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 솨- 쏴아-

항아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본다. 시퍼런 댓잎들이 스치며 내는 은빛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들녘 햇살을 담은 곡식과 바람이 날라 준 생명체(효모)를 머금은 누룩, 그리고 청정한 물이 만들어내는 삼중주다. 효모의 강약에 따라 크고 작은 포말(거품)이 리드미컬하게 솟았다 터지고 또 솟고 잔잔해진다. 술이 익어가는 소리다.

효모에 의한 발효 과정인 줄 몰랐던 먼 과거, 사람들은 항아리에 불을 때지 않았는데도 부글부글 거품이 솟는 것이 기이했다. “물(水)에서 불(火)이 나네그려.” 그리하여 이를 ‘수(水)불’이라 불렀고 이것이 변형되어 술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양(陽)의 불과 음(陰)의 물의 만남, 상극이면서 상생하는 불가사의한 조화, 술만큼 변화무쌍한 것도 없으니, 술의 어원으로 그럴싸하다.

태초부터 우린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술과 얽히고설켜 살아왔고 현재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그 얽히고설킨 시간 속에 나는 술과 썩 괜찮은 인연을 맺고 있다. 특히, 순한 막걸리와 그 연이 깊다.
여행 중, 시끌벅적한 시장통 국밥집에서, 때론 후미진 골목길 대폿집에서 그 지역의 막걸리를 찾아 마시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막걸리와 함께한 사람들의 소박한 취흥도 좋았다. 막걸리와 함께한 시간만큼 이야기도 쌓여 갔다. 그 덕에 2006년 각 지역의 막걸리와 풍정(風情), 그리고 막걸리와 함께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푼 책을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그 후, 내 이름 석 자 앞에 막걸리 작가, 여자술꾼이라는 수식어가 따르니 보통의 연은 아닌 듯하다. 나에게 막걸리는 그냥 술이 아니다. 그 지역을 맛보는 통과의례주(通過儀禮酒)이며 세상을 보고 깨치는 프리즘이다.

불교의 가르침 중에 일기일회(一期一會)가 있다. 윤회전생(輪回轉生)의 세계에서 인간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한 주기를 일기(一期)라 한다. 일회(一會)는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 한 번의 만남을 뜻한다. 모든 순간은 일생 단 한 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일생 단 한 번의 만남이니 소중히 하라는 의미다.

부산 산성마을은 동래 금정산의 능선 안쪽 아늑한 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은 원래 누룩으로 유명한 곳이다. 400~500년 동안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대로 마을 사람들은 누룩과 막걸리를 빚고 살았다. 산 넘어 가까이 누룩사찰로 유명했던 범어사가 있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 맥주, 와인이 만들어진 것처럼 우리 역사에도 사찰에서 누룩을 디디고 술을 빚던 시기가 있었다. 금정산성 누룩의 경우, 스님들이 빚던 누룩이 주민들에게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어머니들이 발뒤꿈치로 디디고 디뎌 띄운 누룩으로 빚은 막걸리. 몇 년 전만 해도 산성마을을 벗어난 다른 곳에서는 그 맛을 보기 힘들어 직접 마을을 찾는 주당들의 발길이 잦았다.

전에 산성마을에서 마셨던 막걸리의 맛을 그리며 다시 마을을 찾은 적이 있다. 같은 식당에 들어갔다. 기대가 컸던 까닭일까! 단맛과 신맛, 매운맛이 어우러진 감칠맛에 누룩의 은은한 향이 오감을 휘감는 맛이라 했던 과거의 그 맛이 아니었다. 내 입맛의 간사함도 있으련만, 그리던 과거의 맛에 집착해 불평불만이 가득했고 뭐 하나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일기일회! 일생에 단 한 번 뿐의 만남이었는데 어찌 그때와 같은 것을 얻으려 하지? 지금 이 순간 일기일회 맛을 즐깁시다.”

함께 막걸리를 기울이던 일본인 친구가 일기일회라는 화두를 던졌다. 일기일회, 스님의 죽비처럼 정신이 번쩍 뜨였다. 과거의 맛에 집착에 지금의 맛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술 막걸리는 다른 술에 비해 더 변화무쌍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효모가 만들어내는 맛의 변화가 있다. 갓 빚어 나온 막걸리는 봄날처럼 달콤한 향이 퍼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단맛은 줄고 산미가 돌며 맛의 깊이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그 맛 또한 다르며 보관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그러니 어느 때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그 맛과 향 또한 달라진다.

집착했던 과거의 맛을 버리고 나니 풍성한 산미가 입 안을 휘감았다.

과거를 따라가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 번 지나간 것은 이미 버려진 것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일을 자세히 살피어 잘 알고 익히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아함경(阿含經)의 말씀 또한 평생의 단 한 번 만남, 지금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정성을 다하라는 일기일회의 가르침과 상통한다.

술상 위 막걸리에 대한 일기일회의 맘가짐은 세상 밖으로 확장되고 있다.

술을 은유하여 불가에서는 곡차(穀茶), 또는 지혜의 물이라는 뜻의 반야탕(般若湯)으로 부른다. 이규태의 《한국인의 밥상문화》를 보면, 막걸리를 반유한적(反有閑的)-근로 지향적과 비슷한 의미로,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의 술, 반귀족적(反貴族的)-서민 지향적이라는 의미로 어떤 격식 없이 누구나 편히 마실 수 있는 술, 반계급적(反階級的)-평등 지향적이라는 민주주의적 철학을 가진 술로 삼반(三反)의 술이라 한다.
반유한적이라 함은 불법의 일일부작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과 반귀족적, 반계급적이라 함은 불법의 시법평등무유고하(是法平等無有高下)와 통한다 할 수 있다.

반야탕으로 일기일회의 술, 삼반의 술 막걸리가 제격이지 않은가! 연등이 도심의 거리를 밝히고 있다. 반야탕 한잔 기울이며 부처의 가르침을 되새겨 볼까 한다.
자비와 용서를. 합장(合掌)!

음식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