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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와 불교 / 김애양
[68호] 2016년 12월 01일 (목) 김애양 은혜산부인과 원장

의사는 수학을 잘할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추측과는 달리 나는 숫자에 몹시 약하다.

 물건값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간단한 덧셈이나 뺄셈이 서툴러 실수를 반복한다. 직원 월급을 제날짜에 못 주는 건 예사이고 산모들의 분만 예정일도 틀리게 적어 진땀을 빼곤 한다. 시어머니와 고스톱을 칠 때도 암산이 되지 않아 종이에 끼적이며 셈을 할 수밖에 없는데 아마 그 이유는 산수의 기본인 구구단을 제대로 외우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산수 시간이 제일 지루했는데 2학년 때 구구단이 나오고부터는 하도 어려워 그만 학교에 가기도 싫어졌다. 오빠와 언니들은 그까짓 것도 못 외우느냐고 막내인 내게 손가락질하며, 늦게 태어나 지능이 나쁜 게 틀림없다고 혀를 찼다. 식구들이 하도 놀리기에 나도 외우고 말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어머니와 약속을 했다. 구구단을 다 외우면 스케이트를 사주는 것으로.

당시엔 겨울이면 야외 스케이트장에 가는 것이 대단한 연중행사였다. 그 스케이트장이란 논이나 개천 일부를 새끼줄로 구획을 정하고 얕은 곳에서 얼음을 지치게 하는 열악한 놀이터였는데, 한번 넘어지면 온몸에서 오물 냄새가 나서 과연 무엇을 얼린 것인지 심히 의심이 가게 했다. 하지만 겨울철 우리의 유일한 오락시설이었다고나 할까?

그곳에서 학교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면 신데렐라 파티에라도 모인 것처럼 우쭐해졌다. 그런데 내 몫의 스케이트가 없어서 고등학생인 언니의 것을 얻어 신었기 때문에 얼음을 잘 지칠 수도 없거니와 영 모양새가 나지 않는 게 문제였다. 스케이트 안에다 뜨개질 실타래를 한가득 집어넣어도 헐거운 틈새로 발이 따로 놀았다. 그래서 눈만 뜨면 스케이트 타령을 했더니 어머니는 조건을 내걸어 구구단을 다 외우면 사주겠노라고 약조를 하신 것이다. 나는 먼저 마루에다 양초를 발라 미끄럽게 만든 다음 두꺼운 양말을 신고 그 위에서 스케이트 타는 폼을 잡으며 구구단을 외었다.

2주 이상 애를 쓴 후에야 비로소 8×9=72처럼 높은 숫자들도 암기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마침내 식구들 앞에서 능숙하게 암기했더니 어머니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스케이트만큼은 사주려고 하지 않았다. 날마다 나는 스케이트를 사달라고 졸랐고 그 꿈은 번번이 좌절되었는데 그때마다 구구단이 조금씩 머리에서 빠져나갔다. 그 겨울이 지나고 3학년이 되었을 땐 2×2=4처럼 초보적인 것도 기억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구구단을 못 외운 채 수학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상상이 안 될 것이다. 숫자만 보면 손가락이 먼저 나서서 더하고 빼곤 했는데, 대학에 무사히 진학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다행히 곧 전자계산기가 보편화되는 세상이 왔기에 더는 구구단 때문에 속 썩지 않아도 좋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유난히 숫자에 능한 남편을 만나게 되자 나의 빈약한 수리능력이 금방 탄로가 나고 말았다. 어쩌면 그렇게 단순한 셈도 못하냐고 놀림을 받았는데, 하루는 방금 잰 양복 치수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가엾은 듯이 바라보면서 “그 머리로 당신이 어떻게 의사가 되었는지 불가사의할 따름이야.” 하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불가사의란 단어에 무척 끌렸다. 그리고 불가사의의 뜻을 찾아본 그날 이후부터 숫자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요즘에야 워낙 큰 부자가 많지만 전에는 만(萬)의 만 배인 억만금만 가져도 모두들 부러워하곤 했다. 그 억(億)이란 글자를 보면 사람[亻]과 뜻[意]으로 이루어져 우리 생각의 한계를 거기까지로 정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억보다 큰 숫자가 얼마든지 더 있는 게 아닌가? 즉 억은 10의 8승이고 그보다 만 배씩 커지는 숫자는 조, 경, 해, 자, 양, 구, 간, 정, 재, 극,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순이다. 그다음이 불가사의니까 이것은 10의 64승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숫자란 말인가. 불가사의의 만 배가 무량대수이고 그 만 배가 겁이라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겁(劫)이 10의 72승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숫자의 세계에는 큰 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1보다 작게는 할, 푼, 리, 모, 사, 흘, 미, 섬, 사, 진, 애, 묘, 막, 모호, 준순, 수유, 순식, 탄지, 찰나, 육덕, 공허의 순으로 줄어들어 1의 마이너스 22승을 청정(淸淨)이라 부르는 것이다. 1이 퍽 작은 줄 알았는데 점점 더 작아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쓰는 모호라든가 순식간, 찰나, 공허 등의 단어들이 숫자의 개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마음이 청정하다는 것도 결국 생각을 모두 비워 영과 비슷한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이 막대한 숫자의 범위 가운데 나를 1이라 정하고 내 욕심을 키우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반대로 욕심을 줄이면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 어림해 보았다. 저 우주만큼 클 수도 저 허공만큼 작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은 저마다 하나의 소우주로 존재한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이다지도 숫자의 세계가 광활할진대 고작 구구단 따위에 연연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숫자 단위에 관심을 갖고 나서부터 내 욕망의 크기를 측정하다 보니 이젠 산수가 하나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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