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불가에서 왜 그토록 ‘고(苦)’의 문제를 맨 앞에 놓고 사유하였으며, 그것을 마침내 ‘고성제(苦聖諦)’라고까지 부르면서 이로부터 이고득락(離苦得樂)의 불법을 전개해 나아갔는지 뼈저리게 공감하는 때도 달리 없다.

그럼에도 봄날은 왔고, 봄날 속의 꽃들은 꽃대궐을 이루며 화엄(花嚴)과 화엄(華嚴)을 가르친다. 이들이 만들어낸 화엄(花嚴)과 화엄(華嚴)의 세계를 수희찬탄하고 공경예배하며 사심을 잊도록 안내하는 명작을 함께 읽어보기로 한다. 함께 읽고자 하는 작품은 정진규 시인의 〈해마다 피는 꽃, 우리 집 마당 10품(品)들〉이다.

정진규는 그가 30여 년간 살던 서울의 북쪽, 수유리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자신의 생가터인 안성시 미양면 보체리로 내려왔다. 거기에 저녁이 아름답다는 뜻의 ‘석가헌(夕佳軒)’이라는 당호의 집을 짓고 안성 시절의 삶을 열어가기 시작하였다. 그가 생가로 ‘환지본처(還至本處)’한 것이 2007년의 일이니 벌써 그곳에서의 삶도 10년이 넘었다. 그는 그간 수유리 시절 이상으로 왕성한 창작열을 과시했다.

그 가운데 최고 결실이라 생각되는 작품의 하나가 〈해마다 피는 꽃, 우리 집 마당 10품(品)들〉이다. 시인이 이 작품에서 품계를 주고 있는 꽃들과 그 이유를 만나면서 환희심을 느껴보기로 하자.

1品 산수유, 입춘날 우리 집 대문 앞에서 노오랗게 탁발하는 반야바라밀다심경

정진규는 산수유를 제1품으로 들었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그것은 그가 수유리의 삶을 마감하며 모시고 온 유일한 나무가 30년생 산수유나무이기 때문이다. 정진규는 이 산수유나무를 입춘날 자신의 집 대문 앞에서 탁발하며 독경하는 스님의 《반야심경》으로 읽는다. 아름답다! 산수유나무가 탁발하면서 《반야심경》을 읽고 저 피안을 가리키는 선지식 노릇을 하다니!

2品 느티, 초록 금강 이불 들치고 기지개 켜는 봄날 새벽 활시위 일제히 떠나는 눈엽(嫩葉) 화살떼, 명적(鳴鏑)이여! 율려(律呂)여!

정진규 시인이 제2품으로 든 것은 느티나무이다. 석가헌이 있는 마을 초입에는 마을의 나이와 유사한 노현자 풍의 느티나무가 서 있다. 그는 이 느티나무를 보며, 그것을 초록색의 금강 이불을 들치고 출가하듯 떠나는 화살떼로 읽은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명적을 듣고, 우주율의 율려가 작동하는 소리를 듣는다. 민감하고 심오하다.

3品 수선화, 춘설난분분 헤치고 당도한 노오란 연서, 부끄러워 다시 오무린 예쁜 우주

제3품은 수선화이다. 담장 밑의 키 작은 수선화를 그는 겨울을 뚫고 당도한 노란 연서로 읽는다. 그리고 그 수선화에게서 부끄러움의 표정과 그 속에 담긴 ‘예쁜 우주’의 모습을 읽는다. 이토록 예쁜 우주도 있다니!

4品 수련, 고요의 잠수부 어김없이 입 다무는 정오, 적멸을 각(覺)하는 시간이다 고요를 피우는 꽃

4품은 수련이다. 수련이 ‘睡蓮’임은 다들 알 것이다. 시인은 이 수련에게서 적멸과 고요를 읽는다. 적멸을 아는 꽃이자 고요를 피워내는 꽃을 본 것이다. 이들로 인해 대낮의 소란스러움이 가라앉는다.

5品 수수꽃다리, 라일락이란 이름으로 창씨개명(創氏改名)한 여자, 바람 불러 향기로 동행, 요새는 보랏빛 꿈을 한 가방씩 들고 다닌다

수수꽃다리! 라일락의 본명이 친근하다. 보랏빛 꿈을 환상처럼 안겨주는 라일락을 시인은 제5품으로 선정하였다. 라일락이 들고 다닌다는 보랏빛 꿈의 가방을 열어보고 싶다.

6品 영산홍, 미당(未堂)의 소실댁을 이겨 보려고 올해도 몸부림하였으나 오줌 지리느라고 놋요강만 파랗게 녹슬었습니다

제6품인 영산홍은 미당 서정주의 시 제목이다. 시인은 미당보다 더 나은 시를 써보려고 애를 썼으나 그만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7品 접시꽃, 꽃 피기 시작하면 끝내게 수다스럽다 수다로 담 넘는 키, 시의 절제를 우습게 안다 제7품은 접시꽃이다. 이름이 독특하다. 그러나 접시꽃은 꽃 모양보다 큰 키가 인상적이다. 시인은 이 접시꽃을 보며 시의 미덕인 절제보다 한층 높은 차원에 접시꽃의 수다가 있다고 말한다. 수다는 자유다. 그렇다, 자유는 절제보다 윗길이다.

8品 흰 민들레, 우리 집 마당에만 이른 봄부터 초가을까지 흰 민들레 지천이다. 노란 민들레는 범접을 못 한다 지천(至賤)이여, 궁극의 시학이다 비방 중의 비방이다.

제8품은 흰 민들레이다. 노란 민들레는 외래종이지만 흰 민들레는 토종이다. 이 민들레에서 시인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지천(至賤)의 사상과 미학’을 본다. 굳이 상(相)을 낼 필요가 없는 지천의 경지, 그것을 시인은 시학의 궁극이요 삶의 궁극으로 본다. 《금강경》의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그토록 반복하여 말씀하신 사상(四相)의 초극이 여기에 있다.

9品 들국, 들국엔 산비알이 있다 나이 든 여자가 혼자서 엎드려 노오란 들국을 꺾고 있다 나이 든 여자의 굽은 허리여, 슬픈 맨살이 햇살에 드러나 보인다 나이 든 여자의 산비알이여.

 제9품은 산국이라고도 불리는 들국화이다. 시인은 이 들국화에서 산비탈의 정서를 보고 그 산비탈에서 들국화를 꺾는 나이 든 여자의 ‘나이 든’ 시간을 읽는다. 삶과 생에 대한 연민심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10品 풀꽃들, 이름이 없는 것들은 어둠 속에서 더 어둡다 지워지면 어쩌나 아침에 눈 뜨면 그것들부터 살폈다 고맙다 오늘 아침에도 꽃이 피어 있구나 내일 아침엔 이름 달고 서 있거라

드디어 제10품이다. 시인은 10품으로 이름 없는 풀꽃들을 든다.

시인이 가장 마음 졸이며 아끼고 돌보는 꽃들이다. 시인은 이들이 어두운 밤을 견디고 살아 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름 없는 꽃들에게 축원을 보낸다. 이름을 넘어서는 자가 실상(實相)을 아는 자이리라.

충북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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