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불교의 인연은 1954년부터 1962년경까지 벌어졌던 불교정화운동과 관련이 있다.

그때 고등학생이었던 내 집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마산불교 포교당은 대처승들이 자리한 포교당으로 불교정화운동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불교정화운동은 한국불교 전통 재건과 불교근대화운동을 내용으로 하는 불교 내 자정운동이라고 할 것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1954년 5월 20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전통불교 사원에서 ‘대처승은 물러가라’는 요지의 유시를 내린 것이 발단이 되었다.

아침마다 학교에 가려면 포교당 앞을 지나가야 하는데, 포교당 앞을 지나면 대처승들이 등교하는 아이들을 배웅하는 모습을 자주 보아 왔다. 그때는 포교당에 어떤 스님이 있던 관심이 없었는데 대통령의 유시를 듣고 보니 그것이 옳다고 생각되었다. 포교당이 집 가까이 있으니 많은 변화를 보게 되고 관심이 생겨, 나도 성인이 되면 부처님을 믿으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불교를 만나는 기회가 빠르게 찾아왔다.

어느 날 포교당 게시판에 불교 교리 강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 게시되어 있었다. 오는 일요일에 이수산(李壽山) 거사의 ‘20세기의 세계전망’이라는 제목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강좌에 참가했더니 거사님은 불교가 정화운동과 함께 새로운 철학을 지녀야 하며 불교 발전을 위해 앞장서 나가야 한다는 취지와 함께 경전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여 주었다. 나의 친구들은 일요일 외에도 강좌가 있는 시간이면 언제나 모였다.

친구들은 물론 시내 남녀 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여들어 법당이 초만원을 이루면서 거사님의 강좌를 열심히 듣게 되었다. 어느 날 거사님은 ‘오늘 밤부터 매일 저녁에 불교철학 강좌를 개최할 것이니 많이 듣기를 희망한다’고 하기도 했다.

우리 학생들은 각 학교의 대표들이 모여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어느 선배의 제안에 모두 찬성하고 이를 토대로 마산불교학생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신도회가 조직이 되고 구체적인 운영방안을 검토하여 1955년 10월 31일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회장에 마산상업고등학교의 김태문 선배를 선출하게 되었다.

이날 회의에서 매년 회지 《설산(雪山)》을 창간하자는 제안에 따라 편집위원을 선출했다. 회지에 수록할 부처님 말씀, 논단, 산문, 시, 축사 등 필진을 의뢰하는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10일 창간호를 프린트판으로 62페이지를 발간하였다. 권두사에 “자각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제목의 김태문 회장 글이 서두를 장식하였다. 김 회장은 한 회 선배로 2기 회장은 내가 맡게 되었다.

《설산》의 서두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신조를 ‘자각실천(自覺實踐)’ ‘파사양정(破邪養正)’ ‘구민제세(救民濟世)’로 명시하고,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하였다. 《설산》을 발행하게 된 동기는 회원들의 자질을 계발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어 많은 회원들 상호 간에 믿음의 중요성을 표현하며, 회의 발전 상황을 알려 회원들의 긍지를 살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 후 《설산》은 18집까지 계속 발간되었다.

마산불교학생회의 1기, 2기가 주축이 된 졸업생 회원들은 1957년 8월 2일, 마산불교청년회(약칭 마불청)를 창립하게 되었다. 마불청은 그 후 2007년에 《마불청 50년사》를 발간했다. 창립 이후 그때까지 학생회에서 이룬 모든 업적을 화보와 사진으로 수록,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훌륭한 책자를 간행했다. 이와 함께 후일 〈마불동문회보〉를 신문 형태로 발간하여 역사의 흔적을 기록해 오고 있다.

이러한 학생회 조직의 활동 이면에는 주지 스님인 윤고암 스님의 도움이 컸으며 신도회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다. 고암 스님은 가끔 회원들을 만나 믿음의 마음을 지니도록 부처님 말씀을 조목조목 알려주시기도 했다. 양산 통도사에 계시는 경봉 스님도 가끔 찾아오셔서 신도들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학생회와 청년회는 백일장을 열기도 하고 회원들이 배역을 맡아 〈성도의 곡-지옥도〉라는 연극을 마산의 시민극장과 제일극장에서 연 3일간 공연하기도 했다.

마산포교당은 이제 ‘통도사 마산포교당 정법사’로 과거의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세련된 모습으로 달라져 있다.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회원들 역시 각기 자신의 일을 찾아 떠났지만, 수도권에 사는 마산불교학생회 시절의 회원들은 ‘설산회(雪山會)’를 만들어 지금도 수시로 모여 옛날의 회상에 잠기기도 한다.

 어느 곳에 살든 그 시절의 회원들은 가까운 곳에 계시는 부처님을 찾아 합장하며 60여 년 전 마산포교당에서 맺은 불연(佛緣)을 되새긴다.

조병무
문학평론가 · 전 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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