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겔, 하이데거, 불교의 변증법적 반전

편집자 주
  * 이 글은 O’Leary Joshep S. “Everyday Life and Ultimate Reality: Dialectical Re-versals in Hegel, Heidegger and Buddhism,” Contemporary Buddhism 15:2, 2014, 465-478을 본지 편집위원인 신항식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이 논문의 저자 조셉 올리어리는 아일랜드의 신학자로 1988년 이래 도쿄에 있는 소피아대학의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되질문하기》(1985) 《종교다원주의와 기독교적 진리》(1996) 《인습적 진리와 성찰적 판단》(2016) 등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일상의 삶이란 무엇일까? 우리를 좁아터진 방구석에 꾸깃꾸깃 가두는 뻔하고도 하찮은 일들인가. 다음은 필립 라킨의 〈나날들〉이라는 시이다.

하루하루란 것이 뭘까?
우리가 살아가는 그 나날들 말이다.
와서는 우리를 깨우고 그냥 간다.
그게 다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냥 좋단다.
그럼, 하루하루가 없으면 우리는 어디서 사나?
오호라, 어찌 살까 고민하면서
목사나 의사의 바자가랑이나 붙잡고
그저 벌판을 달려가며 살아가겠지

재미만 있다면 아무것이나 좋다며 좁아터진 인생사를 그리 꾸려 가야 할까? 현재를 즐겨라(Carpe diem)…… 그것으로 그냥 좋다 이것인가. 흘러가는 삶의 나날에도 결국 종점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때, 그때도 어깨를 으쓱이며 죽음이 허망하다 해도 함께해 왔던 나날 중 그나마 얻은 것이 있으니 그것으로 됐다며 만족해할 텐가?

이런 의문에 대하여 기독교 전통은 두 가지 범주를 제공하고 있다. ‘은총’과 ‘죽은 뒤의 부활’이다. 일상의 삶이란 은총의 선물이자 빌려온 것이므로 신의 위대한 영광을 칭송하며 그런 정신으로 살아가야 하는 무엇이다. 주 예수가 죽은 뒤 부활한 것과 똑같이 삶이란 것은 희생하라고 ‘제공된 것’이다. 이런 태도가 세속종교의 배경을 이룬다. 그러나 신학자라면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 그 철학적인 근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기독교의 낡은 재현들을 처음으로 돌리는 데 일조하는 것으로서, 기독 신앙관과 인류의 보편적 지혜 사이에 다리를 놓는 철학적 근거를 뜻한다. 독실한 신앙도 일상이 되면 초라해진다. 그리하면 반쪽인 인생사를 극복하지 못하는 법이다. 송곳 같은 철학적 질문이 있어야 신자들이 활력을 찾아 새로운 깨달음의 경지로 들어갈 수 있다.

‘일상’은 실존주의 현상학과 함께 두드러지게 떠오른 철학의 주제이다. 1927년 하이데거의 걸작 《존재와 시간》을 통해 이 주제가 신학적인 동시에 신비적으로 틀을 잡았는데, 그때의 일상은 ‘진정한 것이 아닌 무엇’과 ‘타락한 무엇’으로 그려졌다. 그럼에도 하이데거는 기독교, 불교, 도교와 똑같이 궁극적인 실재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구원의 생각과 감사함의 실천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 글은 일상의 삶과 열반을 연결하는 불교사상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불교사상을 소개하려면 서양의 전통 중 가장 강력한 이들을 끌고 와서 비교해야 할 터이다. 필자는 하이데거로부터 현상론을, 헤겔로부터는 존재론적 구분 방식으로서 개념론을 가져온다. 일군의 학자들은 불교가 철학적 실천만 내세우는, ‘탈근대적 회의론’이나 ‘디플레이션화한 실용주의’라고 비판한다. 이런 태도는 불교 전통이 서양 사상에 가져다주는 선물과 고민스러운 과제에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진 태도이며, 아울러 불교뿐 아니라 서양 사상마저도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일상과 선(Zen)의 해탈이 서로 접목하는 지점에 다가가려면 하이데거 현상학의 줄기를 따라 사고의 임계점까지 가야 한다. 헤겔로부터 배우게 되는 어떤 미묘한 사유로부터 인도 대승불교를 바탕으로 하는 선사상의 근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교토학파가 한때 그렇게 한 적이 있었지만, 누군가 현상으로나 지적으로나 동양이 서양을 극복하거나 앞서 나간다는 점을 논증하려 한다 해도 서양 철학의 전통과 전체적인 토론을 통해 설명되어야 하는데, 모든 면에서 가장 강력한 비판적 면모를 지닌 서양의 두 철학자는 누가 무어라 해도 헤겔과 하이데거이다.

불안과 무(無)

철학적인 질문은 던져졌다. “일상의 무엇이 궁극적인 의미(혹은 무의미)를 주는가?” 일상의 경험을 조목조목 살피는 철학자, 시인, 불교인 들은 “사람들이 일상을 있는 그대로 실재처럼 본다면 우리의 경험은 날마다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죽음을 넘나드는 영역에서 살아가는 목사나 의사와 다르다. 살아가는 날들의 한복판에서 하루하루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평생 과도한 불안에 지쳐 있다. 나이, 죽음, 안전에 대한 공포에 연관된 불안함이다. 예술가나 철학자들, 종교 지도자들은 종종 그 불안을 아예 심화시켜 보라며 사람들을 일깨우려 했다. 운문(雲門, 864~949) 선사는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말하기를 “서둘러라 서둘러.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숨 쉰다고 다시 숨 쉴 것 같으냐, 몸과 마음에 다시 쓸 여벌이 있을 것 같으냐?”며 짧게 사라져 갈 인생에 꿈을 싣는 이들을 탓했다. 편하게 살고 싶은 많은 승려들은 이 말을 듣기 싫어했을 것이다. 결정적이거나 무서운 깨달음은 다소 고통스러운 법이라서 하루하루 깨달을 것이 그리 있는가 의심하기도 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매 순간 죽음에 대한 겸허함을 실천했던 티베트의 승려들도 이들에게는 불편한 이들일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최상으로 활용하여 자신을 매번 소중하고 활력 있게 만든다. 선정을 거듭하여 최상의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실천이다. 누더기를 벗어 던지며 “오늘 저녁에 내가 죽는다 해도 이 옷을 깁느니 명상을 하는 것이 더 지혜로우리니.”라던 성자 밀라레파가 그리했다. 종교가 유발하는 종말론적 불안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복잡하게 얽어 놓는 것인가? 하지만 사람들이 지금 여기의 삶의 질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종말론을 받아들이거나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면 이는 일상을 최상의 단계 위로 올려놓는 일이 된다.

1929년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의 강의에서 하이데거는 사람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투자를 통해서 형이상학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하면 질문하는 사람 그 자신이 질문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많은 이들이 그저 취미로 철학적, 신학적인 질문을 하거나 혹은 불교연구에 매진하는데 이는 그들 실제의 삶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볼테르의 《캉디드》에 나오는 팡글로스 박사 이야기를 상기해 보자. 거대한 지진이 일어난 리스본에서 그는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 시체가 길을 뒤덮으며 여기저기 고통으로 울부짖는 것을 목격한다. 그 와중에도 그는 차분하게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텐데” 이 장면을 보면, 실존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철학자 스스로를 우습게 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팡글로스 박사가 현상 위에 보다 길게 머물러 두려움을 겪음으로써 결국 곰곰히 사유하게 된 것이라고. 우리는 불안으로 인하여 전체로서 존재가 미끄러져 사라지고 무(無)가 존재의 진짜 얼굴로 나타나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무는 우리를 미끄러지게 하여 우리가 ‘존재의 무너져 가는 총체성’으로 가도록 이끈다. 팡글로스 박사가 온 힘을 다하여 무의 현상이 그에게 말과 행동을 하게 했다면, 역설적으로 존재란 과연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무는 처음으로 존재 앞에 현존재(Da-sein)를 데리고 왔다”(114).

그러나 그는 ‘무에 손을 내민 존재’를 통하여, 존재의 실재를 노출한 현존재가 되기는 바라지 않았다(115). 그는 단지 방관자로서 현상을 연구하기를 선호하거나 이론적으로 추측하여 현상을 끼워 맞추어 보려 했다. 일상에 대하여 하이데거가 첫째로 말하는 것은 팡글라스 박사처럼 사람은 일단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 인생 후반부의 개념인 초연함(Gelassenheit)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시적으로 사유할 것인가에 대해 말해준다(Heidegger, 1975, 7:191-208). 존재 속의 이 초연함의 기쁨도 무에 등을 돌리지 않는다. 하이데거가 한창 삶을 살았을 때도 그는 마음속에서 죽음을 견디어 내야 했다(Heidegger, 1975, 7:180). “무의 성지, 즉 죽음의 항구들, 그 자체로 존재의 본성. 죽음은 무의 성지로서 존재의 은신처다.” 하이데거가 개념화한 용어, ‘Das Gebirge’는 산맥을 뜻하는데 죽음은 존재의 산맥이라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자신에 대한 어두운 불안이 아니라 존재의 경이로움을 좋아하고 찬미하는 보다 깊은 무엇이다.

불교 또한 모든 것이 무상하고 일체가 고통이며 공하다고 강조하면서 인간의 실존을 무의 체험으로 밀어 넣는다. 이 세계는 불타는 집[火宅]으로 공황과 같은 상황이다. 불교식으로 말한다면, 팡글로스 박사는 지진을 일종의 무상(無常) 신호로 해석하였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를 무상하고 고통스러우며 정체성이 없는 것으로 규정하는데, 이리하여 허무한 무는 저 스스로 축복 어린 공(空)으로 전환한다. 이는 하이데거 철학에서 무가 ‘장막에 가려진 존재’로 나타나는 것과 유사하다. 존재에 정처 없이 매달리고 무에 불안해하면서 본능적인 욕망과 공포의 노예가 되어 존재와 무 사이에서 시달려온 이 상황을 우리는 초월하여, 존재와 무 사이의 극단에서 벗어나 중도(中道)를 취하여 스스로 공의 자유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존재는 관습적이고 기능적인 속제(俗諦, saṃvṛti)에 머물 때만 살아남는다. 인간 자신의 끊임없는 존재 변화는 단지 관습적으로 실존하는 것일 뿐으로, 아직 깨달음에 이른 것은 아니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변증법

철학은 실재를 근원적으로 축복이라 파악한 하이데거와 불교의 전복적인 체험에 대하여 존재론적 이유를 찾으려 한다. 고로 철학은 이런 경험을 두고 누구에게 선물 받은 것이라거나 “이들 존재는 그 자체로 기적 중 기적”(Heidegger, 1975, 9:307)이라 말할 때처럼 그런 기적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존재의 현상과 그를 향한 사고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철학이기에 그럴 수는 없다. 신학이 그리하듯이 창조물을 은혜로운 무엇으로 취급하여 이성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게 하거나 모면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신학에서조차 죄와 죄 사함을 받은 선(善) 사이의 변증법적 연결 관계가 있다.

이는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그리고 캘빈에게서 계속 반복되는 주제이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무와 뒤엉켜 싸우는 이 부정적인 시련은 존재의 축복을 경험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없애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다. 존재 그 자체가 시련으로 변화되며, 무 또한 차례로 존재의 장막으로 전환된다. 불교에서도 비본질성과 단절에 맞서는 것이 공(空)의 지혜를 여는 문, 사물 본연의 그러함인 진여(眞如)를 경험케 하는 문이 된다. 불교사상의 흐름은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을 기록하려 하기보다는 강한 변증법적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처가 명백한 형이상학적 문제들에 답하기를 거부했다는 것은 확실한데, 그는 사변적인 면모가 지닌 초연함을 막은 것이다. 불교사상에 내재한 근원적인 변증법은 세상사에 초연하거나 사변적이지 않다. 열정과 환영의 그물을 교차적으로 분석하고 난 뒤 나타나는 변증법으로서 불교의 논법은 실용적인 목적, 즉 반야(般若, prajnā)에 따라 인도되고 보완된다.

하이데거로부터 변증법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작업인 듯 보인다. 곤잘레스(Francisco J. Gonzales)는 《존재와 시간》에서의 하이데거는 ‘철학적으로 풀어낼 수 없는 것’을 그냥 뭉개어 버리는 것으로 변증법을 이해하여 이를 신뢰하지 않았다는 점, 플라톤 이래 변증법의 끝없는 힘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그의 실패를 개탄했다. 하이데거는 불평하기를 현상학적으로 기민했던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반대로 “플라톤은 변증법에 와서는 이성을 배신하고 모호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변증법이란 것은 언명의 대상으로 존재를 취급하며 언명 자체를 존재와 충돌시킨다.

그리고 존재에 필요한 것은 말이라면서 존재에 대하여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반면, 언명 스스로가 발현되도록 한다. 최근의 변증법은 헤라클리투스로까지 올라가 논의되고 있는데, 자링겐(Zähringen, 1973)에서 행한 최근의 세미나를 보면, 변증법을 존재에 대한 사유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곤잘레스는 하이데거 스스로 변증법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며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부정신학의 면모를 가진 자동해체된 변증법이 《시간과 존재》(1962)에 나타난다는 의견에 반대했다.

실상 이 자동해체된 변증법은 대승불교의 중관철학(Madhya-maka)이나 선, 도교의 면모에 더 가깝다. 특히 최종 움직임에서는 더욱 그렇다. 존재의 생기(生起, Ereignis) 즉 존재에 의해 일어난 사건을 강의와 같은 형식을 통해 언급하는 것조차 이에 방해가 된다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존재의 생기는 단지 명제의 형식을 통해서만 말해져 오기 때문이다(Heidegger, 1975, 14:30). 중관철학의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 또한 자신이 명제를 앞세운다고 하지 않았다. 명제는 오로지 세속의 영역 혹은 속제에 속할 수 있을 뿐, 궁극적인 의미를 가진 진실, 곧 진제(眞諦)에 속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하이데거는 어떤 견해(dṛṣṭi)에 집착하기를 멀리하는 불교와 무견해성의 선 사상에 가까운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하이데거의 사상에서 우리는 우연찮게 헤겔에 근접하는 변증법적 과정 같은 것을 추적해 볼 수 있다. 하이데거는 서로 밀접하게 엮어진 현상으로서 존재와 무를 함께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 생각은 그의 에필로그(1943; 1975, 9:303-312)와 서론(1949; 1975, 9:365-383)에서부터 《전집》(1975) 그리고 후기 저작까지 줄기를 타고 여러 방식으로 전환되어 갈 것이다. 하이데거는 헤겔이 무의 현상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다룬다고 보고 헤겔의 《논리학》 서두에 나타나는 텅 빈 재현을 존재와 무와 같은 것처럼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약간 잘못된 것이다. 그는 존재와 무의 보다 더 깊은 관계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논리학》의 반성론에서 존재는 모습이 된다. 즉 존재는 즉각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나타나 반성의 부정적인 운동에 의해 사실로 드러나 인정된다.

하지만 여전히 모습으로만 살아간다. 모습은 순간으로서의 존재다. 혹은 무에 의해 꾸며진 존재이다. ……모습은 무이지 그 자체로 실재가 아니다. 존재의 환영일 뿐이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존재와 무의 밀접한 교섭은 현상학적 내면의 닫힌 무엇으로 나타난다. “무는 인간 현존재에게 존재를 여는 무엇이다.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 속에서 무의 무화(無化)가 일어나는 것이다”(Heidegger, 1975, 9:115). 물론 헤겔의 존재와 무의 논리에도 현상학적 전환이 있다. 그는 “존재를 드러내 보이려고 부르면 그것은 자체로 곧장 비존재이다”고 했다. 반성은 존재가 가진 최초의 위치를 무화시킨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부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가는 운동 속의 한순간으로 존재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헤겔의 이 논리적 단계는 현상의 위상을 드러내는 비판으로 활용된다. 그리스의 회의주의, 라이프니츠, 칸트, 피히테의 관념주의의 시각으로 논리학을 보면 이는 최종단계에서 극복된다. 헤겔 개념론의 역동적인 구조 속에서도 존재는 사고의 부정적인 운동에 의해 끊임없이 침범을 당한다. “본질은 존재의 첫 번째 부정이다. 부정을 통해 ‘모습’이 되었던 이 존재가 두 번째로 부정되어 개념이 된다. 그러니까 개념은 부정의 부정이다. 이렇게 존재가 다시 세워지는데 존재 자신의 끊임없는 중재와 부정성으로서 그런 것이다.”  

헤겔과 하이데거는 존재로 가는 자유로운 관계의 돌파구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독자들은 현상의 힘을 놓치지 않고, 억지논리로 인해 현상학적 경로를 놓치는 일도 없이 중관철학의 공(空)과 진여(眞如), 혹은 하이데거의 불안의 시련과 존재의 부름 사이에 논리적인 연결점을 찾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중재적인 사유, 혹은 참선의 자유는 현상을 주관화한 다음, 형이상학적 근거와 이성으로 향하는 자유이다. 따라서 이는 헤겔이 말한 개념의 자유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헤겔의 존재론적 개념 또한 형이상학의 바짝 죄어진 아픈 형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논리학》 전체에 걸쳐 그는 형이상학이 지닌 내적 논리를 설명, 비판하고 있다. 개념으로부터 뒤로 더 물러가 존재의 근원적인 사유로 가고자 할 때 하이데거는 근거에 입각한다. 이는 개념이 지닌 보다 활력 있고 뿌리 깊은 힘을 펼치게 하려는 것일 게다. 비교해 보면 중관철학도 근거에 입각하여 불교의 세속적 개념들을 활력 있게 전개하려 한다. 개념이 단지 세속적이고 기능적인 위상을 지닌다는 데에 대하여 헤겔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헤겔이 설명하는 대다수의 개념은 여전히 해체의 과정에 있는 것처럼 보이며 또한 이 싸움으로부터 붙어 나오는 개념작업은 정해진 체계가 아니라 생각을 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볼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세속적이다. 그리고 헤겔의 개념 세계를 불교를 통해 비판적으로 재고하지 말란 이유도 없다.

불교의 변증법

공(空)이 절제의 수양, 혹은 중국 사람들의 표현처럼 ‘정신의 단식’이라 해도 나가르주나가 논증하는 것조차 막을 수는 없다. 칸트는 논증의 이런 모순을 알기 때문에 그런 모순들이 가정하는 실체라든가 시간, 공간 등을 문제 삼지 않으며, 시간, 공간, 실체에 대해 형이상학적인 해석을 가할 뿐이다. 그와 달리, 나가르주나는 시공간과 자아가 영속하지 않기 때문에 모순적인 테제 자체가 설정될 수 없다고 본다. 여래(如來)조차 우주가 실체가 없이 공하고 연기적이라는 속성에 압도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런 그에게 우리는 무한이냐 유한이냐, 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사구부정(四句否定, tetralemma)의 논법을 적용할 수도 없다.
공의 지혜는 여여(如如)를 실현할 때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은 헤겔이 말한 존재의 즉각적인 재건과 유사하다. 그러나 헤겔에 의지하여 중관철학을 끌어오기는 쉽지 않다. 헤겔의 부정의 힘은 한 묶음의 주장이 무너지고 난 뒤 그것을 대체하는 더 발전된 새로운 한 묶음의 주장을 생성시키지만, 중관철학의 경우 앞을 준비하는 어떤 암시도 없이 각종 환상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여 해체시켜 버린다, 그리고 앞으로 어찌 갈 것이라는 어떤 주장도 하지 않는다. 무르티(Murti))는 헤겔은 개념이 구현되는 전체적인 측면에서 즉각적이고 외관적인 존재(Schein, show)의 진실인 속제를 옹호하는 반면, 나가르주나는 속제, 곧 세속적인 진실은 궁극적 진리로부터 절대적으로 구별되는 거짓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중관철학의 변증 과정은 나중에 추가되는 부분이 아니라 여러 견해를 곧바로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가 만약 비판적 변증론 속에서 범주들을 설명함으로써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용해하여 헤겔의 《논리학》을 읽는다면, 헤겔 사상에서 말하는 부정은 불교사상에 근접하게 된다. 헤겔 철학에서 모든 사물과 의식의 상태는 그 자체로 부정이다. “실존이란 그 자체로 이렇게 하나의 ‘부정’인 것이다.”(Heinrich 1978, 216) 생각을 결정짓는 논리들을 부정해 가면서 결국 자유로운 사고가 개념 혹은 이데아로 나타나게 된다. 중관철학에서는 모든 사고가 속제에 속한다. 궁극적인 것은 개념 구분이 와해되는 곳에서 나타난다. 정견(正見)은 세속의 덕이 되지만, 반면에 궁극적인 진리에 대한 통찰은 사고하는 것을 넘어선다. 헤겔의 변증법을 논리를 정확하게 세우며 읽지 않고 고정된 견해에 얽매인 사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읽고자 한다면, 이는 기능의 면에서나 세속적인 면에서나 불교적 의미의 개념 세계에 가까이 간다.

불교의 공은 존재의 한복판에서 작용하는 무를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현상의 가장 약하고 상호의존적인 곳에서 현상 저 스스로 새로운 자유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가 공의 본질적인 실재에 반하여 세속을 본질적이지 않은 겉모습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세속과 궁극성이 지닌 보다 더 궁극적인 상호연관성을 놓치는 것이다. 세속을 세속적인 것으로 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미 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의 지혜는 세속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니, 공의 지혜는 반성 그 자체, 세속적 자기반성이다. 공의 여여함은 자성(自性, svabhāva)이 자족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의 여여함은 공과 완전히 같은 존재이거나 아니면 공의 순간이 되어 보는 것이다. “삼라만상 그 자체가 공이고, 공이 곧 삼라만상이다”(《반야심경》). 우리는 공이 연기로 구현될 때만 비로소 그 공을 안다. 또한 우리는 마음을 텅 비우고 자기를 부정하거나 자기를 해체하여 그것을 붙잡으려 할 때 비로소 공의 여여함을 안다.
현상학적인 동시에 개념적으로 이런 통찰을 깊게 하면서 사람은 윤회의 연약한 세계, 그 고통과 유한성의 세계가 더없이 행복한 공의 세계인 열반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이 나가르주나의 축적된 통찰이다. “열반과 윤회 사이의 차이는 없다. 윤회와 열반과 사이의 차이도 없다. 열반의 경계는 윤회의 경계다. 양자 사이에는 미묘한 격차마저도 없다”. 공의 발견은 그 자체로 행복한 열반이다. 모든 집착과 개념들이 작동을 멈추고 잠잠한 곳이다. 일상마저 열반의 장소일 수 있다. 열반의 경지에 든 사람도 일상을 살 수 있다. 그는 일상을 세속으로 활용하면서 나머지를 궁극적 실재로 이끌 것이다.

유식(唯識, Yogācāra)은 정신철학을 통해 공으로 가는 통찰을 가다듬으려 함으로써 중관철학을 넘어선다. 이를테면 나가르주나가 칸트라면 유식은 헤겔이라 볼 수 있다. 의식의 창고인 아뢰야식과 전식(pravṛtti-vijṅāna) 사이의 변증법적 작용, 그리고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parikalpita), 의타기성(依他起性, paratantr), 원성실성(圓成實性, parinispanna)으로 나뉘는 앎의 세 가지 유형 사이의 변증법적 작용은 체계적인 담론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불교적 경험을 끌어와 이를 개념화시킨다. 모든 법(法, dharmas)의 공을 구현하는 것에만 정신을 쏟아붓는 것에 반대하여 유식철학은 보다 더 긍정적인 과정을 기획한다.

변계소집적인 앎으로부터 의타기성의 앎을 지렛대로 삼아 원성실성의 앎으로 돌아서는 일이 바로 전환(āśraya-prāvṛtti)이다. 우리는 거기서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의 무존재성과 공에 대해, 모든 것이 서로 연관하여 조건과 인과로 작용하여 발생하는 연기에 대하여 통찰하게 된다.

싼따라끄쉬타(Śāntarakṣita, 725~788)와 그의 제자 까말라실라(Kamalaśila, 740~795)는 공에 대한 최종적인 언급은 유보했어도 유식의 이런 분석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하이데거를 받아들이는 현대의 선사상이나 헤겔을 받아들이는 현대의 대승불교가 있다면, 이들은 불교적 통찰을 똑같이 정당하게 발전시켜 가는 것이라 본다. 이리하여 불교적 통찰을 통해 현대의 일상을 실제 세계의 본성 속으로 강력하게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공은 《반야심경》에서 극적으로 선언되었고 나가르주나의 사상에 의해 논리적이고 존재론적인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불교 전통의 후반에는 이 힘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만사가 공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집착하는 허상이 허무한 것이라는 것만 보여주는 교육적 수단이나 방법으로까지 축소되었다.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주관과 객관이라는 오인된 이원론의 고통을 극복하려 했고 실재와의 새롭고 자유로운 관계성을 누리려고 했다. 이에 유식은 공을 실존에 넣어 다시 소화하기 시작했는데, “궁극적인 것은 부재의 실존, 무아(無我), 여여(如如), 모든 사물의 실재, 개념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대상이다.

 이는 또한 사물의 구현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래장 사상은 부처와 궁극적 실재를 동일시하는데, 모든 존재에 불성(佛性)이 있다. 공을 전문적으로 다루기는 하지만, 강조하지는 않는다. 여래장사상에서 공은 근본적으로 순수한 부처의 본성이 아니라 사물이 더럽혀진 상황에 적용한다. 이런 전통 속에서 《대승기신론》은 여여에 초점을 맞추어 공을 보는데, 공은 처음부터 더렵혀진 상태와 어떤 관련도 없으며, 사물을 독자적으로 구분하는 모든 표시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무명(無明)에 의해 오염된 사상들과 무관한 것이다.

위의 책은 《유마경》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모든 중생은 본래 영원한 것이며 열반으로 들어간다. 깨달음이란 수행에 의해 얻어지거나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깨달음이란 얻을 수 없는 것이다.[처음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공에 대한 예리한 인식 대신 열반의 영원성을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데, 《유마경》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공은 불이(不二)와 여여(如如)의 불빛을 실현하는 과정을 같이 밟는다. 나가르주나가 설명했듯이, 공과 여여의 통합은 이들 사이의 근원에 흐르는 논리적 연결 관계가 여전히 작동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유마경》 속에서 다시 점검되었던 놀라운 모든 기적은 다음의 결과를 내놓는다. 즉, 가정사의 일상 같은 변변찮은 현실을 포함하는 윤회의 세계는 자세히 보아도 열반과도 서로 구분될 수 없는, 실체로서의 실존이 없는 공(空)한 곳이다. 《유마경》은 여신을 가정부로 두고 사는 어떤 재가 보살(lay bodhisattva)에 초점을 맞춘다. 일상에 대한 고전적인 불교의 관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일본의 쇼토쿠 태자가 간절히 따라가려 했을 법한 일이다. 어떤 독자라도 보살이나 태자가 유마의 초월적인 경지에 걸맞다고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무적인 메시지가 이 사례를 통해 온다. 우리 자신이 있는 바로 그곳, 그 세속적인 일상의 환경 속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삼라만상의 공과 불이(不二)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유의 어두운 근원, 하이데거와 도교

1950년대 후반 하이데거의 저작에 동양의 영향이 나타난다. 1954년에 탈고된 테쯔카(Tezuka) 교수와의 대담, 노자가 인용되는 1957년 강의 《정체성의 문장》(Der Satz der Identität, Heidegger 1975, 11: 33-50)과 《언어의 본질》(Das Wesen der Sprache, Heidegger 1975, 12:149-204) 그리고 장자가 인용되는 1960년의 강의, 《형상과 말》(Bild und Wort, Heidegger 1975, 74:183-187)이 그것이다. 이것들이 어느 정도 ‘숨겨진 자료’라 해도 이 서지들은 오히려 하이데거가 현상학자로서 오랜 정체성을 지녀왔다는 것을 재삼 확인시켜 준다. 특히 그는 은폐된 현상들을 계속 비틀어 대는 존재의 현상학자이다. 그는 질료(Sache)라고 하는 사건, 사태, 사실 그 자체를 통해 사유를 이끌고 의견을 제시해 왔다. 그의 사유는 형이상학의 밀봉된 개념들을 터뜨려 솟구치게 하였다. 그의 사유가 움직이는 방향은 최종적으로 ‘무언(無言)’의 경지, 즉 언어를 초월하는 것이었고 그는 이것이 도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가 “도교의 무언의 경지를 빌려왔다.”고 해도 그의 사유로 보건대, 이는 독자적으로 자연스레 발전된 것이다. 사고의 출발점과 같이 보다 심층으로부터 논리적으로 생각하여 명료성을 세울 때, 즉 도(道)와 같이 보다 더 원초적인 차원으로부터 사유의 운동을 바라볼 때, 하이데거는 도교에 가장 가깝다.

형이상학의 유산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적 질문이 가진 근원의 입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비트겐슈타인처럼 그는 우리가 질문하는 방식을 조작하는 형이상학의 전제, 우리의 언어 속에 각인된 형이상학의 전제들을 꺼내는 것이다. 이 비판은 다음의 결과를 내어놓을 터인데, 그것은 이런 용어로는 도무지 질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 알고 나면 질문은 사라진다. 진정한 질문은 실제로 다른 곳 즉 원초적인 수준에 놓이게 된다. 이리하여 1956년 강의 시리즈 《근거율(Der Satz vom Grund)》이 나오는데, 그는 여기서 여러 수수께끼를 다루고 있으며 라이프니츠에 의해 형성된 충족이성의 원리들이나 혹은 처음부터 비교적 원리적인 것을 다룬 글에서 보이는 이중논리들을 다루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이성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의 원리는 이성적이다 같은 순환론적 논리가 그것이다.

하이데거는 어느 점에 와서는 이런 질문을 멈추기도 하는데, 이는 이런 질문이 우리를 존재의 현상으로 결코 이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혹은 ‘없이’ 같은 단어에 강조점을 주지 않는 반면, ‘존재하는’ ‘이성’의 단어에 귀를 기울인다. 즉 그는 원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주장되는 것을 들으려 하는 것이다. 이성과 그 근원에 대한 그의 편집적인 탐구는 존재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즉 존재를 존재케 하는 어떤 비의지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이런 것을 버리면 우리는 존재의 작동 안으로 자유로이 들어간다. 형이상학적인 질문이 일상의 현실로부터 이원론으로 인해 골치 아픈 사유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했고 연이어, 우리로 하여금 존재와 실생활의 연결을 놓친 채 근원을 탐구하게 하여 다시 골치를 썩였다면, (하이데거의) 사유의 게임은 우리를 뒤로 돌려 믿을만한 현재의 현상과 만나게 할 수 있다. 현재 현상은 존재의 ‘근원’을 자각하게 하니 믿을 만한 것이다. 

  1957년 강의 《정체성의 문장》 시리즈인 《사유의 원칙》(Grunds-ätze des Denkens)에서 하이데거는 정체성의 법칙과 같이 모순이 없고 중간자적인 사유의 최고 원칙들이 독일 관념론 속에서 어떻게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는가를 적고 있다. “사고가 고의로 변증법이 되는(Heidegger, 1975, 11:128). 움직임이다. 피히테, 셀링, 헤겔에게서도 그렇고 횔덜린과 노발리스에게서도 그렇다. “(인간의) 사유인 변증법의 차원이 들어간 역사적 사실에 의해 우리의 현재가 제 모습을 잡는다(130)고 하니, 이 변증법의 차원을 우리는 형이상학의 역사적 진행과정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사유로 인정해야 한다”(131)는 것이다. 변증법이 완전히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경지에서 변증법적 사유가 승리를 구가한다(131). 변증법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변증법은 사고의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 ‘보다 더 근본적인 조치’를 만들어 낸다(132). 반박하지 못하도록 해결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실로, 살아 있는 사유는 사고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최초의 것과 모순을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132). 삶과 죽음의 모순은 변증법적으로 감싸 안아진다. 정신은 “저 스스로 절대적인 모순의 상태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 비로소 모순의 진실을 얻어간다. 정신, 그것은 모순 속에 있기 때문이다”.

변증법은 오늘날 하나의 글로벌한 실재가 되었다. 아마 그 자체로 글로벌 실재(Heidegger, 1975, 11:133)이기도 할 것이다. 원자의 시대에 들어 하이데거는 이를 자연에 대한 과학의 승리와 연결 짓는다(134). 변증법이 사고법칙의 주체이자 객체이고자 한다면 변증법이 어떻게 사유 그 자체와 함께 할 수 있는가?(137). 과학적 사고는 사고의 법칙이 만들어진 근원에 다가갈 수 없다. 이곳은 우리에게는 어두운 곳이다(137-138). 이 애매한 어두움(Dunkelheit)은 건전한 어두움이다. 사고법칙으로서 스콜라 철학의 자명성은 거짓이다(138). 우리는 자명성의 비밀스런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플라톤의 변증법은 이를 운명이라고 까지 했는데 이미 운명이 되었다(131).

“질료에 의해 요구된 생각-사실이 말을 걸어 옴-이 사고의 법칙을 추구할 때, 그 생각은 그렇게 되려는 도중에 전환하여 버린다.”(Heidegger, 1975, 11:33). 《정체성의 문장》 서두에 있는 언급이다. 이는 《근거율》에서 시작한 사고의 법칙과 가진 싸움 중에 있는 하이데거가 가진 생각의 흐름을 잘 요약해 준다. “질료(Sache)에 고유한 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전환하는 힘이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여분의 메모(33)에 “질료가 어떻게 사고를 넘어 이 힘을 쓸 수 있는가?”라고 추가하였다. 아마도 사고 그 자체의 변증법적 가능성을 추출하여 그리할 것이다. 여기서 헤겔과의 유사점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사유는 자기의식적으로 자신의 사유과정, 즉 내용이 아니라 그 자신의 ‘길’에 주의를 집중한다(33). 이런 사유는 독일 관념론이 이룩한 자의식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변증법을 사고의 차원으로 성격 지울 경우, 즉 실로 형이상학의 역사적 진행과정에서 이룩된 가장 높은 차원의 사유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 ‘변증법적 논증을 통하여 지금까지는 닫힌 영역 속에서 사유 본질의 경계를 추적하는 판단 기준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변증법을 통하여 사유는 온전히 그 자체만을 사고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승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사유는 맨 먼저 그 자체가 된다.”(Heidegger, 1975, 11:131). 헤겔을 통해 헤겔을 넘으려면 생각은 이제 보다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다가와 도교의 품 안으로 내려앉는다.

사유의 어두운 근원과 관계하여 하이데거는 횔덜린을 인용한다. “누구인가 향기로운 비커에 가득한 어둠의 빛으로 나에게 다가오게 하렴”. 그는 또한 노자도 인용한다. “자신의 현명함을 아는 이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숨긴다.”(138). 도교의 한 서적을 인용하면서 하이데거는 그의 의식과 비슷한 변증법적 의식을 동양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그 책은 음과 양, 존재와 무, 삶과 죽음의 분리불가능성을 언급하는데, 이들 양극단을 현상학적으로 섞는 것만큼이나 그리 논리적인 변증법은 아니다. 하이데거는 《사유의 원칙》에서 현상학적인 전환을 시도했는데, 여기서는 말장난처럼 보였던 것이 《근거율》에서는 발전된다.

이 《근거율》에서 하이데거는 독자를 여행하도록 이끈다. 생각하는 주체는 새롭고 예상하지 못한 관계 속에서 변증법적 전복을 통하여 표준적이며 합리적인 생각으로부터 질료를 사유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런 전복은 헤겔에게는 보통이다. 예를 들어, 주체가 자신의 생각을 출발시킬 때 그는 자신이 마치 생각의 근원인 듯이 여긴다. 하지만 실상 서술부(주어가 아니라)가 본질이다. 그는 주체인 자신이 이미 서술어 안으로 들어와 스스로 진압당하는 것을 알게 된다. 하이데거의 전복은 헤겔의 그것을 넘어선다. 헤겔의 전복은 새롭고 숙고된 양상으로 생각을 전환시킨다. 전환은 종종 교차대구적인 명제로 요약된다. “말의 본질은 본질의 말이다”는 식이다. 교차대구어법은 우리가 질료 안으로 보다 깊게 들어가 생각할 때 정신의 전환을 반영하며 이리하여 사유의 선점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런 변증법적 전복은 형이상학적 논리로부터 뒤로 몇 발 물러나 전적으로 현상에 집중하는 자신을 알아채는 그 생각 속에서 벌어진다. 하이데거가 현상을 돌려놓는 방식에는 잔잔히 흐르는 논리적 운동이 있는데 이는 그가 현상을 명상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축적되는 변증논리라기보다는 비교적 도교의 단계논리(one-step logic)에 근접하는 논리 중 하나이다.

《언어의 본질》에서 ‘길(way)’은 반성적인 인간에게 보내는 독특한 낱말이다. 하이데거는 이를 도(道, Dao)로 이해하는데, 이는 “노자의 시적 사유의 핵심어이다”. 은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번역가들은 이를 ‘길’로 번역하기를 두려워하고 대신 ‘이성(Vern-unft)’ ‘정신(Geist)’ ‘의식(Sinn)’ ‘로고스(Logos)’ 등으로 번역해왔다(Heidegger, 1975, 12:187). 모든 사물을 자신의 길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니 우리가 도(道)를 길로 생각하는 것이 더 좋다. 이렇게 도를 이해한다며, 우리는 이성, 로고스, 의미 등을 타당한 근거에서 말할 수 있다. 언어 안에서는 말해지지 않은 무엇으로 언어를 되돌려 보내면, 우리는 보내는 일에도 익숙해질 수 있다(Heidegger, 1975, 12:187). 사유의 기본법칙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이 원초적인 길일 것이다. 여기서 변증법적 전복 같은 것이 다시 일어나고 교차대구법이 그대로 제공된다. 즉 사유의 방법과 법칙은 방법과 법칙의 사유이다.

일상의 거짓과 수다이든 아니면 붕 뜬 허황한 담론들이든, 하이데거는 보다 더 근원적인 차원으로 돌아감으로써 피상적으로 사유하기를 극복한다. 이는 교차대구법으로 표현되는 변증법적 전복의 형식을 취한다. 하이데거는 그래서 일상으로부터 궁극적 실재로 옮겨갔는가? 아직은 아니다. 그의 사고는 ‘길 위에(on the way)’ 남아 있다. 보다 근원적이지만 그렇다고 꼭 궁극적인 실재(하이데거가 질료(Die Sache)라 불렀던)는 아닌 것들, 그러나 생각이 실재에로 향하는 현상들로부터 말을 걸어오는 길 위에 있는 것이다. 대지의 현상들 사이에서 ‘머무른다는 것’에 연관하여, 하이데거의 생각은 인도불교보다는 도교나 선의 도교적 양상에 더욱 밀접하게 다가가 있다.

헤겔, 하이데거, 불교, 도교로부터 일상에 관한 지혜를 건져 올려본다면 이는 어떤 형식을 취할까? 틀림없이 하루하루 삶의 불만족성에 대하여 가차 없이 판단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시간의 찰나적인 특성과 어찌할 수 없는 불가능성으로부터 배우려 노력하면서 그 부정성을 껴안으려 할 것이다. “부족한 것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우리가 문제다”. 어느 경우든 부족함은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집이 우리 주변에서 불타고 있지만 그에 대한 번뇌는 철학적인 교훈을 만들어 내는 생산자로서 간주될 수 있다. 번뇌는 본질적 존재에게 말을 거는 만물의 끝없는 허무와 사멸의 세계, 즉 윤회적 세계가 지닌 본래의 공에 관하여 말을 한다. 그러고는 변증법적 전복, 즐거운 반전, 혹은 전환이 온다. 발판 없는 무엇에 매달리기를 그만두면 우리는 존재의 새로운 현존양식으로서 공의 자유를 발견한다. 우리는 일상의 하루하루를 어디에 쓰냐며 더 이상은 머리를 굴려 질문하지 않는다. 그저 그대로 오게 놓아두고 실제와 마주치는 공의 자리로 놓아둔다. 사물의 여여함을 매번 맞볼 때마다 우리는 궁극적인 무엇을 겪어가면서 살아가면서 형성하는 나약한 관습들을 좀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 신에 대한 성경적 믿음은 확실히 좀 더 구체적인 응답과 약속된 거처를 제공하지만, 비인격적 철학과 종교들에 의해 구성된 실존의 구조는 성경의 비전 안으로 들어가서야 타당성을 가지며, 그 안에서 그곳으로부터 타당성을 명확히 밝히는 데 기여할 것이다. ■

 

 

신항식 / 한양대학교 초빙교수.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서양 근현대사로 DEA, 파리 디드로 대학에서 제3세계 사회학으로 DEA 학위를 받았다. 국제회의 한-영-불 통역사 겸 한국외대 통번역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역임했고, 2002년부터 2013년까지 홍익대 미술대학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한양대, 이화여대, 연세대 초빙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 《시각영상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으며 〈신자유주의 디아스포라〉 등 10여 편의 논문을 썼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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