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간 소록도 한센인들을 보살핀 벽안의 천사들

마리안느 스퇴거
오스트리아 간호대학을 졸업한 마리안느 수녀는 한센인들을 가족처럼 돌보며 헌신했다. 이 같은 숭고한 봉사활동은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센병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인식을 새롭게 하는 데 기여했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선 의료인들조차 눈길도 주지 않은 환자들이 있다. 그들은 온갖 천시와 멸시를 받으며 소록도란 작은 섬에 격리되어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빼앗겼다. 그러던 어느 날 먼 이국에서 온 두 명의 수녀가 그들을 따스하게 끌어안으며 그들이 그동안 받아온 천시와 멸시를 눈처럼 녹여주었다. 이들이 바로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oeger, 82세) 수녀와 마가레트 피사레크(Margreth Pissarek, 81세) 수녀이다.

1960년대 유럽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Innsbruck)에서 간호대학을 갓 졸업한 20대의 마리안느와 마가레트 수녀는 한국이란 나라에 한센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있으며, 간호사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머나먼 길을 떠나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고흥, 고흥에서도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작은 섬, 소록도. 소록도에 도착한 두 수녀는 자신들의 일생을 한센인들과 함께했다.

그녀들이 소록도에 처음 가서 마주한 한센인들은 의료인들조차 직접적으로 환자를 치료하기보단 간접적으로 치료하거나 심지어 외부에 노출되지 못하고 소록도란 작은 섬에 격리되어야 했었다. 그러한 한센인들의 삶은 끝나지 않은 고통과 상실의 나날들이었다.

그러던 그들에게 마리안느와 마가레트 수녀들의 행동은 달랐다. 의료인들조차 접촉을 기피하던 한센인들에게 두 수녀는 맨손으로 피고름을 짜내거나 상처를 하나하나 소독해주었다. 또 그들을 마주해서는 안 되는 금기시되는 환자들이 아닌 평범한 환자, 고칠 수 있는 환자로 대했다. 그들이 건네준 사과, 그 사과에는 그들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고름과 각질 등이 묻어 있음에도 그녀들은 기꺼이 그 사과를 베어 물었다. 한센인들의 상처를 치료하거나 수술을 할 경우, 그들의 피가 자기 얼굴이나 몸에 튀어와 묻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마치 친가족이나 친형제처럼, 보통사람들이라면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들을 두 수녀는 해왔다.

이 두 수녀의 숭고하고 헌신적인 봉사활동은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센병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한센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질 수 있게 했다.

그녀들의 활동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들의 조국인 오스트리아에서 온 지원은 모두 한센인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병동마다 목욕탕을 설치하였고 결핵병동을 새로 지었으며, 많은 건축물을 신축하여 한센인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투병생활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한센인들이 사용하는 의약품이나 위생용품은 물론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품을 지원받으면 지원받는 그대로 한센인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또한 그녀들은 한센인들에게 받기만 하는 삶이 아닌 스스로 일어나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삶을 열어 주었다. 한센인들이 투병을 마치고 사회에 정착해 나갈 수 있도록 사회정착자금을 주는 등 그들이 사회에 복귀하여 정착할 수 있는 여러 방면으로 그들을 도왔다.

그녀들의 이러한 모습은 많은 한센인에게 감동을 주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잘 구사하던 그녀들은 먼 이국땅에서 온 봉사자가 아닌 바로 옆집에 사는 할머니와 다름없었다. 그녀들을 ‘할매’라고 부른 것도 이런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이 두 명의 ‘할매’는 그들 자신에게 베푸는 것은 없었다. 그녀들의 방에는 그 흔한 TV도 없었고, 오직 그녀들의 옷을 담을 수 있는 조그마한 장롱이 전부였다.

한센인들에게 베푼 숭고한 인간애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새로운 희망을 심어준 두 명의 수녀들의 활동은 소록도에 해마다 전국에서 온 의료봉사단과 자원봉사단을 불러들였다. 이러한 모습은 소록도를 ‘자원봉사 천국’으로 알려지게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 보상을 받거나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렸다. 국내외 언론들이 수없이 소록도를 찾아 그녀들의 활동을 알리려고 하였지만, 인터뷰는커녕 사진 한 장도 찍지 못한 채 돌아간 게 부지기수였다. 수많은 감사장과 공로패가 전달되었지만 되돌려졌다.

그런 그녀들이 어느 날 갑자기 소록도를 떠났다. 20대에 한국에 들어와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센인들만 돌보다 보니 어느새 자신들이 70대 노인이 되어버렸고, 그런 늙은 자신들이 소록도 사람들에게 짐이 될까 봐 ‘이별의 아픔을 주기 싫어 말없이 떠난다’는 편지 한 장만을 남겨 놓은 채 2005년 오스트리아로 출국하였다.

현재 안타깝게도 마리안느 수녀는 암 투병 중이며, 마가레트 수녀는 치매로 요양원에 거주한다. 그러나 그녀들은 결코 소록도를 잊지 않은 채 소록도에서 지낸 사진을 꺼내며 그곳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한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소록도는 사회에서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조차 할 수 없는 격리와 단절의 공간이었다. 아픔을 간직한 곳인 소록도에 찾아온 천사이자 햇빛이었던 그녀들은 소록도를 변화시켰다. 소록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회는 이젠 소록도를 향해 활짝 열렸으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한센인들은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보금자리가 생겼다.

“소록도가 대한민국 복지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 그녀들의 작은 소망처럼 지금 소록도는 자원봉사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소록도가 봉사의 참된 정신과 숭고한 정신을 가르쳐주는 공간이 된  것은 마리안느와 마가레트, 두 수녀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안느와 마가레트 수녀가 전해준 박애와 인권, 봉사 정신을 그대로 실천한 삶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센인들만 돌보았던 그녀들의 숭고한 희생과 그들이 베푼 사랑은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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