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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성찰] 두타행(頭陀行)에서 배운다 / 김광수
[70호] 2017년 06월 01일 (목) 김광수 wonthong1@hanmail.net

“그 스님이 누구더라? 배추 씻다가 이파리 하나를 주우러 골짜기 저 아래까지 헐레벌떡 뛰어 내려갔다는 스님?” 이는 절 생활의 절약정신을 나타내는 흔한 이야기이다. 내게 이 이야기를 물었던 친구는 그렇게 절이 좋아서 불자가 되었고, 채식 생활이 좋아서 채식의사회 회장이 되었다. 채식은 동물의 목숨을 살리고, 자기 건강을 살리고, 지구 환경을 살린다. 그것이 불살생이다. 학생 때, 6박 7일의 겨울 수련회에 가면 나는 입승 스님의 누덕누덕 기운 옷이 그렇게 보기 좋았다. 절에서 먹는 ‘고기 안 들어간 음식’이 좋았고, 자기가 먹은 그릇을 자기가 닦는 것이 좋았다. 정랑에서는 대변을 보고도 많은 물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좋았고, 밤에 텔레비전 켜지 않고, 해 지면 자고, 해뜨기 전에 일어나는 것이 좋았다. 절에서는 먹물 옷이라는 제복을 입음으로써 옷가지에 신경 안 쓰고, 옷가지 가지고 뽐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절이 좋았고, 그렇게 나는 불자가 되었다.

수행자가 의식주를 낭비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다. 거기에는 크게 세 가지 이득이 있다. 첫째, 의식주에 할애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여서 수행에 최대한의 시간과 노력을 바치기 위함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에게 생업을 하지 말고 거지, 걸사(乞士)가 되라고 가르치셨다. 거지란 무엇인가? 소유가 없는 사람이다. 물론 저축도 없는 사람이다. 그건 재화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수행 이외에 물질적 소유를 위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겠다. 거지보다 더 가난한 자가 어디 있겠는가. 거지가 옷을 탓하겠는가, 음식을 탓하겠는가, 방의 평수를 탓하겠는가. 스님이 의식주를 최소한으로 하고, 수행에만 전념하고, 최소한의 의식주 그 자체를 수행으로 삼는 것, 그것을 두타행(頭陀行)이라고 한다. 두타제일인 가섭 존자는 상수제자로서 교단을 이끌어 가신 분이시다. 그분이 부처님의 후계자가 되신 것이 비단 두타행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적어도 그분의 미덕 중에서는 두타제일이라는 것이 가장 먼저 꼽힐 것이다. 이토록 불가에서는 두타행, 즉 ‘의식주에서 재물을 최대한으로 극단적으로 아끼는 생활’을 매우 강조하였다.

두타행의 두 번째 의미라면 역시 사찰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는 극도로 절약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찰경제는 불자들의 시주에 의해서 유지된다. 그러므로, 승단이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곤란을 받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절약하여야 한다. 만일 사찰공동체의 유지에 많은 비용이 든다면 그런 공동체는 오래 유지되기가 어렵다. 또, 사찰이 전문적으로 돈을 벌기로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사찰이 시장경제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로 하였다면 그것은 더 이상 수행공동체가 아니고, 불교 교단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찰공동체가 수행과 교화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절약해야 한다. 그래서 배추 이파리 하나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돈을 잘 쓰는 스님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진짜 스님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특히 오늘날은 더욱 두타행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재화를 낭비하지 않고, 아껴 쓰는 일은 비단 불자들에게만 요구되는 일은 아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인류의 위기를 이야기하는데, 그 위기가 바로 이러한 물자의 낭비와 사치, 과도한 소비생활 때문에 오는 것이다. 인류의 위기는 지구환경생태 위기와 자원고갈의 위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모두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로부터 초래된다. 핵발전소 또한 과잉생산을 위한 것이다.

과잉생산이란 무엇인가? 시장마다 물건이 넘쳐나는데 그래도 마트는 자꾸 더 생긴다. 없어도 되는 물건들도 너무 많다. 왜 이러는 걸까. 세계가 기업가(자본가)들의 세상이 되었고, 자본은 끊임없이 생산(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은 가난해서 물자를 사지 못한다. 그런데도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기업이 망하기 때문에, 기업은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자극해서 결국은 물건을 사게 한다. 그것이 과잉소비로 연결되고, 가난한 국민은 모두 채무자가 된다. 병든 환자에게 강제노동을 시키는 꼴이다. 가계부채 1,400조 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업과 축산농가는 공기를 더럽히고, 산하 대지를 더럽히면서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 공장과 발전소는 미세먼지를 만들어 이젠 숨도 쉬지 못할 지경이다. 미세먼지는 먼지가 아니라 유해 화학물질이다. 과학이 인류를 이롭게 해 주었는가? 과학의 발달로 피임과 태아감별이 가능해져서 성 도덕이 파괴되고,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과학의 발달로 유전자조작(GMO) 농산물이 대량생산되어 그것을 인간이 먹고, 가축이 먹고, 그 고기를 인간이 먹고 하여 이제는 종족말살의 위기까지도 거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 이제 우리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소비를 줄여야 한다. 꼭 필요한 물건 외에는 사지 말아야 한다. 고기도 먹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육식하면서 GMO를 거부하고, 청정한 환경을 주장해 보아야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가 육식을 거부해야만 비로소 지구가 청정해질 수 있다.

이제 이런 일에 우리 불자가 모범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두타행의 참된 가치이다. 우리가 물자를 최대한 절약해야만 이 지구의 위기를 구할 수 있다. 높은 GNP가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많이 입증되었다. 우리를 잘살게 해 주겠다는 정치인을 뽑아서도 안 된다. 부처님의 정신으로 절약적인 물질생활을 하겠다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 같은) 사람을 지도자로 뽑아야 한다. 바로 그것이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나는 절이 좋다.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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