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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睡蓮)을 보며 / 오탁번
시인·고려대 명예교수
[67호] 2016년 09월 01일 (목) 오탁번 ohtakbon@hanmail.net

백운면(白雲面) 애련리(愛蓮里)의 맨 남쪽 끝,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은 한치[大峙]이다. 한치는 큰 고개를 뜻하는 말로 시랑산 줄기를 넘어 봉양면 공전리로 가는 자구니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한치 마을 아이들이 재를 넘어서 공전초등학교를 다녔다니까 그리 높은 고개는 아니다. 한치를 지나 자구니재 방향으로 담배 한 대 피울 참 동안 걸어가면 열 가구도 채 안 되는 조그만 동네가 있는데 거기는 윗한치이다. 옛날에는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 있었지만, 지금은 포장도로가 이 동네에서 끊긴다. 여기 사람들은 이 동네를 ‘우탄치’라고 부른다. 우탄치, 우탄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엉뚱하게도 몽골 초원지대에 사는 유목민들을 떠올리곤 한다.

백운면의 조선시대 이름은 원서면(遠西面)이었다. 제천에서 먼 서쪽에 자리 잡아서 그런 이름이 생겼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백운국민학교 애련분교’라고 오석에 새긴 간판을 처음 보고는, 내 생애의 종착점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택호(宅號)를 뭐라고 지을까 하다가 나는 망설임 없이 원서헌(遠西軒)이라고 정했다. 돌아가신 초정 김상옥 선생께 글씨를 받아서 목각으로 새겨 대문에 달았다. 그때 원서문학관이라는 이름을 또 하나 만든 것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열린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순진한 생각에서였다.

1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나의 이러한 꿈도 다 개꿈이 된 것 같다. 지자체마다 수십억을 들여서 짓는 문학관이 하도 많다 보니 늙은 책상물림이 퇴직연금으로 지탱하는 이런 문학관은 내가 보기에도 남이 보기에도 영영 처치 곤란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 것 같다. 요즘은 문학관 간판을 언제 어떻게 떼어낼까 궁리 중이다.

애련리라는 마을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이 동네에 제법 넓은 연밭이라도 있는 줄 짐작하겠지만 변변한 연못 하나 없다. 산이 연꽃 모양으로 동네를 에워싸고 있는 지형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분교를 인수하여 공사할 때 조그만 운동장 가운데에 스무 평 남짓한 연못을 팠다. 애련이라는 지명이 주는 막연한 연상을 현실화하려는 뚜렷한 의도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연못에 수련을 심고 붕어를 기르며 내가 꿈꾸던 낙향의 고즈넉한 풍경을 남몰래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 제법 그럴싸한 연못이 모양을 드러냈다. 지하수로 물을 대고 바닥에는 모래와 황토를 깔고 양재동 꽃시장에서 구한 수련(睡蓮)을 여러 포기 심었다. 어리연꽃도 심고 부레옥잠도 띄웠다. 붕어도 여러 마리 넣었다.

그해 여름부터 수련이 피기 시작하였다. 수련의 절묘한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황금비(黃金比)의 극치여서 필설로 다 그려낼 수 없을 정도다. 수련은 이름 그대로 아침에 피었다가는 오후 서너 시가 되면 꽃잎을 오므리고 잠을 잔다.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출발하려다가도 수련이 아직 피어 있으면 일부러 연못가를 거닐면서 그놈들이 잠들 때를 기다리기도 했다. 비 내리는 날이면 수련에 빗물 듣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서 마냥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졌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생각이니까 더는 생각이랄 것도 없는 그런 경지에 푹 빠졌다. 개구리가 알을 까고 잠자리가 날아오고 백로가 연못가에 내려앉아 쉬고 가기도 했다.

여러 해가 지나자 연못은 온통 수련으로 뒤덮였다. 연못은 그래도 연못 물이 좀 드러나야 붕어의 등짝도 구경하고 잠자리가 교미하고 알을 까는 모습도 볼 수 있으련만 해가 갈수록 더 무성해진 수련이 아예 연못을 몽땅 점령해버린 것이다.  

올봄에 큰맘 먹고 연못 공사를 다시 했다. 연못의 물을 몽땅 빼고 포클레인을 하루 불러서 수련 뿌리를 모두 파냈다. 수련 뿌리와 시커멓게 변한 황토와 모래가 뒤엉켜서 몽땅 개흙으로 변해있었다. 큼지막한 고무 함지를 몇 개 사다가 수련을 몇 포기씩 심은 다음 연못 바닥에 다시 놓았다. 고무 함지가 떠오르지 못하도록 돌을 넣고 황토와 모래를 담아 여러 종류의 수련을 골고루 심고 연못에 물을 댔다. 여름이 다가오자 흙물이 가라앉은 맑은 연못 위로 수련 잎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수련 사이로 하늘의 흰 구름도 떠가고 붕어들이 헤엄치고 잠자리와 날벌레들이 날아들었다. 내친김에 분수도 하나 장만해서 연못 속에 장치했다. 타이머를 맞추어 놓으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제시간에 맞춰서 분수가 솟구친다. 분수를 틀어야 물속에 산소가 공급되어 붕어들이 잘 산다고 한다.

연못 가 정자에 앉아 수련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한결 고즈넉해진다. 비 오는 날이 더없이 좋다. 연못 가 돌에 비 듣는 모습, 연못에 빗방울 떨어지는 모습, 비를 맞으며 하늘하늘 흔들리는 수련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만사 뒤죽박죽이던 마음과 몸이 그냥 무화(無化)되는 것 같다.

몇 년 전에 나온 내 시집 《우리 동네》의 머리말에서 “내가 사는 애련리(愛蓮里)의 삼절(三絶)은 제비, 수달, 반딧불이이다. 나는 이제 제비똥, 수달똥, 반딧불이의 똥이나 돼야겠다.”라고 했다.

요다음 시집을 낼 때는 머리말을 이렇게 써야겠다.
-내가 사는 원서헌의 삼절은 수련, 제비, 반딧불이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안 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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