호에 〈여행가 · 3〉이란 제목을 달고 이렇게 발표한 시를 시집을 낼 때 시도 고치고 제목도 바꾼 것이다. 보고파도 만날 수 없는 애타는 그리움을 ‘애인아’라고 부르는 연시(戀詩)로 착상해 처음엔 그렇게 읊었을 것이다. 실제 그 당시 미당은 외국인 수녀에게 그런 연심을 품었었다.

그러나 이런 연시를 미당은 ‘불교에서 배운 특수한 은유법’으로 확 바꿔버린 것이다. 연시풍으로 착상한 시가 ‘애인아’를 빼버리고 ‘만들면’을 ‘되고’로 고치면서 이리 군더더기 하나 없이 그리움을 우주의 이치로 순하게 끌어올린 절창이 된 것이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시작도 끝도 없이 돌고 도는 전생(轉生)에서 그 애인과 나는 한 몸 아닐 것인가.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현대문학》 1964년 6월호에 〈무제(無題)〉로 발표됐다가 시집 《동천(冬天)》을 낼 때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란 제목으로 바꿔 실은 시 전문이다. 널리 애송되는 이 절창 역시 그런 안타까운 연정의 소산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성 석가모니’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다. 미당 스스로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한 “불교의 삼세인연(三世因緣)과 윤회전생”이 오롯이 들어 있는 시이다.

그러나 모더니즘, 리얼리즘 등 서구 시 이론과 시 창작에 길들어가던 당시 시단이 미당의 이런 시를 곱게 봐줄 리 없었다. 현실감각을 상실한 신비주의라는 비판이 시단과 평단에서 이어졌다. 심지어 ‘영매(靈媒)’ ‘접신술(接神術)’이라 비하하며 시에서 현실성과 이성적 구조를 확보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미당은 자신의 시는 “고대부터 내려와 현대에 공존하고 있는 종교들의 고대적 사유 태도, 고대적 감응 태도”를 본뜨고 있다고 밝혔다. ‘물질불멸의 법칙’이나 ‘필연성의 법칙’ 등에 비춰 봐도 자신의 시는 합리주의적 상식으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 전체, 즉 천지 전체를 불치의 등급 따로 없는 한 유기적 관련체의 현실로서 자각해 살던 우주관이 그것이고, (중략) 역시 등급 없는 영원을 그 역사의 시간으로 삼았던 데 있다. (중략) 우리의 인격은 많이 당대의 현실을 표준으로 해 성립한 현실적 인격이지만, 신라 때의 그것은 그게 아니라 더 많이 우주인, 영원인으로서의 인격 그것이었던 것이다.”

미당은 신라의 고대적 사유와 감응 태도를 우주만물이 등급 없이 어울려 통하는 우주관, 또 과거, 현재, 미래의 등급 없이 흐르는 영원관으로 보았다. 이것은 무릇 서정시의 양대 시학으로 통하는 ‘동일성의 시학’과 ‘순간성의 시학’과 그대로 통한다. 해서 미당 시가 한국 현대시사에서 서정의 원류로 흐르게 되는 것이다.
미당과 불교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열아홉 살 때는 석전 박한영 대종사한테 서울 동대문 밖 개운사에서 머리를 빡빡 깎고 중이 됐다. 석전은 유불선(儒佛仙)에 두루 통달한 대학자로 오랫동안 종정을 역임했고 그 문하에서 이광수, 최남선 등이 수학했고 한용운도 스승으로 모시며 석전에 대해 적잖은 한시를 짓기도 했다.

아침저녁 예불도 올리고 《능엄경》도 부지런히 읽으며 개운사에서 겨울과 봄을 난 미당은 여름이 되자 석전의 허락을 얻고 여비도 타서 참선하러 금강산 장안사로 갔다. 그 절에 주석하던 만공 선사를 찾으니 “중이 되려면 여간 각오로 안 되는 것이니, 뒤에 후회 않겠는지를 많이 생각해보라”란 말만 한 뒤 본체만체하고 예쁘장한 여승들과만 어울리더란 것이다. 그래 이튿날 미당은 “후회할 것 같아 그냥 가겠습니다.” 하고 장안사를 나와 서울 개운사가 아니라 고향 고창으로 내려가 버렸다.

석가모니 이래 76대 조사(祖師)인 대선사 만공의 눈에 미당이 선이나 중과는 거리가 멀게 보였을 것이다. 미당 자신도 소년 시절 무작정한 연민심 때문에 사회주의에도 감염되고 니체의 초인과 그리스의 신화적 육감과 혈기에 매혹돼 중이 되기에는 정리하지 못한 것이 많다고 회고했으니.

중은 못 되고 최고의 시인이 된 1973년 미당이 해인사 백련암으로 종정인 성철 스님을 찾아가 합장하며 물었다. “저는 육십이 멀지 않은 나이인데도 이쁘게 보이는 여자를 만나면 연연한 마음이 생기는 걸 아직도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떠신지요?” 스님은 웃으며 답했다. “아 그러니까 중들은 날이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부처님께 예불도 하고, 불경도 배워 읽고, 참선도 하고, 마음을 바로 닦으며 지내는 것 아니요.” 하고.

그렇게 예쁘고 짠한 것들만 보면 연연한 마음이 드는 걸 끊지 못했기에 시인이 된 것이고, 그게 시인이란 걸 성철 스님은 깨우쳐준 것이다. 그래 미당은 불교 교리나 참선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는 우주 인드라망을 육화시킨 시인이 된 것이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동천〉 전문

동서고금 하고많은 시인들이 달을 두고 시를 써왔다. 그중 몇 편 손가락으로 꼽으라면 빠지지 않을 절창이다. 5행의 짧은 시인데도 온 우주를 울리고 있다. 시어 하나하나의 정밀한 선택과 절차탁마, 그리고 행마다 자연스러운 4음보 율격의 변주(變奏)를 보시라. 우리 모국어의 가락과 혼, 거기에 실린 민족의 정한이 매섭게 묻어나고 있지 않은가.

잠 못 이루며 연연해 마지않던 우리 님 고운 눈썹이 마침내 저 하늘의 초승달로 떠오르고 있지 않은가. 천 날 밤의 꿈으로 맑고 정밀하게 씻어서 띄운 그 달에 새와 별과 독자 등 온 우주 뭇 생령이 감읍(感泣)하고 있는 시 아닌가.

그래서 시학도들이 시를 배우고 시인들도 자신의 시를 경계하고 가다듬을 때 가장 많이 참고하는 시이다. ‘미당을 통하지 않고는 시에 이를 수 없다’는 우리 시단의 통설을 낳게 한 시가 바로 이 〈동천〉이다.
이런 조선 최고의 시 세계에 이르기 위해 미당은 태생적으로 몸과 마음에 밴 불교를 시인의 장인 기질로 실감 나도록 부단히 육화시켰다. 끊임없이 불경을 읽고 불교국가 신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를 읽고 또 읽으며 자신의 심회와 체험에 조회하며 구체화, 현실화시켜나간 오늘의 현대시가 미당의 시이다.

1997년 82세 때 15번째 신작 시집이자 미당 생전 마지막 시집인 《80소년 떠돌이의 시》 맨 위에 올린 아래 시 한 편 감상해보시라. 열반, 화엄, 풍류 세상이 시공과 생사 너머 그저 자유롭고 환하게 펼쳐지지 않으신가.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당명황과
양귀비와
모란꽃이
어느 날
함께
열반 극락에 들어가 보자고
하늘로 하늘로 솟아올라 갔는데,

당명황과 양귀비는
구름 엉킨 언저리에서
동침하고 싶어
다시 땅으로 내려와
방으로 들어가버리고.

모란꽃은 시들어 떨어져서
그 꽃빛만이 더 높이 날아올라서
해와 달과 별들 옆을 감돌고 있었는데,
그 마음씨만은 아조나 자유라 놓아서
그 빛깔마저 다 벗어 던져버리고
색계와 무색계 넘어
열반에 들어 자취도 없이 앉어 계신다.
— 〈당명황과 양귀비와 모란꽃이〉 전문

신석초-몸과 마음, 관념과 구체 사이에서 우러나는 서정

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을
티 없는 꽃잎으로 살아 여러 했건만
내 가슴의 그윽한 수풀 속에
솟아오르는 구슬픈 샘물을
어이할까나.(중략) 

아아, 헛되어라 울음은
연약한 속임이여.
수유에 빛나는 거짓의 보석이여.
내가 호숫가에 쓸쓸히
설레는 갈대런가
덧없는 바람 달에
속절없이 이끌리는
값싼 시름의 찌꺼기여.

적멸이 이리도 애닯고나.
부질없는 일체관념(一切觀念)이여.
영생의 깊은 수기(授記)가
하마 허무하여이다.
관념은 모두 멸하기 쉽고
잠든 숲 속에 세월이 흐르노라.
어지러운 윤회의
눈부신 여울 위에
변하여가는 구름 연기
시간이 남긴 사원 속에
낡은 다비만 어리나니
세월이 하 그리 바쁜 줄은 모르되
멎는 줄을 몰라라.

덧없이 여는 매살한 손이여.
창 밖에 피인 복사꽃도
바람 없이 지느니
하물며 풍상을 여는 사람의
몸이야 시름한들 어이리
오오, 변하기 쉬운 꽃여울이여.
내 아리따운 계곡에 흐느껴
우는 소리
내 몸 잔잔한 흐름 위에
홀연히 여는 전이(轉移)의 물결 위에 내 끝내 지는 꽃잎으로 허무히
흘러 여는다.

다만 참된 건 고뇌하는/ 현유(現有)의 육신뿐인가
순간에 있는 너 삶의 빛깔로
벅차 흐르는 내 몸뚱어리
— 신석초 〈바라춤〉 부분

   

신석초
(1909-1975)

신석초 시인(1909~1975)의 〈바라춤〉 부분이다. 1939년 《문장》에 〈바라춤 서사〉를 발표한 이래 해방 후 《현대문학》 등을 통해 꾸준히 발표해 온 연작시 형태를 1959년 제 2시집 《바라춤》에 모은 이 시는 350행에 이르는 장시이다. 관념과 구체, 정신과 육체, 정화와 욕정의 어찌해볼 수 없는 괴리를 한탄과 감탄으로 잇고 있는 이 시, 서양에서 최고로 치는 말라르메의 장시 〈목신의 오후〉와 비견하고픈 마음까지 들게 한다.

바라춤은 나쁜 귀신과 삿된 생각을 물리쳐 도량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 추는 승무의 일종이다. 심벌즈 같은 악기인 바라를 들고 추는 화려하고 장중한 춤을 소재로 했기에 시의 수사나 어조 또한 그렇다. 폴 발레리나 스테판 말라르메 등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 영향을 강하게 받아 관념의 구체화가 감동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시이다.

위 인용 대목에서도 “수유에 빛나는 거짓의 보석” “어지러운 윤회의 눈부신 여울” “오오, 변하기 쉬운 꽃여울” “참된 건 고뇌하는 현유의 육신” 등 불교의 고단위 관념들이 얼마나 감각적으로 빛나고 있는가. 그러면서 해탈을 향한 애달픈 육신의 순간을 바라춤처럼 얼마나 간절한 육신의 언어로 쓰고 있는가. 해서 〈바라춤〉은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적 시 기법은 물론 정신과 육체, 빛과 어둠, 관념과 감각, 지성과 감성, 순간과 영원 등 상반성을 그대로 두면서도 융합을 꾀해 소위 정신주의 시로 승화, 육화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신석초 시인은 충남 서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을 익히다, 1924년 서울로 올라와 당시 최고 명문인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다. 3학년 때 병이 나 휴학하고 석왕사에 들어가서 요양하며 문학과 철학에 빠져들었다. 1931년 일본 호세이대(法政大) 철학과에 입학하고부터 사회주의 영향을 받아 조선프롤레타리아 문학가동맹 맹원으로 활동하다 그들의 경직된 문학에 낙담해 전향한 시인이다.

1935년 이육사 시인과 사귀면서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1937년에는 서정주, 김광균, 윤곤강 등과 함께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하며 정신과 서정이 일치된 시를 많이 발표했다. 해방 후 활발히 창작활동을 벌이다 6 · 25로 낙향했던 신석초는 다시 서울로 와 언론인과 문학 활동을 병행하며 김소월 시비 등 작고 시인들의 시비 건립 등에 앞장선 시인이기도 하다.

꽃잎이여 그대/ 다토아 피어/ 비 바람에 뒤설레며/ 가는 가냘픈 살갗이여.// 그대 눈길의/ 머언 여로(旅路)에/ 하늘과 구름/ 혼자 그리워/ 붉어져 가노니// 저문 산 길가에 저/ 뒤둥글지라도/ 마냥 붉게 타다 가는/ 환한 목숨이여.

시인의 묘소 앞에 시비로 세워진 시 〈꽃잎 절구(絶句)〉 전문이다. 시, 서정 그것이 순간과 영원, 너와 내가 하나임을 시답게 보여주고 간 시인이 신석초이다.

조지훈-선적 관조의 서정과 하화중생 실천으로서의 시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 조지훈 〈승무(僧舞)〉 전문

   

조지훈
(1920-1968)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만큼 널리 알려진 시 조지훈 시인(1920~ 1968)의 〈승무(僧舞)〉이다. 〈국화 옆에서〉에서는 불교가 문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이 시에서는 ‘승무’라는 불교 의식으로서 춤을 직접 소재로 삼고 있다. 시인의 눈과 귀와 마음에 잡힌 대로 승무와 주위 분위기를 묘사하면서 승무가 드러내는 불교적 세계관과 시인의 마음을 일치시키고 있는 시이다.

“춤추려는 찰나의 모습을 그릴 것, 그다음 무대를 약간 보이고 다시 이어서 휘도는 춤의 곡절(曲折)로 들어갈 것, 그다음 움직이는 듯 정지하는 찰나의 명상의 정서를 그릴 것, 관능의 샘솟는 노출(복사꽃 고운 뺨)을 정화(별빛)시킬 것, 그 다음 유장한 취타(吹打)에 따르는 의상의 선을 그리고, 마지막 춤과 음악이 그친 뒤 교교한 달빛과 동터 오는 빛으로써 끝맺을 것.”

조지훈이 스스로 밝힌 〈승무〉 창작노트이다. 시 창작뿐 아니라 조지훈은 《시의 원리》라는 시론서(詩論書)를 펴내 서양이론에 휘둘리지 않은 우리의 시론으로 한국 현대시를 이끈 시론가이기도 하다. 그런 시인이 ‘관능의 정화’로서의 승무를 ‘찰나의 명상’으로 붙잡고 있는 시가 〈승무〉이다.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西域萬里) 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 〈고사(古寺) 1〉 전문

노을 아래 모란꽃이 지고 있는 절집 풍경을 그대로 그린 시이다. 상좌 아이도, 부처님도 그런 자연스러운 풍경 일부가 되어 있다. 그 풍경 속에서는 서역 만리 극락정토가 이심전심으로 떠오른다. 상좌 아이가 아니라 부처님이 두드리는 목탁 소리가 노을보다 눈부신 모란 꽃잎에서 들리는 듯도 하다. 시인의 주관이나 감정을 일체 배제한 몰아지경(沒我之境)에서 있는 그대로 그린 ‘찰나의 명상’이 극락정토를 그대로 체현(體現)하고 있는 것이다.

조지훈은 동국대 전신인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오대산 월정사 강원에서 강사를 지내며 불교를 몸에 익힌 시인이다. 자신의 초기 시 세계에 대해서도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애수, 민족정서에 대한 애착”과 “선미(禪味)와 관조(觀照)”라 밝히기도 했다. 일제 말 조선어학회에서 우리말 큰사전을 편찬하다 검거되기도 한 시인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 선적인 관조의 세계를 펼친 시가 우리 현대시사에서 불교시의 대표시로 꼽히는 〈승무〉와 〈고사 1〉이다.

벽에 기대 한나절 조을다 깨면 열어 제친 창으로 흰 구름 바라기가 무척 좋아라

노수좌(老首座)는 오늘도 바위에 앉아 두 눈을 감은 채로 염주만 센다

스스로 적멸(寂滅)하는 우주 가운데 먼지 앉은 경(經)이야 펴기 싫어라

전연(篆煙)이 어리는 골 아지랭이 피노니 떨기남에 우짖는 꾀꼬리 소리

이 골안 꾀꼬리 고운 사투린 범패(梵唄)소리처럼 낭랑하고나

벽에 기대 한나절 조을다 깨면 지나가는 바람결에 속잎 피는 고목이 무척 좋아라

— 〈앵음설법(鶯音說法)〉 전문

꾀꼬리 소리를 부처님의 설법처럼 듣고 있는 시이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은 시 앞뒤에 반복된 ‘졸다가 깬’ 때이다. 그런 시간에 자연의 소리인 꾀꼬리 소리와 자연의 모습인 “속잎 피는 고목”을 보고 들으며 “무척 좋아라”고 거듭 감탄하고 있는 시이다.

몰아지경에서 무심히 듣고 바라보는 자연이 곧 불법이라는 것이다. 해서 켜켜이 먼지 앉은 경보다 자연의 소리인 꾀꼬리 소리가 부처님의 원음처럼 들린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쌓은 지식 등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관조할 때 “지나가는 바람결에 속잎 피는 고목”이 “스스로 적멸하는 우주”라는 화엄세계를 그대로 드러나게 한 것이다. 시인은 이렇게 선적인 관조를 통해 물아가 일체가 되는 서정적 시 세계를 펼쳤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문예미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시를 ‘전 우주의 비전과 하나의 혼의 비밀, 그리고 여러 대상의 비밀을 동시에 드러내는 순간화된 형이상학으로서의 포에지’로 봤다. 불교에서 돈오적(頓悟的), 순간적 깨달음이 바로 이런 포에지일 것이며, 〈앵음설법〉에서는 “지나가는 바람결에 속잎 피는 고목”이란 절구로 형상화된 것이다.

그대 칠보의 관(冠)을 벗고/ 삼가 형극(荊棘)의 관을 머리에 이라.// 그대 아름다운 상아(象牙)의 탑에서 나와/ 메마른 황토 언덕 거칠은 이 땅을 밟으라.// 노래하는 새, 꽃이팔 하나 없는 이 길 위에/ 그대 거룩한 원광(圓光)으로 빛부시게 하라.// 눈물 이슬 되어 풀잎에 맺히고/ 양심의 태양 하늘에 빛내고저// 그대 너그러운 덕이여/ 소란한 세상에 내리라.// 날 오라 부르는 그대 음성/ 언제나 귓가에 사무치건만// 아직도 내 스스로/ 그대 앞에 돌아가지 못함은// 사악(邪惡)의 얽힘 속에 괴롬의 쓴 잔을 들고/ 불의에 굽히지 않는 그대의 법도(法度)를 받음이니// 그대 약한 자의 벗,/ 맨발 벗고 이 가시밭길을 밟으라/ 여기 황야에 나를 이끌어/ 목놓아 울게 하라.// 이 세상 더러움/ 오로다 나로 하여 있는 듯/ 오늘 신음하는 무리 앞에/ 진실로 죄로움을// 제 눈물로 적시어 씻게 하느니/ 오오 시(詩)여 빛이여 힘이여!

1959년 펴낸 4번째 시집 《역사 앞에서》에 실린 시 〈그대 형관(荊冠)을 쓰라-미(美)의 사제가 부르는 노래〉 전문이다. 이 시집부터 지훈의 시는 산문(山門)을 나와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온다.

“부텨님이 되랴거든/ 중생을 여의지 마라/ 극락을 가랴거든/ 지옥을 피치마라/ 성불과 왕생의 길은/ 중생과 지옥”. 1928년 한용운이 동국대 전신인 불교전수학교 교우회지 《일광(一光)》 창간호에 권두시로 발표한 〈성불과 중생〉 전문이다. 대승적, 실천적 불교정신에 따라 일제하 수난받는 민족을 위한 길을 가라 한 것이다. 이승만의 독재정권이 도를 넘자 조지훈 시인도 스승인 한용운를 좆아 하화중생(下化衆生) 길을 걸은 것이다.

위 〈그대 형관을 쓰라〉는 시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그런 시의 메시지가 그대로 들려온다. 미나 서정의 사제에서 벋어, 빛이요 힘이 되는 시를 쓰는 쓰게 한 것도 바로 기독교 등 모든 종교의 덕목을 껴안는 불교의 대자대비 정신인 것이다. 선적 직관에서 나온 초기의 서정시든 후기의 실천, 참여시든 조지훈 시인의 시는 불교적 취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불교 그 자체가 육화된 시이다.

김구용-언어도단을 시화(詩化)한 불교적 초현실주의

   

김구용
(1922-2001)

구름이 하늘과 바다 사이로
활활 오르내리는 보타락가산 머리,
성에 어린 꽃들은 휘휘 흩어지른
골마다 산들산들 졸다.
길도 없는 녹음에 산호 젓대를 불며,
사슴을 타고 돌아오는
남순동자는 고와라.
기우뚱거리는 수평선이 등긋 부풀어, 어긋막이로 깎아 솟은 바위에
쏴아 검푸른 파도가 하얗게 부서져,
일천 구슬들과 일만 송이 꽃들은
소스라쳐 휘날아, 우렁찬 소리 속에
출렁 철썩 뛰는 물결, 홀홀 나부끼는
흰 옷자락이 바위에 두렷이 자리하신 나 없는 자태여.(중략) 
때 묻은 유방의 열매와 가난한 가구(家具)와 괴로운 밤의 관음,
모두 다 모습은 다르나 어디에고 있다.
관음은 그의 본성이요, 나는 찢어진 기구에 넘쳐흐르는
월향(月響)을 배경으로 당신의 위치에 안좌(安坐)하였다.

— 김구용 〈관음찬(觀音讚)〉 부분

중생의 원과 한의 모든 소리를 듣고 풀어준다는 관음보살을 소재로 한 김구용 시인의 〈관음찬(觀音讚)〉 부분이다. 위 인용된 앞부분에서 그런 관음이 자리한다는 남방 보타락가산, 아니 우리나라 양양 낙산사나 남해 금산 보리암 등의 해수관음을 다루고 있다. 선재동자 같은 불교설화 시대 불법을 구하는 남순동자도 나오는 그런 세계엔 ‘나’는 없다.

그러나 아니다. 6 · 25전쟁 폐허에서 몸 파는 매춘부의 가난하고 괴로운 밤 세계에도 관음은 있다. 온갖 생각, 고뇌에 찢어진 ‘나’에게도 관음은 있다. 관음보살은 ‘모두 다 모습은 다르나 그 본성으로서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다. 그래 내가 곧 관음이요 부처라는 것이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흰옷 입은 여인이 나타난다. 그가 다가서자 어느 성으로 들어 가버린다. (중략) 여인이 오렌지를 들고 나타난다. 거울을 보며 온화한 미소를 짓고 관음으로 변한다. ‘난 원래 이유가 없어요’ 하면서 연회빛 청년과 함께 나가는데, 다시 흰옷 여인으로 변해 있다.

40페이지에 달하는 산문시 〈꿈의 이상〉 부분이다. 현실에서 세 여자와 교제하면서도 환상과 꿈속에서 위 인용부에 드러나는 ‘흰옷 입은 여인’ 곧 관음보살과 줄곧 만나는 서사적 구조를 지녔으면서도 난해한 이미지와 상징들이 충돌하며 작품을 이끌고 있는 소설과 시의 혼종 양식을 취했다는 평을 듣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한 것은 ‘이유 없음’이다. 그냥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실제 사귀는 세 여자는 물론이고 환상 속의 관음보살도 다 차별 없이 이유 없는, 근거 없는 무라는 것이다. 불교의 핵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김구용 시인(1922~2001)은 자신이 부처가 되려는 구도과정을 시로 보여준 시인이다. 집에서 살면 일찍 죽는다는 말에 4세 때부터 금강산 마하연에서, 해방 후에도 공주 동학사에 기거하며 불교가 몸에 밴 시인이다. 해서 선(禪)적 직관과 초현실주의 등에서 보이는 자유로운 상상력이 어우러져 동서양의 차별과 주객의 구분조차 없앤 근원적 자유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이다.

입적하기 며칠 전 난 성신여대 입구 돈암시장 맞은편에 있는 시인의 댁을 찾았었다. 다른 음식은 다 끊고 막걸리만 빨대로 빨며 묻는 말에 눈으로만 뭔가를 뚜렷이 말하려는 시인의 모습이 지금도 새롭다.
“그는 언어가 시작하기 전에 움직인다./ 그는 언어가 끝난 곳에서 노래한다.”고 시 〈1곡〉에서 말했듯, 언어도단의 깨달음의 지경을 언어로 표현하고 간 시인이다. 그래 그런 시가 난해할 수밖에 없어 ‘자생적 초현실주의’라는 평도 들으며 연구대상에 오르고 있지만 일반에는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그래도 설악산 백담사 앞에 시비로 선 그의 초창기 아래의 시 한 편이 우주에 만연한 불법(佛法)의 시향(詩響)을 울리고 있다.


용트림진 고매(古梅) 등걸이 밤에 눈을 맞더니
이끼를 툴툴 떨고 하늘로 날아올라
먼 새벽의 향기인가, 꽃이 하마 피었네.

— 〈동(冬)〉 전문

이원섭-쉽고 개결한 시편으로 깨우친 선적 화두

   

이원섭
(1924-2007)

인수봉을 찾았더니
누군가를 만나러 갔다 했다.

또 백운대를 찾았더니
조금 전에 나갔다 했다.

 내친김에 만경대에 들러보았으나
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문수봉을 찾아가 털어놓았다.

어디를 싸돌아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집을 비워 놓고는.

그러자 문수봉이 정색하고 물었다.
그럼 선생은 지금 집에 있습니까.
아니면 집을 비우고 있습니까.

놀라서 깨어보니 새벽 네 시였다.

— 이원섭 〈집을 비워 놓고는〉 전문

이원섭 시인(1924~2007)의 〈집을 비워 놓고는〉 전문이다. 어려울 것 하나도 없는 시가 죽비처럼 내리치며 정신을 확 일깨우고 있다. 너는 도대체 잘 살고 있는 거냐고, 네 생의 주인이냐고. 일상 눈 들어 보면 보이는 북한산들의 봉우리들과 우화적인 대화를 통해 쉽게쉽게 깨우쳐주고 있다. 선가(禪家)의 화두도 이처럼 재밌고 쉬웠으면 좋겠다. 과연 선과 선시에 도통해 일반에 쉽게 풀이해주고 간 시인의 시답다.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이 시인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신선에 대한 책을 섭렵하며 신선이 되기를 발원했다. 공부도 잘해 경기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최고 명문으로서의 권력적인 학풍이 신선 기질에 도무지 맞지 않아 중도에 포기했다. 동국대 전신인 혜화전문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를 지내기도 했다. 1948년 《예술조선》에서 현상공모한 시 부문에 〈기산부(箕山賦)〉 등이 당선돼 시단에 나왔다.

“기산 깊은 골짜기-/ 솔은 용의 모습을 배우며/ 그 밑에, 허유는/ 관도 없이 풀을 깔고 앉아 있었다.”로 시작되는 〈기산부〉는 요순(堯舜) 태평시대를 연 요임금이 나라를 맡아 달라 하자 거절하고 도망가 기산의 심산계곡에 묻혀 신선같이 살다간 허유를 그린 작품.

이 시인의 신선 기질이 그대로 드러난 그 시를 역시 신선 풍류도 기질이 있는 서정주 시인이 아주 좋다며 당선작으로 뽑은 것이다. 그러나 곧 6 · 25가 발발하자 종군문인으로 전쟁의 참혹상을 목격하다, 남해 가덕도까지 내려가 구약성경을 읽으며 원죄의식에 떨게 된다. 그래서 나온 시가 “향미사야./ 너는 방울을 흔들어라./ 원(圓)을 그어 내 바퀴를 삥삥 돌면서/ 요령처럼 너는 방울을 흔들어라.// 나는 추겠다. 나의 춤을!/ 사실 나는 화랑(花郞)의 후예란다.”로 시작되는〈향미사(響尾蛇)〉이고 이 시를 표제작으로 한 첫 시집을 1953년 피난지 마산에서 펴냈다. 사실은 신선 풍류도의 후예지만 그렇게 살 수 없는 현실을 개탄한 시이다.
수복 후 서울로 올라온 시인은 불경 등 동양고전 번역에 몰두하며 그걸 바탕으로 《깨침의 미학》 등 일반에게 불교의 진리를 알리는 책들도 펴냈다. 그와 함께 옛 고승들의 선시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 번역하고 선에 대한 일반 강좌도 펼쳐나가며 선과 선시의 대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불교 공부와 번역과 저술에 몰두하던 시인은 첫 시집 후 40년이 다 돼가는 2001년 두 번째 시집 《내가 뱉은 가래침》을 펴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명, 망상 등이 몸 안에 침전된 불순물이 가래침 아니겠냐며 가래침을 뱉어내니 산도 해도 달도 열리더라고 시인은 시집을 낸 후 밝혔다.

머리에 들어 있는 지식을 씻어냄이 교육,/ 무엇 하나 앎이 없는 이가 대학자,/ 알거지가 재벌,/ 정치가나 공무원은 무능해야 하고,/ 화가나 시인의 작품은 졸렬해야만 하는,/ 이런 따위로 고쳐,/ 온 세상을 어리석음으로 채워보면 어떨까.

도발적인 제목을 가진 그 시집에 실린 시 〈우민(愚民)정책〉 부분이다. 기성의 현실적 가치를 가래침같이 더럽게 보며 내뱉고 있는 시이다. 선기(禪氣) 넘치는 시 세계를 참다 참다 못해 가래침같이 뱉어내며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날로 삭막해가는 우리 현실적 삶을 질타한 것이다.

칠월의 하늘에/ 청포도가 익었다/ 아기는 덩쿨에 기어올라/ 포도를 따 먹는다/ 천 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벌거벗은 고려의 아기는.

구례 화엄사에 시비로 서 있는 〈고려청자〉 전문이다. 고려청자에서 너와 나는 물론 시공(時空)의 분별까지 초월한 선적 무아지경을 단숨에, 예쁘게 보아내고 있는 시이다.

한용운의 뒤를 이어 이처럼 불교를 육화해 평생 불법을 구한 반승반속의 시인들이 일제 말과 해방 직후 시단에 나와 우리 시를 깊이 있고 풍성하게 했다. 이들 시인이 우리 시단의 중심부로 들어오면서 불교는 시적 경향이나 파벌을 넘어 우리 현대시의 원심력이 되어 일파만파 번져나가게 된다. ■


이경철
문학평론가 · 시인. 동국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2010년 《시와시학》(시) 등단. 저서로 《천상병, 박용래 시 연구》 《미당 서정주 평전》 등과 시집 《그리움 베리에이션》이 있다. 현대불교문학상(평론 부문), 질마재문학상 등 수상. 현재 동국대 대학원 문창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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