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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의 길] 2016 만해평화대상 수상자 박청수 교무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이웃 돕는 일에 발벗는 ‘마더 박’
[67호] 2016년 09월 01일 (목) 불교평론 편집부

   
박청수 교무
원불교 교직자인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 박청수 교무는 젊은 시절부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데 앞장서 왔다. 지금까지도 늘 눈과 귀를 열어놓고 자신의 힘이 필요한 곳이라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간다.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 박청수 교무는 동남아와 네팔 등지에서 ‘마더 박’으로 불린다. ‘마더 테레사 수녀’처럼 자신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박 교무를 현지인들은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박 교무는 지금까지 전 세계 55개국에 105억 원을 모금해 전했다. 그 결과는 국내외 학교 9개, 병원 2개로 나타났다. 벌써 10년 전 현역에서 은퇴한 원로 원불교 교무이지만 그는 지금도 2000년 설립한 청수나눔실천회를 통해 자신이 지원해온 기관에 ‘애프터서비스’를 하고 있다.

1937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박 교무는 독실한 원불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어머니는 특히 어린 두 딸에게 “시집, 그까짓 시집 무엇하러 갈 것이냐? 다른 길이 있는 줄을 모르면 몰라도, 더 좋은 길이 있는데 무엇하러 시집을 갈 것이냐?”며 원불교 성직자인 교무가 될 것을 권했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시집가서 하는 살림은 ‘작은 살림’이요, 교무가 되는 것은 ‘큰살림’으로 여겼던 박 교무는 전주여고를 졸업한 후 19살의 나이로 자연스럽게 원광대로 진학하고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로 출가해 교무가 됐다.

젊은 시절부터 박 교무는 원불교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았다. 사직교당을 개척한 후 1960년대 말부터 땅콩장사를 벌여 방위성금을 내는 등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애썼다.

이웃종교와의 관계는 경기 의왕의 한센인 가톨릭 시설인 ‘성라자로마을’과의 인연이 대표적이다. 1975년 성라자로마을 축성식 때부터 박 교무는 따로 부르는 사람이 없어도 성라자로마을을 매년 찾아왔다. 돈이 생기면 돈을 들고, 돈이 없으면 떡, 엿, 수박, 참깨, 들깨, 무말랭이까지 들고 갔다. 그리고 거기서 한센인들과 어울려 함께 먹고 놀다가 돌아왔다. 성라자로마을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40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통 큰 지원을 하는 독지가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성라자로마을 한센인들은 박 교무를 그 누구보다 친근한 친구로 여긴다.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박 교무의 ‘큰살림’이 외국으로까지 확대된 것은 1988년부터이다. 1988년 서울에서 열린 도덕재무장운동(MRA) 국제대회에서 우연히 캄보디아 청년지도자를 만난 것이 인연이었다. 그 청년으로부터 오랜 내전으로 인해 캄보디아 국민이 겪고 있는 참상을 전해 들은 그는 당장 100만 원을 마련해 전해줬다. 1994년엔 프놈펜 외곽에 고아원에 건립을 지원했고, 1995~96년엔 캄보디아 북서부 바탐방 지역의 지뢰제거 사업에 11만 달러를 보탰고, 슬리퍼 5만 켤레와 의류 15만 점을 보냈다. 2003년엔 바탐방 지역에 무료구제병원을 설립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2007년 모친상을 당했을 때는 조의금을 모아 바탐방에 어머니의 이름을 딴 원불교 교당을 짓기도 했다.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의 라다크 지역과의 인연도 시작은 작았다. 1991년 인도 방갈로르를 방문한 박 교무는 라다크에서 ‘유학’ 온 학생들을 만났다. 1년의 절반은 눈과 얼음에 갇혀 지내는 히말라야 해발 3,600미터 오지(奧地) 라다크 학생들은 몇 년째 집에 다녀오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박 교무는 즉시 움직였다. 이듬해 라다크에 마하보디 기숙학교를 완공했다. 기숙학교의 첫 입학생은 여학생 25명. 현재는 초 · 중 · 고생 500여 명이 집과 가족을 떠나지 않고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병원과 양로원도 지었다.

그의 이런 활동은 대부분 즉흥적이다. 눈으로 보고, 직접 호소를 듣고 꼭 필요하고, 자신이 도와야겠다고 생각하면 결정한다. 대신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늘 눈과 귀를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박 교무 활동의 특징은 ‘회의(會議) 없이’ 그리고 ‘뻔뻔스럽게 그러나 밉지는 않게’이다.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면 바로 결정하고, 그 후엔 주변에 모든 인연을 동원해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지원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그런 박 교무를 ‘밉지 않게 본’ 이들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부인 홍라희 여사를 비롯한 원불교 교도들뿐만 아니다. 법정 스님, 박완서 작가 등이 기꺼이 자신들의 원고료를 박 교무에게 내어줬다. 그리고 그런 후원의 손길은 인도, 캄보디아, 케냐, 에티오피아 등 전 세계로 전해졌다. 국내에서도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등으로 결실을 맺었다.

박 교무는 자서전에서 “한평생,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나는 쉼 없이 길쌈을 했던 여인 같다”고 했다. “의미 있는 일, 필요한 일이라고 여겨지면 나는 아무 일이나 가리지 않고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하나하나의 일마다 애가 타고 애간장이 녹는 지경에 이르러야 일이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박 교무는 자신이 이뤄온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은 정비례합니다. 먼저 자신이 남을 돕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은 저절로 몰려옵니다.”

그는 지금도 사람을 만나면 종이 한 장을 쓱 내민다. ‘청수나눔실천회’ 후원 신청서다.

“아직도 제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아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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