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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교인구 변동과 그 의미*/ 윤승용
‐ 2015 종교인구 센서스를 중심으로
[69호] 2017년 03월 02일 (목) 윤승용 seyoyun@hanmail.net

1. 시작하는 말

   

윤승용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통계청은 지난해 12월 19일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의 하나로 종교인구 집계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조사는 1985년 이후 10년마다 조사해온 것이다. 종교인구가 발표되자 여기저기에서 종교인구의 변동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아마 종교인구가 가지는 사회 · 문화적 의미 때문일 것이다. 한국 종교계의 종교인구에 대한 관심은 거의 절대적이다. 각 종교의 교세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뿐 아니라 국가 문화 정책의 기초 자료로, 그리고 종교 내부의 종무 정책 자료로도 사용된다. 또 다른 하나는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급격한 탈종교 현상 때문이다. 한국 종교계는 탈종교 현상으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으며, 이에 나름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더욱이 종교 시장 전체가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종교인구에 관한 관심이 점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종교인들은 자기 종교를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실천 체계를 만들어 간다. 그 때문에 사회적 환경 변화와 자신의 종교적 태도는 밀접한 상관성이 있다. 신앙인은 사회적 환경 변화에 대해 실존적인 대응을 함으로써 종교적 삶을 결정한다. 이런 결정은 종교인구의 변화에 주요한 변수가 된다. 예컨대, 2005년에는 삶의 질을 고양하는 ‘웰빙’이 삶의 중심 모드였다면, 2015년에는 ‘헬조선’이라는 불안과 생존 중심의 모드로 사회환경은 크게 변했다. 그에 따라 신앙인들의 삶의 방식도 적지 않게 달라졌고, 거기에 조사의 표본추출 대상이 되는 1인 가구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였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탈근대 사조에 유일무이한 지배이념인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 같은 한국사회환경이 크게 달라짐에 따라 신앙대중의 삶의 방향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년간 종교인구의 급격한 변동은 한국의 급격한 사회 변화를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한편, 종교계는 당초 예상과 다르다며 이번 조사결과를 쉽게 수용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10년 만에 종교인구가 너무 급격하게 감소한 것, 종교지형의 지각변동, 종교현장에서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 그리고 기존의 종교인구 조사의 결과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또 종교문화라는 것은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하는 문화가 아니라는 인식에서다. 종교는 개인의 세계관과 그 실천체계를 담은 것으로서 개인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화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종교인구가 이렇게 급변할 수 있느냐는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다른 종교조사와 대비해 볼 때 이번 조사결과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년 종교인구 조사를 하는 갤럽의 조사결과나 또 다른 성균관대 한국종합사회조사 결과를 대비해 볼 때 전체적인 추세는 유사하나 전통별 각론(各論)에서 그리고 양적(量的)인 면에서 너무 다르다는 지적이다.

불교계는 불교인구가 너무 감소해 개신교에 1위 자리를 내준 충격과 그 여파에 대해 고심하고 있고, 개신교계는 교회 현장에서는 신도가 줄고 있는데도 도리어 종교인구가 증가했다는 발표에 소위 기독교 이단 종교들이 너무 많이 증가한 탓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다. 천주교는 2014년에 교황이 방한해 상당한 선교 효과가 있었음에도 종교인구가 줄었다는 데 대해 냉담자 때문일 것이라며 애써 말을 아끼고 있다. 그리고 학계에서는 종교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한 이번 조사결과를 두고 세속화되는 현대사회의 추세라며, 세속화에 따른 탈종교화의 추세를 당연시하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이번 조사의 종교인구 변화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불교 재가신도’ ‘개신교의 가나안신도’ ‘천주교의 냉담자’의 동향과도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추론을 내놓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런 요인들을 충분히 고려하면서도 이번 조사의 종교인구 변동은 지난 10년간 한국사회의 변동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이번의 통계청 종교인구 조사방법을 두고 종교계에서는 말이 많다. 하지만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는 조사의 효율성이나 경비 등의 이유로 이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종교계는 이번 조사결과를 종교인구에 대한 새로운 기점으로 잡아 나름의 대책을 세우는 것이 더 시급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조사가 이전과 표본추출이나 조사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수치의 단순 비교만으로는 변화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하여 이 글은 한국인의 종교 실태와 종교의식, 종교관, 가치관, 종교단체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조사한 한국갤럽의 조사보고서를 많이 활용하였다.

이 글은 이번 조사결과를 통해 나타난 불교의 문제점과 앞으로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먼저 통계청의 2005년 종교인구 조사에 2015년 조사를 대비해 지난 10년간의 종교인구 변화와 그 의미를 살펴보고, 종교인구가 크게 감소한 불교계 위기에 대한 원인을 분석해 보며, 그런 위기를 맞고 있는 불교계에 대한 대안적 방향을 소략하나마 제시하고자 한다.

2. 지난 10년간 종교인구 변동의 추이

이번 조사결과에 의하면, 종교인구의 양적인 차이와 종교별 각론에서 다른 양상들을 보이고는 있지만, 전체 흐름은 다른 조사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종교인은 전체 56.1%로 종교인구보다 13%p나 많고 개신교가 1위의 종교가 되었다. 종교인구는 2,155만 4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43.9%이고, 2005년 52.9%에 비해 10년 만에 무려 9%p 약 300만 명이 감소했다. 감소분의 대부분은 불교의 종교인구다. 종교별로 보면, 개신교 인구가 967만 6천 명(19.7%)으로 가장 많고, 10년 전보다 1.5%p인 125만 명이 증가하였다. 불교는 761만 9천 명(15.5%)으로 10년 전보다 7.3%p 296만 9천 명 감소하였고, 천주교는 389만 명(7.9%)으로 10년 전보다 2.9%p 112만 5천 명이 감소하였다. 그리고 근대 이후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지배종교였던 민족종교들은 모두 합쳐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는 전통종교는 불교만 지표로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종교 유형별 인구(1995, 2005, 2015)
(단위: 천명, %)
구분 인구 구성비
1995년 2005년 2015년 1995년 2005년 2015년
계 43,834 46,352 49,052 100.0 100.0 100.0
종교 있음 22,100 24,526 21,554 50.4 52.9 43.9
불교 10,154 10,588 7,619 23.2 22.8 15.5
기독교(개신교) 8,505 8,446 9,676 19.4 18.2 19.7
기독교(천주교) 2,885 5,015 3,890 6.6 10.8 7.9
원불교 86 129 84 0.2 0.3 0.2
유교 210 104 76 0.5 0.2 0.2
천도교 28 45 66 0.1 0.1 0.1
대종교 7 4 3 0.0 0.0 0.0
기타 225 196 139 0.5 0.4 0.3
종교 없음 21,735 21,826 27,499 49.6 47.1 56.1

* 특별조사구 제외, 신대승네트워크 트렌드&리서치센터 제공.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제도권의 종교인구는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이른바 탈종교의 시대다. 근대성을 기반으로 하는 개신교의 종교인구만은 예외다. 특히, 전체 종교인구의 감소에 전통종교인 불교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종교조사를 하는 갤럽의 조사를 보면, 2013년 이후 최근 3년 동안 불교의 종교인구가 매년 조금씩(0.5%p)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둘째, 연령별로 보면 20대는 경쟁사회 진출을 준비하느라 종교에 무관심하고, 우리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40대는 생존에 매달려 종교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종교 없음’의 인구 비율은 20대가 64.9%로 가장 높고, 다음이 10대(62.0%) 순이다. 종교인구 비율은 20대에서 35.1%로 가장 낮고, 이후 연령이 증가하면서 같이 증가해 70대에는 58.2%에 이른다. 2005년과 비교해 비율이 가장 크게 감소한 연령은 40대로 13.3%p 감소했고, 다음이 20대(12.8%p), 10대(12.5%p) 순이다. 젊은 층들은 종교에서 이탈하고, 기존의 신도들은 고령화되어 가고 있다. 향후 제도종교의 종교인구 감소 시대를 전망해 볼 수 있다. 특히, 고연령층이 많은 불교의 미래 확장성은 아주 불투명하다.

셋째, 지역별로는 불교는 동쪽 지역(울산 29.8%, 경남 29.4%, 부산 29.5%, 경북 25.3%, 대구 23.8% 등)에서, 개신교는 서쪽 지역(전북 26.9%, 서울 24.2%, 전남 23.2%, 인천 23.1%, 경기 23.0%)에서 종교인구 비율이 높다. 천주교는 서울(10.7%), 인천(9.5%), 경기(9.0%) 순으로, 수도권 지역에서 종교인구 비율이 높다. 우리나라 동쪽은 불교가 강하고, 서쪽은 개신교가 강하다. 특히, 수도권에서 개신교와 천주교가 강세를 보인다. 반면 이 지역에서 불교가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번 조사에서도 천주교와 차이가 1%p도 나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 불교가 천주교의 추격을 받아 2위 수성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넷째, 종교단체의 사회활동이 전반적으로 축소(3.1%p)되고 있다. 종교단체는 사회활동 비율이 감소(3.1%p)하고 문화단체는(3.3%p) 증가했다. 사회활동 면에서는 친목단체(17.1%)가 가장 높고, 문화단체(9.2%), 종교단체(7.5%) 순이다. 남자는 친목단체, 문화단체, 종교단체 순이며, 여자는 친목단체, 종교단체, 문화단체 순이다. 종교단체의 사회적 활동이 점점 감소(3%p)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단체의 사회적 비중이 줄어가고 자기 이익만을 꾀하는 이익집단으로 가는 양상을 보인다.

3. 종교인구의 급격한 변동 원인은?

그러면 세속이 중심이 되어 버린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흐름은 어떤가? 대체로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무종교의 확산과 대중문화와의 닮음, 그리고 근본주의와 영성종교의 흐름이 그것이다.

첫째는 과학과 경제(자본)가 지배하는 세속의 질주로 인하여 종교에 대한 무관심과 무신론의 확산을 들 수 있다. 이런 경향은 서구적인 세속화 흐름에 맞물려 더욱 확산하고 있다. 최근 무종교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둘째는 세속적 대중문화와 닮아가고 있다. 종교의 성향을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로 구분한다면 표층 종교의 확산이다. 이제 종교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놓고 실존적인 고민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세속적인 삶에 편익을 제공하고 세속사회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는 대중문화로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리고 종교도 자본주의에 포섭되어 상품화되고 있으며,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고, 운영 방식도 재벌 경영 방식과 유사하다. 특히, 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도 자신에게 이득이 돼야 믿고, 믿음을 가지더라도 당장 얻는 것 외엔 별로 관심이 없다.

셋째, 신앙 근본주의의 확산이다. 근본주의는 근대성의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는 신앙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으로서, 종교 교리에 집착하여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외부 타자를 배제하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세속사회에 저항하거나 자기의 주변성을 벗어나기 위해 정치적 보수세력과 결탁하여 세속사회의 가치나 위기에 저항하는 종교적 수단으로 활용된다. 어떻든 근본주의도 합리적 근대에 저항한다는 측면에서는 탈근대적 성향을 일부 띠고 있다.

넷째, 탈근대의 영성종교의 유행이다. 이들은 수련과 명상을 통하여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이들은 기존의 사회적 가치나 규범에 대해 무감각하고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다. 그런데 이들 탈근대 종교들은 근대성의 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종교들이지 근대성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종교는 아니다.

첫째 무종교의 확산과 둘째 세속적 대중문화와 닮음이 현대 세속화의 사회 흐름에 종교가 적응하는 방식이라면, 셋째 비합리적인 근본주의와 넷째 탈근대의 영성종교는 현대 세속화의 사회 흐름에 종교가 저항하는 대응 방식이다. 신앙 현장에서는 이들 4가지 방향은 서로 결합하기도 하고 서로 배타적인 관계를 가진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 종교 관련 조사에 의하면, 우리 사회 종교인구의 증감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징후가 이미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종교의 전통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보다 세속적인 가치(돈과 건강, 그리고 가족)에 관심이 커졌다. 종교의 사회활동에 대한 기대 수준이 점차 낮아지고, 종교가 살아가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였다. 또 개인주의적 성향의 증가로 인해 종교집단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경향도 분명해지고 있다. 이 모두가 종교단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탈종교 현상을 추동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종교인구의 급격한 감소도 언론에서는 대체로 서구의 세속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탈종교 현상으로 진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진단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이점들이 몇 가지 보인다.

첫째, 10년이란 짧은 기간에 종교인구가 9%p나 격감했다는 것과 탈근대 문화 사조 속에서 근대성에 기반을 둔 개신교의 종교인구가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서구의 세속화로 인한 탈종교 현상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종교문화의 흐름의 결과로 나타나는 문화현상인데, 이번의 종교인구 격감을 서구의 세속화로 인한 탈종교 현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 같다. 또한 서구의 탈종교 현상은 성과 속이 분명하고 초월성이 강한 기독교에 적용되는 현상인데, 이번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의 종교인구는 도리어 증가하였다는 점도 그렇다. 이는 서구의 세속화 이론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둘째, 이번 조사에서 종교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한 종교들을 보면, 외부 공동체와의 벽이 별로 없는 문화공동체 성향이 강한 종교들이다. 그에 반해 종교인구가 증가한 종교를 보면, 세속과 담을 쌓는 이익집단의 성향이 강한 종교다. 우리 사회와 문화적인 정합성이 강한 불교와 천주교는 감소하고 반면, 우리 사회와 문화적인 정합성이 부족하고 세속에 배타적인 개신교의 종교인구만이 증가했다는 것은 다른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오히려 한국의 전환기적 사회현상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이번 조사의 결과는 급격한 사회변동에 대해 한국 종교가 대응한 결과로 나타난 지극히 한국적인 종교현상으로 판단된다.

셋째, 갤럽 종교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내면적인 종교성은 대폭 증가하고 있으나 외면적인 종교성은 크게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단지, 개신교만은 예외적으로 내면적인 종교성도 증가하고 외면적인 종교성도 증가하였다. 여기서 내면적인 종교성이 증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개인의 종교적 욕구가 증가했다는 것을 말하고, 외면적인 종교성이 약화되었다는 것은 종교의 의례나 행사에 참여 정도가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개인의 종교적 욕구는 증가하는데 종교의 의례나 행사에 참여 정도가 약화되었다는 것은 신앙대중에 대한 종교적 설득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개인의 종교적 욕구는 증가하고 있는데도 종교인구는 도리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종교적 욕구의 증가는 종교인구 증가라는 논리적 일관성을 상실한 종교현상이다. 그런 가운데 개신교의 종교인구만 증가하였다는 것은 서구의 세속화 명제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헬조선 시대 암울한 미래와 과도한 경쟁, 그리고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탓에 개인의 불안과 강박관념은 우리 사회 종교적 욕구를 증대시켰다. 이런 종교적 욕구를 가진 개인들은 불안과 강박관념을 피해 자신의 종교적 피난처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종교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보면, 한국 종교들은 그들의 피난처를 효과적으로 제공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만일 이들에게 희망과 피난처를 적절히 잘 제시했다면 종교인구의 이 같은 급격한 감소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작금의 종교인구 감소는 종교의식의 세속화나 서구적 탈종교 현상보다도 한국사회의 불안과 생존 위기로 야기된 증대된 종교적 욕구를 수용할 수 없었던 기성 제도종교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현재 종교인구의 감소는 탈종교라는 종교적 위기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종교적 욕구를 수용하지 못한 제도종교의 한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피난처로서 ‘영성종교와 근본주의’

최근 10년간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사회환경은 앞서 언급한 저성장사회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탈근대의 문화를 들 수 있다. 신앙대중은 성장의 근대는 저물어가고, 시장이 국가와 개인을 옥죄고 있으며, 일부 근대성의 과잉으로 빚어진 탈근대가 전근대, 근대와 더불어 혼유(混有)된 삶의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이들 모두 사회의 불안을 야기하고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며, 삶의 공동체를 해체시키는 데 직간접으로 연계되어 있다. 이같이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한국사회에서 실존적인 개인은 자신의 상황을 정의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기는 더욱 어렵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경쟁원리를 근본 가치로 삼아 성과주의를 강조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한없이 해체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회의 양극화는 물론이고 개인 삶의 사회적 보호막까지 해체시키고 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개인 삶이 팍팍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종교적 피난처를 찾는 데 급급한 경향을 보인다.

다음으로 탈근대 문화는 근대성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삶의 방향성을 모색하기보다 기존의 가치와 사회 조직을 해체시키는 역할만을 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근대성의 경험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근대성이 낳은 문제들을 해결하기보다 전통적인 가치나 제도를 더욱 해체하는 것으로 작용한다. 종교적으로 보면, 제도종교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과 이른바 종교와 세속의 융합, 그리고 개인 영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금 박정희 패러다임인 성장시대를 마감하고 서로 나누며 살아야 하는 저성장시대를 맞고 있다. 한국사회의 근대는 경제성장의 근대만 경험한 ‘성장의 근대’이다. 이는 전근대가 가진 문화 정체성의 단절, 그리고 더불어 사는 민족공동체를 희생시키고 얻어낸 근대의 산물이다. 또한 그동안 많은 사람은 자신의 능력에 의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삶이 성장사회의 혜택이었다고 깨닫는 순간, 우리에게는 미래에 대한 거대한 불안이 엄습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많은 신앙대중은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나서게 되었으나 아직은 정착지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해방 이후 성장만 해왔던 한국 종교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이같이 불안정한 삶이 종교의 욕구를 증대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안식처를 제공하는 그런 종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에 신앙대중은 기성종교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기성 제도종교를 안티기독교의 상징인 ‘개독교’, 사부대중의 공동체 이름으로 자행되는 ‘비구독재’, 세속적인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종교를 ‘영혼주식회사’라고 비난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앙대중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고자 종교적 대안 즉, 기성종교에 대한 대체종교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영성종교와 근본주의다.

탈근대의 영성종교는 근대적 형태의 제도종교를 더욱 해체하는 기능을 한다. 근대의 가치와 제도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 탈근대의 영성은 스스로 개인적 피난처를 찾아 해결해 보겠다고 나선 신앙대중에게 선택되었다. 반면, 비합리적 근대성을 기반으로 하는 근본주의는 제도종교를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성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 근대성에 저항하는 측면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이 근본주의는 외부에 성을 쌓고 집단적 피난처를 요구하는 신앙대중에게 선택되었다. 이후 탈근대의 영성은 명상이나 수련을 강조하는 불교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여 제도종교와 관련된 종교인구를 감소시키는 핵폭탄으로 작용하였고, 반면 근본주의 신앙은 조직종교인 개신교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제도종교와 관련된 종교인구를 더욱 증가시키는 집단적 피난처를 만들었다.

여기에 1987년 민주화 이후 종교적 위기가 만든 종교 내부의 분열도 큰 영향을 주었다. 1990년대까지 한국 종교는 양적 성장은 물론 민주화 운동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종교는 시민사회로부터 거꾸로 자체 개혁을 요구받았다. 종교계 내부, 특히 권위주의적인 종교권력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게 제기되었다. 그동안 종교의 민주화 역할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종교의 내부가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제도종교들은 사회적 공공성이 부족하고 성장에 길들어 집단적 이기주의에 함몰되고 있다고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제도종교가 이 같은 위기를 맞게 되자 종교 내부가 분열하기 시작했다. 내부의 신앙 동력을 가지고 이 위기를 극복해보려는 핵심성원과 외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주변성원으로 양극화된다. 핵심성원들은 자기 조직을 지키고자 자기 신앙의 종교 교리에 더 집착하는 근본주의를 강화하였으며, 주변성원들은 종교조직에서 떨어져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수련과 명상의 영성종교에 탐닉하게 되었다. 전자가 종교공동체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개신교의 대형교회 사례라면, 후자는 불교공동체에 자기 위치가 없는 재가신도들의 사례다. 그 결과 개신교는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대형교회 중심으로 종교인구의 이탈을 방지했고, 반면 불교는 영성종교에 탐닉한 재가신도 중심으로 종교인구가 크게 이탈하였다.

5. 종교별 종교인구 증가와 감소

이번 조사에 의하면, 종교인구가 감소한 종교는 모두 세속과 벽이 없는 공동체형 종교이고, 종교인구가 증가한 종교는 세속과 벽을 쌓고 있는 이익집단의 성격이 강한 종교공동체형 종교다. 말하자면 산토끼를 찾아 나선 종교는 종교인구가 감소하고 집토끼를 철저히 관리한 종교는 종교인구가 증가하였다. 같은 사회적 조건에서 종교 전통에 따라 이처럼 증감이 달랐다면 우리는 각 종교의 특성을 전제해 그 증감의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2000년대 이후 형성된 탈근대 사조와 한국사회의 전환기에 각 종교의 특성이 얼마나 적합한지 따져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불교의 종교인구 감소를 살펴보자. 전통종교인 불교는 종교라는 범주에 묶여 있지만, ‘멤버십(membership) 종교’인 개신교와는 신앙과 조직 등 여러 면에서 다르다. 한국불교의 특성은 세속과 격이 없는 공동체 중심의 종교다. 그래서 문화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나 시민으로 조직된 공동체가 아니라서 근대조직으로서 힘을 받을 수 없다. 또 불교 신행은 출가한 승려 중심이고 개인의 깨달음을 지향하는 개인주의적 종교다. 불교에서 집단 깨달음이란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전통에 기반을 두는 승가는 수행집단의 공동체를 의미할 뿐 권리와 책임을 가지는 근대적 개인들로 구성된 근대적 조직이 아니다.

그래서 집단의 종교성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종교조직의 면에서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근대성의 수준에서도 대단히 미흡하다. 또는 민주적 대중공의의 전통을 말하지만, 그것은 수행공동체인 승가 집단 내부의 문제다. 거기에는 시민인 일반 재가신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불교는 모양새만 근대적인 종단이지 그 내면은 근대성과는 거리가 멀다. 하여 근대조직으로서 동력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불교는 현대사회에서 조직적인 안정성이 없어서 사회환경에 따라 불교의 종교인구는 출렁거릴 수밖에 없다. 대체로 불교의 종교인구가 증가하면 한국의 종교인구도 증가하고 불교의 종교인구가 감소하면 한국의 종교인구도 감소한다.

또한 불교는 동시에 상당히 개방적인 신앙을 하고 있다. 출가한 승려들은 세속과의 경계가 분명하지만 재가신도들은 세속과의 경계의식이 거의 없다. 심지어는 종교의식과 실천 면에서 불교인은 오히려 비종교인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또 신앙의식에서도 외부 집단에 대해 아주 개방적이다.

이는 공동체의 종교로서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불교 조직에 충성도가 낮고 신앙에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멤버십을 묻는 종교인구 조사에서는 항시 문제가 된다. 역사적으로도 불교가 호법을 지향하는 호법불교이기보다 호국을 지향하는 호국불교로서 호명되어 온 것도 이 같은 신앙의 개방성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다불교(多佛敎) 현상도 마찬가지다. 이는 한국불교가 개방성, 포용성을 가진 것으로 강점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을 한국불교 전체에 연결해서 자리매김하고 해석해 내지 못한다면, 역시 불교의 종교인구를 이탈시키거나 분산시키는 효과만 낳는다.

여기에 더하여 개방적인 한국불교는 2000년대 탈근대의 시대조류를 타고 불교 신행과 유사한 탈근대 종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명상과 수련을 강조하는 탈근대 종교는 근대적 가치나 제도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동기에서 등장한 종교들이다. 이들은 근대성의 과잉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근대의 문제들을 해소하고자 하는 비조직적인 개인 종교들이다. 특히, 근대종교가 가지는 억압적 특성, 즉 실천이 부족한 내면적 신앙의 강요, 성속(聖俗)의 엄격한 분리로 인한 세속에 대한 무관심, 제도종교 권력의 억압, 규격화된 타성적인 신앙 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근대성의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전통적인 종교가 개인 영성을 강조하는 탈근대 종교를 무조건 받아들이면, 유사불교 신앙의 확산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조직의 구성원 수를 따지는 불교의 종교인구 증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규범적인 제도종교를 이탈하여 각자 자기 길로 분산하고 만다. 그 때문에 불교는 불교 신행에 적합한 탈근대의 시대사조를 맞이하고서도 종교인구의 감소라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먼저 한국 개신교의 종교인구 증가부터 살펴보자. 개신교는 본래 만인사제장(萬人祭司長)이라고 하여 평신도를 중심으로 한 근대적인 조직 종교이다. 그리고 개신교 공동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외부와는 다른 집단적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개인의 철저한 회심에 의한 내적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앙공동체의 집단구원을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개신교공동체는 외부와의 경계가 확실하고, 집단의 어려움이 있을 때 집단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런 특성을 가진 한국 개신교는 해방 이후 혼란을 거듭한 한국사회에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급성장을 이루었고, 지난 10년간 종교인구의 급감 시대에도 종교인구 성장이라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해방 이후 개신교 성장의 주요 모델은 개척교회였다. 그러나 저성장사회에서는 그런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직도 대형교회에는 저성장사회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신도를 수용하고 있다. 아마 현대사회의 종교에 잘 맞는 근대조직과 운영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종교공동체를 통해 적당한 익명성을 보장하고 필요한 인맥 쌓기의 장과 세속 생활의 편익도 제공하며, 사회적 불안에 대한 피난처 역할도 해주고 있다. 그 때문에 저성장사회인 지금도 대형교회의 신도들은 거의 줄지 않는다. 설령 이들이 대형교회에서 이탈하여 가나안 신도가 되거나 소위 이단 종교에 유입된다 하더라도 ‘참기독교인’이라는 신앙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개신교의 종교인구로 남는다.

여기에 더하여 개신교의 종교인구 증가를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단서가 있다. 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종교현상에서 개신교만의 예외적 현상이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내적 종교성과 외적 종교성이 동시에 증가한 유일한 종교다. 그리고 주간 단위 교회 참여 비율과 십일조를 이행하는 비율이 30년간 조사한 이래 가장 높았던 종교다. 또 종교의식과 실천 면에서도 한국의 개신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아주 독특하다. 종교의식과 실천에서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 간 종교 인식의 격차가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격차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런 것을 종합해 본다면, 한국의 개신교는 자신을 비난하는 외부에 대해 철저한 방어막을 일단 만들고, 또 내부에서 신도들을 철저하게 관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도종교에서 이탈하는 잠재 요인이 되는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근대성을 기반으로 한 개신교에 부정적이었던 탈근대의 종교 사조에 대해 조직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 대응 수단이 바로 배타적인 근본주의 신앙과 이익집단적인 근대 조직문화의 힘이었다. 여기에 경쟁의 성공이 하나님 은혜의 징표라는 자본주의 체제와의 친화성도 개신교 인구 증가에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6. 맺는말: 향후 불교는?

이번 조사에서 불교인구의 급속한 감소와 개신교인의 증가현상을 보면, 종교인구 감소시대에는 산토끼를 찾아 나설 것이 아니라 집토끼를 잘 관리하는 전략이 더 주효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종교인구 감소가 재가불자들의 조직 이탈과 그것을 방치한 비근대적인 불교 조직에 원인이 있다. 그렇다면, 불교계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가 분명하다.

우선 재가불자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지게 하고, 다음은 비근대적인 불교공동체를 혁신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주인의식을 가지지 않으면 불교의 종교인구 감소는 물론이고, 현대의 생활종교도, 시민종교도 결코 되기 어렵다. 불교공동체의 구성원 전체가 권리와 책임을 가지는 근대조직으로 정착하지 않고는 이런 문제들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또한 이번 조사결과는 불교가 과거 전통에 의존하는 비근대적인 불교공동체를 가지고는 합리적이고 조직 중심인 현대 세속 중심 사회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불교는 승려 중심의 사회 · 문화적 종교이자 세속과의 경계(境界)의식이 별로 없는 공동체 종교이다. 하여 신앙의 정체성이나 조직의 경계가 불분명하여 외부의 환경변화에 그만큼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작금의 한국불교는 전통적인 종교 기능에만 치중하고 현대 대중문화로서 종교 기능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신앙대중의 실존적 불안에도 전통적인 방법만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 신앙대중이 스스로 깨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승가를 포함한 엘리트 불교인에게는 해당될 수 있을지언정 불교 주변에서 서성이는 신앙대중에게는 거의 설득력이 없다.

작금의 불교공동체는 전통의 이름으로 승려의 수행 성과인 법랍(法臘)만으로 모든 조직의 위계질서가 결정된다. 여기에는 출가만 있을 뿐 재가들이 위치할 자리는 없다. 재가들은 이미 단순 고객집단으로 전락했다. 따라서 그들은 불교공동체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질 수도, 가질 이유도 없다. 한국불교는 전통의 계승이라는 이름으로 앞서 언급한 현대사회의 종교 흐름을 애써 외면해 오고 있다.

한국불교는 현재 현대사회에 맞는 대중문화로서 종교적 역할을 보강하고 또 불교공동체의 비근대성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출가와 재가의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근대적인 불교공동체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는 한 불교의 종교인구 감소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이라도 승려를 포함한 사부대중 모두가 불교공동체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시급히 찾아 나서야 한다. ■

 

윤승용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동 대학원 졸업(철학박사). 한국신종교학회 회장, 한국갤럽조사연구소 사회조사 담당이사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최근 20년간 한국종교문화변동〉 〈종교통계로 본 한국불교〉 〈한국종교의 사회세력화 형태와 전망〉 등이 있고, 저서 및 편저로 《한국종교의 의식과 예절》 《한국종교와 종교학》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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