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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너그러움을 배우는 소멸의 시간 / 이창숙
특집 | 고령화 사회와 불교 : 4인의 불자(佛子), 늙음을 돌아보다-우바이
[68호] 2016년 12월 01일 (목) 이창숙 1hwasun@hanmail.net

보살님은 50대, 나는 30대에 절에서 만나 알게 되어 40년 가깝게 인연을 이어오다가 3년 전에 돌아가셨다. 마음이 곱고, 모습도 단아한 분이셨다. 보살님이 70대 중반이 된 어느 가을날, 점심을 같이 먹다가 문득 그러셨다. 늙는 것은 코너로 몰리는 거라고. 처음에는 가장자리로 밀려나다가 다음 단계는 코너로 밀려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지는 거라고. 속으로 흠칫 놀랬다. 평소에 그런 말씀을 안 하던 분이셨다.

보살님은 30대에 남편과 사별한 후 1남 4녀를 키우셨고, 아들 내외와 손자들과 살고 계셨다. 보살님이 내보이신 속내인즉, 남편이 간 후 아들 삼아 남편 삼아 의지하고 살던 아들을 장가보내고 나니, 아들 옆이라고 생각했던 당신의 자리는 며느리가 차지하고 당신은 내쳐진 것 같았다고 한다. 마음이 허전해져서 죽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여러 번 하셨다고 한다. 마음을 달래려고 절에 다니면서 법문도 듣고 기도도 하고 참선방에도 드나들면서 세월을 보내고 나니, 지금은 며느리에 대한 미움도 어느 정도 없어지고 고마운 생각도 많이 든다고 하셨다. 마음에 미움이 가득했던 그때 갔더라면 어쩔 뻔했느냐는 말씀도 하셨다. 몇 년 후 보살님은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요양원으로 가시게 되었다. 한 달쯤 후 보살님을 뵈러 요양원에 갔다. 나를 본 보살님은 서럽게 우셨다. 식구들이 많이 보고 싶다고 하셨다. 버려진 것 같은 두려움도 느끼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당신이 여기에 있는 것이 옳다는 말씀도 하셨다.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내 생각을 했다. 요양원에 와서 살다가 가게 되면 안 되는데, 하는. 그곳에 계시는 동안 여러 번 찾아뵈었다. 차츰 그곳 생활에 적응해 가시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그런 말씀도 하셨다. 미움을 버리는 건 어느 정도 되는데, 사랑은 버려지지 않는다고. 며느리에 대한 미움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됐는데, 아들에 대한 사랑은 버려지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가끔, “염불은 잘 되세요?” 하고 여쭤 보기도 했다. 어느 날은 밝은 얼굴로 열심히 한다고 대답하시고, 어느 날은 깜박깜박 잊는다고도 하셨다. 그래도 염불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시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보살님은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고 한다.

임종 며칠 전 병원의 연락을 받고 달려간 비구니인 따님에게, 보살님은 환한 얼굴로 “스님, 나, 낼모레 가요.”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가신다는 날에 가셨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요양원에 와서 살다 가게 되면 안 되는데’ 했던 내 생각을 바꿨다. 가는 날을 알 정도가 되면 어디서 죽든지 그게 무슨 상관이람. 돌이켜 보면 보살님은 내게 노년과 죽음에 대해 선행학습을 시킨 선지식이셨던 거였다.

노인이 되어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드디어는 코너로 내몰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삶의 조건이 참을 만할 때의 이야기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노년으로 깊이 들어가면 병마가 찾아오고, 가난의 고통에 직면하는 일도 있고, 비루한 일상이 펼쳐지기도 한다. 인생의 4대 명제인 생 · 노 · 병 · 사 중에서 병과 사만 남은 것이 노년이다. 큰 병에 안 걸려도 모든 것이 버거워지는 시기다. 눈도 침침해지고, 귀도 잘 안 들리고, 관절도 삐걱댄다. 끝내는 누추한 꼴을 보이고 마는 것이 늙음이다.

이 시대 노인들에게는 전 세대 노인들보다 힘든 일 하나가 더 있다. 인터넷 세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SNS 메신저의 세상이다. 초등학생까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오늘날, 대부분의 노인은 젊은이들의 세상과는 상관없이 산다. 그 세상은 노인들에게는 다른 세상, 언더그라운드의 세계다. 디지털 세상이 발전해갈수록 노인들에게는 모르는 일, 불편한 일들이 많아진다. 젊은이들은 어르신, 어르신 하면서 겉으로는 노인을 배려하는 체하지만, 노인의 지혜는 젊은이가 속으로는 무시한다는 걸 눈치챈다. 그러나 모르는 체하는 것 또한 노인의 지혜다.

사람마다 사는 모습이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노년에 이르면 그 한 사람의 사는 모습도 젊은 시절과는 다른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젊은 시절에 잘 나가던 부귀영화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신세가 되는 모습도 있다. 젊은 시절에는 존재감이 없었는데 노년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인생도 있다. 인과를 믿는 불자의 입장에서 보면 노년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종합성적표와 같은 것이다. 좋은 성적표를 받으려고 아무리 원해도 거기에는 공짜가 없다. 어디에도 우연은 없다. 그 엄정한 과보는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운 것이다.

일본의 어느 동화 작가가 일흔에 암 선고를 받고 자기는 죽기에 딱 좋은 나이에 와 있으니, 수술도 항암치료도 안 받겠다고 했다 한다. 나야말로 죽기에 딱 좋은 나이에 와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노년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런 나이까지 살았다는 것은 축복이다. 누구에게나 노년이 있는 것은 아니니.

노년을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마무리하고 갈 시간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잘못한 것이 많았더라도 참회와 발원으로 회향할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어느 나이라도 불자라면 ‘참회와 발원’이 기본이 되어야 하지만 노년에 오면 참회와 발원은 더 절실해진다. 시간이 촉박하니까.

철이 없어서, 생각이 모자라서 저지른 일들도 있고, 인색한 마음이 들어 베풀지 못한 일도 있다. 내 생각이 정의라는 확신에서 아프게 따진 일도 있다. 과연 내 생각만이 정의였을까. 상대방은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섭섭했을까. 그런 순간들이 떠오르면 몸서리쳐지게 부끄럽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 대상이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면 더욱 참담하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내 몸과 마음을 다해 나의 잘못을 참회한 후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
그리고 나는 발원한다.

나는 세상 만물과 화해하고 가고 싶다. 피해를 당한 일도 있고, 상처를 받은 일도 있고, 누군가를 미워했던 일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 예외 없이 누구라도 무엇이든지 용서하려고 노력한다. 아직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실망하지는 않는다. 안 되면 다시 또 하면 되니까.
세상살이에 대한 집착도, 사랑도 미움도 다 털어버리고, 가볍게 가고 싶다.

금생에 만났던 따듯한 인연들에게 고마웠다고 말하고 갈 수 있게 되면 좋겠다. 헤어지기 싫지만 이별은 선선하게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가기 전에 한 번쯤은 항상 부족했던 내가 나에게 칭찬의 말 한마디를 해주고 싶다.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애썼다고.

노년은 소멸의 시기이다. 소멸은 겸손과 너그러움을 가르친다. 노년의 겸손에는 주어지는 보상이 있다. 한 발짝 물러나서 보면, 무심히 지나쳐 버린 것들이 눈 안에 들어오고, 소박한 것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미처 몰랐던 사물의 속내를 알게 되어 혼자서 끄덕이고, 무릎을 치는 일도 있다. 고마운 일들도 너무 많아졌다. 어느 노인은 손자를 돌보면서 지금에서야 어린 시절 자기를 키우던 외할머니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실토했다. 그건 순전히 손자 덕분이라고, 손자가 고맙다고. 그리고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노년의 하루하루에 버겁고 고깝고 소외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깨달음이 주는 소소한 기쁨도 있다. ■

 

이창숙 / 여성불교학자.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동국대학교대학원 불교학과 졸업(철학박사). 〈대한일보〉 〈한국일보〉 기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강사, 불교여성개발원 자문위원 등 역임. 저서로 《불교의 여성성불 사상》 《1974년 겨울 · 유신치하 한국일보 기자노조 투쟁사》(공저)가 있다. 원효학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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