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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논단] 업은 존재하는가*
- 불교, 사회인지 그리고 업의 입증
[70호] 2017년 06월 01일 (목) 파멜라 M. 앨런 존 A. 에드워드/ 윈스턴 맥컬러프

 * 이 논문은 파멜라 M. 앨런(오리건주립대학교 건강과 행동과학 교수)과 존 A. 에드워드/윈스턴 맥컬러프(오리건주립대학 심리과학 교수)가 공동집필한 “Does Karma Exist?: Buddhism, Social Cognition, and the Evidence for Karma”, The International Journal for the Psychology of Religion, 25, 2015를 신항식(ssbrand@hanmail.net) 한양대 초빙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1. 문제의 제기

세계 종교의 절대다수에서 사람의 행위들 가운데 특히 도덕에 관련한 행위가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야기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예수는 곳곳에서 이런 언급을 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태복음》 7:2).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유대 전통 속에서도 같은 생각이 나타난다.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부당한 짓을 행하는 자 뿌린 대로 거두리라.”(《욥기》 4:8),

“네가 그들을 대한 만큼 그들도 너를 대할 것이다.”(《미슈나 소타》 1:7, p.8b),

“네가 남을 빠뜨렸으니 그들이 너를 빠뜨린 것이다. 너를 빠뜨린 자 결국 스스로 빠질 것이다”(《피르케이 아보트》 2:6).

수피교 또한 “(좋든 나쁘든) 네가 행한 일 너에게 행해진다.”(Bayman, 2001)라 했으며 이슬람도 “인간의 손으로 저지른 부패가 육지와 바다에 만연했나니, 알라는 마지막 심판에 앞서 그들이 삶 속에서 행한 결과의 일부를 맛보게 하리라. 그리하여 그들을 바르게 되돌리리라.”(코란 30:41)고 했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일반인들도 이런 종류의 힘들이 세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인과응보’가 좋은 예다. 이런 생각은 힌두교, 자이나교, 시크교, 불교 같은 고대 인도 문화에서 비롯된 종교적 전통에 가장 밀접하게 접목되어 있다. 이들 전통은 결과를 야기하는 행위(행동, 발언 혹은 사고를 포함)를 의미하기 위해 업(karma)이라는 낱말을 사용한다. 약간은 부정확하지만 이 낱말은 업의 결과나 효과를 약칭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업은 행동을 포함하기 때문에 심리학과 관련된다. 심리학은 삶의 결과가 지닌 여러 유형의 원인에 대한 가설이라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초기의 서양 심리학은 이런 점을 받아들였고 주로 칼 융(Karl Jung)의 영향을 받아 업과 같은 생각을 심리학에 포함시키려 했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은 업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았다. 최근의 몇 연구는 업에 대한 신앙이 그냥 우주를 믿어야 하는 필요에 엮인 신비적 사고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내재적 정의의 추론). 이런 생각에 따라 몇몇 연구들은 “사람들이 세계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위협당할 때면 좀 더 내재적 정의의 추론을 하며 또한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불확실한 결과와 맞닥뜨릴 때는 사회 친화적인 행동에 뛰어든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는 업에 대한 믿음이 정확한지 따지지도 않은 채 그저 따르는 업을 향한 믿음의 효과를 관찰해 왔다. 이런 식의 연구는 이내 도덕에 연관된 행동과 그 결과 사이에 실제로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요구한다. 실제적 연관성을 설명하는 원인적 기제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어떤 전통 종교는 신이나 초자연적 중계자의 행위가 업 효과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이런 설명은 과학적 연구의 영역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연주의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한 설명이 존재한다. 특히 불교철학은 업에 대한 연구들이 어떻게 서양의 사회인지 심리학과 공통점을 갖는가에 대한 정밀한 설명을 제공한다. 드 실바가 수행한 대로, 불교심리학이 실험 가능한 가정들을 제공하여 업을 과학적 탐구의 영역으로 끌고 와야 한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업에 대한 탁월한 불교철학을 기술하고, 그것을 사회인지 심리학이 제공하는 프레임으로 엮어 그 안에 담긴 기제의 증거를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분석은 서양 심리학의 구성 활성화와 인지에 대한 불교철학의 비교에 근거한다. 이 둘은 사람의 행위가 미래 사건에 대한 인상을 결정할 것이라 가정한다. 이는 사회 친화적인 행동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후행 사건을 친화적인 결과로 해석하도록 이끄는 것과 같다.

불교 전통에는 서로 다른 여러 학파가 존재한다. 다양한 불교 전통을 교차하는 공통 요소들이 있다 해도 업에 대한 단일한 이론은 없다. 먼저 유식학파의 교리를 살펴보자. 유식학파는 인도 불교철학의 한 학파로서 불교의 다른 학파에 많은 영향을 끼쳐 왔다. 서양 심리학과 자주 비교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유식학파가 인지에 대한 최근의 서양의 관점에 가장 가까운 학파라고 생각한다. 구성 활성화의 서양 심리학적 증거에 대한 다음의 검토가 전수적인 것은 아니다. 유관 문헌연구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적은 업에 관해 폭넓게 사유할 수 있도록 유관 문헌연구를 대표하는 모범적인 사례를 제공하는 것이다.

2. 유식학파와 지각

근대 사상에서 불교의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어떠한 대상도 독립된 실존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모든 대상은 자신보다는 다른 무엇에 기대어 존재한다고 강조한 지혜의 해명이다(연기론). 이 지혜는 여러 미묘한 양식을 띤다. 쫑카빠(Tsongkhapa)의 《요의와 미요의의 구분: 선설의 핵심》은 우리가 유식학파를 소개하는 일차자료이다. 이 저서는 《해심밀경》에 뿌리를 두고 이를 따른다. 이 저서는 유식학파에 중점을 두지만, 이 학파에 연관한 철학적 교리의 요소들이 대다수 대승불교 교리의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유식(唯識)은 부적절한 명칭으로 보일 수 있다. 유식은 마음만이 우리의 경험을 야기하는 근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그보다는 마음이 우리의 경험이 만들어지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없다면 경험도 없으리라. 유식의 관점은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 등 삼성(三性)의 틀 속에서 인간 경험을 창조하는 마음 구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모든 현상이 이 세 가지 속성을 지닌다고 본다.

이들 속성은 대상과 대상에 대한 지각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세 가지 자각으로 이끈다. 첫째, 어떤 특정한 심성의 명칭은 지각의 대상과 근원적으로 연합하지 않는다. 이름은 필요에 따라 대상에 붙여진다. 둘째, 대상(내가 경험하는 변하는 현상)과 주체(지각)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원천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 두 가지는 인간 지각의 조건화한 심적 형태에 의존하여 생겨난다(즉, 업). 셋째, 지각 정보 과정으로부터 언제든 떨어져 존재할 세계에 대한 나의 경험 속에는 외부대상이 없다. 이 관점은 일종의 관념철학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변하는 현상이 정의에 의해 존재하고 현상의 객관적인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생겨난다는 사실은 유식학이 유아론(唯我論)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준다.

업의 일반이론

유식학파 철학자들의 주요 기획 중 하나는 업이 작동하는 기제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제들은 본성상 심적(心的)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유식학파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지각은 감각으로 경험된 자극을 심적으로 범주화하는 과정을 통하여 행해진다. 이 범주화 과정은 우리가 시간을 초월하여 발전시키는 심적 구성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마음 안의 종자들은 삼업(三業), 곧 과거의 몸, 마음, 언술 행위가 지은 업과 관련이 있다. 이는 알라야식에 기록되고 저장된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해석하게 해주는, 활성화한 마음의 구성체들로서 이런 종자들은 ‘익는다’. 사람들이 세계에 대한 해석을 세계 그 자체인 듯 착각하여, 오해로 만들어진 사물을 붙잡거나 피하려 행동할 때 문제가 생겨난다.

이런 행동이 보다 더 큰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고 잘못 가정하면서 말이다. 현상으로 나타나는 세계를 바꾸고자 한다면 그와는 달리해야 한다. 행위를 반복하여 원하는 심적 구성체들을 더욱 활성화함으로써 보다 폭넓게 이를 수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심적 구성체들은 정의에 의해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잠재적인 것은 항상 경험에 앞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주어진 대상으로 존재한다. 그것 가운데 어떤 종자들은 불가피하게 다른 것들보다 더 긍정적인 경험으로 이끈다. 말하자면 배려, 낙관, 용서, 그리고 다른 긍정적인 감정들을 북돋우면 많은 경우 좀 더 주관적인 웰빙, 더 즐길 만한 사회적 관계, 긍정적인 결과의 증가로 귀결된다. 이 철학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모든 행위에 결과를 내지 않아도 이 ‘행위’가 마음 행위, 특히 의도를 가진 행위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행위는 사물로 향하거나 그로부터 멀어지는 마음의 방향인데,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얻거나 피하고자 하는 것들이 본질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의해 생긴다는 사실을 오해한 뒤의 마음의 향방이지, 그 앞에 열린 행위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쫑카빠의 《요의와 미요의의 구분: 선설의 핵심》은 업이 작동하는 기제를 설명하기 위해 이 관찰을 활용한다. 그는 업이 a) 대상, b) 원인, c) 결과의 공을 통해서 작동한다고 가정한다. 업은 우리의 각종 행위마다 그에 일치하는 결과를 야기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우리 행위에 포함된 결과에 대한 내면적 해석을 만들어 냄으로써 작동한다. 예를 들면, 예수가 “주어라, 그리하면 받을 것이다. 억누르고 흔들면 저 자신의 무릎 위로 쏟아지리라.”고 말했고, 부처는 “복을 지어야 복이 온다.”고 했다. 쫑카빠에 따르면 이들 언술의 토대는 다름 아니라, 우리가 의미 있게 남에게 주면 그 행위는 ‘풍요를 경험하는’ 마음의 구성체를 활성화해 나중에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밑천과 생의 상황을 풍요로운 것으로 해석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은 ‘풍요’가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봉을 서로 다르게 받는다 해도 사람이 비교하는 관점에 따라 모두 풍요로운 것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또한 사람들이 인생에서 기대하는 양상에 따라서도 그럴 수 있다(해당 지역의 사회기반 구조의 질, 신선한 음식의 제공 여부, 노동 효율의 기술 등). 부와 풍요의 경험은 이런 의미에서 모호하다.

업에 대한 모든 고전적인 생각은 윤리화의 요소를 지닌다. 업에 연관한 행위들이 긍정적인, 부정적인, 중도적인 도덕의 본질을 지니는 것과 같다. 부정적인 행위는 다른 생명체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며, 행위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긍정적인 행위는 다른 생명체를 이롭게 하며 행위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어떤 도덕적 연관 행위의 영향들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지는 않다. 불교철학에서 업의 결과는 분명 업의 원인과 대략 일치한다. 예를 들어, 거짓된 행위가 원인과 서로 일치하면 그 결과는 다른 사람들을 믿을 가치가 없는 이들로 경험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솔직함과 같은 특별한 도덕 유관 행위가 일반적으로 선과 악의 결과로 이끄는 사례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솔직하게 행동한 결과가 부자가 되는 정도라든가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하는 일에서 성공을 거두는 그런 사례가 아니다. 그게 아니라 영향은 원인과 유사하므로 솔직해서 얻은 결과라면 분명 믿을 만한 사람들과 조우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왜냐하면 행동의 유형에 딱 맞는 행동에 의해 만들어진 마음 구성체에 업적인 영향을 예측하는 기제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업의 무게를 더 무겁게 하는 여러 요인이다. 이는 하나의 행위가 마음의 종자를 뿌려서 그와 일치된 결과를 경험케 할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정도를 나타낸 것이다.

업의 접근성을 증진시키는 요인들

1. 분노나 환희 같은 감정을 강하게 지닌 행위
2. 강한 의도나 효과를 지닌 행위
3. 탐진치의 삼독에서 비롯된 행위
4. 강제되고 사전 계획되고 주저 없는 행위(부지불식간의 행동과 반대)
5. 행동만 하되 후회는 없는 행위
6. 타인에 대한 행위를 떠벌리는 일
7. 반복된 행위
8. 타인으로 하여금 나쁜 행동을 하게 이끄는 일
9. 우상을 향한 행동(신성한 존재, 영적 스승, 영적 삶의 상징들)
10. 자신에게 진정 도움을 주었던 사람(부모, 성직자나 선생)에 대한 행위
11. 도움이 필요한 자에 대한 행위

의도와 행동은 모두 업의 무게와 연관되어 있으므로 개인적으로 그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의도와 행동이 조합되어, 도덕적인 결과의 의도가 그에 의존하여 이루어지면 업의 무게(즉 접근성)는 최대한으로 커진다. 의도와 행동이 업과 대립했다면 결과가 약해진다. 살인처럼 본연적인 해당 행위가 어떤 자비의 동기(예를 들면, 병의 고통을 못 이겨 살인을 요청한 경우)에 의해 벌어졌다면, 해당 행위의 업의 무게는 어느 정도 감소한다. 같은 무게를 가진 업들 가운데 보다 습관적인 행위의 결과가 먼저 생긴다. 습관적인 행위는 덜 습관적인 여타의 행위들보다 과거의 행위를 통해 세계를 지속되는 것으로 해석하도록 마음을 연습시키는 큰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업의 무게는 또한 효과가 일어날 시간의 틀에 영향을 끼친다. 보다 더 무거운 업의 효과가 보다 더 빨리 발생하는 것과 같다. 이 점에서 업의 개념을 윤회의 그것과 서로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회는 불교와 동양의 여타 종교의 교리임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런 전통에서는 업 효과가 사람의 미래 결과에 영향을 준다고 본다. 그러나 불교의 교리는 “업은 사람의 현생에서(종자를) ‘익게’ 한다.”고 명백하게 선언한다. 이는 업보가 현생에서 관찰될 수 있으며, 업이란 윤회의 개념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주장이다. 불교의 교리에서 업이 미래의 생에 영향을 준다고 사유되는 이유는 마음의 본질이 물리적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고 미래의 물리적 존재로 연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정신적인 현상으로서 업보는 생애에 걸쳐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분석을 상기하면서, 무엇보다도 윤회가 과학적인 방식으로 다루기 쉬운 주제가 아니므로 현생에서 벌어지는 업보에 중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겠다.


3. 업과 심적 구성체 활성화의 교차

유식학파가 주장하는 근본의 기제는 사회인지 심리학의 기초 개념인 심적 구성체의 활성화와 유사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서양의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마음이 지닌 내용이 그의 지각에 영향을 준다는 가정을 오랫동안 해왔다. 이런 관점은 최소한 칸트의 철학적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억과 정신적 표상에 관한 근대이론은 과거의 경험(기억된 내용)이 새로운 상황을 해석하고 조화하는 데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지를 설명한다.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는 지각과 연관한 인지구조의 역할에 대하여 근대 사회인지 이론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영향력 있는 요점을 나열했다.

지각의 주요 특성은 범주화이다. 범주화는 대상에 가장 맞는 범주가 어떤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우리의 심성 범주에 연합한 속성에 자극의 속성을 맞추어 보는 일을 포함한다. 유식학파와 맥을 같이하는 브루너의 이론은 다양한 범주들이 거의 언제나 대상을 확인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중요한 가정으로 자리한다. 이 두 전통은 또한 세계 속의 자극들이 본질적으로 모호해서(혹은 불교 언어로 공하다는) 여러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의존한다. 자극이 모호하지 않다면 어떤 개념적인 점화(잠깐 동안의 활성화로 인해 개념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잠시 높아지는 경우와 같이)도, 업보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이 둘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세계 속의 대상과 사건의 현재적 질에 전체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는다고 가정한다. 대신 현존 대상과는 떨어진 채, 우리의 경험이 심적 구성체를 통해 어느 정도 창조된다고 가정한다. 유식학파와 사회인지 심리학은 마음의 구조가 지각과정에 영향을 줌으로써,(주관적인 의미에서) 대상을 모호하게 하지 않도록 사람의 경험에 영향을 준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두 전통에 따르면 심적 구성체들은 기억 속에 저장되며 특정 상황에 따라 사람의 지각에 영향을 줄 가능성 속에서 개인의 심적 구성체들이 변해간다. 이 가능성은 또한 자주 행하는 혹은 습관적인 행위와 생각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 두 전통이 겹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개념적 점화가 그것이다. 그 안에서 최근에 경험한 자극이나 상황들이 심적 구성체들을 활성화하는데, 이 구성체들은 어떤 자극을 활성화하는 것과는 무관한 것으로 해석하는 데에 이용된다. 이런 개념적 점화에 대하여 불교철학은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 않는다. 이는 업(정신 행위를 포함한 그 사람만의 행위)이 지각에 영향을 주는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중요한 논의이다. 불교전통의 몇 가지는 실상 인간 경험에서 업과 관련이 없는 영향에 대해 정밀하게 분류했다. 그럼에도, 우연한 상황적 변인이 어떤 구성체를 활성화하는 점화효과는 그런 분류 속에 명백하게 지적되지 않는다. 반면에 개념적 점화에 바탕을 둔 과정적인 사고, 즉 심적 구성체 활성화는 앞서 논의했듯이 불교적 사유의 요소들과 같은 것이다.

심적 구성체가 지각에 영향을 주는 방식에 관하여 사회인지 이론은 불교보다 더 구체적이다(예를 들면, 주의의 기제들을 통한 것 등). 무엇을 근거로 어떤 범주를 결정하거나 어떤 질문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응답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물과의 동일성에 대한 응답이 되곤 하는데, 이에 브루너는 접근성의 개념을 제안한다. 자극을 모호성 없이 받아들이는 다른 표상들보다는 접근 가능한 심적 구성체가 보다 더 가까운 개념이다. 접근성은 구성체를 활성화하는 잠재성, 혹은 숨어 있는(비활성적인) 구성체가 활성화될 가능성을 말한다. 브루너에 따르면 접근 가능한 범주는 세 가지 성격을 가진다. 첫째, 이 범주들은 자극을 범주화하기 이전에, 보다 덜 외부적인 정보의 수용을 요구하여 외부정보가 거의 없는 토대 위에서는 빠른 범주화를 이끈다. 둘째, 접근 가능한 범주가 보다 많다는 것은 주어진 신호가 범주를 잘 맞추는 허용치가 더 많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는, 접근성이 높은 범주의 개념들 속에서 사람들이 대상을 잘못 동일시하는 경향을 띨 것을 의미한다. 셋째, 접근 가능한 범주들은 그와 동등하게 잘 맞는(혹은 더 잘 맞는) 다른 범주를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 접근성과 더불어 구성체 활성화에는 적용가능성이 관여한다. 적용가능성 혹은 구성체와 연합한 특질이 다른 자극들에 대하여 자극이라 관찰된 특질과 겹치는 정도에 따라 개념이 달라질 것이다. 주어진 자극을 존중하는 적용가능성이 많은 구성체일수록 더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인지의 영역은 구성체가 해석, 주의, 기억, 행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실험을 통해 관찰해 왔다는 점에서는 불교와 다르다. 사회인지의 문헌연구 중에는 구성체 활성화의 효과에 대한 많은 논고들이 있으나 여기서는 그 기본적인 원칙들만 기술한다. 사람들은 들어오는 정보를 접근 가능한 개념에 맞는 방식에 따라 해석하는 일반적인 경향을 보인다(예를 들어, ‘적대감’의 개념을 가지고 점화하는 사람은 모호한 일련의 행위를 토대로 상대를 “적대적인”으로 평가하는 정도에 영향을 준다. 하나의 개념에 자주 노출되면 유사한 효과를 얻는 것이다. 하나의 구성체에 점화된 시간의 양은 점화효과의 강도와 연관되어 있으며 그 점화효과가 얼마나 긴 미래에 계속 영향을 끼칠 것인가도 연관한다.

활성화된 구성체들은 또한 사람의 주의에도 영향을 준다. 사람들은 활성화한 구성체에 관여하는 환경의 양상에 주의하는 반면 관여적이지 않은 대상은 무시하는 경향을 지닌다. 기억에 대한 접근성의 영향은 무엇보다 주의와 해석을 통해 벌어진다. 이 둘은 기억에 무엇이 저장될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기억 방해가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현존하는 것이라 잘못 기억하도록 이끄는 바람에 다른 유형의 기억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자극이 이해되던 그 시간에 활성화된 구성체와 함께 이것이 엮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범주(예를 들면, 홍수 이재민)의 활성화는 해당 사회를 향한 구체적인 행위에 대한 반응을 이끈다. 점화의 독립성(예를 들면, ‘독립적인’ ‘자가충족적인’ ‘개인적인’의 단어)과 비교해 보면 점화의 상호의존성(예를 들면, ‘모임들’ ‘우정’ ‘함께’의 단어)은 사회적으로 풀기 어려운 의무에 대한 협력적인 반응들을 증가시킨다. 구성체 활성화의 이런 효과들은 구성체들이 사람의 세계 경험에 영향을 주는 구체적인 기제로서 보일 것이다.

반면, 불교철학은 어찌해서 사물과 사건들이 필연적으로 모호한가에 대한 추리를 펼치는데 훨씬 더 구체적이다. 불교철학은 또한 더 강하거나 더 약한 업보를 이끄는 힘들에 관한 구체적인 가설들을 펼치기도 했다. 반복되는 행동은 예외지만 이런 가설들은 서양 심리학 문헌에 나타나지 않는다.


4. 업의 증거

구성체 활성화와 그 유관 주제에 대하여 수많은 심리학 연구들이 있다. 서양의 사회인지이론과 유식학파 사이에 유사성이 많은 만큼, 업의 존재와 배경 기제를 논하는 심리학 문헌 속에 그런 연구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장에서 우리는 응답이 필요한 유관 질문을 확인하고 연구증거를 살핀다.

행위는 일치하는 결과로 이끄는가?

특히 사회적 상호작용에 연관하여 사회심리학의 많은 현상이 업에 대한 본질적인 가정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면 일치하는 결과, 즉 행위와 유사한 결과를 경험하도록 이끌 것인가 하는 가정들이다. 인간은 사회적 창조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대다수 활동은 사회적 양상을 지닌다. 그리고 사회적 결과는 심각하게 중요한 것으로서 지각된다. 그러하니 대다수의 일이 사회적 행위와 결과를 포함한다.
이런 효과의 한 가지 변인 속에서 사람들은 종종 다른 사람의 행위와 유사한 행위로 직접적으로 반응한다. 예를 들면, 공격적인 행위는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되돌려주도록 상대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 연구는 공격은 대응공격과 만나는데 젠더, 나이, 공격 유형에 따라 정도는 다르다 해도 젊은 부부의 경우 당해 기간에 최소한 25%라고 주장한다. 사춘기 데이트에 관한 연구들은 데이트 기간 중 85%의 쌍방공격 정도를 보여 왔다. 협상 중 분노 행위는 다른 이에게 분노 행위를 부른다. 부부간에 부정적인 감정을 교환할 때도 유사한 결과가 나오는데, 부부가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할 때 특히 그렇다. 이런 결과는 이보다 긍정적인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 따르면, 전화를 공손하게 받는 사람은 말하는 상대에게 공손한 행위를 유발했다. 협력은 긍정적인 감정을 부르며, 조직의 관계성을 향상시킨다.

몇 가지 기제를 통해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사회적 상호성이다. 사람들의 행위가 관계성 속에서 벌어져 행위가 서로 비슷해질 때 나타나는 것이다. 사회적 규범은 상호 간 행위를 지탱할 수 있다. 대다수 문화는 사람들이 친절하게 서로를 응대할 것이라는 ‘상호적 규범’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규율은 처음의 행위가 어떠했는지도 타인에 대한 자기 감정도 상관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상호적 행동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 보답은 더 크게 돌아오는데, 배려한 이가 그에 대한 응답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그렇다고 한다. 부정적인 상호성도 일어날 수 있다. 부정적인 대우를 하면 상대방도 부정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상호행위를 하는 정도와 사람들이 따르는 상호적 규범의 본성은 사람들과 문화 사이에 다양하게 걸쳐 있다. 사람들이 부정적인 상호성보다 긍정적인 상호성을 더 가까이하는 것이 좀 더 상식적이라는 증거들이 있다. 반면 최소한 몇 종류의 상호작용에서는 부정적인 상호성이 긍정적인 것보다 더 노출되어 드러나는 것으로 보인다.

상호성의 형식은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일어날 수 있다. 이는 흉내 내기의 사례에서 일어난다. 다른 사람들의 자태, 표정, 말, 음조와 주요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흉내의 결과는 인지적인 변인으로까지 확대해 온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그들이 상호작용하는 사람들과 서로 유사한 태도를 받아들인다. 그들은 또한 타인의 목표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며 수행, 의미 혹은 의도와 유사한 행위를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감정이 주변의 타인에게 미치는 감염도 사람들로 하여금 유사한 감정을 노출하도록 이끈다. 타인을 관찰하면서 타인의 행동을 배우는 모델링도 그와 유사한 행동으로 사람을 이끌 수 있다. 모델의 행동은 관찰자의 행동 리스트 속에서 증가하여 행동을 어떻게 수행하며, 맥락에 걸맞은 행위가 무엇인가 대한 정보를 교환하도록 이끈다. 앞서 기술한 현상의 몇 가지와 다르게, 모델링은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종종 의도적이다. 즉 사람들은 그들이 관찰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른의 행동을 흉내 내는 아이들에게 흔히 볼 수 있지만, 이는 그런 환경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이런 예는 사람의 행동이 타인으로 하여금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논의된 결과들 대부분은 주어진 상황에서도 일어나고 공동의 자극에 의해 신호를 받아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특정 상황에서 벌어진 특정 행동이 그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 속의 지각 결과로 이끄는 것처럼, 업은 흔히 긴 시간의 틀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술한 효과의 몇 가지는 확실히 긴 시간의 틀에 걸쳐서 일어날 수 있다. 긍정적인 상호성(보상받는 것)은 시간을 한 걸음 건너 유발된다고 관찰된다. 모델링은 모델에게는 오랜 시간 후에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마치 부모로부터 공격적인 성향을 배운 아이가 살아가면서 나중에 그 성향을 노출하는 것과 같다. 모델이 학습자와 상호작용을 늦게까지 지속한다면 그들은 스스로 모델이 된 행동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긍정심리학의 영역에서 나온 연구는 비교적 긴 시간에 걸쳐 사람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진 친사회적 행위의 몇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이는 행위가 일어난 상황 내부에서 발생하지 않은 생의 중요한 결과에 이로운 결과이기도 하다. 던과 그의 동료들의 연구는 자선기부 같은 배려 있는 행동이 행복증진과 강하게 연합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일련의 연구들은 자선봉사가 더 나은 물리적 건강, 행복증진과 삶의 만족, 더 높은 자존감,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의 스트레스 증후 등을 이끈다는 결과를 나타냈다. 실상, 장수(長壽)의 여러 요인 유형들을 고려한다고 해도 자원봉사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사는 경향이 있다. 타인에게 사회적이나 물질적인 지원을 하는 사람들도 유사한 결과를 나타낸다.

부정적인 행동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불행한 삶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증거도 있다. 예를 들면, 적대감이나 분노를 자주 표출하면 관상동맥과 관련된 심장병에 걸릴 위험과 점증적으로 연관이 있다. 보다 일반적으로 보면 생존율도 낮다. 적대감이 강한 사람들은 타인과 갈등하고 사회적 지지를 덜 받으며 번거로운 일상생활을 겪게 된다.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은 친구들 사이에서 갈등을 경험하는 경향이 있으며, 나중에는 형사법 체계에 좀 더 자주 결부되는 경향이 있다.

전술한 것과 같은 결과를 보여주는 문헌은 많다. 이 모든 연구를 보면, 긴 시간이든 짧은 시간이든,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이 불러올 인과응보와 마주하는 상황에 부딪힌다. 그러나 모든 행동이 위에서 말한 유형의 인과응보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특히 행동에 따른 즉각적 후속 결과가 그렇다. 반사회적인 행동에 뛰어든 사람이 긍정적인 삶의 결과로 귀결되거나 반대로 친사회적인 행동에 끼어든 사람이 부정적인 삶의 결과로 귀결되는 사례 또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불교는 이런 사례에 대하여 세 가지 요점을 만들어 낸다. 첫째,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무진장의 행동에 관여하여 무진장의 결과를 창출한다. 그러기에 어떤 특정한 결과를 어떤 특정한 행동과 연관시키는 것은 어렵다. 특히, 제삼자가 보기에는 더욱 그렇다. 그는 타인의 행동과 결과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위치에 있지 않아서 행동만 보고 의도를 지나쳐 버린다. 둘째, 모든 사건도 그렇지만 행동은 다양한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에 오로지 하나의 결과에만 집중하는 것은 실수다. 사건들도 이와 유사하게 다양한 원인과 조건의 결과이다. 실로 이것이 연기 개념의 중요한 내용이다. 셋째, 업에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결과 그 자체가 아니라 결과에 대한 그 사람의 경험이다. 이것이 바로 사물과 사건의 공(空)이 업을 이해하는 데 쟁점이 되는 이유이다.

행동은 구성 활성화를 통해 지각에 영향을 주는가?

앞서 인용한 연구들은 선악의 행동이 그에 일치하는 결과를 낸다는 일반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식학파가 주장하는 업보의 전제로서 구체적인 기제, 즉 지각된 결과에 대한 구성 접근성의 효과들에 관한 것은 거론하지 않는다. 사회적 상호성이나 그와 유사한 것이 업의 예로 나타날 상황을 경험하도록 사람들을 이끌 수 있다고 해도 불교전통은 보통 이런 기제가 그 자체로는 업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진정한 업의 효과는 사람의 구성 활성화의 도구를 통해 경험에 일치하는 결과로 이를 이끄는 행동을 포함한다. 즉, 업에 요구되는 개념은 사람의 본 행동이 연합된 개념을 활성화하는데, 그 개념은 미래의 정보를 해석하는 데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구성 활성화에 대한 일반론이 많은 연구를 통해 지지받았다고 해도, 이런 연구들은 미묘한 상황적 신호들을 사용해 가면서 구성 접근성을 전형적으로 조작한다. 업에 대한 적절한 과학적 실험은 따라서(조작된 것이 아니라) 행위자 스스로의 행동이 점증하는 구성 접근성을 이끌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사람의 지각이나 판단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해야 한다.

몇몇 연구들은 연관된 구성체들을 활성화하는 행위를 위한 잠재적인 것, 연구 참여자들이 구성체에 걸맞은 구체적인 사회적 판단을 내놓게 하는 잠재성을 관찰해 왔다. 머스와일러(Mussweiler)는 나이 든 사람들(예를 들어, 움직임이 둔한)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진 행동은 나중에도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의 수준을 어느 정도 더 높인다는 것(예를 들면, 잊어버리는)을 발견했다. 뚱뚱한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진 행동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머스와일러는 이 결과가 어휘판단 과제에 따라 높은 수준의 구성 접근성을 통하여 작동했다고 확신했다. 업 이론의 예측에 따르면 행동은 단순히 일반적인 부정 혹은 긍정의 평가를 생산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행동에 의해 활성화된 구성체와 유사한 인상을 생산했다.

결과의 지각들이 인지적/감성적 복잡성이라는 불교적 관점을 견지하는 문헌들은 사람들의 행동이 그들의 정서적 상태와 평가에 영향을 준다고 가정한다. 예를 들어, 사람의 자세(바른 자세 vs. 구부정한 자세)는 자기 확신과 다음에 해야 할 의무에 영향을 준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득될 때 이런 움직임은 설득적 소통에 호감을 준다. 이와 유사하게, 가까이하느냐 피하느냐의 내재적인 움직임에 연관한 팔 구부리기와 펴기는 실험 참가자가 모호한 중국 표의문자에 긍정적이냐 아니냐는 비교평가와 연관을 갖는다. 구부리기와 펴기 결과는 행위가 기억에 각인된 정도에 의존한다는 연구도 있다. 이는 행동이 구체적인 개념 활성화를 통하여 결과를 야기한다는 생각과 연결된다.

중지나 엄지손가락을 펼치는 몸짓은 판단에 유사한 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연구를 보면 실험 대상자의 모호한 행동을 읽는 와중에 중지 손가락을 펼쳤던 사람은 통제집단이 그랬던 것보다 더 적대적인 사람으로 간주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몸짓이 다른 특성의 정도에 대한 판단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업보들(그리고 구성 접근성의 효과들)이 배출된 행위의 유형에 특정적이어야 한다는 예측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챈들러와 슈와르츠의 두 번째 연구에서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몸짓을 한 사람은 모든 특성에 걸쳐 통제집단에 비해 상대를 보다 긍정적으로 여겼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이는 첫 번째 연구에서 보인 평가에 대한 특정적 효과보다 하나의 일반적 긍정 효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몸짓은 그러나 긍정적인 평가의 매우 광대한 지표로서 전형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 결과는 놀랍지 않을 것이다.


5. 심리학 연구와 이론 적용에 대한 기대

사회인지 연구의 적용

전술한 연구들은 업의 예측을 따르는 증거를 생산하지만 실험되지 않은 가설에 따른 몇 가지 핵심적 한계를 가진다. 첫째, 불교철학은 업보에서 의도에 대한 핵심 역할을 암시한다. 그러나 구성 활성화에 관한 행위효과를 관찰하는 모든 연구에서는 행위를 독립변인으로 사용하지만, 그 뒤에 있는 의도는 무시한다. 실로 이런 연구자들은 의도를 가지고 실험 참가자들의 행동 뒤에 목적이 있는 것처럼 그들을 잘못 인도(예를 들어,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 위하여 헤드폰 한 짝이 잘 맞는지 참여자로 하여금 점검하라고 요구하는 것)하고 나서는, 행동 뒤의 의도가 활성화되는 개념과 연계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이는 행동의 효과가 실험자의 지시에 따른 의미론적 내용과 혼동되지 않게 하도록, 그리고 그 내용이 행동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활성화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연구목적에는 적절했겠지만 이런 종류의 효과에서 의도가 지닌 역할은 불명료하게 남겨둔다. 이 주제는 다소 복잡한데, 의도의 개념이 불교철학과 서양인들의 개념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속성마저 필연적으로 진실인가 아닌가 하는 학술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서양에서 의도는 보통 의식과 자유의지의 결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 불교에서 의도는 의지와 유사어이며 대상으로 끌리거나, 거꾸로 싫어서 물러나는 마음의 움직임을 지칭한다. 의도는 과거 경험과 의지를 가진 행동에 의해 부분적으로 결정된 것(아마 무의식적으로)이라고 한다. 즉 습관이나 성향의 개념에 밀접하게 연관하는 것이다. 이는 무의식적 목표 활성화에 관한 서양 심리학의 최근 연구와 관점이 매우 같아서 흥미롭다. 어찌 되었든, 후행지각에 대한 행동의 접근성 효과를 의도가 어떤 정도로 조절하는지는 실험된 바가 없다. 이에 덧붙여, 불교철학에서 의도는 공공연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업보를 수반한다. 이 가설은 경험적으로는 아직 실험되지 않았다.

둘째, 실험대상인 행동들이 긍정과 부정의 가치를 가진 개념과 연관된다 해도 이들 연구의 그런 행동들에서는 도덕적 수용이 결핍되었다. 이는 누구든지 그의 행동이 실험대상이 되지 않았으며 의도도 지니지 않았다는 부분적인 이유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의도를 지녔든 아니든, 업이 도덕성을 가진 행위에만 관여한다고 설명한다. 바로 전에 인용한 사회인지 연구가 사람의 지각적 결과에 끼치는 행동에는 도덕적 양상이 필요하지 않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도덕과 연관된 행동을 포함할 때 업은 가장 강하게 작용한다. 접근성의 직접적인 계량화를 통하여 사회적 딜레마 패러다임 속의 타인에 대한 행동을 조사하였는데 이는 사회 친화적 행동의 이득에 대한 실험되지 않은 불교의 주장을 검증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다.

셋째, 우리가 알기로 불교의 업 이론에 따라 접근성에 영향을 준다고 여겨진 어떤 요인들도 경험적으로 실험되지 않았다. 이런 변인들이 벌어질 효과에 필연적인지 의심스럽다 해도 이들은 행동, 도덕, 효과 그리고 유사한 실험대상의 상태들이 지각에 대한 행동효과를 바꿀 수 있다고 가정된 요인들이다. 이들 요인은 향후 연구를 위한 풍요로운 배경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종교심리학에 적용하는 문제

종교심리학은 종교성에 관하여 한층 더 유효하고 타당한 이론을 세우려 한다. 그리하여 분석의 여러 차원에서 관여적인 개념을 조작하며, 다차원적이며 학제적인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데에 관심을 증가시키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업에 대한 유식론이 경험적으로 어떻게 실험될 수 있을지 몇 가지 제언을 기술한다. 이는 일종의 유행으로, 개인적인 차원(사회인지 연구에 중점을 둔)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의 위아래의 분석적 차원에서 증거를 모으는 실험들이다. 이는 심리학의 하위분야로부터 생겨난 방법론, 구성체, 그리고 증거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을 포함한다.

시간의 편차에 따라 사람들로부터 척도를 얻는 연구설계를 이용하는 것은 연구자들이 분석의 차원을 확대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사회인지에 관한 상당한 수의 연구들은, 만약 구성 활성화가 업보의 토대라면 행동의 효과가 장기간(예를 들어, 주 단위로)뿐만 아니라 비교적 짧은 기간에 걸쳐서도 표출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가정한다. 이 생각을 더 확장하여, 시간 경과에 따른 개인의 세부적 반복 척도를 통해 하루하루의 행동 뒤의 심성 과정, 긍정과 부정적 경험, 그리고 시간 편차에 따른 사건의 평가를 드러낼 수 있었다. 친사회와 반사회적 인지로의 접근성 척도를 세우면, 유식학파의 업보에 대한 설명을 위한 중요한 매개적 증거를 제공할 수 있다. 업은 종종 장기간에 걸쳐서만 자신을 표출하기도 하므로 업 연구에 보다 긴 시간척도를 부여하는 것이 또한 필요할 것이다. 성인의 심리발전에 대하여 장기간에 걸친 연구를 하면, 마음수행, 효과적인 대면 대응전략, 사회 친화적 행위와 같은 행위들이 인지 및 여타 심리 과정을 통하여 어떻게 작동하는지 실증결과의 변인(나이에 따라 신경질이 감소하고 지혜가 증가하는 것처럼)을 설명하는 데에 유용할 것이다.
다른 연구로는 친사회적 동기의 명상수행이나 통린(tonglin)과 같은 티베트의 명상수행에 대해 종적인 조사를 하는 것이다. 이런 명상수행은 수행할수록 친사회적 심적 구성체의 접근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타나며 삶의 질을 차츰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 이런 연구는 다차원적 유관 변인척도를 이용함으로써 향상될 것이다. 심성적 변화와 삶의 질의 향상 여부 결과는 인지적, 생리적 그리고 자기 보고 방법들을 이용해 조사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논의한 내용에 대한 학제적 접근은 직접적인 협조자로서 불교 수행자들을 참여시킬 것이다. 불교의 많은 참선수련은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경험적 탐구를 주요 목적으로 한다. 월리스(Wallace)는 “마음의 현상은 관찰될 수 있으며 정확히 물리적 현상만큼이나 실험될 수 있다”고 설득력 있게 논했다. 불교 수행자와 철학자들은 이를 위해 수백 년 동안 노력해왔다. 참선수련은 오로지 마음속에 통찰을 주려고 자리하는 것이다. 사실 월리스가 제안했듯이 이런 수련들은 마음의 유효한 연구를 위해 필요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외부 관찰자가 직접 관찰할 수 없으며 분석의 다른 차원에서 개념으로 축소되지도 않기 때문이다(예를 들면 신경 과정). 월리스는 “발전을 지향하는 참선기술의 한 종류, 심성 현상이 직접 탐색될 수 있도록 점화시키는 도구”로 명상수련을 비유했다. 참선 연구의 인식론적 배경과 그에 맞는 수련 두 가지 모두에 관한 불교의 본질적인 문헌이 있다. 덧붙여, 과거의 참선 스승들이 명상수련으로부터 내려온 결론을 서술하는 방대한 경전도 있다.

업의 개념은 명백히 이런 연구의 핵심이다. 실제로 그를 깨달음으로 이끌었던 ‘2차 통찰’의 명상 기도 중에 붓다는 사람들의 노력이 어찌 그에 상응하는 결과로 이끄는지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고 《해밀심경》에서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다. 마음을 향한 올바른 참선 접근의 존재는 최소한 검증된 연구자 스스로 수행자로서 그런 자가 수행 경험자와 함께(이렇게 참선수행의 전문용어로 대화하면서) 인터뷰를 이끄는 것이 더 나으며 이런 인터뷰가 도덕적 결과를 가진 행동의 심성효과를 더 잘 이해하도록 이끌 것이다. 더욱 참여적인 접근이라면, 예를 들면 수행 경험자에게 사회인지 이론에서 기술된 현상이 명상에서 얻은 지식과 관계있는지 그 척도에 관하여 물어보는 형식을 취할 것이다.


6. 결론

우리는 업을 개념화할 수 있으며 현대 사회인지 이론의 규정에 따라 실험될 수 있다는 점을 논증했다. 그리고 후행연구를 위한 다차원적이고 학제적인 패러다임의 유용성을 논의했다. 현대 과학의 모델들과 그것들에 결부된 경험적 실험방법은 업의 예시에 추가적으로 구체의 차원을 제공함으로써 불교 모델을 보충할 수 있다. 일반적인 차원에서 불자들은 이런 종류의 직접 증거를 가지고 철학적인 사고를 보완하는 데에 관심을 둔다.
서양 심리학은 행동이 지각에 영향을 준다는 증거를 제공하지만 불교의 모델은 서양 심리학자들이나 보통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효과가 더 심오하다는 점을 제안한다. 업에 관한 일반적 개념들이 대다수의 문화에 의해 최소한 암묵적으로 가정된다 해도, 많은 이들은 업이 그들의 일상과 다른 이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떻게 기능을 하는지에 대해 풍요하게 이해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인지와 불교에 대한 우리의 종합적인 결론은 구성 접근성에 변화를 의도하여 행복을 지속하는 효과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보에 관한 서양과학의 증거는 자신을 위한 보다 나은 결과를 얻도록 사람들로 하여금 친사회적으로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신항식
한양대학교 초빙교수.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서양 근현대사로 DEA, 파리 디드로 대학에서 제3세계 사회학으로 DEA 학위를 받았다.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 등 역임. 현재 한양대, 이화여대, 연세대 초빙교수이다. 주요 저서로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 《시각영상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고, 〈신자유주의 디아스포라〉 등의 논문을 썼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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