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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이 맛있다 / 변택주
[65호] 2016년 03월 01일 (화) 변택주 꼬마평화도서관을여는사람들 바라지

불자들은 대체로 경전을 잘 읽지 않는다고 알려져 왔다. 경전이 대부분 한자어로 되어 탓에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처님 육성이 생생하게 담긴 빨리어 경전을 우리말로 풀어낸 것들이 하나둘 나타나더니 2000년대 초반 전재성 박사가 디가니까야를 비롯한 니까야를 완역해 내놓았다. 이어서 각묵 스님과 대림 스님이 뜻을 모아 니까야를 펴냈다. 그러면서 재가불자들 사이에서 부처님 말씀이 스펀지에 물 스며들 듯이 가만가만 살살 여울지고 있다.

불경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제자들이 함께 외워 이어오다가 뒷날 적바림한 것이다. 그래서 요새 나온 책처럼 책상머리에 앉아 문법에 맞춰 써서 남긴 글이 아니라, 입말을 고스란히 담아낸 말씀으로 숨결이 고스란하다. 그런 말씀을 입을 꾹 닫고 앉아 눈으로만 읽는다면, 말씀으로 다가오지 않고 고일 뿐이다. 눈으로 받아들여 머리에 고인 것은 메마른 지식에 그치고 만다. 크게 소리 내어 읽으면 뼛속 깊이 스미고 가슴 깊이 울린다. 울림, 함께 읽으면 어울림이다. 눈으로 읽기가 머리에 끼워 넣기라면 소리 내어 읽기는 몸에 새김이다. 더구나 입에서 입으로 이어온 부처님 말씀은 본디 운율을 넣어 읊던 시 가락이었으니 긴 시를 읊듯이 읽어 내려가다 보면 시대를 거슬러 부처님 법석에 앉아 듣거나 경전 결집을 할 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다.

불경을 소리 내어 읊다가 옛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비롯한 《동몽선습》이나 모든 책을 읽힐 때 소리 내어 읽도록 한 까닭을 알았다. 절집에는 합송하는 전통이 이어져왔다. 사시예불에 참석한 불자라면 누구나 합송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전에는 한자로 된 말씀을 무슨 말씀인지 알지도 못하고 따라 외웠을 뿐이나 요즘에는 한글로 풀어진 《반야심경》이나 《천수경》 무상게를 읊다 보니 신바람이 절로 난다.
특히 초기경전 니까야는 부처님 말씀을 고스란히 옮긴 것이기에 소리 내어 읊다 보면 부처님이 조곤조곤 내게 말을 건네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도반들과 돌아가면서 한 꼭지씩 읽는 것으로 시작해 기어이는 함께 읊는데, 처음에는 엇박자가 나지만 머잖아 서로 호흡이 딱딱 맞는다. 마치 반딧불이 수천 마리가 처음에는 서로 엇갈려 반짝이다가 기어이는 모두 한꺼번에 번쩍이는 것처럼. 이렇게 어울려 읽다 보면 함께 읊는 도반 목소리를 빌려 나오는 부처님과 제자들 목소리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뿐만 아니라 경전을 소리 내어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면 부처님이 거룩한 어른이라기보다는 친근한 이웃 할아버지처럼 다가온다.

디가니까야의 《대반열반경》 《살라 나무 한 쌍 경》에서 부처님은 “아난다여, 허리가 결리는구나. 누어야겠다.” 하신다. 《물을 떠옴 경》에서는 “아난다여,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서 깔아라. 아난다여, 피곤하구나. 나는 좀 앉아야겠다.”고 말씀한다. 늙고 마른 몸으로 바닥에 앉거나 누우시니 몸이 배기셨는지 두툼하게 깔개를 만들어달라고 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어 “아난다여, 물을 좀 떠다 다오. 목이 마르구나.” 하고 말씀하신다. 이 대목에서는 ‘늙으니 입이 자주 마르시구나’ 하고 실감이 난다. 이처럼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눈으로 읽을 때 스쳐 지나가던 대목들이 말씀으로 다가온다.

찰리 채플린이 움직이는 사진, 영화를 처음 만들면서 스스로 감탄해 마지않았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면 빵! 터져나갈 거야.’ 잔뜩 부풀어 개봉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 반응은 겨우 “예, 좋아요.” 하고 만다. 맥이 풀린 채플린은 ‘아니 대체 왜 이래? 뜨뜻미지근하다니, 사람들이 다 미친 거 아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무엇이 잘못됐는지 골똘히 생각하던 찰리 채플린, 드디어 다시 영화를 만들었다. 그렇게 빚은 작품이 〈모던 타임즈〉였다. 어땠을까? 사람들 반응은 뜨겁다 못해 터져나갔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대사를 넣었느냐고? 아니다. 그만한 실력은 아직 없었다. 대신 배경에 음악을 깔았다. 그랬을 뿐인데 사람들은 “찰리 채플린!”을 열광했다. ‘소리! 소리다.’

소리에는 울림이 따른다. 찰리 채플린 얘기는 서정록 선생이 쓴 《잃어버린 지혜, 듣기》에서 훔쳤다. 같은 책에서 서정록 선생은 만트라는 흔히 말하듯 되풀이하는 데서 그 힘이 길러진다고 했다. 기억하도록 되풀이하고, 우리 욕망과 상념을 잊고, 본디 마음자리를 깨우치려고 천 번 만 번 되풀이하는 것으로 만트라는 온몸과 마음과 영혼에 공명을 일으킨다고 말씀했다. 이와 같이 경전을 읊다 보면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경전을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 귀가 열리고 뼛속까지 떨려 들어온 것이 삶으로 울려 퍼지는 기적을 누리는 요즘, 경전이 맛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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