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자가 수행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음식’ 혹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니가 산사에서 함께 나누어 먹는 음식.’ 이것이 ‘사찰음식’의 정의이다. 사실 사찰음식은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특수한 공동생활 양식에서 비롯한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탁발을 원칙으로 하는 남방불교에서는 이 사찰음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다. 2015년 현재 우리는 산사를 찾지 않아도, 그리고 우바새나 우바니가 아니어도 쉽게 사찰음식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다수의 ‘사찰음식 전문점’이 곳곳에서 성업 중이기 때문이다. 웰빙(well-being) 및 로하스(LOHAS: Lif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담론이 한창 유행하던 2000년대 초부터 채식 위주의 식단을 특징으로 하는 사찰음식이 큰 인기를 끌었다. 사찰음식 전문점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 역시 이 무렵의 일이다.

그렇다면 현재 사찰음식 전문점에서 판매 중인 사찰음식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육류와 오신채를 넣지 않으며 인공 조미료의 사용을 지양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각종 채소와 산나물, 두부, 버섯, 열매 등을 재료로 삼아 슴슴한 맛이 나게 조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간소한 차림을 지향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반찬을 한 상 그득 차려 내거나 15가지 안팎의 요리를 순서대로 제공하는 코스식 차림처럼 현대 한정식의 구성을 따르는 식당들이 많다. 1인분 가격은 음식의 가짓수에 따라 2만5천 원에서 7만 원 후반대로 다양하다. 불교를 상징하는 식물인 연(蓮)을 활용한 연잎밥과 연근 요리, 샐러드, 부각, 들깨탕, 더덕구이는 여러 식당에서 공통으로 내는 인기 메뉴이다.

이처럼 우리가 만나는 사찰음식은 ‘상품화된 사찰음식,’ 즉 상품의 형식으로 다시 빚어진 산사의 음식이다. 그렇다면 산사에서 먹던 사찰음식의 총체가 현재의 상품화된 사찰음식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찰음식 전문점에서의 식사, 다시 말해 소비 행위를 통해 온전한 산사의 식생활을 경험하고 있는가? 육류와 오신채에 대한 금지는 각각 불살생(不殺生)의 계와 《능엄경(楞嚴經)》의 금언에 기초한다. 또한 이 두 가지 원칙은 비신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섭식 윤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찰음식이라고 이름하려면 육류와 오신채를 제하고 만드는 것이 그 최소 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불가의 음식사상에는 우리가 상품화된 사찰음식을 소비함으로써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차원이 존재한다. 상품화 논리의 기본은 대상의 수량화가 가능한 측면을 교환가치, 즉 상품가격으로 산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가의 음식사상의 ‘핵심’은 이러한 상품화 논리가 미처 포섭하지 못하는 잔여의 영역에 위치한다. 우리는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가의 음식사상은 출가자의 실제적인 식생활을 조율하며 일상의 공양을 통해 거듭 실현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섭식 규범’이며 ‘윤리관’을 포함한다. 공양, 즉 산사의 섭식은 그 자체로 수행의 한 과정이다. 음식을 취하는 육체는 해탈에 이르기 위한 기초 조건이자 한계라는 복합적 관점 안에서 긍정된다. “몸이 마르는 것을 막는 약으로 여겨 깨달음을 이루기 위하여 이 음식을 받는다.” 이는 출가자가 공양할 때 외는 오관게(五觀偈)의 한 대목으로, 불가의 음식사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발우공양’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발우(鉢盂)란 산스크리트어 patra에서 비롯한 용어로, 적절한 양을 재는 기준이 되는 그릇을 가리킨다. 출가자들 모두가 대중방에 모여 공양을 하는데, 각자의 발우에 조금씩 음식을 덜어 남김없이 먹는다. 그리고 저마다 발우를 깨끗이 씻어 정리하는 것으로 공양을 마친다. 발우공양에서 관찰되는 것은 ‘절제’에 대한 지향이다. 자신이 먹을 양을 미리 정해 과도한 탐욕을 경계한다. 그와 동시에 정해진 공양의 절차들을 지킴으로써 섭식이 감각적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며 수행의 일부임을 지속적으로 상기한다. 산사의 식사가 출가자의 건강에 이바지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열반적정(涅槃寂靜)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매일 반복해야 하는 ‘수행으로서 일상적 실천’들이 계속될 수 있게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항상 최소한의 음식을 먹고 그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평하지 않는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불가 음식사상의 핵심은 섭식을 개인적 행위로 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공양은 산사에서 함께 생활하는 출가자 공동체의 실천 규범이다. 게다가 출가자가 아닌 대중, 더 나아가 인간 이외의 모든 유정자(有情者)를 함께 생각하는 ‘전일적(全一的) 세계관’이 불교사상의 저변에 자리하고 있다. 불살생의 계 역시 이와 같은 전일적 세계관으로부터 나온다.    

사찰음식 전문점을 방문했던 이들이 작성한 인터넷 게시물을 살펴보면 “코스식으로 먹어서 배가 매우 부르다”거나 “제대로 보양식” “정말 힘이 솟는 느낌” “고급스러운 채식음식으로 손님 대접에 좋은 곳” “모양도 예뻐서 눈과 입이 즐겁고” “특별한 경험”과 같은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메뉴판을 찍은 사진에서 산삼이나 자연송이, 석이버섯, 동충하초 등 소위 ‘고급 식재료’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현재 상품화된 사찰음식이 판매·소비되는 맥락을 지배하는 것은 이색적인 한 끼의 식사, 기존의 웰빙 담론이 지향하던 개인을 위한 보양식, 유행의 첨단을 걷는 한식 정도의 표상들인 듯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산사의 섭식 윤리로부터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이는 하나의 음식을 단순한 섭식의 대상물로 보는 것을 넘어서는 태도일 것이다. 오히려 마주한 음식을 통해 거기에 결부된 생산, 유통, 소비의 조건으로서의 토대, 그리고 그 위에서 활동하는 각 과정의 담당 주체들을 함께 조망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경제·사회적 조건은 공공의 영역이다. 따라서 이를 조망할 때 현재의 공공의 식생활에 관한 대안적 성찰도 가능하리라.

사찰음식이라는 특수한 상품형식이 ‘풍요의 역설’ 속에서 하나의 새로운 실천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사회 구성원 낱낱이 각자의 욕망을 충족하는 세련된 보신주의의 하위 범주에 머물고 말 것인가. 바로 지금, 사찰음식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이들과 사찰음식에 다가가고자 하는 이들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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