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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한국 불교학자] <25> 목정배 / 양승규
세제불교(世諦佛敎)를 세우다
[69호] 2017년 03월 02일 (목) 양승규 4vajra@hanmail.net

1. 머리글

   

미천(彌天) 목정배
(睦楨培, 1937~2014)

필자는 2012년 한국교육방송(EBS)에서 제작하는 〈세계테마기행〉에 출현하여 부탄을 여행한 적이 있다. 이 방송이 공중파를 타고 방영되고 나서 재미있게 잘 봤다고 제일 먼저 연락해 온 분이 미천(彌天) 목정배(睦楨培, 1937~2014) 박사였다. 필자가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금강불교대학의 사무보조를 맡았다. 내가 기거하는 곳이 목정배 박사의 댁과 같은 방향이라 차를 함께 타고 귀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늦은 시간 차 안에서 자는 내 모습을 보고 한창 공부할 나이에 잡일을 시킨다고 종단에 건의하여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목정배 박사는 새해에 제자들이 함께 모여 인사를 드리면 새해 덕담과 함께 손수 그린 그림을 한 장씩 일일이 제자들의 손에 건네주는 그런 분이었다.

목정배 박사는 자세한 설명도 없이 툭 한마디 던지는 특유의 화법을 구사하였다. 하지만 그 화법은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항상 천진난만했고, 그 모습은 나이가 들어서도 결코 어색하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 그는 화가들이 쓰는 베레모를 쓰고, 갑갑한 넥타이 대신 타이슬링에, 손에는 파이프 담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는 불교를 전공한 학자였지만, 불교에만 얽매이지 않았다. 불교를 통해 음악, 미술, 조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교류했고, 자신도 불교의 가르침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를 문화를 통해 공유하고자 했다.

미천(彌天) 목정배 박사가 추구한 불교는 대승불교에 기반한 재가불교의 완성이었다. 이를 세제불교라고 이름했다. 세제불교의 완성은 계율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이 계율도 대승의 계율이어야 했기 때문에 《범망경》이 중심이 되었다. 세제불교의 중심에는 법사가 있다. 법사는 반드시 자아 완성과 국토청정의 서원을 세워야 한다. 자아 완성을 위해 계율을 실천하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성취해야 한다. 또 법사는 국토를 청정하게 해야 한다. 국토는 중생이 살아가는 땅이다. 중생이 편하게 숨 쉬고, 마시고, 먹기 위해 법사는 청정하게 국토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중생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문화가 있다. 그 문화는 건전한 문화이어야 하기에 미천은 시를 쓰고, 노래 가사를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 이를 위해 우리 조상들이 남긴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불교학자로 출발했지만 불교학자로 안주하지 않았다. 항상 대중들과 소통했다. 그것이 세제불교가 지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세제는 진제와 대비되지만, 세제와 진제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세제와 진제는 중생의 삶 속에서 분리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목정배 박사는 세제불교를 통해 진제를 체득하는 불교를 정립하고자 했고, 그것을 계율, 문화, 역사 등에서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2. 미천의 삶 들여다보기

미천은 보통의 불교학자와 달리 다방면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시적 감수성은 미당 서정주도 인정했다고 한다. 이런 감수성이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었다. 이런 감수성으로 생명의 존엄함을 느꼈고, 이것은 고스란히 세제불교를 구현하는 바탕이 되었다. 이런 감수성은 타고난 것이지만, 환경적인 요인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미천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다행히 〈불교신문〉에 연재한 글을 묶은 《붓 가장자리에 마른 글》(법수레, 2015)에서 우리가 보지 못한 젊은 미천을 마주할 수 있었다.

미천은 부산불교학생회를 통해 불교를 접하고 신앙심을 키웠다. 부산불교학생회는 부산 신창동에 있는 대각사에 있었다. 대각사는 부산의 중심지인 국제시장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부산 시내의 중고등학생들이 쉽게 모일 수 있었다. 부산불교학생회 활동을 통해 미천은 많은 스님과 선생님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웠다. 부산불교학생회의 법회는 염불과 기도가 중심이 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감흥을 일으키는 노래를 통한 음악법회로 법회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또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새벽 도량석을 돌았다. 일반적인 도량석과 달리 부산불교학생회에서는 용두산공원에서 출발하여 부산 시내를 세 방향으로 목탁을 치면서 도량석을 돌았다. 장엄한 도량석은 부산을 청정한 불국토로 만들고자 하는 학생들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동참했던 많은 부산 시민들에게도 오랜 여운을 남겼다.
부산불교학생회에는 교리연구반, 불교합창단, 봉사활동을 하는 녹화소년단이란 단체가 있었다. 이들 단체에 소속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먼저 솔선수범하는 보살정신이 투철한 학생들이었다. 미천은 교리연구반에 들어가 열심히 불교를 공부했다. 특히 부산 인근 진해에서 청소년을 위한 불교교리 강좌가 개설된다는 소식을 듣고 매주 토요일마다 진해에 있는 영산법화사에서 법화 스님으로부터 불교 강의를 들었다. 미천은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친구 둘과 함께 당대의 큰 선지식인 경봉(鏡峰) 큰스님을 찾아가 짧은 시간이지만 출가생활을 하기도 했다(1956).

미천의 불교 공부는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1958). 불교학과에는 종교학을 강의하는 조명기 박사, 화엄학의 대가인 김잉석 박사, 구사론을 강의하는 황성기 교수 등이 있었다. 당시 동국대학교에는 뛰어난 학자들이 많았는데, 자칭 국보라고 했던 무애 양주동 박사, 황희돈 박사, 권상로 박사, 조지훈, 서정주 등이 강의하고 있었다.

불교에 대한 공부는 학교에서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미천은 조계사 뒤 양철지붕 집에서 공초 오상순 선생과 한방을 쓰면서 생활했고, 조계사 합창단에 가입하여 체계적인 불교음악을 접했다(1961). 안국동에 있는 선학원을 출입하면서는 청담 스님, 대의 스님 같은 큰 선지식을 친견하여 불교 교리의 선리를 청문하기도 했다. 또 선학원에서 운허 스님이 불교사전을 편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감동을 받기도 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미천은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김인덕, 박동기 동문과 함께 전국의 불교종립학교를 순회하면서 불교 강연회를 열었다(1962~1964). 더운 여름날 옷이 땀에 흠뻑 젖었지만 전법 강연회를 통해 큰 희열을 느꼈다. 미천은 운허 스님, 김동화 등 당시의 불교 석학이 참여한 《우리말 팔만대장경》의 번역 불사에 참여하여, 법정 스님 등과 함께 실무를 맡아 진행했다. 법정 스님이 문장을 매끄럽게 가다듬었고, 미천은 불교 역사, 경전의 내용을 정리하는 작업을 2년여에 걸쳐 진행했다(1963). 그 무렵 미천은 UBC(Unified Buddhist Club, 遊飛詩)라는 불교 등산동우회를 조직하여 회원들과 함께 매주 서울 근교의 산을 올랐다. 미천은 청담 스님의 도움으로 불교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1965~1968). 대한불교조계종 전국신도회 제8차 전국대의원대회를 계기로 미천은 전국신도회에서 활동했는데, 이 전국신도회를 통해 한국불교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위한 계기가 마련되었다. 전국신도회에서는 《법륜》이란 잡지도 발간했다(1967).

미천은 운허 스님이 원장으로 있었던 동국역경원에서 교정을 보는 일을 시작으로 모교인 동국대학교와 인연을 맺었다(1967). 불교문화연구원 조교로 근무하면서 《불교대사전》을 만드는 기초작업과 사찰에 있는 경판 조사, 화청을 녹음하고 수집하는 일 등을 진행했다(1968). 불교학과 강사 시절에는 불교학개론과 불교문화사 등을 강의했고, 동국대 외에 한양대, 서울대 등에서도 강의했다. 이화여대에서는 ‘불교에의 초대’란 강좌로 한 학기 동안 세미나식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1972). 불교동인회를 구성하여 《원효전집》을 발간했고(1973), 불교학연구회에서 《한국고승집》을 영인하기도 했다(1974). 미천은 대원 장경호 거사가 개원한 대원불교교양대학에서도 강의했다(1974).

미천은 1975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동국대학교에 재직하면서 기숙사 지도교수(1976~1983)에서부터, 불전간행위원회 간사(1976~1983), 불교문화연구소 간사(1978~1980), 동국대학교 80년사 편찬위원(1986~1987), 비서실장(1988~1989), 불교대학 학장(1989~1990), 불교문화연구원 원장(1990, 1999~2000), 대학원 불교학과 학과장, 불교대학원 원장(1995~1997) 등의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

미천은 동국대학교 내에서뿐만 아니라 교외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KBS라디오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기도 했고(1981~ 1982), 월간 《아사달》 편집인(1982~1984), 대원불교 교양대학 학장(1985~1988), 월간 《대중불교》(1985~1995)의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경주남산 성역화운동본부 회장(1988~1990), 대한불교법사회 이사장(1988~2014), 한국대원회 이사장(1989~1991) 등을 역임했고, 성철선사상연구소 원장(1996~1999)을 지냈다. 한국불교학회 회장(1999~2001), 한국불교학결집대회 대회장(2002),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총장(2002~2004)을 역임했다.

3. 미천의 저술과 논문

미천은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저술을 발표했다. 저술은 《불교윤리개설》(1986), 《율전개설》(1986), 《계율론》(1988), 《대승보살계사상》(1988), 《계율학》(1996), 《계율학개론》(2001) 등 전공인 계율에 관한 것이 많다. 《대승보살계사상》은 학위논문인 《의적(義寂)의 보살계본소(菩薩戒本疏) 연구》를 책으로 발행한 것이다.

이 외에도 미천의 관심을 끈 전통문화에 대한 저술도 눈에 띄는데 《전통문화》(1987), 《한국문화와 불교》(1988), 《한국문화와 불교》(1995)가 있다. 특히 《한국문화와 불교》에서는 한국문화의 일반에서부터 사상과 종교, 신앙, 민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후반부에는 한국 불교문화의 역사와 불교미술, 유물, 유적, 인물까지 조명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문화와 한국불교를 이해하는 좋은 입문서가 되고 있다.
역사적인 입장에서 불교를 조명한 저서로는 《삼국시대의 불교》(1989)가 있다. 이 책에서는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되고 발전된 과정을 기술하고 있는데, 특히 신라불교의 경우에는 중요한 인물과 그 인물의 행적을 통해 교학적, 신앙적인 측면에서 신라의 불교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공했다. 공저로는 《서울 600년사-불교》(1983)와 《한국불교사상사 개관》(1995), 《봉암사 결사와 현대 한국불교》(2008)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불교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은 회고록 《붓 가장자리에 마른 글》(2015)이 있고, 미천이 완성하고자 했던 세제불교의 핵심을 설명하는 《세제불교(世諦佛敎)의 이론과 역사》(2008)가 있다. 이 책을 통해 미천은 세제불교가 무엇인지, 무엇을 지향하는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불교학자이면서 법사인 미천은 법회, 의식, 의례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법회는 의식적으로 장엄하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했다. 장엄하기 위해서는 법요가 통일되어야 하고,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미천은 《통일법요집》(1988), 《설법자료집》(1988), 《통일불교성전》(1992), 《청소년불교성전》(1992) 등을 편찬했다.

   
《계율학개론》(2001)
   
《옴 Oṁ-목정배 칼럼모음집》(1997).
미천은 다수의 역서를 남겼는데, 일서를 번역한 《불교사입문》(1978), 《불타시대》(1984), 《불교교리사》(1985), 《불교의 효 유교의 효》(1994) 등이 있고, 《유마경》(1981), 《승만경》(1978), 《범망경술기(梵網經述記)》(1994) 등은 한문 원전을 번역한 역서이다. 이 경전들은 세제불교의 체계를 세우는 데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유마경》의 불이사상(不二思想), 《승만경》의 삼원십대수(三願十大受)는 남녀, 승속, 빈부귀천을 초월한 여래평등성지를 설명하고 있다. 《범망경술기》는 승장(勝莊)의 《범망경술기》 의적(義寂)의 《보살계본소(菩薩戒本疏)》 태현(太賢)의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를 번역한 것이다.

미천의 자유로운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수필집에는 《옴Oṁ-목정배 칼럼 모음집》(1985), 《부처님께 다가서는 법사의 고백》(1997), 《미천세담(彌天世談)》(2006) 등이 있다. 초기의 글들을 모은 《옴Oṁ-목정배 칼럼 모음집》에서 미천은 세제불교의 토대가 되는 계율, 윤리, 자연, 수행 등의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부처님께 다가서는 법사의 고백》에서 더욱 구체화되는데 1장을 ‘불교의 생명사상’, 2장을 ‘부처님께 다가서는 법사의 고백’이라고 하여 국토 세간의 중요함과 중생 세간의 주체가 되는 법사가 되는 길을 설명하고 있다. 《미천세담》에는 몇 편의 시도 포함되어 있는데, ‘세제불교’란 용어를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언급했고, 세제불교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다.

미천이 쓴 많은 시는 시집 《마음 노래 하늘 위에》(1997)에 담겨 있다. 이 시집에는 불교와 관련된 것에서부터 자연, 민족 등을 노래한 다양한 시들이 있지만, 특히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노래한 시들이 많다. 미천은 법명이나 법호를 지어주면서 직접 그 이름에 담겨 있는 의미를 일일이 짧은 시로 적어 주었다. 미천의 아름다운 시는 때로는 노래 가사가 되기도 했다. 미천의 가사에 박범훈이 곡을 쓰고, 대중가수 김성녀가 부른 노래도 있다.

미천의 석사학위 논문은 〈근본식(根本識) 연구〉(동국대학교 대학원, 1964)이고, 박사학위 논문은 《의적의 보살계본소 연구》(동국대학교 대학원, 1987)이다. 이 외에도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계율에 관한 문제〉(《불교와 현대세계》 1977), 〈수계건도(受戒健度)의 일고찰〉(《불교학보》 1979), 〈계율에 나타난 불교의 생명관〉(《한국불교학》 1995), 〈삼취정계(三聚淨戒)의 현대적 의미〉(《한국불교학》 1999)와 같은 계율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남기고 있다. 계율도 소승계가 아니라 보살계와 같은 대승계를 바탕으로 한 연구가 주를 이룬다.

미천의 논문에는 신앙과 수행에 관련된 논문도 다수 있다. 〈신라 서민의 미륵신앙〉(《신라문화의 이해와 본질연구》 1979), 〈미륵신앙의 현대적의의〉(《한국미륵사상연구》 1987), 〈한국미륵사상의 전개〉(《한국불교사상사》 1992), 〈한국미륵신앙의 역사성〉(《한국사상사학》 1993) 등에서는 미륵신앙을 체계적으로 조명하고 있고, 〈관음신앙(觀音信仰)과 휴머니즘〉에서는 관음신앙을, 〈현대적 지장보살의 현현〉(월류산 영명사, 통도사, 1991)에서는 지장신앙을 다루었다. 〈만일염불 성립의 의미〉(《한국정토사상연구》 1985)에서는 염불을, 〈한국불교사적 맥락에서 본 밀교의 기능〉(《한국밀교사상연구》 1986)에서는 밀교를, 〈현대한국선의 위치와 전망〉(《한국선사상연구》 1984), 〈선문정로의 근본사상〉(《보조사상》 1990), 〈돈오사상의 현대적 의미〉(《백련불교논집》 1993)와 같은 논문은 선을 각각 다루고 있다.
한국불교에 관한 연구로는 〈한국불교의 정신성〉 〈한국불교와 밀교〉 〈한국불교운동사〉 등이 있다. 한국불교사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인물을 연구한 논문도 많은데, 〈호국사명대사〉(《불교학보》 1971), 〈설잠의 법계도주고〉(《한국화엄사상연구》 1983), 〈의적(義寂)의 보살계본소(菩薩戒本疏) 해의(解義)〉(《신라문화》 1984), 〈원효의 윤리사상〉(《한국사상가대계》 1994) 등이다. 환경문제와 관련된 논문으로는 〈자연환경과 불교 교설과의 관계〉(《한국불교학》 1992), 〈심핵(心核)과 물핵(物核)〉(일본 입정대 불교학부 5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 1999) 등이 있다.

4. 세제불교(世諦佛敎)란 무엇인가

미천이 정의하는 세제불교는 의외로 간단하다. “세(世)는 인간이 살고 있는 영역이고 공간이다. 제(諦)는 진리이다. 이 진리는 세상에 상즉하는 진리이어야 한다.” 불교에서 진리는 세속제(世俗諦)와 승의제(勝義諦) 두 가지가 있다. 세속제가 세제라면 승의제는 진제에 해당한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완전한 깨달음은 진제를 체득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그렇다면 미천은 왜 이러한 진제 대신 세제를 선택했을까? 이에 대해 미천은 “사바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사바에서 바르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미천이 세제불교를 선택했다고 해서 진제불교가 무의미하다거나, 진제불교를 배제한 세제불교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제가 없는 세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천은 세제불교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사바세계에서 오롯하게, 반듯하게, 말끔하게 사는 길이 바로 세제불교를 외치는 함성이다. 우리는 함성만 지르지 말고 세제 속에 담겨 있는 조용함의 의미를 찾고, 그 조용함이 마음을 맑혀 부처님같이 오롯함, 반듯함, 말끔함의 세제 속의 진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미천은 세제불교를 정의하면서 ‘오롯함, 반듯함, 깔끔함’과 ‘오롯하게, 반듯하게, 말끔하게 사는 길’ 두 가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 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 단지 미천은 전자에 대해 “불, 법, 승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고 짧게 언급할 따름이다. 하지만 미천은 《세제불교의 이론과 역사》에서 ‘오롯함’ ‘반듯함’ ‘깔끔함’으로 장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천의 설명대로라면 부처님은 오롯함, 가르침은 반듯함, 승중은 깔끔함에 배대된다. 부처님은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없이 모든 것이 구족된 오롯함이다. 부처님의 법은 잘못된 것도 모순된 것도 없는 반듯함이다. 승중은 더러움이나 나눔이 없는 깔끔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롯함, 반듯함, 깔끔함은 객체인 대상의 특징이다. 하지만 ‘오롯하게, 반듯하게, 깔끔하게 사는 길’은 세제불교의 수행자가 가는 길이다. 아직 완성되거나 완결된 길이 아니다. 갈 길이고, 가고 있는 길이다. 이것은 주체이고, 인식이다. 세제불교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미천은 오롯함, 반듯함, 갈끔함을 불교교리의 현대화, 참 불교의식, 법사가 됨 셋으로 구체화했다.

1) 불교교리의 현대화

불교교리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체계화한 것이다. 깨달음의 진리 자체는 ‘결정된 의미[了義]’이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한 진리이다. 시공을 초월했기 때문에 불교교리는 ‘오래된’ 것도 아니고, ‘현대화’될 수 없다. 미천이 말한 불교교리의 현대화는 세제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것은 ‘결정되지 않은 의미[不了義]’이다. 세제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세제불교에서는 ‘불교교리의 현대화’를 고민할 수 있다. 현대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불교가 제시해야 하고, 고민해야 한다. 미천은 이를 다시 오롯함, 반듯함, 깔끔함의 세 가지 술어로 표현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의 특징을 미천은 ‘전미개오(轉迷開悟)’로 설명했다. 미(迷)는 사물의 본질에 대해 어둠, 혼돈됨, 무지함 즉 무명(無明)이다. 오(悟)는 진리를 밝혀 아는 원리, 완전하게 깨닫는 지혜를 의미한다. 미혹한[迷] 세계는 악업이 작용한다. 악업 때문에 괴로움과 고통이 따른다. 반대로 깨달은[悟] 세계는 본질의 세계를 자각한다. 자각하기 때문에 능동적 발광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미’를 현존적 모순을 개혁하려는 점진적 수행, ‘개오’를 본질적 실체를 구현하려는 궁극적 자각으로 설명한다.

미천은 미망이 미망이 아닌 상태로 변하는 것을 깨달음을 향한 점수적(漸修的)인 행동이 발화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점수적인 행동이 발화하는 과정에는 철학적인 논리 전개나 종교적 심층 작업으로 이룩되는 깨달음이 가능하다. 철학적인 논리 전개는 언어적인 차원에서 설명된다. 논리를 뛰어넘은 비언어적인 영역이 아니다. 말로 표현될 수 있고, 말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체득하는 것이 종교적 심층 작업으로 이룩하는 깨달음이다.

전미개오를 깨달음을 향한 점수적인 행동이 발화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면, 미천이 언급한 ‘오롯함’ ‘반듯함’ ‘말끔함’도 이와 관련될 수밖에 없다. 미천은 오롯함을 진리의 실체임과 동시에 진리의 능동성, 완전무결한 진리의 원만함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 오롯함은 인식론적으로는 들림과 관계한다. 점진적인 수행의 측면에서 오롯함은 결정된 의미로 들려야 한다. 들으면서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롯함을 인식한다.
들리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알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기 위해서는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천은 반듯함을 부처님이 깨치신 진리를 바르게 이해함으로 설명했다.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별해야 한다. 분별은 파악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모든 문제를 파악하는 것도 분별이고, 이 문제를 불교적으로 해결하는 방법도 분별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문제를 분별하면서 세제불교도 점점 힘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그 문제에 부딪쳐서 싸우는 것이 세제불교이기 때문이다.

반듯하게 이해한 것을 생각하는 과정이 깊어 가면 이것을 체득할 수 있다. 미천은 말끔함을 진리를 우리의 수행 속에 내재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생각한 것을 깊게 집중하여 이를 명상하는 것이 말끔함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롯하게 듣고, 반듯하게 생각하고, 말끔하게 명상하는 것이다. 명상하지 않으면 듣고 생각한 것을 체득할 수 없다. 듣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있지만, 이를 체득하는 말끔함과 비교할 수 없다.
2) 참다운 불교 의식(儀式)

   
《세제불교의 이론과 역사》(2008)
세제불교가 추구하는 이상은 인간의 해탈과 사회의 정토이다. 사람들은 번뇌를 벗어버리는 자각적 당체가 되고, 사회는 번뇌를 탈각하는 평등적 인과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할 때 사람들은 견고한 아집을 버리고 깨달음으로 나아가 해탈하고, 사회는 구조적인 모순을 자연스럽게 바꾸어 아름다운 정토가 된다.
이러한 세제불교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을 미천은 ‘대중의 불교화’라고 보았다. 미천은 대중을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삶의 집단구조체’로 인식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가 대중이다. 대중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와 평등의 존재이다. 하지만 대중을 불교화하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대중은 세세생생 무명에 쌓여 잘못된 행을 하고, 그 결과 잘못된 업을 쌓아 그 과보를 받는다. 이런 대중을 불교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교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의 대중화가 불교의 세속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천은 잘못된 불교의 세속화를 ‘음주식육무방반야(飮酒食肉無妨般若)’란 말로 표현했다.

불교의 대중화는 반드시 불교다운 신해행증(信解行證)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불교 의식(儀式)은 불교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성립하고, 이러한 체험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의 불교화를 위해서는 불교 의식의 대중화가 필요하고, 이 대중화도 참다운 불교 의식이 되어야 한다.
미천은 의식(儀式)을 의식(意識)으로 설명한다. 의식(意識)은 마음이고, 의식(儀式)은 마음 모양이 밖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 모양을 안으로 들게 하는 것도 의식(儀式)이다. 마음이 혼란할 때 “하늘 위나 땅 위에서 가장 바른 깨침을 얻으신 당신에게 한마음을 다하여 귀경합니다”라고 절하면서 마음을 바로잡으면 흔들리는 마음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그러므로 의식(意識)과 의식(儀式)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천은 세제불교의 불교 의식에서는 전체 대중이 참여하는 공동적 수행과 공동적 진행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적인 대중이 동적인 생명성을 가지고 함께 어울리는 의식, 이를 미천은 ‘정(靜) · 동(動) · 중(衆)’의 불교의식으로 설명했다. 정(靜)은 현상적 사실을 가라앉혀 적정세계에 몰입하는 것이고, 동(動)은 종교적 체험이 깊어진 사람이 마음 깊은 곳에서 뉘우침의 감격이 요동하는 것이고, 중(衆)은 현상적 허무를 적정시키고 심층적 참회를 진동시켜 이 두 가지가 만나 어울리는 것이다. 이를 미천은 ‘고요함’ ‘솟구침’ ‘어울림’으로 표현했다. 이 셋이 서로 지속적으로 상응할 때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3) 법사가 되기

세제불교의 중심에는 법사(法師)가 있다. 법사는 세제불교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법화경》에서는 《법화경》을 받아 지니고, 소리 내어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해 설명하고, 해설하고, 옮겨 적는 이를 법사라고 했다. 자격요건만 갖추어지면 출가와 재가의 구분이 없이 누구든지 법사가 될 수 있으며, 여래의 일을 대신하는 여래의 사신이라고 《법화경》에서 규정하고 있다.

미천은 법사를 ‘여래의 광명을 만드는 사람’ ‘여래의 생명을 승계한 사람’ ‘여래의 움직임을 되받는 사람’ ‘정법구현의 법수레를 굴리는 사람’ ‘사랑하는 이웃을 가지는 사람’ ‘법을 보는 사람’ ‘등불에, 전법에, 봉사에 가슴을 바치는 일꾼’ 등으로 설명했다. 반면에 ‘역사에 현현하는 일체의 불의를 보고 좌시하는 자, 무관심한 자, 손에 땀을 내지 않는 자, 가슴에 피 끓지 않는 자’는 법사가 아니라고 했다. 한편, 미천은 법사를 ‘전법의 여래사(如來使)’란 말로 표현하기를 좋아했다. 여래를 대신하여 전법을 수행하는 일을 위임받은 이가 법사라는 것이다.

세제불교에서는 어떻게 법사가 되는가? 미천은 “법사가 되려는 정인(正人)은 정(正)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바를 정(正) 자는 다섯 획수이다. 다섯은 오계(五戒)를 의미한다. 살(殺) · 도(盜) · 음(淫) · 망(妄) · 주(酒)에 끄달리지 않고 이를 바르게 지켜 양심적인 생활을 하는 범사적(凡事的) 정인(正人)인 것이다. 법사(法師)가 된 법인(法人)이란 무엇인가. 법자(法字)는 여덟 획이다. 여덟은 바로 팔정도(八正道)이다. 법사가 된 사람은 팔정도의 이치를 깨치고 이것을 행법(行法)의 길로 닦아가는 사람이다.”라고 설명했다. 미천은 법사가 되지 않은 예비법사를 정인(正人)이라고 하고, 법사가 된 사람을 법인(法人)이라 하여, 정인은 오계(五戒)를 양심적으로 지키는 사람이고, 기존 법사인 법인은 팔정도를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계와 팔정도만으로 세제불교를 완성하는 법사의 모든 조건이 구족되는 것일까? 미천은 〈성문(聲聞)이 법사(法師)되어-법사회(法師會) 10년에 부쳐〉에서 “법사(法師)가 무엇인가/ 누가 법사(法師)인가/ 바라밀을 행하는 사람/ 두려움 없이 나서는 사람/ 자기 속임이 없는 사람/ 부처님 시봉심 이바지하여/ 하늘 끝에 닿은 사람/ 이 사람이 법사(法師)”라고 한 것처럼, 미천이 추구한 진정한 법사는 성문법사가 아니라 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법사임을 알 수 있다.

보살법사의 길은 대한불교법사회에서 개설한 법사원 불교대학의 강령에 잘 나타나 있다. 강령은 구법(求法), 수행(修行), 교화(敎化) 셋이다. 먼저 구법에 대해 강령에서는 “불타정각은 우주의 광명 우리는 정법을 깨쳐 오늘의 대승이 된다”라고 설명한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삼천대천세계를 밝히는 광명이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은 광명을 간절하게 갈구한다. 광명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광명인 정법을 주기 위해서는 법사는 구법해야 한다. 쉬지 않고 구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천은 “법사는 마음으로부터 부처님의 깨침을 쉼 없이 전달하는 항속적 전도체이다”라고 했다.

수행에 대해서는 강령에서 “불타정행(佛陀正行)은 중생의 정도 우리는 수행을 닦아 오늘의 보살이 된다.”라고 한다. 깨달음으로 나아간 부처님의 올바른 행은 중생들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이 된다. 미천은 정도(正道)를 팔정도(八正道)와 바라밀(波羅蜜) 둘로 구분했다. 팔정도는 안내자에 해당한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는 것 등이 닦음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것이 안내자와 같다. 팔정도를 안내자라고 하는 것은 정견(正見) 때문이다. 미천은 정견을 “정견은 바로 본다는 의미이며 …… 지혜로운 안목으로 우주의 법칙, 사물의 생성과정,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 일들에 대한 인과를 바르게 투시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미천은 진제뿐만 아니라 세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두루 살피는 것을 정견으로 이해했다. 진제와 세제를 함께 보는 눈이기 때문에 “정견의 세계에 들지 않으면 불교적 바라밀을 실천 궁행할 수 없다.”라고 했다.

바라밀의 토대가 되는 정견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미천은 〈2000년 세제불교운동의 선언〉에서 “우리 법사(法師) 돈각(頓覺)하여/ 화엄우주 뚫어보아/ 무진연기(無盡緣起) 깨쳐서/ 우주(宇宙)와 아상(我相)이 즉시각증(卽時覺證)하여/ 바라밀을 행포(行布)하세/ 새천년에 들어가면/ 우리 법사 무등등법도(無等等法道)따라/ 유마장자(維摩長者) 닮아가서/ 불이방편(不二方便) 날개 달아/ 사바고해 도탈(度脫)하는/ 보살법사 길 나아가세”라고 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화엄의 무진연기(無盡緣起)와 유마의 불이방편(不二方便)이 정견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천은 이 둘을 바라밀을 행포하여 보살법사의 길로 나아가는 전제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 둘은 진제와 속제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화엄의 무진연기를 미천은 “화엄바다 넓은 우주/ 없는 듯하여도 모두가 살고/ 무진연기 두루하며/ 일체중류 생명주니/ 비로광명 공용이다.”고 하고, 유마의 불이방편을 “이것이다 하면 나를 고집하고/ 저것이다 하면 남을 미워하리,/ 이것저것 가림하면 차별상이 일고/ 이것 속에 저것을 안아 품어야만 / 저것 속에 이것이 녹아야 하네.”라고 설명했다.

뭇 생명이 다함이 없는 인연에 따라 생긴 존재임을 자각한다면, 나와 별개의 존재일 수 없다. 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중생들을 내 목숨처럼 생각하여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 나와 남의 이분법적인 구분이 사라진다면 나에 대해 집착하는 일도 없고, 남에 대해 멸시하고 무시하는 일도 없다. 나와 남을 동등하게 볼 수 있을 때 보살의 서원을 일으킬 수 있다.

   
불교평론 열린논단에서 발제하는 미천(2013).

보살의 서원은 사홍사원(四弘誓願)이다. 사홍서원은 자리와 이타를 추구하는 보살의 서원이다. 하지만 미천은 이 사홍서원을 뭇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설명했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에서 중생은 생명이 있는 유정중생이다. 한두 중생이 아니라 가없는 중생을 구한다고 맹세할 경우에는 ‘어떠한 생명도 죽이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는 생명 존중의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에서 번뇌는 편향된 사고의식이다. 편견과 사견을 가진 이는 일체생명을 가볍게 생각한다. 이런 번뇌가 커지면 자신만이 아니라 뭇 생명을 해치게 된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에서 법문은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이다.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의 핵심은 연기법이다. 연기법은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풀, 나무, 돌, 바람, 중생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에서 위없는 불도는 부처님의 자리이다. 이 자리에서 일체중생은 부처님의 자비에 섭수된다. 섭수되는 중생은 생명의 해방이고, 큰 기쁨이다. 이 서원에서 일어난 행이 보살행이고, 바라밀행이다.

교화에 대해서는 강령에서 “불타교설은 인류의 구원 우리는 법륜을 굴려 오늘의 법사가 된다.”라고 한다. 법사는 무진연기와 유마불이의 정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연기한 것임을 알지 못하는 중생은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는 마음을 끊임없이 일으킨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보지 못하는 중생들은 나와 남을 구분하고, 나에 대해 끊임없이 애착하고 집착한다. 상대적으로 남에 대해 무시하고 멸시한다. 이런 잘못된 견해에 빠진 중생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교화이다.

미천은 교화의 핵심을 정견에 두었다. 정견은 진리에 바른 눈을 뜨는 것이다. 불타교설의 핵심은 연기법이고, 모든 것이 연기한다는 것을 보는 것이 정견이다. 부처님은 세 번의 법륜을 굴렸다. 처음 깨달음을 얻고 나서 녹야원에서 초전법륜을, 왕사성에서 중전법륜을, 사위성에서 후전법륜을 굴렸다. 부처님의 법륜은 오늘날에도 돌아야 한다. 그 책임은 법사에게 있다. 왜냐하면 “법사는 전법자이다. 전법은 정견의 불교사상을 전하는 것이다.”고 하기 때문이다.

법사는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고, 소리 내어 읽고, 외우고, 설명하고, 베끼는 것도 남을 위함이다. 보살의 행은 멀고도 어렵다. 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미천은 “유난(有難)을 무난(無難)으로 극복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때 무진연기와 유마불이의 정견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연기한 것임을 알지 못하거나, 나와 남, 좋고 나쁨의 구분이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지 못할 경우가 ‘유난’이고, 볼 경우가 ‘무난’이다.

법사가 교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생무변서원도의 서원을 세웠기 때문이다. 법사는 모든 것이 연기한 것임을, 나와 남의 구분이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견을 세우기 때문이다. 올바른 정견으로 정법을 구하여 세제불교의 법륜을 굴리는 것이 오늘의 법사에게 주어진 의무이다. 오늘도 미천은 법사를 통해 세제불교의 이상을 실현하는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

 

양승규 
동국대학교 티벳대장경역경원 전임연구원. 동국대학교, 동 대학원 졸업(석사, 박사)후 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불교를 공부했다. 역서로 《보리도차제약론》 《보리도등론》 《티베트금강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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