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흐드러진 날 미술평론가 윤범모 교수가 이끄는 지인들과 통도사를 들렀다. 일행 중 〈한겨레〉 노형석 기자의 설명을 들으며 통도사를 돌아보는 맛은 새삼스러웠다. 그의 문화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미학적 시선이 우리 일행의 고개를 끄떡이게 하면서 귀를 즐겁게 했다. 절의 건축과 그림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적으로 이 절이 어떻게 생성하였는지 등 그의 얘기에 흠뻑 빠졌다. 일정상 통도사를 나와서 서운암으로 가야 한다고 어디서 재촉이 왔다. 일행은 노 기자의 얘기를 아쉬워했지만, 통도사를 다시 보는 눈이라도 생긴 듯, 눈이 반짝거렸다.

성파 스님이 계시는 서운암으로 승용차를 달렸다. 거기 장경각에는 16만 도자대장경이 있기 때문이다. 성파 스님께서 불굴의 불심으로 제작한 도자대장경을 생각하면 호기심과 함께 가슴이 두근거려 빨리 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고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그리고 팔만대장경이 있는데, 왜 16만 도자대장경일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물론 도자대장경에 대해서 간략하게 들은 바는 있지만, 실물을 보지 않은 이상 실감이 나질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출판인으로서 나무꾼처럼 나무 밥을 먹은 지 20년을 넘겼다. 출판의 어려운 일이 닥쳐도 팔만대장경의 불심과 불력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몽골의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치려고 뼈를 깎는 염원으로 만든 팔만대장경의 원력을 생각하면, 책이 안 팔리고, 책도 안 읽고, 책은 돈이 안 된다는 등의 얘기는 내게 사치에 불과했다. 국가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한 자 한 자 불경을 새기는 불심과 불력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부처님의 세계가 아닐까.

출판 일이라는 건 사람 일이라서 사람을 만나고 글을 만나는 일이다. 사람이 책이고 책이 사람이라는 말과 같다. 일을 하다 보면, 사람도 천차만별이고 결과물인 책도 각양각색이다. 또한, 예기치 않은 일과 사고도 있을 수도 있고, 자원을 투자하여 기획한 일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러한 잡다한 세속의 일이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품으로 치면, 새 발의 피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책도 팔려야 밥을 먹고 다음 일을 도모할 수 있으니, 그저 책이 겉만 번드레하게 폼만 나서도 아니 될 일이다.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갖추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텍스트를 향하여 진행해야 하는 건 절의 일과 같다. 절집에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있다. 이판(理判)은 세속과 인연을 끊고 오로지 수행하는 일이며, 사판(事判)은 절의 재물과 행정을 맡아 처리하는 일이다. 이판승이 없으면 부처님의 공부를 이어갈 수 없고, 사판승이 없으면 절의 살림이 가난해진다. 이렇듯 서로 달라 보이는 둘은 서로 통하고, 절집의 일이나 출판사 일이나 다르지만 통하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서운암을 보면 이판과 사판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듯하다. 서운암의 스님들은 거의 농부들처럼 아니 소처럼 늘 부지런히 일하시는 것 같았다. 거기에 다재다능한 성파 스님의 불사를 보면 예술인으로서도 뛰어나다. 그냥 한 가지만 잘하는 게 아니라 특유의 천진한 호기심으로 한 분야에 뛰어들면, 전문가를 넘어서 예술인으로서도 일가를 이루지 않는가. 그러한 불심과 불력으로 도자대장경을 완성한 것이다. 우리는 성파 스님이 직접 달인 차를 마시면서 입과 귀가 호강했다. 장삼이사라도 알아듣게 쉽게 불가와 예술의 얘기를 들려주시는 성파 스님의 법문은 차 맛과 함께 귀를 복되게 했다.

일행은 성파 스님을 따라서 장경각 안으로 들어갔다. 단번에 오는 전율의 입체감과 수공업적인 공력이 온몸을 때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소름이 돋았다. 말로만 듣던 16만 대장경이 눈으로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었다. 성파 스님이 1991년부터 10년 동안 불굴의 공력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아니 하나의 작품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장엄한, 불심이 집약된 또 하나의 불교경전이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앞뒤 하나하나 탁본을 떠서 900도로 구운 도판에 유약을 바른 다음 1,250도 열로 구워낸 16만 도자대장경. 정확히 16만 2,500장의 도자대장경은, 무게가 총 650톤에 달한다. 장엄 그 자체였고, 온몸이 저절로 숙었다. 장경각 안의 도자대장경은 해인도(海印圖)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미로 형태의 해인도를 54번이나 꺾어 돌면, 진리를 깨우친다고 한다. 성파 스님의 뒤를 따라가면서 도자대장경이 내뿜는 불심에 입을 다물 수 없었지만, 경건하고 성스러운 기운에 그저 침만 삼켜야 했다. 도자대장경은 새롭게 간직할 우리의 문화유산이며, 다시 태어난 불경이 아닐까.

해인도 미로의 끝자락에서 성파 스님의 미소를 바라보며, 어쩌면 나도 새 발의 피만큼이라도 불심을 얻기를 소망했다. 그저 세속적인 욕심이었지만, 어디서 환한 빛이 들어오는 듯, 온몸으로 떨림이 왔다. 그리고 하나의 책이 완성되었고, 책장을 덮고 밖으로 나오니 산은 푸르고 하늘은 맑았다.

황금알출판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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