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이 현실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주장은 초기 리얼리즘 시대의 인식이다. 소설은 실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모사할 수도 없으며, 대다수 작가는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루카치는 그 원인을 소설이 모사할 대상이 되는 모든 원형이 몰락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애초부터 대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하거나 불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소설 등을 통해 바라보는 세계는 실제 현실이 아니라 ‘여기에 없는’ 그러나 현실이라 여겨지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가상현실을 실재로 받아들이게 하는 근본 동인은 ‘개연성’의 원리이다. 흔히 ‘그럴듯함’으로 번역되는 이 원리는 이 세상 모든 존재가 수많은 조건의 결합에 의해 생성된다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론에 기인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어지며, 이것이 생겨남에 따라 저것도 생겨나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없어진다(此有故 彼有 此無故 彼無 此生故 彼生 此滅故 彼滅).

이것과 저것(주체와 객체)은 서로 완전한 독립적 개체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관계에 의해 생겨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만물 중에는 어느 것 하나 영원불변한 고정적 존재가 있을 수 없으며[諸行無常], 독립적 실체도 있을 수 없다[諸法無我]. 내가 고정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은 주체와 객체의 절대적 평등을 전제로 한다[自他不二]. 주체와 객체, 또는 중생과 나의 관계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은 결국 자아와 세계가 한 뿌리에서 나온 것[物我同根]이라는 인식과 상통하는데, 이처럼 주체와 객체를 구별하지 않고 평등한 관계로 보는 연기론은 ‘자비(慈悲)’라는 아름답고 숭고한 실천 행위를 통해 구체화된다.

우주의 창조가 절대적이고도 일회적인 것이라는 서구 기독교의 창조론과 달리, 불교에서는 우주의 생성과 소멸이 간단없이 계속된다고 믿는다. 그러한 믿음의 기저에 윤회론이 자리하고 있다. 윤회론은 간단히 말해, 전생의 행위가 이생의 삶을 결정하고 이생의 행위가 내생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업(業, karma)’의 논리에 입각한 것이다. 이 업이 원인으로 작용하여 결과를 초래하는데, 그 과정은 반드시 ‘선업선과(善業善果)’ ‘악업악과(惡業惡果)’의 형태를 띤다. 흔히 업을 ‘인과응보’니 ‘업보’니 하는 말로 표현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불교의 연기론이나 윤회설은 한국문학사의 유형학에서 유구한 전통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개 한국문학사의 주제론이나 제재론과 같은 내용적 측면과 관련된 논의에 한정될 뿐, 불교의 사유체계나 상상력을 문학의 기법과 관련지어 입론화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비근한 예로, 소설에서 독자들의 예상을 뒤엎는 기상천외한 반전의 결말도 따지고 보면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필유곡절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이처럼 우연한 돌발사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자질구레한 상황들에 인과성을 부여함으로써 필연적인 사건이 되게 하는 소설의 구성 원칙이야말로 불교 연기론의 핵심원리와 적절하게 부합한다.
연기론이나 윤회설 등은 불교의 근본정신을 대중에게 쉽게 전파하려는 방편 가운데 하나이다. 연기론이나 윤회설 등의 이론적 방편이나 자비와 보시 등의 실천적 행위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확히 깨달아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연기윤회는 우리 문학에서 가장 오래, 그리고 널리 활용된 모티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소설에서 연기윤회 모티프는 작품의 구조 속에 절묘하게 용해되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윤대녕의 〈천지간〉은 표면적으로는 죽음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보이지만 심층적으로는 자신의 현존이 타인의 희생에 의한 것이라는 연기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암으로 돌아가신 외숙모, 어릴 때 화자를 구하다 물에 빠져 죽은 친구, 구계 가든을 찾았던 장님 노파의 자살, 그리고 득음(得音)을 하지 못한 것을 비관해 자살한 소리꾼 등 네 번의 죽음이 등장한다. 표면적으로는 서로 독립적이고 우연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 이 네 가지 죽음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매개체를 서술자와 화자는 인연으로 설명한다. 외숙모의 문상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한 여자의 심상치 않은 태도에 끌려 “상여를 따라가듯 무연히 여자의 뒤를 좇”아 구계등까지 따라온 화자의 이야기를 듣던 여관 주인은 그것을 대뜸 ‘인연’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인연이군요. 문상을 가는 길에 만나다니요.”
“인연요?”
“그게 아니라면 뭐겠어요.”
“하지만 어떻게 그걸 함부로 인연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제가 괜히 저 자신에게 홀려 불쑥 딴 세상을 관광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중략……)
“딱히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친 다음에야 사람이 만나지는 건 아닙디다. 인연이란 게 뭐 따로 있나요.”
― 윤대녕 〈천지간〉 중에서

위 인용을 통해 우리는 여관 주인이 여인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으며, 문상길에 여인을 따라온 화자의 느닷없는 동행도 어떤 식으로든 여인의 죽음과 관련되리라는 직감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죽음은 인연관을 매개로 긴밀한 연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애초에 화자가 여인을 따라나선 것은 그녀에게서 “차디찬 죽음의 그림자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은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 내 목숨을 구한 일이 있”다는 기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생명이 친구의 죽음과 맞바꾸어진 것이라면 자신도 죽음을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에게 무언가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이 화자를 구계등까지 이끈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관 주인이 화자의 광주행을 애써 말리며 “다만 구할 수 있으면 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라고 말할 때 어쩔 수 없이 수락의 몸짓을 해 보였던 것이다. 한 남자와 구계등에 와 첫 관계를 한 여인은 1개월 전 그 남자에게 버림받고 다시 구계등을 찾는다. 두 번째의 구계등행은 죽음을 위한 여정이지만 뱃속의 어린아이만은 구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을 때 상복을 입은 화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화자와 여인 사이에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것 같지만 친구의 죽음과 맞바꾼 생명에 대한 책무감이 바로 뱃속의 생명을 구하려는 여인의 무언 호소에 강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생명을 구원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원한다는 절묘한 인연의 논리가 이로써 설명되는 것이다.

2.

우리 소설에서 연기윤회 모티프와 함께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하는 불교 모티프는 승려(작중인물)와 사찰(배경)이다. 우리 서사문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전(傳)’ 양식이 발달하여 왔다. 전(傳)에서 다루는 인물은 대체로 만인의 추앙과 존경을 받는 영웅 · 의인, 충신 ·열사 등 일반인보다 우월한 이들이다. ‘승전(僧傳)’은 중국 양(梁)나라의 혜교(慧皎)가 지은 《고승전》이 가장 오래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후기의 고승 각훈(覺訓)이 왕명을 받아 기술한 《해동고승전》과 일연의 《삼국유사》에 전하는 고승열전이 일반에게까지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에는 더 이상 고승전이 씌지 않고, 야담이나 설화에 간혹 승려가 등장할 뿐이다.
특히 임진란 이후 야담 · 설화에 등장하는 승려상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변화하는데, 이는 주자학적 가치관에 침윤된 조선조 사대부들이 승려를 ‘부모의 은혜와 군신의 의리를 저버린’ 패덕자로 매도하거나, 산속에서 무위도식하는 잉여적 존재로 낙인찍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선 초 · 중기에는 무학대사와 같이 건국에 기여한 이나 휴정 · 유정 · 영규 대사 등 국가지란 때 나라를 구한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과 설화 등을 통해 널리 회자된다. 하지만 조선후기 설화에 나타나는 승려상은 ‘악한(惡漢)’의 이미지로 급격히 추락하며, 이는 다시 ‘호색한 · 첩자(諜者) · 폭력자(暴力者)’의 모습으로 세분화된다.

민간설화에서 이처럼 부정적인 승려상이 전파된 것은 무엇보다 조선조의 숭유억불 정책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국가에서는 정책적으로 불교를 억압해 승려의 도성 출입까지 제한했으며, 예전에 승려들이 맡았던 일반 백성의 스승 역할을 사대부들이 전담하면서 승려의 신분 하강과 역할 축소가 동시에 이루어져 점차 조롱의 대상으로 밀려났다. 휴정 · 유정 등 고승의 경우 사대부들에게는 구국정신과 함께 높은 인격과 학식을 인정받은 것과 달리, 일반 백성들에게는 각종 신이한 도술과 술법으로 나라를 누란지위에서 구한 장수(將帥)나 이인(異人)으로만 기억되는 것도 조선조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일제 강점기 문학 작품 속에 승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례는 이광수의 《이차돈의 사》 · 《원효대사》 외에 달리 찾기 어렵다. 해방 후에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아 〈등신불〉(1961)이 대표적 불교소설로 평가되다가 《만다라》(1978)가 발표되면서 불교계와 문학계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의 주인공 지산과 법운 등 대조적인 승려상의 원형은 《삼국유사》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원효/자장, 노힐부득/달달박박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가 전하는데, 자장 · 달달박박이 계율에 엄격한 수행자의 강직한 이미지를 대표한다면, 원효 · 노힐부득은 여성과의 육체적 접촉도 마다하지 않는 자재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남백월산(南白月山)의 달달박박(怛怛朴朴)은 늦은 저녁 거처에 찾아온 젊은 여성이 하룻밤 유숙하기를 청하자 “고요한 절은 청정함을 지켜야 하니 받을 수 없다”고 냉정하게 거절한다. 하지만 노힐부득을 찾아가 하루 유숙을 하며 몸을 푼 그 여성은 “나는 본래 관음보살로, 그대가 대보리심을 깨닫도록 도우려 왔다”고 정체를 밝힌다. 달달박박은 노힐부득이 파계[染戒]하였을 것이라 짐작하고 찾아갔으나 그가 연대(蓮臺)에 앉아 몸에서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 머리를 조아린다. 이와 유사한 설화는 〈원왕생가〉의 배경설화(광덕 · 엄장)에서도 반복된다.

‘원효/자장’의 상호대립적 수행과 포교의 방식은 우리나라 불교소설에서 하나의 모티프로 자리 잡는다. 한승원의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비구니 청하(순녀)와 진성(수남)은 성장 배경과 출가 후의 수행 및 환속이 상이한 인물들이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세속적 욕망에 전혀 감염되지 않은 순수청정 비구니 진성보다 여고생 때 이미 선생님과 육체관계를 맺고 출가했으나 “살이 달고 피가 뜨거운”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다시 저잣거리로 내려온 청하의 삶에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보인다. 그것은 애초부터 세간에 미련과 집착을 갖지 않고 출가한 진성보다 세속적 욕망과 애정 때문에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포기하지 않는 청하의 태도야말로 진실한 보살행이라고 여기는 작가의 불교관에 기인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한승원은 석가의 진정한 가르침이 속세를 떠나 혼자만의 맑고 깨끗한 삶을 누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력을 온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쏟아붓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행동의 전범이 원효인 것을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성동의 《만다라》와 한승원의 《아제아제 바라아제》가 작가 자신의 직접적 체험 또는 평소의 불교관을 토대로 허구화한 작품이라면, 최인호의 《길 없는 길》은 경허(鏡虛) 선사의 일대기를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구별된다. 경허의 독특한 수행과 삶은 말 그대로 워낙 드라마틱하여 세간에 전설처럼 회자되어 왔다.

그러한 경허의 일대기를 최인호는 액자적 형식과 추리적 구성방식으로 재서사화하는 한편, 중간중간에 중국의 육조혜능을 비롯한 여러 조사 · 선지식들의 흥미로운 일화와 화두를 삽입하여 일반인들의 선(禪)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 가외의 성과를 거두었다. 김성동, 한승원과 달리 불제자가 아닌 최인호가 당대 최고의 선승인 경허 선사의 삶을 소설화함으로써 그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으나, 일반인에게 어렵기만 한 것으로 여겨졌던 선과 화두를 조사 스님들의 일화를 통해 알기 쉽게 소개한 공덕은 결코 적은 게 아니다. 그러나 경허 선사의 삶을 다룬 이 소설은 과거의 고승전과 달리 허구의 형식을 빌렸어도 실존 인물의 이야기인 데다 그의 선맥을 이은 제자들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과거의 고승전은 입전 인물의 공적과 깨달음의 과정을 기술한 뒤 세평이나 개인적 소감을 덧붙이는 것으로 족했지만, 소설은 작중인물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역설적 방식을 구사하기도 한다. 《만다라》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법운 · 진성의 엄정한 지계 행위보다 지산 · 청하의 파계적 행각에 더 많은 비중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그런 사정과 관련된다.

최인호 《길 없는 길》.

《길 없는 길》은 천주교 신자인 최인호가 3년 동안 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로 수많은 독자에게 불교와 선(禪)에 큰 관심을 갖게 한 작품이다.

 1980년대 초 성철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란 종정 법어를 내려 인구에 회자된 것, 그리고 법정의 《무소유》란 책이 널리 읽힌 것과 함께 최인호의 《길 없는 길》은 불교 전파에 적지 않게 기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불교 경전과 수행록 등 자료를 거의 그대로 인용한 내용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여 순수한 창작물이라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어렵게만 여겨져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참선에 많은 사람이 호기심을 느끼고 직접 체험하려 하게 한 공덕은 양 무제의 그것보다 크면 컸지 덜하지 않으리라고 보인다.

이 소설의 작가가 불자(佛子)가 아닌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은 불교소설의 성격과 방향을 가늠하는 데 중요한 척도가 된다. 우리가 이제까지 보았던 불교소설은 불교와 큰 인연이 있는 작가가 부처나 고승대덕, 또는 불교적 설화를 바탕으로 그린 작품이 대종을 이뤘고, 그것은 주로 절 집안 부근에서만 읽혔던 한계를 가졌다. 그런데 최인호의 《길 없는 길》은 신문연재소설의 장점을 살려 쉽고 재미있게 경허의 무애행을 서술함으로써 폭넓은 독자층을 형성할 수 있었다.

최인호는 《길 없는 길》에서 경허의 삶을 눈에 보이는 대로 볼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을 주문한다. 한암의 경계대로 우리는 경허의 깨달음의 본질을 보아야지 그 행동의 괴팍함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 스승 없이 홀로 깨달은 경허는 제자들에게 무애행을 보임으로써 제자들이 철저히 계율대로 살아갈 것을 소망했는지 모른다. 그것은 그의 제자들이 평생 청정비구로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증명이 된다. 그런 점에서 경허의 무애행은 역행보살의 자비행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한국 현대소설에 등장하는 승려는 대체로 부인물의 위치에 머물면서, 작중인물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맡는다. 《길 없는 길》 《산은 산 물은 물》과 같이 실존인물을 다룬 소설의 주인공은 여전히 승려지만, 작품의 서사 전개상 필요한 인물로 창조된 승려는 주인공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적 스승이나 주제의 형상화에 기여하는 긍정적 인물로 표상된다. 이를테면 《장길산》의 운부 대사, 《토지》의 연곡사 우관 스님, 《태백산맥》의 법일 스님 등은 작중인물의 고뇌와 번민을 어루만져주고 그들로 하여금 올바른 길로 가도록 옆에서 돕는 역할로 한정된다.

이처럼 현대소설에서 승려가 차지하는 역할과 위상이 위축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현대는 신라 · 고려 시대와 달리 일반인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경전 공부나 참선도 많이 하여 일방적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 과거의 승려는 특수한 신분의 최고 엘리트였으므로 만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지만, 현재에서는 그러한 관계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둘째, 속세의 비루하고 추악한 삶과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소설의 작중인물로 승려는 적절한 인물이 못 된다. 승려는 기본적으로 세속적 욕망과 단절하고 청정한 삶을 살아가기로 서원한 인물인데, 그러한 성격은 소설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셋째,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종교의 특수한 위상이 성직자를 작중인물로 설정하는 데 장애가 된다.

이와 함께 우리 소설에서 작중인물의 갈등을 해결하고 화해에 이르는 장소로 사찰이 활용되는 사례가 많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정희의 〈별사〉, 김형경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신경숙의 〈부석사〉, 은희경의 〈그녀의 세 번째 남자〉, 윤대녕의 〈상춘곡〉 등에서는 현실에서 갈등을 겪는 남녀가 사찰을 찾아 마침내 마음을 정리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하산하는 스토리 라인을 따르고 있다. 이들 작품을 굳이 불교소설로 유형화하기는 어렵지만, 사찰이 화해와 해결의 공간으로 즐겨 사용되는 점은 한국 현대소설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 할 만하다. 

3.

김동리는 불교적 작품을 가장 많이 쓴 작가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문학은 “시대와 사회를 초월하여 인간이 영원히 지니는 인간의 일반적 운명”, 곧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진지하고도 지속적인 탐색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흔히 ‘삶의 구경(究竟)’으로 요약되는 김동리 문학의 핵심적 궤적은 바로 동리가 어려서 경험한 죽음의 공포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실존적 결단과 실천의 흔적이었던 셈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의 문제를 문학적 관점으로 해명하는 과정에서 김동리는 때때로 한국의 전통적 무속과 불교, 또는 기독교 등 동서양의 종교를 적극적으로 참조하고 활용했다. 그러나 불교의 경우에 김동리가 불교의 근본 교리에 정통할 만큼 경전 공부에 충실하였다거나 산사의 수좌들과 방불하게 참선에 용맹정진하였다는 기록이나 지인들의 전언 같은 것은 전해지지 않는다. 물론 그는 다솔사와 해인사를 오가며 한때 참선에 몰두하려고 용봉 선사와 상의하였다가 가부좌조차 할 수 없던 신체적 조건 때문에 포기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다솔사에서 동리는 불교 공부보다 소설 습작에 더욱 주력했을 뿐만 아니라 젊음의 애욕과 욕정을 이기지 못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도솔사의 한 승려로부터 정욕 때문에 자신의 성기를 자른 수도자의 이야기가 실린 《사십이장경》을 건네받고 눈물을 흘렸다는 동리의 고백은 그가 애욕 문제로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등신불〉은 만적 선사의 소신공양과 그에 관련한 신이한 영험담을 작중화자가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형식의 이른바 액자소설적 구성 방식으로 짜인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작중화자인 ‘나’는 태평양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만적 선사의 성불 과정에 관한 감동적인 전설을 전해 듣는다. 특히 이 소설의 결말 부분은 ‘불립문자(不立文字) · 교외별전(敎外別傳) ·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언표로 요약되는 선종(禪宗)의 비의를 성공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에 힘입어 일반에게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실제로 만적 선사의 소신공양과 관련한 전후 행적을 소상히 알려준 원혜 대사가 화자더러 “자네 바른손 식지를 들어 보게”라고 한 뒤 침묵하는 것이라든가, 그 침묵 뒤에 이어지는 북과 목어의 절묘한 화음 같은 문학적 장치들이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과 감동을 심어 주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등신불〉은 만적 선사의 소신공양이란 충격적 사건을 액자 속 이야기의 핵심사건으로 설정함으로써 가장 처절하고 감동적이며 인간적인 성불의 한 유형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 화자의 불교에 대한 이해와 인식은 매우 소박하고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또한, 그것조차도 정통적 불교 사상에 바탕을 둔 것이라기보다 토속적 종교(무속)와 습합된 기복불교의 그것에 더욱 근접해 있어서 〈등신불〉을 불교소설의 대표적 작품으로 이해하는 일반론은 새롭게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가령 동양 삼국의 불교의 차이를 인간의 완력과 비교하여 이해하려는 태도는 《태평천하》의 윤직원이 향교의 장의(掌議)와 선비들에게 “공자님허구 맹자님하구 팔씨름을 하였으면 누가 이겼으꼬?” 하고 질문한 것과 다를 게 전혀 없는 유치하고 저급한 상상력이며, 그런 의문과 비교가 전장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화자가 경건한 마음과 태도로 법당을 둘러보는 엄숙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도 매우 아이로니컬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화자가 학도병으로 끌려간 뒤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혈서(“願免殺生 歸依佛恩”)를 썼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화자의 행위를 단순히 목숨을 연장하기 위한 책략적 수단이나 “공리적 타산”이 앞선 행동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가 일본 대정대학 유학생이라는 사실과 평소 책상머리에 관세음보살상을 모셔두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정혜사에서도 사찰의 법규에 어긋나지 않으려 언행에 각별히 조심하였다는 것 등은 그의 친불교적 성향을 알려주는 유력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화자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떠하든 항상 이 세계를 초월하면서도 이 세계 안에 스스로를 현현(顯現)시키며, 그럼으로써 이 세계를 성화하고 또 그것을 실제적인 것으로 만드는 절대적 실재, 즉 거룩한 것이 있다고 믿는 ‘종교적 인간’이라기보다 ‘실재’의 상대성을 받아들이고 존재의 의미마저 의심하는 ‘비종교적 인간’으로서 특징을 더 많이 보여준다. 따라서 화자가 생각하는 불교는 인과의 사슬을 끊고 참된 자유인이 되는 진리를 일러주는 고등종교라기보다 개인의 무병장수와 부귀영화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세속화된 기복신앙의 성격이 더 강한 것처럼 보인다.

김성동의 〈산란(山蘭)〉은 팔순을 앞둔 노승과 어미에게서 버림받은 어린 사미(沙彌)가 단출하게 살아가는 산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김성동이 자신의 출가 체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만다라》를 통해 단숨에 문명을 획득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거니와, 〈산란〉 역시 작가 특유의 절집안 풍습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노승의 언행을 묘사 · 서술하는 의고체 문장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단아하면서도 유장한 우리 전통 문장의 격조를 뛰어나게 재현하고 있다. 이 소설은 어린 사미승의 착한 심성과 엄마를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을 세속적 차원에서 깨달음의 방편으로 돌려보려다 실패한 노승의 염원이 핵심 서사를 이루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둘의 관계가 다소 수상쩍은 남녀의 통정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동승 ‘능선’의 절망이 주변 서사를 형성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두 개의 서사는 서로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능선’이 궁극적 깨달음을 얻을 그릇이 못 되며, 여인(엄마)에 대한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결국 하산할 것이라는 비관적 결말을 예시하는 삽화가 개입함으로써 플롯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노승으로부터 자신의 법맥을 이을 그릇[法器]으로 기대되었던 ‘능선’이 결국 ‘서까랫감’ 정도의 근기밖에 보여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남녀의 육체적 결합 장면을 목격하고 눈물짓는 장면으로 결말지음으로써 그의 하산을 예견케 하는 것은 김성동 불교소설의 특징이자 한계라 할 수 있다. “사람 위에 또 사람이 포개어져 만들어진 이층(二層)”이란 흥미로운 표현은 그의 출세작 《만다라》에서부터 자주 써온 김성동 소설 특유의 클리셰(cliché)로, 출가 수행승이 끝내 극복하지 못하는 욕망의 상징이다.

〈산란〉을 불교생태론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어린 사미승 ‘능선(能善)’이 풀을 베다가 낫에 손가락을 다친 뒤 노승과 주고받은 다음의 대화 속에 잠복해 있다.

“손가락이 아파요. 풀들은…… 얼마나 아프겠어요?”
노승의 흰 눈썹이 꿈틀하더니 눈이 크게 벌어졌다.
“호오, 선근(善根)이로다.”
아이가 눈을 깜박였다.
“스님, 풀베기 안 해도 되어요?”
노승이 무릎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
“법기(法器)로다. 노납(老衲)이 드디어 사자 새끼를 얻었구나.”
― 김성동 〈산란〉 중에서

노승은 어린 ‘능선’에게도 백장회해(百丈懷海) 선사의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청규를 강요할 정도로 엄격히 대한다. 그러던 어느 날 ‘능선’이 풀을 베다가 낫에 손가락을 다친 뒤 단호하게 ‘이제 풀베기 안 하겠다’고 선언한다. 풀을 베지 않겠다는 ‘능선’의 이유 있는 항변에 노승은 정신이 번쩍 난 것인데, 풀의 고통을 제 것으로 느끼는 ‘능선’의 마음은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비(悲)’ 바로 그것으로, 내 생명이 소중한 만큼 남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생이지지(生而知之)하고 있는 맑은 성품임을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맑고 깨끗한 성품도 세속적 인연이나 물질적 욕망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능선’이 노승의 기대대로 황소를 타고 오는 어머니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요사채에 든 젊은 남녀의 육체적 교합 장면을 목격하고 눈물을 흘리며 뛰쳐나간 행동은 이미 그의 맑고 깨끗한 성품에 붉은 욕망의 때가 끼었음을 뜻한다.

한승원의 《연꽃바다》는 수컷 박새와 백양나무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바깥 이야기’와 박주철 일가의 갈등과 분열을 다룬 ‘내부 이야기’로 짜인 일종의 액자소설이다. 여기서 수컷 박새와 백양나무는 박주철의 자식들이 매실농장을 서로 차지하려고 벌이는 추악한 대립 양상을 비판적으로 전달하는 서술자의 역할과 함께 그들 스스로 작중인물로 생태계의 위기를 고발하는 이중적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경제적 이윤을 얻기 위해 조성한 매실농장에 밀려났던 백양나무는 인위적 목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생적’으로 군락을 이뤄왔다고 자랑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매실나무를 증오하고 그들이 베어진 자리에 자기 무리가 들어설 것을 바라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또한 암컷 박새는 “이 세상을 박새들의 날갯짓으로 가득 채울” 것이라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들 늙은 백양나무와 암컷 박새는 자기 무리의 번성에만 관심이 있을 뿐 자연 생태계에서 여러 생명체가 공존하는 삶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신경을 쓰지 않는다. 특히 암컷 박새가 “저는 기 드센 그것들로 하여금 소나무를 괴롭히는 송충이와 깍지들의 애를 먹이는 벼멸구나 이화명충이나 흰마름충 따위를 잡아먹게 하겠어요. (……) 적어도 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우리 박새의 무리로부터 비추도록 할 거”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가 자기중심적(인간중심적) 사고에 깊숙이 세뇌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수컷 박새는 ‘토말이’와 함께 이 소설의 실제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그곳이 어디이든지, 사람들이 걸어 들어가기만 하면 남아나는 것이 없다”는 어머니의 말을 통해 ‘사람은 파괴자’란 인식을 갖게 된다. 그런 그가 아내(암컷 박새)나 늙은 백양나무조차 “인간들의 휴머니즘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절망하는 것은 생태적 관심의 공유와 확산이 얼마나 지난한 주제인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서술 장치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면서 맺은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인정하고 살아가야 해요. 이것과 저것이 맺은 관계, 조것하고 요것하고가 맺은 관계……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그 관계를 부정하고 혼자서만 살아가려고 하면 그 관계가 깨어져요. 그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자기도 죽게 되어 있어요. 나만 살고 너는 죽어야 한다는 논리는 파국을 가져오고 마는 거예요. (……) 생태계 속의 천적관계나 공생관계가 파괴되기 때문에 말이오…… 우주 질서는 다 마찬가지요.”
― 한승원 《연꽃바다》 중에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윤석의 말은 연기론의 핵심을 그대로 따온 것으로, 그의 생각이 생태론적 세계관에 바탕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가 이제까지 보인 행적은 그의 발언이 얼마나 공소(空疏)하고 기만적인 것인가를 여실히 증명한다. 그는 윤호와 윤혜 앞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상생을 주장하고 ‘토말이’의 역성을 들지만, 정작 매실농장을 차지해 돈을 벌려는 물질적 욕망은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주철의 손자 ‘토말이’는 시종일관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는 할아버지에게 “눈 떠요! 얼른 번쩍 떠봐요!”라거나 “그렇게 눈을 감고 있기만 하면 어둠밖엔 안 보인단 말이에요.”라고 소리친다. 그는 박주철의 맏아들 윤길의 아들로 입적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윤석의 아들인 것처럼 서술되고 있는데, 풍장이 영감에 따르면 “선재 동자의 혼령”과 “전생에 암소하고 흘레 한 번도 못해본 채 죽도록 쟁기질만 하고 수레만 끌다가 백정의 도끼에 정수리를 맞고 죽어간 황소의 혼령”이 섞여 있어 과거 현재 미래 삼세를 꿸 정도로 영특하고 고집이 센 성격으로 묘사된다. ‘토말이’가 할아버지의 깊은 잠을 깨우는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른 것인데, 뒤에 정신을 찾은 박주철에 따르면 ‘토말이’의 어머니는 축생지옥의 염라대왕 윗자리에 앉아있는 관세음보살의 현신인 것으로 서술된다. “전생에 백정 노릇을 한 사람은 이승에서 스님이 되는 법이고, 전생에 화류계였던 여자는 이승에서 결벽증이 아주아주 심한 정숙한 안방마님이” 된다는 풍장이 말에 따르면 현세의 삶은 전생과 전혀 상반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보의 법칙을 인정하더라도 ‘토말이’의 전생-현생, 수컷 박새의 전생-현생의 관련은 속 시원히 해명되지 않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어떤 방식으로든 비정상적인 성(性)과 질긴 인연을 맺는다. ‘토말이’와 수컷 박새의 전생은 물론 박주철의 여색 탐닉, 윤석과 ‘참새’ 사이의 불륜, 매실농장 자리가 천하명당인 까닭이 자손의 번성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는 설명 등, 서사의 중심에는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는 성 또는 종족 번식의 문제가 놓여 있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성이 과연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종족 번성을 위한 것인가는 의문이다.

4.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등 세 편의 중편소설을 묶은 것으로, 한 편의 장편소설로 읽힐 만큼 작중인물과 사건의 연계성이 긴밀하다. 그것은 ‘영혜’란 인물이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만 하다가 ‘남편’과 이혼한 뒤 혼자 지내지만 ‘형부’와의 육체적 관계가 ‘언니(인혜)’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하여 식물화되는 3년 동안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이 순차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은 ‘영혜’지만, 〈채식주의자〉에서는 ‘나(남편)’, 〈몽고반점〉에서는 ‘그(형부)’, 그리고 〈나무불꽃〉에서는 ‘그녀(인혜)’가 초점 화자로 등장하여 ‘영혜’의 행동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는 이유와 그 행위의 문화적 · 문학적 의미를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분석작업을 불교적 방법론에 주로 의존하려는 것은, 불교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중생이 절대적으로 평등하므로 고의로 다른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신라 시대의 김대성(金大城) 설화는 윤회 · 연기 법칙의 엄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건축했다는 김대성 설화의 근간을 이루는 원리는 억울하게 죽은 생명체는 자신을 해친 상대에게 큰 원한을 품고 반드시 보복한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이러한 인과응보의 무서움을 한 경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이 양을 잡아먹으면 그 양은 죽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서 양이 되어 이와 같이 더 나아가 열 가지 종류가 죽고 나고 나고 죽고 하여 번갈아가며 서로 잡아먹어 악업이 생길 때마다 함께 생하여 미래제가 다하도록 계속되는데, 이러한 것은 도탐(盜貪)으로 근본을 삼는다.(以人食羊 羊死爲人 人死爲羊 如是乃至 十生之類 死死生生 互來相噉 惡業俱生 窮未來際 是等則以 盜貪爲本,
― 《정본수능엄경(正本首楞嚴經)》 卷4

《능엄경》에서는 육식을 하면 그 업보가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끊임없이 반복 순환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내가 양을 잡아먹으면 그 양이 사람이 되어 양으로 변한 나를 잡아먹을 것이라 경고한다. 뿐만 아니라 살생을 하는 사람은 죽어서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데 이것은 과거의 업에 따라 마땅히 치러야 할 업보[正報]로 설명되며, 《화엄경》 등에도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채식주의자〉의 화자(‘나’)는 어느 날 갑자기 아내(‘영혜’)가 냉장고 속의 육류를 모두 버리고 채식을 고집하며 “꿈을 꿨어”라고 그 이유를 말하지만 귀담아듣거나 꿈 내용을 자세히 알려 하지 않는다. ‘영혜’는 두 차례에 걸쳐 자기 꿈 얘기를 털어놓는데, 첫 번째는 숲속의 헛간에 매달린 고깃덩어리를 먹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살해(殺害)와 피살(被殺)에 관한 내용이다. 이 가운데 보다 충격적인 꿈의 기억은 꿈속에서 누가 죽어 그걸 숨겨주었는데, 그 주체(살해자)와 객체(피살자)가 자신인지 아닌지 모호하지만 무수히 반복되었던 내용이라는 점이다. ‘영혜’가 꿈에서 느꼈던 살해(피살)의 욕망은 마치 식욕처럼 생생하다.

꿈에 누군가의 목을 자를 때, 끝까지 잘리지 않아 덜렁거리는 머리채를 잡고 마저 칼질을 할 때, 미끌미끌한 안구를 손바닥에 올려놓을 때, 그러다 깨어날 때. 생시에, 뒤뚱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죽이고 싶어질 때, 오래 지켜보았던 이웃집 고양이를 목조르고 싶을 때,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맺힐 때,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때, 다른 사람이 내 안에서 솟구쳐올라와 나를 먹어버린 때, 그때……
입 안에 침이 고여. 정육점 앞을 지날 때 나는 입을 막아. 혀뿌리부터 차올라 입술을 적시는 침 때문에. 입술 사이로 새어나와 흘러내리려는 침 때문에
― 한강 《채식주의자》 중에서

‘영혜’는 꿈속에서 누군가의 목을 잔인하게 잘라 죽이고 사체(死體)의 눈알[眼球]을 빼내는 등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 않을 뿐 아니라 주변의 생명체를 살해한 뒤 그들의 고기를 먹고 싶은 강렬한 욕망으로 흥분한다. 이런 꿈이 반복되자 ‘영혜’는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고통을 겪는 한편, 자신이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데 동참했던 최초의 기억을 무의식 속에서 끄집어낸다. 그것은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 ‘영혜’가 물리자 그 개를 오토바이에 매달고 동네를 다섯 바퀴 돌게 해 죽인 뒤 그 고기를 가족과 마을 사람이 나눠 먹은 일종의 카니발리즘(cannibalism)에 대한 기억이다.

‘영혜’의 꿈과 기억은 생명체를 죽이거나 그 고기를 먹을 때의 본능적 쾌감과 두려움, 또는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때의 공포와 원한 등이 마구 착종(錯綜)된 상태로 표출되는데, 앞서 보았던 《능엄경》의 가르침이 결코 과장이나 허언(虛言)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충실한 예증처럼 읽힌다. ‘영혜’는 꿈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살생(殺生)에 대한 잔인한 욕망이나 날고기를 먹고 싶은 본능과 함께 그에 대한 죄책감과 공포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살생/피살의 모순된 욕망과 공포에 시달리던 ‘영혜’를 구제해준 것은 자신에게 생명을 키워 살리는 젖가슴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성찰과 각성이다. 인간의 육체는, 손 · 발 · 이빨뿐만 아니라 혀(舌)나 시선까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로 쓰일 수 있지만, 여성의 젖가슴은 “아무것도 죽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어린 생명을 키우는 절대 모성의 상징이란 자명한 진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영혜’가 육식을 거부한 채 채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단순한 식성(食性)이나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먹거리와 관련하여 더 이상 살생이라는 일체의 폭력 행위에서 자발적으로 빠져나옴으로써 세세생생 반복되는 윤회에서 탈피하려는 자기구제의 안간힘과도 같은 것이다. 요컨대, ‘영혜’는 끔찍한 꿈과 옛 기억을 통해 육식이 폭력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 일련의 과정에 자신도 부지불식간에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육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고기를 먹으면 대자비의 종자(種子)가 끊어지기 때문에 육식하지 않겠다는 것은 결국 자비를 실천하여 보살이 되겠다는 신심의 표현이며, 구경(究竟)에 이르러서는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의 적극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영혜’의 채식을 저지하고 어떻게든 고기를 먹이려는 가족은 한결같이 “너를 위해서”란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행위가 선의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한다. ‘영혜’의 친정 식구들은 “먹으면 힘이 날 거”(인혜)라거나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아버지), 또는 “이 에미 소원이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지 않”(어머니)더냐며 한사코 ‘영혜’에게 육식을 강제한다. ‘영혜’의 친정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여하여 베트콩과 전투한 사실을 자랑하고, 어린 자식에게 체벌을 가했을 뿐 아니라 시집간 딸에게 손찌검할 만큼 폭력에 익숙한 인물이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가족(‘영혜’의 어머니, 언니, 남동생, 올케, 남편, 형부 등) 그 누구도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은 것은 가부장의 폭력을 ‘자식을 위한 사랑’이라 여겼던 재래의 관습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혜’가 자신의 뺨을 때리고 억지로 입을 벌려 고깃덩어리를 밀어 넣는 아버지에게 맞서지 않고 자신의 팔을 칼로 찔러 자해하는 것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선의의 폭력’에 대한 최후의 저항이다. ‘가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은 피해자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치유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를 남기지만 표면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것은 한 가정으로 이루어진 가족구성원 사이에서 은밀하게 혹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간접적인 폭력인 데다, 가해자는 대체로 자신의 행위가 가족으로서 당연한 권리와 보호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권위와 명령에 저항하고,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마저 거부하며, 남편의 뒷바라지에 불성실한 ‘영혜’는 마침내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혼자 살다가, 형부와의 망측한 사건 이후 부모 형제와 완전히 절연된 채 정신병원에 갇혀 점차 식물로 변해간다. 한강 소설 속 인물의 식물화 과정은 이미 〈내 여자의 열매〉에서 매우 정교하게 묘사된 바가 있다. 몸에 “간난아이의 손바닥만 한 연푸른 피멍”이 점점 커지고 “햇빛만 보면 옷을 벗고 싶어”지는 〈내 여자〉의 욕망은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에서 ‘영혜’를 통해 더욱 구체적이고 집요한 형태로 그려진다. 〈내 여자〉의 ‘아내’가 “어떤 끈질긴 혼령이 내 목을, 팔다리를 옥죄며 따라다”니는 강박증에 시달리다 차츰 식물로 변해 남편에 의해 재배(栽培)되는 것과 달리 ‘영혜’는 육식 거부와 채식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일체의 영양분 섭취를 거부함으로써 식물처럼 고사(枯死)한다. 〈내 여자〉의 아내가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지만,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고 식물의 광합성을 소망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한 생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다른 생명을 빼앗아야 하고 그 업보로 자신의 생명도 똑같이 빼앗길 수밖에 없는 윤회의 업보에서 벗어나려면 인간이나 축생의 탈을 버려야 한다. 인간이 식물로 변하는 것은 불교의 육도윤회 범주에 속하지 않으므로 윤회에서 벗어나는 방편 가운데 하나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한강 소설 속 여성인물이 과거 혹은 현재의 정신적 고통이나 폭력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식물이 되기를 꿈꾸는 것은 동양의 오랜 정신문화적 전통과 깊은 유대를 맺고 있으며, 인간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 행동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버림으로써 올바름을 얻는 ‘살신성인(殺身成仁)’, 또는 가족과의 인연마저 끊고 진리를 찾아 숲으로 떠나는 수도승의 출가(出家)와 비견된다.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육식 거부, 채식, 햇빛 바라기(광합성), 일체의 영양분 섭취 거부라는 극단적 행동을 통해 내장 기능이 마비되고 마침내 수목처럼 말라가는 죽음의 상태에 도달한다. ‘영혜’가 식물화되어가는 일련의 과정은 가족과의 인연을 정리하고 구도의 길을 걷는 출가자의 자세와도 흡사하다. 다소 과장하자면 설산 고행을 끝낸 뒤 피골이 상접한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남편은 물론이거니와 부모 형제에게서조차 아무런 공감과 이해를 얻지 못하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

 

장영우 
문학평론가 ·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동국대학교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주요 논문으로 〈한국 현대소설에 나타난 미륵사상〉 〈한국 현대소설과 불교 생태관〉 〈불교적 문학관의 가능성〉 등과 《중용의 글쓰기》 《소설의 운명, 소설의 미래》 《거울과 벽》 등의 저서가 있다. 동국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유심작품상(평론 부문)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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