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비로소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진작에 퇴직하고 빈둥거리는 친구들에 비하면 그나마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니 40여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해온 것이 꼭 남의 심부름만 하며 살아온 삶인 것 같다. 나를 위해 시간을 사용해본 적도 별로 없고, 또 가치 있게 살았다고 할 수도 없다. 언제나 을의 입장에서 숨을 헐떡이며 살아왔다. 때로 의미 없이 안주하며 굴복하면서 비겁하게 살아왔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퇴직한다고 하니 빈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마음이 허하다.

친구 아버지 얘기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집안에선 말이 없고 차가우리만큼 엄숙했던 그의 아버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아버지는 벌써 출근했고, 밤늦은 시각 때로는 술에 취해 돌아왔다. 그리고 말없이 잠자리에 들어서서 얼굴을 맞댈 기회라곤 없다. 가끔 마주치면 “잘하그래이”가 전부다. 그렇게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마음속으로 존경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답답한 사람이었다.

취업이 안 돼 빈둥거리던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의 주선으로 아버지 회사에서 알바를 하게 된다. 지하에 매설된 상하수관로, 송배전로의 지도를 분류하는 작업인데 그의 아버지는 하수관로를 관찰하고 보수하는 현장출동 반장이었다.

하수관로 지도 분류작업이 끝나자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하수관로 실태를 파악하는 현장출동반에 투입됐다. 아버지가 캄캄한 터널과도 같은 하수관로를 헬멧 이마에 부착된 플래시 불빛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데 벌써 시큼한 오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들은 코를 싸매고 붕어처럼 입으로 숨을 쉬며 아버지를 뒤따라가는데 아버지는 냄새를 의식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오니가 가득한 하수도 물을 헤치고 나가다가 물 위에 하얀 배를 드러내고 떠 있는 불어터진 쥐의 사체를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집어 저 멀리 내던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들은 토할 것 같았지만, 아버지는 그런 것에 너무도 둔감하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퇴근 시간이었다. 그날은 젊은 사장이 주재하는 직원 회식이 있었다.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회식에 참여했다. 20명 가까이 되는 직원들이 기다란 상을 앞에 하고 마주 앉았다. 소주에 삼겹살을 구워 먹는데 아버지는 젊은 직원들 틈에 끼어 앉아 말없이 스스로 따른 술잔을 비웠다. 화제의 주인공은 젊은 사장과 직원들이었다. 아버지는 화제의 중심에 있지도 않았고, 끼어들 생각도 하지 않는 듯했다. 그저 끝자리 주변 좌석에 앉아 화제에 귀를 기울이는 듯 마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소주잔을 비우기만 했다. 자리는 물론 각자 스스로 찾아가서 앉는 것이었지만 아버지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먼저 왔으면서도 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 광경이 너무도 불편해서 아들은 밥을 먹다 말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고 만다. 그러나 뒤늦게 귀가한 아버지는 그에게 딱 한 마디 던진다.

“밥을 제대로 먹고 나와야지.”      

나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이 들자 젊은 직원들은 백안시하고, 공연히 회사 인건비 예산을 축내는 사람 같아 눈치 보인다. 재계약이 이루어지는 연말에는 가슴 조이고 불안해진다. 그래서 때로 비굴하게 간부들 앞을 얼쩡거리고 일하는 모양을 보이려고 하는데,자를 계획을 세우고 있는 CEO는 그런 눈치를 먼저 알고 좀처럼 틈을 보여주지 않는다. 직무는 알게 모르게 다른 직원에게 배정된다. 중요 회의에서도 배제된 것을 회의가 끝난 며칠 후에 알게 된다. 그런 때의 상실감과 소외감. 나이도 고려해 과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근무할 열정과 역량이 있는데 하면서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계약해지가 통고되면서부터 모두가 잠들어 있는 꼭두새벽, 아쉽고 쓸쓸한 꿈속에서 헤매다 깨어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밀려오는 여러 가지 회한들…… 고향의 옛 친구, 소식을 알 수 없는 이름도 잊어버린 동창생, 직장에서 만난, 유쾌했지만 반면에 상처를 주고 또 받았던 사람들, 돌아가신 부모님과 뿔뿔이 제 갈 길 찾아 흩어진 가족들, 전성기 시절의 열정과 청춘의 뒷골목…… 불현듯 이런 추억의 편린들이 가슴속에 돋아나 자란다. 아쉽고 마음 졸이던 그것들을 접할수록 가슴을 벤 것처럼 왠지 상처가 된다. 그때 좀 더 잘했을 걸 하는 처연한 후회가 가슴을 훑어올 때마다 때로 숨이 콱 막힐 때가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여전히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데 무슨 일을 찾지? 끈 떨어진 연처럼 아무렇게나 추락하는 기분이 된다. 그래서 더 쩔쩔맨다. 이렇게 여러 날을 잡다한 생각 속에 갇혀 있는데, 중국 당나라 때의 고승 장사경잠(長沙景岑,?~868)의 게송이 떠올랐다.


百尺竿頭坐底人
백 척의 장대 끝에 앉은 사람을 가리켜
雖然得入未爲眞
한 경지를 얻었다 해도 아직은 부족하네
百尺竿頭須進步
모름지기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十方世界現全身
온 세계와 내가 한 몸임을 보여주게 되리

욕망의 끝에 매달려 있는 내가 마음을 비우고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럴 주제가 못되지만 나를 유용하게 써먹을 기회를 다시 잡기 위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연순환의 법칙에 순응하면서 나를 재정비해야 한다. 실천적 과제를 설정해 앞으로 나아가면 작은 자기 성취라도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사는 가치도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다.

은퇴란 바로 십만 리 구보권을 확보하는 시간이다. 보다 많이 걷고 보다 많이 체험하고 보다 많이 생각할 것이다.

 

이계홍 / 언론인 ,  khlee05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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