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공감과 약간의 갸웃거림과 감사

《미산 스님 초기경전 강의》
불광출판사, 2016년 5월 발행, 384쪽
미산 스님,

무더위가 절정입니다. 습기와 열기가 무겁게 사람을 가라앉힙니다. 이렇게 숨 쉬는 것마저 힘겨울 때 우리는 탈출해야 합니다. 제게 있어 탈출구는 책입니다. 미산 스님께서 쓰신 책이 이번에 출판사를 바꿔서 새롭게 세상에 나왔네요. 《미산 스님 초기경전 강의》라는 제목은 여전히 반갑지만 ‘부처님 말씀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초기경전 공부의 필독서’라는 부제목이 눈길을 끕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공부했다는 인연으로 대중 앞에서 불교를 강의하는 일을 하는 저는 어떤 불교학자가 대중을 위한 불교입문서, 입문자를 위한 필독서를 냈다고 하면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이 일어납니다. 교학으로서 불교와 대중성으로서 불교가 어우러진 이런 책들은 지금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님께서 공들여 쓰신 이 책을 6년 전 초판본으로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스님께서 독자로 생각하신 바로 그 입장에서 책을 읽어갔습니다. 아마 스님께서 생각하신 이 책의 독자는 불교를 알고 싶거나 경전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일 것입니다. 특히 부처님의 육성이라 할 만한 초기경전을 처음 맛보려는 사람이나 무작정 신심만을 강조하는 데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접근, 진지한 사색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문자로 주르륵 나열되는 데에서 끝나는 교리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교리로 만나고픈 사람이 스님 책의 타깃이 되는 독자층이 아닐까 합니다.

제 짐작이 어느 정도 맞았는지요? 저는 딱 이런 심정으로 이 책을 찬찬히 읽어갔습니다. 그리고 어떤 대목에서는 진한 감동을, 어떤 대목에서는 달뜬 공감을, 어떤 대목에서는 앎의 기쁨을, 그리고 또 어떤 대목들에서는 갸웃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스님은 이 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의 수행 도정〉이라는 글을 펼쳤습니다.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글 속에서는 한 명의 작고 여린 소년이 어떻게 세속의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구도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는지가 담담하게 펼쳐져 있었어요. 그 글을 따라가다 보면 보통 사람들이 걸어가고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조금은 편안하고 살갑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라는 세계가 이 세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라거나, 신비롭고 모호하여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서 따르지 않으면 응징이 내려질 것만 같은 두려움의 깊은 우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게다가 스님은 동국대학교에서 시작하여 스리랑카와 인도, 영국과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학문으로서 불교를 만났음을 밝히고 있지요. 스님이란 존재는 비판적 사고와는 거리가 먼 존재라 여기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스님의 이력은 상당한 신뢰감을 안겨줄 것입니다. 그뿐인가요?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수행처를 찾았다는 말은 학자이면서도 구도자라는 본분을 늘 잊지 않았음을 조심스레 고백하는 대목입니다.

이 〈나의 수행 도정〉이라는 항목만을 읽고도 이 책을 쓴 스님이 어떤 분이고 어떤 심정으로 불교 세계를 펼쳐 보일 것인지 그 밑그림이 다 그려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심도, 공부도, 수행도 할 수 있도록 안내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던 것이지요.

스님은 경전을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무척 간곡하게 말씀하십니다. “유구한 역사를 통해 형성되고 전승된 경전인 만큼 경전부터 읽어봐야 옳다”는 점이 몇 번이나 강조되고 있습니다.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그리고 대승경전에 담긴 사상도 초기경전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고, 초기경전을 전폭적으로 부정하는 것도 아닌, 초기경전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펼쳐진 것이기에 “대승경전이나 선어록을 공부할 때 아주 탄탄한 바탕이 되어서 훨씬 더 근원적으로 쉽게 부처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53쪽)는 말씀에도 저는 깊이 공감했습니다.

스님은 이 책을 통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물론 초기불교에 한해서이겠지만)은 네 가지 핵심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연기법이요, 둘째는 일체법이며, 셋째는 삼법인이요, 넷째는 사성제이다. 하지만 이 네 가지 핵심교리도 결국은 연기법으로 귀결된다.”라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연기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스님께서는 재가자를 위한 경인 《육방예경》이나 일상의 수행을 위한 아름다운 경인 《자애경》 《자애송》 《보배경》 《최상의 행복경》에 대한 설명도 연기법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재가자의 일상 신행도 연기법 수행이라는 것이지요. 그저 한 사람의 불교 신자가 자기 마음 공부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을 세상과의 관계 속에 놓인 존재로 바라보고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늘 잊지 않고 아름답고 단단하게 가꾸는 것이 일상의 수행이요, 그게 바로 연기법이라는 것이 스님의 의도라고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핵심이라 해도 좋을 2강에서 6강까지 펼쳐지는 교리 설명은 사실 쉽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입문자들에게 가능하면 쉽고도 자세하게, 그러면서도 현실과 접목해서 교리를 풀어놓으시려 무척 애를 쓰셨습니다. 교학을 조금은 공부했고 늘 입문자들을 상대로 불교강의를 해야 하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스님의 그 의도와 고민의 흔적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불교교리에 대한 이해에 있어 저와 조금 견해가 다른 점은 여기서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학자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입문자들에게 불교라는 세계를 맛보이려는 것이요, 그래서 논쟁을 지양하겠다는 것이 역시 스님의 또 하나의 저술의도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몇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점 가운데 첫째는, 제4강 삼법인 항목 중, 무상(無常)의 설명 부분입니다. 스님은 ‘무상의 실천적 의미’라는 제목 아래 ‘1. 무상은 삶을 알차게 한다, 2. 무상은 긍정적이다, 3.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라는 소제목으로 설명해가셨습니다.

무상이라……. 사실 경전을 읽거나 사성제와 같은 교리를 설명하다 보면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염세적으로 말을 하는 저 자신이 안타깝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덧없다, 속절없다…… 이런 말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강의를 듣는 사람의 표정도 힘겨워지는 것을 종종 봅니다.

어쩌면 스님께서도 이런 점을 감안하셨기에 ‘덧없다’는 교리 저변에는 오히려 더 힘을 내게 해주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긍정을 역설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무상의 긍정적 측면을 너무 강조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품었습니다. 철저하게 바닥까지 내려가서 덧없음을 샅샅이 느낄 때, 바로 그때 진짜 불교 공부는 시작된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업에 대한 설명 부분입니다. 입문자들의 눈동자가 가장 반짝이는 때가 바로 “업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나갈 때이더군요. 그래서 초기경전에 입각한 스님의 업 설명은 어떨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아주 소략하게 베풀어졌습니다. 물론 정해진 시간, 강의 회수가 있기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 아래 쓰인 스님의 글에서 정작 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저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업’에 대한 딱 떨어지는 정의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냥 ‘업을 짓는다’는 말이 무수하게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처음으로 불교교리를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났을 때 그에게 “그 책에서 업을 무엇이라고 설명했어요?”라고 묻는다면 그가 뭐라고 대답할까……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불교에서 무수하게 등장하는 숱한 교리들에 대한 명확한 개념, 좀 한정적일 수는 있어도 초보자 수준의 똑 떨어지는 정의를 만나야 교리공부가 조금은 쉬워지는데 스님의 설명들을 보자면 어느 정도 교리에 대해 해박하지 않고는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일까요?

더 쉽게, 더 풀어 쓰는 일. 설명의 무게를 줄이되 불교교리를 가볍게 탁 잡아챌 수 있게 풀어 쓰는 일. 어쩌면 이것이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부처님 말씀을 풀어줘야 하는 이들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합니다.

스님. 참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부처님 가르침의 정체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는 말을 들었던 제가 일부러 ‘서평’을 쓰려다 보니 억지로 흠을 만들어내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스님의 후속작품을 기대합니다. 또 새로운 8강이 한 권의 책에 담기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정독하면서 제 공부에서 빈틈이 참 많이 메워졌다는 고백을, 그래서 스님께 그 고마움을 참으로 깊이 느낀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님의 소중한 저서에 대한 저의 좌충우돌 독후감은 여기서 맺습니다. 참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미령 / 불교 칼럼니스트, 불교교양대학 강사.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석사 졸업. 역경원 역경위원으로 경을 번역했고, 각종 매체에 불교 칼럼니스트와 북 칼럼니스트로서, 불광교육원 등 불교교양대학에서 불교입문자들에게 불교의 세계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 《붓다 한 말씀》 등의 책을 썼고, 여러 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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