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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성찰] 마음에 찍는 쉼표 하나 / 임채성
[71호] 2017년 09월 01일 (금) 임채성 awriter@naver.com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며 심신의 치유를 꾀하는 ‘힐링(Healing)’이 사회적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잘 먹고 건강하게 살자는 ‘웰빙(Well-being)’에서 상처받고 지친 자아의 자존감을 되찾으려는 정신적인 치유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도시 생활의 각박함과 경쟁사회의 치열함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위로의 수단을 찾으려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힐링 트렌드의 중심에 ‘템플스테이’가 있다. 템플스테이는 1,700년 한국불교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전통사찰에 머무르며 그곳의 일상과 불교의 수행정신, 문화를 직접 체험해 보는 문화관광 프로그램이다. 명산대찰(名山大刹)이란 말처럼 우리나라 전통사찰 대부분은 자연 속에 자리하고 있어 템플스테이는 힐링을 위한 안성맞춤 프로그램인 셈이다.

내가 템플스테이를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일 것이다. 2년 전, 지인의 소개로 대한불교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에서 진행하는 템플스테이 광고를 맡게 되었다. 더 정확하게는 템플스테이 광고캠페인의 제작과 집행을 담당할 광고대행사를 선정하는 경쟁 프레젠테이션(PT)에 카피라이터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사업단에서 제시한 광고 목표는 대중화되기 시작한 템플스테이를 널리 알림으로써 대중의 관심과 이용률을 제고시키는 것이었다. 나아가 오랜 전통의 한국불교와 대중이 소통하는 장을 마련하여 불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고도의 정신문화를 공유하고자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템플스테이가 맡아주기를 원했다.

PT를 위해 주어진 시간은 2주, 내가 할 일은 광고에서 가장 중요한 콘셉트 설정과 그에 따른 메시지의 개발이었다. 그때부터 ‘템플스테이’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되었다. 템플스테이의 역사와 형태, 프로그램의 내용, 참가자들의 이용 후기, 소개 책자 등을 통한 전방위적 접근이 이루어졌다.

아이디어 구상, 브레인스토밍을 통한 전략회의와 제작회의가 밤낮없이 이어졌다. 기발하면서도 색다른 아이디어가 수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예정된 시간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만큼 내 입술도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단순히 ‘좋은 말’이 아닌 ‘마케팅적으로 적확한 말’, 남들이 쓰지 않은 ‘신선한 비유와 튀는 아이디어가 들어 있는 단어’를 찾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이 지난한 일이다. 한 줄의 카피(광고 문안)는 커피와 코피의 합성어라는 업계의 오랜 통념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내린 결정이 템플스테이 직접 체험이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 느낌을 잠재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겠는가. 여기저기 전화로 확인해본 결과, 운 좋게도 남양주에 있는 봉선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할 수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는 고려 광종 20년(969)에 법인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봉선사의 원래 이름은 ‘운악사’였지만 조선 예종이 아버지인 세조의 무덤을 지키는 절이라는 의미로 바꾸었다고 한다. 500년 된 느티나무가 산문을 지켜 섰고, 보물 제397호인 ‘봉선사 대종’이 있는 고찰이다. 또 입구로 가는 비석거리에는 해방 후 반민특위를 피해 이곳에서 도피생활을 했던 춘원 이광수의 기념비가 영욕의 세월을 증언하듯 말없이 서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숙소 앞마당에는 ‘방하착(放下着)’이라는 세 글자가 커다란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놓아버려라’ ‘집착을 버려라’ 정도의 의미로 해석되는 그 말은 당시의 내 상황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화두라면 화두랄 수 있는 템플스테이를 어떻게든 물고 늘어져 광고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방하착’을 따른다는 것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무책임한 행동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녁과 새벽을 지나면서 내 마음에도 조금씩 여유라는 변화가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새벽을 깨우는 범종과 목어 소리의 긴 여운은 평소에 접할 수 없었던 평화로움으로 가슴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중에서도 ‘참나’를 찾는 수행체험은 특별했다. 흔히 참선(參禪)이라고도 불리는 간화선(看話禪)은 불교의 기본 수행법이자 핵심이다. 간화선은 ‘무엇이 나인가?’와 같은 화두(話頭)를 깨치는 일이기도 하다. “나를 바로 보라!”고 이끄는 스님의 이야기를 오롯이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졸음과 가부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싸움은 깨달음이라는 부처의 경지가 얼마나 높고 지극한 것인지를 알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와 함께 이튿날 아침, 맑고 청신한 숲의 기운을 받으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광릉숲 원시림을 산책하는 ‘비밀숲’ 체험은 ‘힐링’의 의미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세상과는 격리된 비밀의 숲을 천천히 걸으며 삼림욕을 하는 동안 내 마음도 호수 같은 고요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나무들, 함초롬히 피어 있는 길섶의 이름 모를 풀꽃들, 울음이 아닌 노래를 들려주는 새들, 거미줄에 매달린 투명한 이슬방울 등 바쁜 도시 생활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느림의 미학’을 생활의 여백처럼 받아든 기분이었다. 1박 2일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날의 템플스테이는 해외여행보다 값진 추억으로 남아 있다.

‘느리게 산다’는 의미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살이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매일 되풀이되는 ‘분주함’이 아니라 하루의 감성을 ‘느긋하게’ 즐기는 고급스러운 ‘게으름뱅이 기질’, 그 속에 행복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빠른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곧 발전이라는 사회의 보편적 룰을 벗어나 현대생활에서의 도태나 일탈이 아닌 여유라는 내적 통찰을 중시한다면, 한가롭게 산책하며 다른 사물의 소리에도 귀 기울여 보시라. 목적도 없이 발맞추기에 급급한 세상사를 초월한, 권태를 즐김으로 인해 얻는 수많은 가치와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결과적으로 경쟁 PT에서는 지고 말았지만 마음에 쉼표 하나를 찍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템플스테이의 효시로 알려진 해남 미황사로도 ‘나를 위한 행복여행’을 떠나보고 싶어진다.

임채성 /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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