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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과 불교적 해결책 모색
특집 | 여성과 폭력 그리고 불교
[70호] 2017년 06월 01일 (목) 김귀옥 freeox@hansung.ac.kr

1990년대 초, 같이 공부했던 여자친구가 자취방에 놀러 왔다. 25년 전의 일이었으니 지금보다는 사회문화적으로 낙후된 시대였지만, 당시만 해도 1987년 민주화운동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많았던 듯하다. 늦은 시간이지만, 친구와 맥주를 곁들이며 대학원 생활의 어려운 점을 두루 얘기하면서 오랜만에 편한 시간을 보냈다. 밤이 깊어지자 그녀는 자기 집안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의 폭력이 있는 날이면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과 남동생도 벌벌 떨면서 밤을 새우곤 했다고 했다. 이제 동생이 대학생이 되었고, 자신도 어머니를 책임질 수 있으니, 부모님을 이혼시키고 싶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그대로 두면 남동생마저 폭력적으로 변할까 봐 두렵다고 했다. 새벽녘에 그녀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나라가 민주화되면 우리 집에도 행복이 올 줄 알았는데……”라고 했던 말이 수십 년이 지나도 귀에 맴돈다.

실제로 1990년 이래로 성폭력, 성희롱 관련 사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2000년대 들면서 대중매체, 컴퓨터나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사이버 성폭력도 넘쳐나고 있다. 군대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보고되었다. 거친 세상의 보호막, 안식처로 간주되어 온 가정 내에서도 친족이나 친인척 내의 성폭력 사건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었다. 종종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급증하고, 여성의 의상이나 활동이 자유로워지게 되자 성폭력 관련 사건들도 급증했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왔다. 마치 여성의 온몸에 의복을 두르며 살았고,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제약되었던 전통사회나 독재체제하에서는 성폭력이 부재했거나 드물었다는 식의 근거 없는 이야기마저 횡행했다. 또한 여성의 사회 · 경제활동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어 부부싸움, 가정폭력, 가정해체가 발생한다는 진단이 계속해서 등장했다(〈매일경제〉 1982. 2. 10). 그러한 인식은 최근까지도 끈질기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결혼기피 현상 또는 1인가구 문화가 청년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고, 경력단절여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또한 다문화사회로 변화로 가면서 부부싸움을 포함한 가정폭력 문제에 대한 양상과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다.


1. 폭력은 원인이 아니다

1990년대 이래로 민주화와 자본주의적 상품시장이 확대되면서 사회적 변화에 기존 규범이나 질서가 조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국가적으로는 독재 질서가 무너지고, 대통령을 비롯한 지방자치 단체장을 직접 뽑거나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으며, 성평등적 법 ·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으나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여전히 가부장제적 인식, 남성 중심적 인식이 잔존해 있다.

폭력은 현상일 뿐 원인이 아니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의 폭력성으로 인해 폭력이 나온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폭력적 · 파괴적 본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절대적 권력이나 규범, 종교적 가치들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처럼 폭력을 원인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사회규범이 해체되거나 취약해지고,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면 사람들 간의 갈등이 확산 · 심화하고 그와 함께 폭력도 늘어난다고 설명한다.

이런 주장과는 달리 인간 의식의 발전이 폭력적인 현상을 둘러싼 인식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면서 폭력이 늘어난다는 주장도 있다. 다시 말해 전체 폭력의 양상이나 크기는 유사하지만, 과거에는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관행이나 습관으로 여겼던 현상을 민주적 법 · 제도나 민주적 인권의식의 발달에 따라 ‘폭력’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1990년대 급속하게 성폭력이 늘어났다. 자료를 보면서 구체적으로 이해해 보자.

신상숙 박사가 1945년부터 2005년까지의 〈조선일보〉 기사 제목을 분석한 글에 따르면 1981년 이전에는 성폭력, 1986년 이전에는 성희롱 사건이 한 건도 없다. 현상적으로 보면 1990년대 이후 성폭력, 성희롱 같은 용어가 출현한 것 같다. 과연 어떠한 요인에 의해 1990년대 성폭력 · 성희롱이 발생한 것일까?

‘성희롱(sexual harassment)’은 직장이나 사회단체의 상사와 부하 관계, 선후배 관계에서 일어나므로 1990년대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났기 때문에 성희롱이 생겼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과연 예전에는 성희롱 사건들이 없었을까? 예전에는 성희롱이 직장(조직) 선배가 후배를 귀엽게 여기거나 매력(?)적으로 여기거나 직장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표현이자 태도로 여겨졌다. 숫제 그것들이 직장상사, 선배(대개는 남성)들의 특권이라고 여기는 경향마저 존재했기에 성희롱적인 현상은 본래부터 넘쳐 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성희롱 때문에 피해자들이 발생해도, 피해자의 개인적, 심리적 문제로 간주하며, 성희롱을 가해행위로 인식조차 못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각성된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들, 여성인권 단체들에서 성희롱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면서, 차츰 물리적인 성폭력 외에 성희롱도 일종의 성폭력으로 일반인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성희롱에 대한 인식들이 확산되면서 민주화 이전에는 성희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알지 못했거나 그것을 폭력이나 잘못된 행위라고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성희롱도 성폭력의 일종으로 의식화하게 되면서 신고나 상담하는 문제가 급증했다.

따라서 개념이 없거나 신고가 없다고 하여, 성희롱이나 성폭력 사건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즉 인식의 변화가 성희롱 · 성폭력적 관행이나 문화를 폭력으로 깨닫게 하고 신고율도 높였으며, 현상적으로 폭력 사건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러한 변화된 인식에 기초하여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 2항은 ‘직장 내 성희롱’을 ‘사업주 · 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정의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정폭력도 그렇다. 앞의 표에서 보듯이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가정폭력은 드물었거나, 있다면 대단히 폭력적인 남편에 의해 생기는 심각한 물리적 폭력 문제라고 여겼다. 당시 가정폭력은 ‘가정파괴’와 같은 현저한 신체적 폭력이 수반된 사건으로 협소하게 인식했다. 따라서 흔히 부부싸움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도 수치심이나 두려움 때문에 신고하기를 꺼렸다. 뿐만 아니라 용기를 내어 피해자가 신고하거나 이웃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해도, ‘남의 집안일’이라고 여겨 경찰과 같은 공권력은 개입하지 않으려 하는 태도가 강했다. 그러다 보니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신고하기를 꺼리는 태도마저 있었다. 사적인 가정문제라는 이유나 자녀의 혼사나 앞길에 누(累)가 될 수 있다는 이유 등이 작동했다.

지금은 부정되고 있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거나 “여자와 북어는 팰수록 맛이 난다”는 등과 같은 말이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대변했다. 또한 부부는 싸운 후에도 각방을 쓰면 안 된다거나 집을 나가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마치 부부싸움의 해결책인 양 회자되어 왔다. 최근까지도 우리 사회에는 유교의 가부장적 문화, ‘삼종지도(三從之道)’가 일종의 가정폭력의 대안으로 여겨져 왔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까지, 가정폭력이라는 말을 하려면 부인이나 자녀가 남편 또는 부모에 의해 심각한 외상을 입을 때나 적용되었다. 부부강간이나 추행, 배우자나 자녀를 정신적 냉대 · 학대를 하거나 부양가족을 돌보지 않는 채 방치하는 것을 포함하여, 가족들 간의 명예훼손이나 사기, 공갈 행위 등에는 가정폭력이라는 개념이 적용되기 어려웠다. 심지어 가정폭력 가해자=남성 또는 남편이라는 인식이 보편화하여 가해자도 여성 또는 아내가 될 수 있다는 것조차 상상하기 힘들었다.

민주화와 인권의식의 성장 과정에서 성희롱 · 성폭력 의식의 제고로 인해 과거에 가부장적으로 당연시되었던 성폭력 행위들을 이제는 명실상부하게 ‘성폭력’으로 대다수가 인식하게 되었듯이, 가정폭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5월 16일, 대법원이 부부강간죄를 인정(〈법률저널〉 2013년 5월 20일 자)한 이후, 과거에는 무죄로 인정되었던 부부강간이 ‘강간죄’로 성립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1970년 ‘실질적 부부관계가 인정되면 배우자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가 종식되고, 부부일지라도 강간을 포함한 어떠한 성폭력적인 행위도 용납되기 힘든 상황으로 변화되었다. 2013년 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2013년 6월 19일 시행)에도 친족 간의 성폭력에 대해서도 강력한 징벌이 가해지고 있다. 이제 가정폭력은 더 이상 현저한 신체적 상처를 수반한 폭력만이 아니라,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함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가정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필요하게 되었다.


2. 가정폭력 어디까지 왔나

우선 가정폭력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보자.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약칭 가정폭력처벌법)’에 따르면 ‘가정폭력’이란 가정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정구성원이란 배우자(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 또는 배우자였던 사람, 자기 또는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 계부모와 자녀의 관계 또는 적모(嫡母)와 서자(庶子)의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 동거하는 친족 등으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부부간의 폭력을 넘어서서 존비속은 말할 것도 없고 계부모와 자녀, 적모와 서자, 동거 친족 간의 폭력을 다 포함하며,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현재의 폭력도 가정폭력에 속한다.

가정폭력의 유형에서는 가정구성원 간의 상해와 폭행, 유기와 학대, 혹사, 체포와 감금, 협박, 강간과 추행, 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 추행, 명예훼손, 주거 신체 수색, 권리행위 방해, 사기와 공갈, 손괴 등의 행위가 다 포함된다. 1990년대 초에도 성폭력특별법 제정에 대한 주장이 나올 때면 뜨거운 감자가 되었던 부부강간도 가정폭력 범죄의 하나로 규정되어 있고, 근친상간 등도 포함되었다. 그러한 유형 중 가정폭력은 주로 부부폭력, 자녀학대, 노인학대 등으로 나타나고, 그중 부부폭력이 대표적이다.

부부폭력, 더 이상 칼로 물 베기 아니다

여성가족부는 2004년부터 대개 3년에 한 번꼴로 ‘전국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그 결과를 보면 최근 뚜렷한 변화를 보인다. 부부간의 신체적 폭력률은 1998년 7월 ‘가정폭력방지법’이 시행된 직후인 2000년 34.0%, 2004년 15.7%, 2007년 11.6%, 2010년 16.7%로 조사되어 하강추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체적 폭력에서는 영국(3.0%), 일본(3.0%) 등에 5배가 넘게 높았다. 그러나 2013년 여성에 대한 배우자의 신체적 폭력률은 4.9%, 2016년 3.3%, 2013년 남성에 대한 배우자의 신체적 폭력률은 2.8%, 2016년 1.6%로 조사되어 신체적 폭력은 현저하게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적 폭력은 언어폭력(폭언)이나 차별, 무시와 무관심 등과 같은 정서적 폭력과 수반해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으나, 간헐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서적 폭력 중심은 좀 더 일상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 주로 행해지는 부부폭력도 2010년 42.8%, 2013년 28.6%, 2016년 10.5%로 나타났다.

부부폭력에서 남성(현/전 남편)=가해자, 여성(현/전 아내)=피해자라는 인식은 반드시 성립되지 않는다. 2010년까지의 가족폭력 실태조사에서 부부폭력은 여성에 대한 배우자 남성의 폭력으로 당연시했다. 그러나 위의 표에서 보여주듯, 2013년과 2016년 조사에서는 여성에 대한 배우자 남성 폭력이 대부분이지만, 남성에 대한 배우자 여성폭력도 적지 않다. 다만 폭력 행위의 강도에서 신체적 상처를 입는 여성은 20.0%, 남성은 6.3%이고, ‘위협이나 공포심’을 느끼는 정도에서 여성은 45.1%, 남성은 17.2%로 여성이 더 공포심을 느끼지만, 남성 역시 상처를 입거나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음도 주목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2010년대 들어 부부폭력은 줄어들고 있고, 여전히 남성 배우자 폭력이 많은 편이지만, 여성 배우자 폭력도 적지 않다. 또한 폭력 유형 가운데 신체적 폭력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지만, 정서적 폭력도 감소 추세이긴 해도 아직 적지 않다. 성학대는 비율적으로는 낮아도 남성의 폭력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정서적 폭력은 신체적 폭력 못지않은 상처를 남길 뿐만 아니라, 상호 불신과 증오를 강화시킨다. 나아가 부부간의 정서적 폭력은 두 사람에게 한정될 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도 전이되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부부폭력은 자녀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랑의 매는 없다: 자녀폭력

다음으로 자녀에 대한 폭력을 살펴보자. 자녀에 대한 폭력을 대개 자녀폭력 또는 아동학대라 한다. ‘아동복지법’ 제3조 7항에서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 정서적 · 성적 폭력이나 가혹 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녀폭력보다는 아동학대가 좀 더 광범위한 개념이지만, 여성가족부의 자료는 아동학대와 자녀폭력을 동일시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2016년 가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 자녀를 둔 부모 가운데 2016년 자녀를 학대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7.6%(여성 32.1%, 남성 22.4%)로, 2013년 46.1%에 비해 18.5%p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2007년의 아동학대율 66.9%와 2010년 65.8%에 비하면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

자녀폭력의 연도별 추세는 점차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녀폭력도 부부폭력과 유사하게 정서적 폭력이 신체적 폭력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정서적 폭력에는 ‘때리겠다’는 위협이나 ‘욕설’을 퍼붓는 행위나 ‘너는 망할 거야’ ‘잘못될 거야’ 등과 같은 악담이 해당되었다. 또한 자녀 방임은 ‘자녀의 식사를 제때 잘 챙겨주지 않았다’ ‘치료가 필요할 때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술이나 약물에 취해서 자녀를 돌보지 않았다’ ‘어른과 함께 있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있게 하였다’와 같은 상황을 의미한다.
자녀에 대한 폭력의 가해자로는 2013년에는 여성(어머니) 48.8%, 남성(아버지) 42.8%, 2016년에도 여성 32.1%, 남성 22.4%로서 여성, 즉 어머니의 자녀폭력률이 높다. 자녀폭력에서 여성의 비중이 높은 것은 어머니가 자녀 양육과 교육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문제와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부부폭력에서 정신의학적으로 발견되는 1차적 후유증으로는 우울증이 꼽힌다. 설령 부부관계가 폭력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전업주부들이 폭넓게 겪는 주부 우울증은 자녀에게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주부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의 자녀는 평균적으로 성장발달 상태가 취약해질 수 있다고 하고, 자녀들의 불안장애, 우울증,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들이 나오고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자살률 OECD 1위, 노인 2명 중 1명은 빈곤한 상태가 21세기, 1인당 GDP 10위 내외를 넘나드는 한국의 노인복지 현주소이다. 1999년 3월 15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공보실 국민의식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당시 국민의 65%가 노인을 공경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 응답의 진실성 여부와 무관하게 얼마 전까지 한국인들에게는 노인공경을 미풍양속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노인자살 사건, 노인학대 사건이 하루를 빠지지 않고 보도되고 있다. 가정폭력 가운데 노인폭력(학대)를 살펴보도록 하자. 다음 표는 여성가족부의 연도별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이다.

여성가족부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10년도 노인폭력이 2007년이나 2013년에 비해 대단히 높다. 그러한 추세는 만 65세 미만의 부부폭력에서도 2007년에 비해 2010년이 전반적으로 높은 경향을 보인다. 이에 대해 여가부에서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경제 및 고용상황이 불안정해지면서 가정 내 갈등 요인이 증폭되었다고 추론하고 있다.

간혹 뉴스에 등장하는 존속살해나 상해 사건은 현실적으로는 드문 편이지만, 정서적 폭력과 함께 노인에 대한 경제적 폭력이 적지 않다. 2016년에는 2013년에 비해 미미하긴 하지만 경제적 폭력이 늘었다. 경제적 폭력으로는 노인(부모)연금, 임대료 등의 소득 또는 저축, 주식 등을 성인 자녀가 가로채거나 임의로 사용하는 행위, 노인의 부동산에 대해 동의 없이 권리를 임의로 행사하거나 강제로 명의를 변경하는 행위, 빌린 돈을 갚지 않거나 물건을 돌려주지 않는 행위, 유언장을 허위로 작성하거나 변조하여 재산을 취하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2016년 조사에서 노인폭력의 가해자는 아들과 딸인 경우가 69.5%로 가장 많고, 사위 · 며느리 20.2%, 손자 · 손녀 7.0%의 순이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거하는 비율이 29.6%였다. 2013년 조사에서 노인폭력의 가해자는 아들 47.1%, 며느리 20.5%, 딸 10.6% 순이었다. 한국과 같은 가부장적 문화가 잔류하고 있는 사회에서 아직도 노인 부모에 대한 부양의 의무를 아들이 더 크게 지고 있는 양상이 아들과 며느리의 폭력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문화가정에는 다문화적 소통이 절실하다

최근 한국은 다문화사회로 바뀌고 있다. 2015년 기준 다문화가정은 82만 명 내외다. 그에 따라 다문화가정의 폭력문제도 심심치 않게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2010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폭력 발생률은 70.4%인데, 다문화가정 여성의 40.9%가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했고, 정서적 폭력(21.5%)에 이어 경제적 폭력(15.3%), 신체적 폭력(13.4%), 성 학대(5.2%), 방임(22.5%) 등으로 조사되었다. 대부분의 피해 양상에서는 일반가정의 여성 피해율이 높았지만, 경제적 폭력은 다문화가정 여성이 두 배가량 많았다. 아마도 다문화가정 여성의 결혼 알선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나 빈곤층 남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다문화가정 부부간의 의사소통 곤란 상태가 작용하고 있다. 대체로 국제결혼을 하여 이주한 배우자(여성 대다수)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 특히 전통적인 남성 중심의 문화를 익히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부부 상호 간에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한 노력이 전적으로 결핍된 현실 속에서 폭력의 반복은 부부이혼과 가정해체로 이어지면서 다문화가정의 아동들에게도 위기를 안겨주고 있다.

한편 2010년 조사에서 북한이탈주민 가정의 부부폭력 발생률은 전반적으로 일반가정의 폭력보다 높았다. 특히 신체적 폭력과 성 학대는 3배 가까이 높았고, 경제적 폭력 역시 4배 정도 높았다. 북한 이탈 과정의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와 함께 남한 정착 과정의 스트레스와 적응 미숙, 열등감 등이 부부폭력 발생에 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3. 가정폭력은 대화의 단절인가, 소통의 일종인가

흔히 폭력은 대화 · 소통의 단절이라고 생각한다. 즉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나 갈등, 위기 등을 대화로써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폭력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 남편의 입장에서 아내와의 대화 · 소통이 더 이상 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부모나 남편은 폭력을 사용한다는 주장이다. 종종 아내나 자식도 남편이나 부모에게 유사한 이유로 폭력을 사용한다.

그런데 폭력 발생에 대한 이론 가운데에는 폭력은 대화나 소통의 일종이라는 주장도 있다. 강대국이나 조폭들은 상대방에 대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강력한 힘을 과시한다. 전통적 신분제 시대, 왕이 절대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공포정치를 하여 신하는 말할 것도 없고 뭇 백성이 알아서 기도록 했다. 같은 맥락에서 남녀 간에 기원을 알 수 없는 속담으로 전해지고 있는 말, “여자와 북어는 팰수록 맛이 난다.” 또는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 때려야 한다.”는 속담은 남성의 폭력을 정당화시킬 뿐만 아니라, 폭력을 남성주의적 소통방식으로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한 속담이 배경으로 깔린 가부장적 인식 속에는 여성을 남성과 동일한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는 태도가 전제되어 있다. 상대를 자신과는 다른 타자(사물, 동물)의 시선으로 보는데, 대화나 예의로써 소통할 필요가 있겠는가? 소통 과정에서 더 이상 언어와 예의로써 소통할 필요가 없을 때, ‘말을 듣게 하려는 수단’으로서 폭력을 사용하거나 공포를 조장하여 가해자의 뜻을 관철하는 것은 전통적인 폭군이나 독재자의 소통방식이다.

오랫동안 한국 가정(가문)에서 가부장(할아버지나 아버지)은 절대권력을 가진 존재로 통했다. 조선시대에는 가정보다 더 큰 개념으로 문중이 있고, 한 집안에는 할아버지나 큰 어른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폭력에도 위계가 있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아버지가 항상 최고의 권력을 갖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버지의 폭력은 더 큰 권력에 의해 통제를 받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일본식 ‘가(家) 제도’를 기반으로 한 가족관계를 도입하여 문중을 해체하면서 핵가족(부모-자녀가족) 속에서 아버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특히 장남)는 한 집안의 재산과 제사를 상속받으며, 부양주로서 피부양인들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다. 그러한 권력의 과시는 폭력으로 상징되기도 했다.

이제 한국 사회는 가부장제도나 핵가족제도도 해체되고 그 문화도 약화되어 가고 있다. 특히 2008년 가족관계등록부 제도가 도입되면서 남성 중심의 가계를 상속하고, 혈통을 잇는 개념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의 성장은 인권평등 사상과 제도를 당연시하면서 남녀평등 사상과 그러한 제도 역시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적 상황은 남녀평등 사상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사상은 확산되고 있으나 경제적 상황은 사상과 현격한 거리를 두고 있다. 1997년 이래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노동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32.8%를 차지하고 있고, 전체 비정규직 임금노동자 중 여성이 54.9%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한 형편에 부부가 결혼하고 임신하여 육아를 하게 되면 여전히 유아보육의 공공성이 절대 부족한 현실에서 육아의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부부가 공히 책임을 지고 평등하게 실천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림의 떡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상황에서 경력단절여성 문제가 생겨난다. 여성(아내)의 입장에서 육아 등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둬야 하고, 남성(남편)의 입장에서는 그런 아내와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남녀평등을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경력단절의 위기를 겪으면서까지 맞벌이를 하는 경우에도 남녀평등 상황은 요원하다. 2017년 3월 현재 맞벌이 부부의 경우, 가사노동 시간을 살펴보면 아내는 하루 평균 3시간 27분, 남편은 58분으로 조사되었다. 역시 남녀불평등 상황이 객관적으로 펼쳐져 있다.

대개의 부부는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이더라도 차분히 대화로써 갈등을 풀 기회도 없고, 그러한 연습도 별로 해보지 못했다. 흔히 가정은 사랑의 온상이라고 낭만화하곤 한다. 그러나 많은 부부는 대화가 이미 사라지고, ‘소 닭 보듯’ 하는 부부가 일상적이다. 애정이 식었을 때 갈등을 푸는 방식은 무엇인가? 불만과 분노, 좌절과 원망, 불신과 불안, 히스테리 등이 내재된 악담과 질책, 욕설 등과 같은 정서적 폭력이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정서적 폭력으로는 갈등을 제대로 풀기 어렵기 때문에 악순환적 상황이 강화되면서 여성에 의한 배우자에 대한 정서적 폭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한 폭력적 상황은 남편이 퇴직하거나 실직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반전이 나타난다. 여성에 의한 배우자 폭력의 증가이다. 40, 50대 여성에게는 안정적이지도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하는 일자리이지만 식당 일이나 헐한 비정규직 일자리가 비교적 열려 있다. 적으나마 여성이 경제력을 갖게 되면서 터프한 아줌마로 변신이 가능해진다.

이제 과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남성의 폭력은 약화되지만 정서적, 경제적 형태의 폭력은 남녀 모두 행하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폭력이 소통의 방식으로 자리 잡아 가는 것은 아닌가?


4. 가정폭력과 트라우마 해결을 위한 사회와 불교의 노력

폭력이 깊어지면 상처도, 트라우마도 깊어진다. 오랫동안 많은 한국인은 가정폭력을 사랑의 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식으로 사과와 용서의 과정도 없이 상처가 아물면 관계가 회복된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는 사이 가정폭력은 한편으로는 가정 내에서 또 한편으로는 가정-사회-가정으로 악순환이 진행되어 오면서 가족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주변에서 적지 않다. 그래서 남보다 못한 가족이 계속 출연하고 있다(〈연합뉴스〉 2017. 2. 22).

남보다 못한 가족이 확산되는 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급속하게 늘고 있는 1인 가구, 즉 혼족의 현상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혼자 밥 먹고(혼밥), 혼자 놀고(혼놀), 혼자 술 마시며(혼술), 혼자 잠자는(혼잠) 1인 가구(One person household)가 대세로 되어가는 것은 단순히 청년세대들의 이기주의나, 결혼에 대한 기피의식, 경제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이러한 현실이 사랑과 배려, 나눔의 공동체로서 가족관계의 회복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물리적 신체적 폭력은 줄어들고 있을지라도, 여전히 권력과 자본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가정 내에서도 권력과 돈이 중시되고 있다. 권력과 돈이 있을 때는 가정의 질서가 생기지만, 권력과 돈이 떨어졌을 때 폭력이 비일비재해지고, 부부폭력은 자녀폭력, 노인폭력으로 악순환을 겪고 있다. 부양할 능력이 없어서 배우자나 자녀, 노인(부모)에 대한 경제적 폭력, 방임으로 나타나는 폭력은 차라리 눈물겹다. 그런데 상황은 부양할 의무를 기피하기 위해 배우자나 자녀, 노인에 대한 경제적 폭력, 방임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1997년 IMF 외환위기 이래로 한국 사회, 특히 대도시의 일상적 풍경의 하나가 되어버린 노숙자는 경제적 폭력이나 방임에 의해 강요된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

이제 적지 않은 사람에게 가정은 안전한 곳이 아니라 가정이야말로 위험하거나 불안의 원천으로 인식되고 있다. 가능하다면 기존의 이러한 가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의식이 청년들의 결혼 기피와 저출산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연된 가정에 대한 기피감의 저변에는 회복하기 어려운 가족들의 불편한 관계와 폭력적 상황이 깔려 있다. 가정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가정 자체를 폐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해결책은 단순하지 않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가정폭력을 엄단하기 위한 법적 · 제도적 노력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최근에는 가정폭력 상황에서 신고율이 높아지고 있다. 국민 10명 중 6명은 부부폭력 발생 시 신고할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여성긴급상담전화(1366) 등 공적 지원체계보다는 가족, 친척, 이웃, 친구 등에 도움을 요청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은 법에 대한 신뢰가 낮고, 가정의 일에 대한 수치심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폭력에 대한 징벌 수위가 낮은 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부부폭력을 적극 대처할 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의식을 갖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다.

다음으로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적인 폭력 상황을 약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가정은 세상의 반영이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에서 폭력에 노출된 사람은 가정에서 폭력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한국의 6 · 25 전쟁과 군사주의 사회에서 폭력에 순응된 많은 남성은 폭력을 소통의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가능성도 커서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도가 낮다. 2010년도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 실태조사에서도 그러한 결과가 나타났다. 군사주의적 문화, 즉 상명하복적인 ‘까라면 까’, 가부장적 남성 문화 등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구조적 폭력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적 불평등, 비정규직 문제 등을 완화시켜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2010년 조사 결과에서도 부부폭력의 원인은 성격 문제와 함께 경제적 문제가 크게 차지하고 있다. 음주 문제도 세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가정의 상황을 보면 가정의 경제형편이 나빠지면 부부간의 성격적인 갈등도 커지고, 잦은 음주로 인한 갈등이 증폭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정부와 기업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시켜야 가정이 안정되어 가정폭력도 줄어들 수 있다.

그다음으로 구조적 폭력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제도의 안정화가 필수적이다. 예컨대 노인복지나 아동복지가 잘 갖춰져 있다면 부부들의 갈등 요소가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맞벌이 부부 간에 싸움이 잦은 이유가 결국은 가사노동, 아이와 노인 부양 문제와도 다 관련이 있다. 노인폭력의 가해자로 아들과 함께 며느리가 꼽히는 것이 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또한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이 다양하게 이뤄져야 한다. 가정폭력 예방교육의 우선순위는 폭력예방 교육보다 앞서서 ‘사랑’의 가치를 깨닫고 사랑을 지속하고 발전시키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친근함에 기초하는 사랑의 감정은 누구나 알듯이 영원하지 않다. 부부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원리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수단이 되어서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부부나 부모나 자식을 자신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게 되면 상대방이 자신의 행복을 충족시켜주면 사랑하고, 행복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버리게 될 것이다.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목적이라고 말했던 칸트의 정언명제를 깨달을 때 인간관계의 회복이 가능하다.

이는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대자대비의 가르침이다. 다른 사람을 크게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슬픔에 크게 슬퍼하는 것이야말로 공감의 정신이자, 인간의 위대성이다. 사실 가족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면 누구와 사랑을 논할 수 있겠는가? 불교는 가정의 폭력을 예방하고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사랑의 가족관계를 회복해준다. 따라서 가정에서 불교의 정신과 방법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가정폭력 예방교육을 통해 폭력에 대한 근본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흔히 인간의 갈등이 폭력으로 표출된다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식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마음에는 욕심을 계속 불러일으키는 생각(식)이 있다. 욕심 또는 욕망은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겹으로 얽혀 있다. 인간의 갈등은 타자와의 갈등 못지않게 제 안의 갈등이 더 클 수도 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사랑과 미움, 갈등과 분노는 필연적으로 얽혀 있다. 흔히 갈등이나 분노를 나쁜 것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다스리기에 따라 반드시 폭력으로 표출되지는 않는다. 분노를 다스려 문학이나 예술로 승화할 수 있듯이 일반인들도 갈등과 분노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성숙해지게 된다.

불교는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많은 경전에서 가르치고 있다. 일상인으로서는 생각을 멈추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을 멈추는 것은 일시적으로 가능하지만, 문제의 원인 자체가 해소되지 않으면 다시 분노의 생각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불교에서는 명상법을 권하고 있다. 명상을 통하여 자신의 분노를 들여다보고, 화내는 자신이나 타자의 화를 이해하고 타자에 대한 공감을 통하여 자신 자신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때로는 홀로 방에 앉아, 때로는 숲속을 걸으면서 명상의 과정을 거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분노를 문학이나 음악, 미술을 통해 표출하는 과정을 통해 분노를 다스릴 수 있다. 명상을 하게 되면 부부싸움을 했을 때의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 명상이 깊어지면 싸움을 시작했을 때에도 싸움을 중지하는 법을 깨달을 수 있고, 분노하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자신과 상대의 욕망과 분노, 슬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오늘의 부부폭력, 가정폭력 가해자가 어제의 피해자였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오늘은 내가 피해를 당했으나, 내일은 내가 가해를 할 수도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스스로 명상법을 익힐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는 사찰이나 불교교육기관의 스님이나 교사들이 상담을 해주거나 명상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스스로 명상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상담자나 종교 지도자, 아니면 지혜로운 지인들이 명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자신의 욕망과 분노를 이해하고 다스리면서 스스로 문제를 푸는 힘을 가질 수 있다.

종교 시설에 신자가 많으며, 외관이 화려하고 편리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아픔과 소외에 시달리는 사람을 외면한다면 더 이상 종교로서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평상인에게 고집멸도에 이르는 길은 가정과 세상, 지인을 다 버리는 길이 아니라, 그들을 함께 품으며 가는 길이다. 불교는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게 그러한 동반자, 지도자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김귀옥 
한성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학사, 석사, 박사)을 공부했다. 일본 도시샤대학과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초빙교수 역임. 현재 한성대학교에서 사회학, 젠더연구, 전쟁과 평화, 분단과 통일문제를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 《구술사 연구: 방법과 실천》 《朝鮮半島の分斷と離散家族》 《군대와 성폭력》(공저), 《젠더연구의 방법과 사회분석》(공저), 《북한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공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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