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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처럼 서러운 여인들 / 박미산
[69호] 2017년 03월 02일 (목) 박미산 misan0490@hanmail.net

   

박미산
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오늘이 엄마의 93세 생신날이다.

엄마가 사시는 부평으로 출발하면서 내년에도 엄마의 생신을 차려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기우였다. 엄마는 다리가 조금 불편할 뿐, 여전히 정신도 맑으시고 몸도 건강하셨다. 엄마를 꼭 안아드렸다. 엄마는 너무도 작아져서 내 품에 쏙 들어왔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셨는데 이제는 내가 엄마를 안아드리다니, 그 세월이 야속하다. 나에겐 세월이 지나도 어머니가 아닌 엄마이다. 어머니라는 말은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가끔 수봉산에 있는 절을 다니셨다. 혼자서 자식들을 책임져야 했던 엄마는 늘 일을 하셨다. 맑은 날은 일하셔야 했기에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만 절에 갔다.

수봉산을 올라가면 조그맣지만, 조촐하고 깨끗한 부용사가 있었다. 부용사는 비구니 사찰이다. 엄마는 법당에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절을 하시곤 했다. 엄마는 늘 객지를 떠도는 아버지와 자식들이 잘되라고 기원하셨을 것이다. 기도가 끝나고 부용사를 나서면 스님이 합장하고 절을 했다. 그 스님은 사십 대 후반쯤으로 정갈한 모습을 지닌 분이었다.

나는 뒤늦게 시를 공부하면서 백석의 시 〈여승(女僧)〉을 보았다. 갑자기 부용사 그 스님이 생각났다. 어렸을 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그 스님의 삶이 궁금해졌다.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늬 산(山)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백석 〈여승(女僧)〉 전문

이 시는 12행의 짧은 글에 한 여인의 일생이 오롯이 들어 있다. 한 여인이 여승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시 한 편에 표현한 점이 무엇보다도 나를 사로잡았다. 이 시를 읽고 어렸을 때 엄마랑 가끔 갔던 부용사의 스님이 생각났다. 부용사의 스님도 혹시 이런 깊은 사연이 있었을 것 같다.

백석의 시 〈여승(女僧)〉의 여인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금광이 있는 평안도에 지아비를 찾으러 왔지만, 남편의 행방은 묘연하고 나이 어린 딸은 그만 죽고 만다. 죽은 어린 딸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돌무덤으로 가매장한다. 여인은 딸도 죽고 지아비를 찾을 희망도 없어졌으므로 머리를 깎고 출가의 길을 택한다.
부용사의 그 스님도 6 · 25전쟁 통에 지아비를 찾으러 인천까지 왔지만, 남편의 행방은 묘연하고 자식들은 그만 죽어서 머리를 깎고 출가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백석의 시에 나오는 일제 강점기의 스님이나 일제와 6 · 25전쟁을 겪은 부용사 스님의 시대는 무조건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폭력적인 역사의 시대였다. 불행한 그 시대를 홀로 남은 여인들은 주어진 현실에 실존적 선택을 한다. 즉 여승의 길을 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 역사에 순응하며 살아간 그녀들의 삶은 미미하고 초라하지만, 시대의 역사를 온몸으로 쓰고 있다.

그들의 삶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우리 엄마도 그녀들의 삶과 같이 만만치 않은 질곡 많은 삶을 살아내셨다. 일제 강점기와 6 · 25전쟁을 겪으면서도 8남매를 키워내셨다. 엄마 같은 속세의 삶도 백석의 여승이나 부용사의 여승의 삶도 불경처럼 서러운 일이었다. 엄마를 다시 꼭 안아본다. 엄마 몸에서 가지취 내음새가 난다.

밤새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여승의 길을 간다는 것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혼자 길을 내며 가는 일이다. 혼자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불경처럼 서러운 일이다. 속세의 번뇌를 잊고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인고의 길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눈 쌓인 산사에서 산꿩이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가지취 내음새가 나는 그녀, 여승이 보고 싶다. 이미 돌아가셨을 테지만, 그 스님의 체취를 느끼러 부용사에 가봐야겠다.

박미산 / 서울디지털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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