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연구에 쌓은 또 하나의 탑

1.

《분황 원효의 생애와 사상》
운주사, 2016.11 발행, 464쪽
금년은 원효(元曉, 617~686) 탄신 1,400주년이다. 지난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을 겪었고, 새해 아침에도 또 겪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괴로움에 빛과 지혜를 원효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새해를 시작한다. 원효 사상이 국내의 정치적인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국제적인 정치 문제에 외견상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을지라도, 내면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이 문제들을 해소하여 스스로 심리적 안정을 꾀하고 그것을 투사해 외면화하는 데에는 지혜를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지혜를 더욱 요구하여야 하고, 또 요구하게 되어 있다. 평자는 원효 사상 연구자로서,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국민과 우리 학생들에게 위로를 주고, 또 앞으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효의 삶과 사상은 오랜 세월 망각된 것 같지만, 1,400년이 지나도록 명맥을 유지하며 여전히 우리 곁에서 지혜롭게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그 지혜의 보고를 얼핏이나마 엿보기 시작한 것은 정말 다행이다.

필자는 지금 평하고 있는 저자의 이 책도 바로 그러한 지혜를 주는 아주 훌륭한 책의 하나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 고영섭 교수는 현대 한국에서 원효 관련 저술을 가장 많이 출간한 분이다. 1997년 《원효, 한국사상의 새벽》을 출간한 이래로 2016년 이 책 《분황 원효의 생애와 사상》까지, 20년간 원효를 다루는 단행본 저술만 7번째인 것이다.

또 원효 관련 일반 논문도 1995년 〈원효의 통일학: 부정(破 · 奪)과 긍정(立 · 與)의 화쟁법〉(《동국사상》 26)부터 2016년 〈분황 원효의 《십문화쟁론》과 《판비량론》의 내용과 사상사적 의의〉(《동악미술사학》 제19호)까지 31년 동안 총 34편에 이른다. 다소 중복되는 내용이 없지 않지만, 이는 원효 연구자로서 한국에서 거의 최다의 연구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이런 연구에 대한 부지런함과 열정을 평자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일부러 구구절절 많이 한 이유는 이 책이 저자의 이런 원효 관련 학문 여정이 축적된 믿을 만한 결실임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2.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Ⅰ장은 ‘생애와 저술’, 제Ⅱ장은 ‘화회논법의 탐구 지형’, 제Ⅲ장은 ‘일심과 본각의 성격과 특징’, 제Ⅳ장은 ‘일심의 경 사상 및 염불관과 염불선’이다. 전체 내용을 들여다보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저자의 원효 연구 업적이 상당히 많은데,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것이 아니라, 주로 저자가 발표한 연구 내용을 정리 종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저자가 기존에 발표한 연구들을 세세하게 수정, 보완하여 기존 연구들을 잘 종합해 기술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객관적인 내용들이다.

‘제Ⅰ장 생애와 저술’에는 인상적인 내용이 많다. 원효의 깨침을 두 번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보고 무덤과 분황사 두 곳으로 상정한 것이라든가, 원효의 교상판석 내용을 전체적으로 상세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라든가, 원효의 화엄사상을 중국의 화엄사상과 구분하여 중국불교의 13종을 아우르는 상위개념의 화엄으로 설명한 것 등이다. 그러나 평자가 보기에, 저자의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는 논거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 보이는 점은 아쉽다. 그리고 저자가 이전에 발표한 글들로 ‘저술의 서지학적 검토’도 잘 정리되었는데, 최근 확장되고 있는 원효 저술 내용에 대한 정보들을 다루면서 저자의 연구 발표 이후 더 확인 가능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추가되지 않았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예를 들어, 2016년 4월에 한국에 알려진 것인데, 일본 도쿄의 개인 소장자에게서 《판비량론》 단간 9행을 추가로 찾아 발견한 내용의 소개가 빠져 있는 점 등이다.

‘제Ⅱ장 화회논법의 탐구 지형’은 원효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십문화쟁론》의 연구사적 정리를 하고 있고, 원효 불학의 고유성을 한국불교의 전통 확립이라는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다. 평자는 저자가 고유성이라는 측면에서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와 관련하여 한국불교의 전통 확립이라는 측면만을 다룬 것은 불교학적 또는 불교사적으로는 아주 의미 있는 연구라 생각한다. 다만 여전히 불교학 내에서의 연구만으로 고유성을 발견하고 규정하려는 시도는 한국사상사 혹은 한국철학사라는 측면의 연구가 간과되는 아쉬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평자의 이런 지적은 저자가 이어지는 제Ⅲ장에서 원효 사상을 현대 남북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연관해서 다룬다든가 또 제Ⅳ장에서 유학과 비교 고찰하며 진행되는 연구처럼 불교학적 연구를 넘어서 저자의 원효 연구 확장이라는 흐름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제Ⅲ장 일심과 본각의 성격과 특징’에서는 원효의 일심을 일심의 신해(神解)함과 본각의 결정성(決定性), 진망화합심(眞妄和合心)과 진심(眞心) 등을 다루며, 남북통일의 관점에서 이 개념을 어떻게 원용할 수 있는지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는 남북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연관해 다룬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역시 일심 자체에 대한 본인의 연구 외에 일심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소개와 더불어 심층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내용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제Ⅳ장 일심의 경 사상 및 염불관과 염불선’에서는 저자가 원효와 퇴계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대표적인 불교학자 원효와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를 비교하며 연구하는 것은 한국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며 도전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퇴계는 이기(異氣)의 불상잡(不相雜)을 강조하려는 데 반해, 원효는 일심이문(一心二門)에 있어 불상리(不相離)와 불상잡(不相雜)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존재론적으로는 원효가 이기의 불상리(不相離)를 더 강조하는 율곡과 친연성이 더 있어 보이고, 이에 대한 비교 연구가 더 이어지길 희망해 본다.

마지막으로 부록은 349~415쪽에 실려 있어, 찾아보기를 제외한 전체 415쪽 분량의 책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 부록은 현대 국내외의 원효 연구 역사 116년(1901~2016) 동안의 단행본 저술과 역서 및 일반 연구논문과 학위논문을 망라하고 있다. 원효 연구들을 정리해 주는 것은 연구자들에게 아주 유용하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다소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 저자가 조금만 더 시간을 할애해서 세심하게 다루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1. 원효 관련 저술’ 350쪽에 김원명의 책명에 오류가 있다. 즉 《원효, 한국불교철학의 선구적 사상가》를 《원효, 한국불교철학의 선구적 사상사》라고 하였다. 이후 352쪽, 이기영의 저술 서지사항에도 오류가 있다. 즉 ‘(서울: 한국불교연구원, 1982)’을 ‘(서울: 한국불교연구, 1982)’라 한 것이다. 이 외에도 ‘2. 원효 저술 편서 및 역서’ 353-355쪽의 서지사항은 각 저서와 역서의 면수를 적기도 하고 적지 않기도 하여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 또 ‘3. 일반논문’의 서지사항도 오류들이 적지 않다.

3.

마지막으로 저자의 이 책을 서평하면서, 저자의 원효학에 대한 부지런함과 열정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한다. 필자는 저자의 원효 연구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국불교학 내에서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학 더 나아가 세계의 불교학으로 발전하길 희망한다. 그리고 필자는 저자의 원효 연구가 한국철학사와 세계철학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연구로 계속 발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원효의 원전을 더 읽어보고 싶어질 것으로 생각하는데, 원효를 가깝게 만날 준비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용인(龍仁) 정광산(正光山)을 바라보는 평자의 관정재(觀正齋)에서 공손히 머리 숙여,
서울 중구 만해관 저자의 각승굴(角乘窟)을 향해,
티끌을 불어 보내 진리의 바다에 던집니다. ■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석사, 박사). 주요 논문으로 〈화쟁의 속틀과 열반의 겉틀, 그리고 ‘우리’말 이해〉 〈원효의 비불교적 배경 시론〉 〈원효 《열반경종요》에 나타난 일심〉 등과 저서로 《원효의 열반론》 《원효, 한국불교철학의 선구적 사상가》 등이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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