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고령화 사회와 불교

‐ 생물학적, 의학적, 심리학적 차원에서 본 늙음의 정의

1. 노화란 무엇인가

길을 가다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오랫동안 못 봤던 친구인데 머리도 희어졌고 짙던 머리숱도 많이 빠졌다. 반가운 눈빛은 그대로인데 눈가와 입가에는 미소와 함께 주름살도 깊게 패어 있다. 이 모두가 세월에 따라 늙어간다는 신체적 신호이리라. 이렇게 변한 서로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중에 그의 엄지손톱이 툭 빠져 땅에 떨어진 상황을 상상해 보자. 갑자기 떨어진 손톱.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어렵지만, 혹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가정하더라도 손톱이 빠진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걱정하지 마. 그저 노화 현상일 뿐이야.”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은 노화(老化)이고, 손톱이 빠진 것은 왜 노화라 하지 않을까? 오늘 나눌 이야기는 이 노화가 주제이다. 우리는 매일, 아니 매시간, 아니 매분 매초 늙어간다. 시간이 흘러가며 우리는 늙어가는데 늙어감이란 무엇일까? 남녀 간에 노화의 차이는 왜 일어날까? 우리 몸속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의 기억력은 나이를 먹어가며 자꾸 떨어지는 것 같은데, 건망증과 치매는 구별할 수 있는 것일까? 늙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늙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보자.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은 주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주제이기에 준비하고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임이 틀림없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 글을 다 쓰면 나는 조금 더 늙어 있을 터이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또 그만큼 늙어 있을 터이니, 뜸 들이지 말고 이야기에 들어가 보자.

1) 늙어감은 늘어감이다.

늙어감은 늘어감이다. 무엇이 늘어날까? 나이, 주름살, 흰머리? 그렇다. 나이가 늘어나며 주름살도 늘고 흰머리도 늘어난다. 세월이 흘러가며 생기는 노화의 변화를 사람이 어찌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이가 들어 흰머리가 생기고 주름살이 생기더라도 모든 것이 똑같이 늘어가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늙어가며 고집이 늘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연륜에서 오는 여유가 늘 수도 있다. 세월 속에 터득한 삶의 지혜가 늘 수도 있고 학문적 지식이 늘어갈 수도 있다. 이러한 지혜와 지식이 한 사람에게만 갇혀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떤 이는 그러한 지혜와 지식을 여유 있게 베풀기도 한다. 베풂이 느는 늙음, 상상만 해도 멋있는 노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고집이 늘지, 지혜가 늘지, 베풂이 늘지, 어떤 것이 늘어갈지는 자신의 삶 속에서 드러난다. 늙어간다는 것은 그렇게 자신의 초상화에 한 점 한 점 더해가는 것이다. 늘어나는 모습에 기뻐할 수도 혹은 낙담할 수도 있겠지만 늙어감은 늘어감이다.

늙음은 그 늘어감만큼 잃어감이다. 하나하나를 잃어간다. 젊었을 때 가졌던 직위도 잃고 힘도 잃고 기억도 점차 잃어간다. 이십 대 젊었을 때 가졌던 희망은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지고 의욕도 잃어간다. 그래서 늙음의 가장 큰 특성을 상실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며 이렇게 잃어가는 것들을 손에 움켜쥐려 해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손가락 사이로 하나하나 빠져나간다. 잃어가기 전에 오히려 가지고 있던 것을 스스로 버림을 익히는 것이 노인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가며 잃어가고 있는 것들에 매달리고 집착하는 모습은 늙음의 상실을 추하게 만들 수도 있다. 늙음의 본질로서 상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손에서 놓고 비어가는 모습의 노인을 만나면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나이가 들어가며 무엇을 스스로 놓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너무 과하게 칠해졌던 자신의 초상화가 이렇게 부분부분 지워지면서 더 완숙한 인생이 된다.

늙어감에 따라 이렇게 늘어나는 것도 잃어가는 것도 있다. 무엇을 더하고 뺄 것인지. 늘어가고 잃어가는 것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늙어감에서 중요하다. 주름살만 더해진 채 잃어가는 것을 붙잡으려는 수심에 찬 늙은이의 얼굴이 될지, 주름살이 더욱 깊어지나 여유 있게 푸근한 미소 띤 노인의 얼굴이 될지 자신의 삶 속에서 결정된다. 태어날 때 자신의 얼굴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지만, 노인의 얼굴은 부분적으로 자신이 만든 것이다. 얼굴 자체가 아니고 주름살로 국한하여 생각해도 주름살이 두 눈썹 사이에 고집스럽게 자리 잡는 흉한 모습이 될지, 입술 양옆에 깊게 파여 웃음 자리가 될지는 자신이 그려간다. 늙어가니 늘어가고, 늙어가니 잃어간다.

2) 노화와 질병은 어떻게 다른가

노인이 되면서 젊었을 때 없던 질병이 하나둘 늘어난다. 노화와 질병 모두 노인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여러 기능을 떨어뜨리고 삶의 질을 저하한다. 노화와 질병은 어떻게 구분할까. 노화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특성을 가진다.

첫째 보편성. 즉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변화이어야 한다. 나에게는 생기는데 다른 이에게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생기지 않는다면 노화라 할 수 없다. 반면에 질병은 특정한 누구에게 다가가 그의 삶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둘째 내인성. 노화는 외부적 충격으로 손상을 입어 생기는 변화가 아니며 우리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즉 원인이 외부에 의해 발생한 변화는 노화로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세균이 우리 몸에 들어와 폐렴 등 감염을 일으켜 몸이 쇠약해진 것을 노화라 일컫지는 않는다. 넘어진 충격으로 척추 압박 골절이 발생해 거동이 불편해진 상태를 노화의 범주에 넣지는 않는다. 이런 외인적 요소에 의한 변화는 질병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노화에서 제외된다.

셋째 쇠퇴성.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능은 점차 쇠퇴해 간다. 체내 장기마다 쇠퇴하는 속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노화에 따라 그 기능은 떨어지는 방향으로 향한다. 이러한 쇠퇴성은 노인성 질환의 발병률을 높이며 치료 반응 및 회복률을 낮추어 노인의 기능을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인 노쇠에 이르게 한다.

마지막으로 점진성. 노화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매일매일의 변화를 스스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노화는 천천히 진행된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왔을 경우 그것은 노화가 아니고 질병으로 인한 경우가 흔하다.

노화의 특성을 알아본 이유는 무엇일까? 노화를 안다는 것은 의학적으로는 질병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노화와 질병을 구별한다는 것은 나이 들어가는 중에 만나는 여러 변화를 우리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노인 환자를 접한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이 변화된 신체적 현상을 치료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놓아두도록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할 것이냐는 좁은 분야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의료인의 임상적 판단의 차원만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 나이 들어가며 생기는 여러 신체적 변화를 대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일반적 차원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질병에 걸린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질병은 노화와 달리 누구에게나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일부의 사람에게 주로 외부적 요인에 영향을 받아 발생하며 그에 대한 치료 방안들이 제시된다. 폐렴에 걸리면 항생제를 사용하고, 다리가 부러지면 수술을 한다. 이 치료를 통해 우리는 병 전 상태에 가깝게 돌아오도록 최선을 다한다. 간혹 병 전 상태로 온전히 돌아오지는 못하더라도 질병 상태보다는 회복되는 것이 치료 가능한 병들의 대부분 진행 과정이다. 이 치료 과정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시간 자체가 인생에서 엄청난 비용에 해당하지만, 경제적 비용도 들어가게 되고 검사나 치료 과정에 받아야 할 여러 불편 혹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비용과 시간, 불편과 고통을 질병의 치료 과정에 받아들이는 것은 질병 치료 후 질병 전 상태로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즉 질병 전 상태에 가깝게 돌아가기 위함이다. 질병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이런 노력과 수고를 해 나간다.

반면에 노화는 어떤 점이 차이가 있을까. 우리가 늙어가며 생기는 변화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만약 질병이 아니고 노화로 인한 것이라면 그 과정은 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누구에게나 발생하고 외부 요인이 아닌 내재적 요인에 의해 일어나며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닌 점진적으로 쇠퇴하는 과정을 노화라 정의한다. 노화를 질병으로 잘못 판단해 무의미한 처치를 수행한다면 어떤 결과를 낳을까. 그 처치에 수반되는 여러 비용과 불편, 고통은 무의미한 것일 뿐 아니라 치료 대상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그 반대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이가 90세로 평소에 거동도 잘하시고 기억력도 좋고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로 살아가는 노인이 어느 날 갑자기 기력이 떨어지고 식사를 못 해 응급실로 갔다. 그 노인을 본 의사가 90세 고령으로 노화로 인한 것이라 판단되니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면 그 판단은 맞는 것일까. 혹시 간단한 흉부 촬영이나 혈액 검사를 해 보니 폐렴 초기였고, 항생제를 투여하니 사흘이 지나 증세가 좋아져 일주일째는 퇴원하는 상황이었다면 처음의 노화와 관련해 그 증세를 받아들이고 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 될 것이다. 90세라는 나이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90세 노인에게 일어나는 변화라고 해서 모두가 노화는 아니다.

고로 노화와 질병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노화가 천천히 일어나도록 평소에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화로 인한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역시 중요하다. 반면에 치료할 수 있는 질병에 걸린 상황에서 고령이라 하여 질병과 노화를 구분하지 않고, 노화와 관련된 변화로 잘못 판단하여 회복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생명을 놓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2. 왜 늙는가

1) 노화 이론들

왜 늙는가. 왜 늙는가에 대한 대답은 진시황만의 관심사는 아니다. 누구나 이에 대한 답을 얻길 원하고 노화의 원인을 찾기 위해 많은 과학자는 실험과 연구를 해왔다. 여러 노화 기전(機轉)들이 제시되고 그것과 관련된 많은 연구 결과들이 있다. 이 글의 목적이 노화 이론을 과학적으로 자세히 다루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여러 노화 이론들을 모두 다루지는 못하더라도 노화 이론의 두 가지 뿌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프로그램 이론이고 또 하나는 손상이론이다. 즉 노화란 것이 우리 몸에 내재한 기전에 의한 것이냐는 관점과 외부 요인에 의해 조금씩 손상을 받아 노화가 이루어진다는 관점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프로그램 이론에는 노화 시계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염색체 끝에 텔로미어라는 부분이 있어 나이가 들어가면서 텔로미어가 짧아진다. 텔로미어를 노화 시계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 텔로미어라는 노화시 계가 장착되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노화 시계도 시곗바늘이 지나가게 되고 어느 시간이 되면 그 시계가 멈춘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한 실험으로 헤이플릭 한계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헤이플릭 한계는 세포가 생존하는 한계를 뜻하는데, 인간의 헤이플릭 한계는 50회로 정상 세포의 분열은 50회 정도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현재의 몸을 유지하는 것은 세포가 노화되거나 손상되어 소멸함에 따라 새로이 세포가 분열되어 보완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세포분열은 지속해서 일어나게 되지만 세포는 일정한 횟수의 세포분열 이후에는 더는 세포분열이 일어나지 않아 노화에 대처할 세포 재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이론은 우리 몸에 텔로미어가 노화시계 역할을 하여 삶의 시간이 흘러가면서 결국 노화가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손상이론은 외부 여러 자극에 우리 몸이 늙어감을 의미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자동차도 오래 탈수록 칠한 부분이 벗겨나가고 바퀴도 닳고, 엔진 소리도 시끄러워진다. 기계가 닳아 고장 나고 녹스는 것처럼 우리 몸도 나이를 먹으면서 녹이 슨다. 철이 녹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이 녹스는데 그 범인을 산소와 관련하여 설명한다. 호흡을 하면 산소는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 하지만 과하게 남은 불안정한 산소가 세포 내에서 손상을 주는 유리기로 작용을 한다. 이런 기전에 근거하여 항산화제는 노화 방지의 열쇠로 관심을 끈다.
노화를 막기 위한 노력은 노화시계로 여겨지는 텔로미어의 단축을 막는 방법을 찾거나 체내 산화 유리기의 발생을 억제하기 위한 길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노화에 관한 더 많은 기전을 알아가고 있지만, 실제 노화 방지는 아직은 실험실 차원이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텔로미어의 단축을 막기 위한 텔로머레이스라는 효소의 활성화가 노화를 방지하기보다 암의 위험성을 높이는 문제점이 지적된다. 산화 손상 기전과 관련하여 유리기는 노화 관련 손상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노화 기전을 밝혀내는 것은 어렵고 노화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기는 더욱 쉽지 않은 작업이다. 노화를 어떻게 설명하더라도 결국은 프로그램 이론과 손상이론 중 한 가지 측면으로만 노화를 설명할 수는 없다. 어떤 원인이든 세포는 손상되고 노화된 손상 세포를 청소하는 과정이 노화라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2) 왜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가

남자와 여자의 수명 차이는 모든 지역과 인종에서 여성의 평균 수명이 높다. 과거에도 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살았고,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과 같이 사회경제적으로 차이가 있는 국가에서도 비슷하게 여성의 평균 수명은 남성보다 길다. 이것은 남녀의 노화에서 다른 요인들보다 근본적인 생물학적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는 현상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이유에 대해서 명백한 이유를 밝히고 있지는 못하다. 만약 여성의 수명이 긴 이유를 찾아낸다면 노화 비밀의 열쇠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화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성별 노화 차이를 다루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시작된다. 성별의 특성 중 노화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수정이 되기 위해 3억 마리 정도의 정자가 한 개의 난자를 만나기 위해 경주를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Y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X염색체를 가진 정자보다 조금 빠르게 헤엄치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XX보다 XY의 수정체가 더 많이 수정이 이루어지고, 남아의 출생 비율은 일반적으로 여아보다 높다. 남아 선호 사상과 같은 사회적 요인을 제외한 경우에서도 이러한 생물학적 요인으로 남아 출생 비율이 높다.

하지만 남성호르몬 분비가 증가하는 사춘기 남성에게서 사고사 등의 위험률이 다소 높아지며 25세 무렵에는 여성 인구수가 남성을 앞서기 시작하는 경향을 보이다가 그 후 평생에 걸쳐 여성 인구수는 남성보다 높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이런 결과로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유전자 차이가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성호르몬이 성별 노화의 차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성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징에 영향을 준다. 앞서 언급했듯이 테스토스테론이 남성이 힘을 쓰는 활동에 영향을 많이 주어 이것이 수명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성호르몬과 노화의 관련성을 생각할 때 에스트로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폐경 전 성인 여성은 성인 남성보다 심근경색증 등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확률이 낮다. 심혈관계 질환에는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흡연 등이 주로 관계한다. 혈액 검사에서 폐경 전 성인 여성은 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평균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다. 이는 에스트로겐이 지질혈증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인다. 여성호르몬이 급격히 감소하는 폐경 후 여성에서 콜레스테롤은 증가하고 심뇌혈관 질환의 발생률도 따라서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여성호르몬의 차이와 더불어 남녀 간에는 생활습관에도 차이가 있다. 흡연, 음주와 같이 건강에 좋지 않은 요인들이 남성에게서 높은 것도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 수명이 짧은 요인이 될 수 있다. 성인 흡연율(2014년)은 남성 43.1%, 여성 5.7%로 성별 차이가 크다. 흡연은 암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심뇌혈관 질환의 대표적 위험인자이므로 흡연율이 높은 남성의 수명이 여성보다 짧은 데 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육식을 상대적으로 덜 하고 채식을 더 하는 경향을 보인다. 식사량에서도 여성은 남성보다 소식한다. 이런 식생활 습관의 차이도 남성과 여성의 장수 차이에 일부 영향을 줄 것이다. 병원 진료나 검진과 같은 의료 이용률에서도 성별 차이가 있다. 여러 생활습관에서 남녀의 차이가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남성이 오래 살기 위해서 여성으로 유전자를 바꾸거나 여성 호르몬을 투여할 수 없으므로 금연이나 건강에 좋은 식생활 등 건강한 생활습관 개선은 장수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바꿀 수 있는 것만이라도 바꾸어준다면 남성의 수명은 여성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요인에 의한 영향만큼은 더 늘어날 것이다.

3. 어떻게 늙어가나

1) 노화의 겉 변화

한자 늙을 노(老) 자를 들여다보면 하얀 머리를 휘날리며 허리가 굽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모습이다. 노인의 특징을 그려낼 때 사람들은 백발을 떠올린다. 하얀 머리가 생기는 것은 자신이나 주위에서 느끼는 노화 과정의 첫 변화다.

하얀 머리는 검은색의 멜라닌이 탈색되어 나타난다. 인종에 따라 머리카락 색깔이 다양하지만, 나이가 들어 흰색으로 변하는 것은 비슷하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흰색으로 변한다는 것은 색깔을 버린다는 의미일까? 젊었을 때는 자신만의 다양한 색깔을 나타내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진하고 강한 색깔을 나타내고 다른 이는 부드럽고 연한 색깔을 나타낸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이런 색깔을 다 내려놓는다. 하얀 머리는 젊어서의 여러 색깔을 경험한 후 돌아가는 원래의 순백색인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이 들어서는 이런 흰색 머리카락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자신의 주장만 강한 색깔로 주장하는 고집스러운 노인 모습은 주위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하얀 머리를 휘날리며 걸어가는 모습, 아이와 같은 하얀 생각을 가지라는 것이 자연의 섭리일까.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것 같은 하얀 색깔. 그것은 어린 아가의 색깔인 동시에 나이 든 노인의 색이다. 모든 색을 경험하고 내려놓는 색깔. 그렇게 내려놓음의 노인의 참모습이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탈모 현상은 남녀 모두에서 나타나지만, 남성에서 더 눈에 띄게 된다. 앞머리가 빠지는 남성형 탈모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이 들어감에 따른 모발의 변화와 더불어 겉으로 드러나는 부위는 피부이다. 피부의 노화는 주름살을 깊어지게 하는데, 이는 피부 탄력도와도 관련이 있다. 젊었을 때 피부는 탄력성이 있어 어떤 압력이나 자극에도 복원력을 가진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피부 탄력성은 감소하고 압력을 받은 부위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피부 탄력성은 노화에서 모발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겉모습의 변화이다.

2) 노화의 속 변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겉모습뿐 아니라 우리 몸속에서는 여러 변화가 일어난다. 여러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혈관 변화와 또 하나는 근육 변화이다.

우리 몸을 건물로 볼 때 건물의 시멘트 역할을 하는 것은 근육이고, 건물 안에 있는 파이프 역할을 하는 것은 혈관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의 노화 과정 중에 벽돌이나 시멘트의 노후 과정이 일어나기도 하고 파이프가 녹스는 과정도 발생하게 된다.

혈관은 신체의 여러 기능을 유지하고 연결하는 데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혈관의 노화로 혈관 벽은 거칠어지고 두터워진다. 특히 심장과 뇌에 공급된 혈관 벽이 문제가 되면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혈관 중 관상동맥은 심장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통로이다. 만약 이 관상동맥이 막히게 된다면 그 혈관이 혈액 공급을 하는 심장 부위는 허혈 변화와 더불어 시간이 지나면 회복 불가능한 심장근육의 괴사가 일어나게 된다. 심근경색증은 이처럼 심장혈관의 막힘으로 일어나는 치명적 질환이다. 심장 혈관이 막힌 후 막힌 부위에 빠르게 혈류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그러므로 심근경색의 발생 후 빠른 조치 여부는 생사의 갈림길이라고 할 수 있다.

심장 혈관만큼 중요한 신체 부위로 신경 조직의 중심인 뇌를 들 수 있다. 뇌의 혈관이 막히는 경우 뇌경색이 되면 신경이 관련된 부위의 근육이 마비되고 감각이 소실된다. 즉 팔다리 근육 운동에 문제가 생겨 마비가 오고, 손상 부위에 따라 말이 어눌해지는 신경 관련 증세가 나타난다. 물론 뇌의 특정 부위가 손상되는 경우에는 단순한 마비에 그치지 않고 생명을 잃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노화로 인한 혈액 변화와 더불어 근육 변화 또한 중요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근육량의 저하는 기력 저하와 보행 속도 저하와 같은 움직임의 변화를 일으킨다. 근육은 신체를 움직이는 역할 외에 에너지 공장의 원천이 된다. 근육량이 떨어지게 되면 똑같은 열량을 섭취하더라도 에너지가 적게 생성되며 기력이 떨어지고 쉽게 피로해지게 된다.

근육과 붙어 있는 뼈의 경우 겉모습에서 노화에 따른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골다공증이다. 뼛속 실질 부분이 꽉 차 있지 못하고 구멍 난 무처럼 비어 있게 되어 가벼운 충격에도 지탱을 못 하고 골절이 일어나게 된다. 가장 흔한 것은 척추 골절로 노인들은 자신이 넘어진 기억도 제대로 못 할 정도의 가벼운 충격에도 척추 압박골절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관절이라 부르는 엉치관절 부위의 골절은 척추 골절보다 그 결과가 심각하다. 골다공증은 단순히 뼛속이 비는 것이 아니라 골절로 이어지고, 노인의 골절은 와상 기간을 길게 하여 젊은 사람의 골절과 달리 사망에 이르는 주요 원인이 된다.

3) 노화와 기억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도 떨어진다. 오랜만에 만난 이의 이름이 생각 안 나서 곤혹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인사를 하지만 머릿속에는 앞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생각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안부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애를 써보지만,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다음 날 아침에 그 친구의 이름이 기억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건망증과 치매는 무엇이 다를까.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억에 대한 개념부터 아는 것이 중요하다. 기억은 입력, 저장, 인출이란 세 단계를 거쳐 우리 뇌에 자리 잡고 출력된다.

입력은 기억의 첫 단계이다. 우리가 보고 듣는 다양한 정보가 감각기관을 통해 뇌로 들어온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 영상 정보와 음향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기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깨어 있는 동안 끊임없이 입력되는 소리와 영상은 우리의 뇌로 전달된다. 물론 냄새와 감촉, 위치 감각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정보가 입력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다음은 저장 단계이다. 저장은 뇌의 깊은 곳에 있는 해마를 통해 일어난다. 그렇다고 해서 뇌에 전달되는 정보가 해마에 저장되는 것은 아니다. 해마를 통해 뇌의 각 저장 창고에 전달되어 기억이 저장된다.

정보가 저장된 후에는 필요할 때 꺼내야 한다. 그것이 인출 단계이다. 아무리 깊숙이 잘 저장되었다 하더라도 제대로 출력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기억에서 인출은 매우 중요하다. 간혹 저장은 잘 되었는데 인출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분명히 이름은 아는데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혀끝에서 맴도는 단어들, 이런 현상은 저장된 정보가 인출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건망증은 주로 기억의 인출 단계의 문제이다. 정보가 저장은 되었는데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즉 정보를 꺼내기 어려운 상태다. 기억의 인출은 전두엽에서 주로 다룬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눈을 찡그리고 앞머리에 주름을 잡으며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처럼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에서 기억을 찾아 꺼내기 위해 에너지를 쓰고 있다.

건망증이 인출의 문제라면 알츠하이머 치매는 기억의 저장 문제이다. 예를 들어 아침부터 점심까지 여러 정보가 입력되는데 아침 식사에 대한 정보가 저장이 안 되면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며느리가 아침도 차려주지 않는다’고 가족을 원망하는 치매 할머니의 모습을 드라마나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접한다. 이는 아침 식사를 한 상황이 기억이 안 나는 것이 아니라 아침 식사를 한 상태가 치매 노인에게 기억 저장이 안 되어 발생하는 것이다.

건망증과 치매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노인성 건망증과 조기 치매를 구별하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나, 감별하는 평가 원칙은 바로 기억의 저장과 인출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떠한 기억을 제대로 저장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기억의 저장은 객관식 문제와 힌트를 주는 방식으로 평가한다. 주관식 문제는 정보가 저장되어 제대로 인출이 되는지를 평가한다. 반면에 객관식 문제는 기억의 인출 단계를 평가하기보다 정보가 제대로 저장되어 있는지 보기 위한 것이다.

객관식 문제 외에 단서를 주는 방식도 기억이 제대로 저장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어떤 친구의 이름이 생각 안 나는데 ‘성’이란 단서를 주면 이름이 떠오르는 경우나 관련된 정보(단서)를 주면 단어가 생각나는 경우이다. 이렇게 객관식 예를 주거나 단서를 주어 생각이 난다면 기억은 저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망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치매와 같이 기억 저장에 문제가 생긴 경우 객관식 예를 주거나 단서를 주어도 기억을 해내기 어렵다.

치매는 기억의 저장이란 문제 외에 다른 인지기능의 저하를 동반한다. 인지기능 영역에는 공간 인지나 시간 인지, 판단력 등이 포함된다. 자주 다니던 길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길을 잃거나, 밤낮이 바뀌거나 중요한 판단에 문제가 생기면서 치매 환자는 일상생활에서 여러 실수를 하며 혼자 살아가기 어려워진다. 건망증이 있는 노인의 경우도 작은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첩 등 기억의 보완 대체 수단을 이용하여 생활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치매와 차이를 보인다.

인지기능이나 일상생활의 문제 발생과 더불어 자기 인식 측면도 치매를 감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치매 환자는 자신의 기억력에 대해서 비교적 걱정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치매 환자의 가족은 환자의 기억력에 대해 걱정하는데 치매 환자 본인은 이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진료실을 찾은 치매 환자에게 “기억력이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기억? 뭐 그냥 그렇지. 괜찮아.”라고 대답을 하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기억력 저하로 많은 사람이 자신의 건망증을 걱정하고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가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여러 실수가 일어나는 치매 환자의 경우 오히려 자신의 인지기능 저하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해 걱정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4) 노인의 우울

우울을 다룰 때 우리나라의 우울에 대한 통계를 접하면 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우울과 관련한 여러 지표가 있지만, 자살률은 가장 심각한 사회적 지표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2012년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미국 12.5명, 일본 19.1명보다 높아 OECD 국가 중 1위이다. 자살의 이유가 꼭 우울에 의한 것은 아니겠지만, 희망을 잃은 상태인 우울은 자살로 이끄는 첫 번째 원인이다.

우울은 연령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보건복지부 정신질환 실태조사에서도 2011년 주요 우울장애 유병률은 30대 1.8%, 40대 2.8%이었으나, 60대 3.0%, 70대 3.8%로 노인 연령대의 주요 우울장애 유병률이 높음을 보여준다.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남자 38.4명으로 여자 16.1명보다 높아 성별 차이를 보일 뿐 아니라 연령대별 차이도 있다. 연령별 자살률을 보면 인구 10만 명당 20대 17.8명, 30대 27.9명, 40대 32.4명, 50대 36.4명, 60대 37.5명, 70대 57.6명, 80대 78.6명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자살률도 높은 경향을 보인다.

노인에게 우울증이 많지만, 노인 우울증은 증세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우울증은 의욕이 없고 매사에 흥미를 잃는 등 심리적 저하 증세가 주요 증세이다. 하지만 노인에게서 우울증은 일반 성인의 특징적인 심리적 우울 증세와 더불어 비특이적 신체적 증세가 주요 증세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증세의 차이는 노인 우울증의 발견과 진단을 늦추는 원인이 된다.

우울증의 유병률과 자살률이 노인에게서 높은 것뿐 아니라 노인에게 우울증이 중요한 이유는 노인 우울증이 가성치매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즉 노인의 우울증세는 무기력하고 반응이 느려지는 증세를 보여 인지적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노인이 우울증으로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 가족이 치료가 어려운 치매로 오해해 진단과 치료를 시도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치매는 약물치료 효과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편이나, 우울증은 비교적 항우울제의 치료 반응이 좋은 편이다. 그러므로 치매로 잘못 오인한 가성치매, 즉 노인의 우울증에 대한 적극적 진단과 치료 개입이 필요하다.

4. 나이 들어 원하는 것은

나이 들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마다 원하는 것은 다 다르겠지만, 나이 들면서 노인들은 건강을 중심으로 관심이 높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노인 환자를 진료실에 접하면 다음 세 가지 이야기를 흔하게 듣게 된다. “치매에 안 걸렸으면 좋겠다.” “다리 성하게 돌아다니고 싶다.” “즐겁게 살고 싶다.”

첫째, 노인에게 제일 큰 관심사는 치매이다. 자신의 기억을 잃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에 혼동이 오게 되고, 가족과 친구의 이름이나 얼굴을 잊어버리면서 나타나는 관계 단절의 문제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문제로 다가온다. 암처럼 사망률이 높은 질환보다 치매에 대한 두려움은 다른 차원에서 노인에게 가장 피하고 싶은 질환이다.

둘째, 걸어 다니는 데 불편하지 않은 다리 건강 상태를 노인은 바란다. 나이가 들어 퇴행성 관절염이 가장 흔하게 오는 부위는 무릎이다. 무릎 통증으로 잘 거동을 못 할 때 사람은 자신의 독립적 생활을 하기 어렵게 된다. 노인에게 무릎이나 허리 통증은 흔하게 발견되지만 심한 통증으로 인해 거동의 제한이 오는 상태는 단지 통증의 문제가 아니고 거동의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통증 외에도 뇌졸중으로 한쪽 팔다리 마비가 오거나 여러 이유로 관절이 굳어 버리는 관절 구축이 오는 것도 거동의 문제를 일으킨다. 신체 여러 부위 중 다리의 기능은 인간 개체의 거동에 직접 관여하기 때문에 노인들이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부위다.

셋째, 즐겁고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은 어느 연령대에서나 모두 원하는 사항일 것이다. 특히 노인들은 오랜 시간 여러 경험을 겪어 오면서, 행복을 미뤄 두는 것보다는 현재의 행복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깨닫게 된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 내지만, 노인들에게는 기다릴 미래의 시간이 그리 충분하지 않다. 노인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좋으냐고 물어보면 많은 노인은 즐거움이나 행복을 미루어 두었던 삶에 관하여 후회하며 젊은이들에게 행복을 미루지 말라는 조언을 하곤 한다.

나이가 들어 원하는 이 세 가지는 노인의 건강 기능을 평가하는 세 가지 축이다. 즉 신체적 변화, 인지적 변화, 심리적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 노인의 주요 건강 기능 평가 요소로서 이는 혈액이나 영상 검사보다 실질적으로 노인의 건강 상태를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하다.

늙어감은 늘어감이다. 늙어감은 줄어듦이다. 신체적, 인지적, 심리적으로 늘어가고 줄어듦 속에서 늙음은 변화를 겪게 된다. 치료가 필요한 질병도 있고, 어떤 것이 투입된다 하여도 시간적 변화를 바꿀 수 없는 노화의 흐름도 있다. 나이 들어서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느려지지 않는다. 짧게 남은 인생에서 시간을 안타까워하기에 앞서 그동안 쌓인 늘어남이 자신을 무겁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시점이 노년이다. 타(他)에 의해서 줄어드는 것은 빼앗김이지만, 자(自)에 의해서 줄어듦은 비움이니, 세월의 시간 속에 늘어난 것을 빼앗길 것인지, 스스로 비우고 변할지는 노년의 삶으로 드러난다. ■

 

이상현 /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연세의대 가정의학교실 연구강사, 인하의대 가정의학교실 조교수 역임. 노스캐롤라이나 의대 노인의학 연수. 현재 연세의대 가정의학교실 임상교수 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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