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천 년보다 더 긴 것이 살아 있는 자들의 하루라는 말을 곰곰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스스로에게 패배하려고 하는 공포가 나의 고민이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국민(초등)학교 때 친구 상금이가 스님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땐 그 친구가 마치 죽음까지도 긍정시킬 만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 친구 상금이는 무당의 딸이었다. 그때만 해도 천시당하는 무당 노릇을 하면서도 상금이 어머니는 작은 암자를 지어 기도하던 신심 깊은 분이었다.

상금이는 공부는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나이에 비해 어른처럼 속 깊은 친구였다.

상금이를 따라 암자에 간 적이 있는데 그 암자는 우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그곳에서 위로 쳐다보이는 것은 하늘뿐이었다. 그래선지 그 암자는 오한을 느낄 정도로 섬뜩하기까지 했다. 천재를 만났을 때나 내가 쓰지 못한 기막힌 시를 만났을 때처럼 신묘한 오한을 느꼈던 것이다.

세기가 바뀌어도 감동이 사라지지 않는 명작처럼 반세기가 훨씬 지났는데도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길을 가다가 비구니 스님을 만날 때면 지금은 스님이 된 상금이가 생각나고 등산을 하다 절을 만나면 또 그 암자가 생각난다. 내 마음의 뿌리는 유년 시절로 뻗어 있는 것 같다. 언어로 짓는 절이 시(詩)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스님이 된 옛 친구 상금이는 시인이 된 나를 언어로 절을 짓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시인은 자기 영혼의 집을 짓는 사람이라 생각할까 엉뚱한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몸보다 마음이 더 고단하던 때, 나는 출가(出家)와 가출(家出)이란 말에 혼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출가를 뒤집으면 가출이고 가출을 거꾸로 읽으면 출가였다. 낙오되어야 살아남는다는 말을 곱씹을 때였고 침묵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마음속에 고여 있을 때였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읽으면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는 그 차이가 엄청난 것이었다. 나는 무엇엔가 붙잡혀 가출조차 못했는데 내 친구는 출가를 했던 것이다. 딸을 결혼시킬 때 출가시킨다고 했는데 내 친구의 출가는 결혼이 아니라 스님이 된다는 것이었다.
출가란 갈등의 집에서 떠났다고 해서 출가라 하고, 탐욕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이속(離俗)이라고 한다. 나는 그때 출가란 말이 영원히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생이별처럼 생각되었다. 출가한 스님들은 어떻게 집을 떠날 수 있었을까. 소중한 것들, 사랑하는 것들을 어떻게 놓아버릴 수 있었을까. 어떤 다른 무엇이, 어떤 다른 세계가 분명 있을 것이란 생각에 출가란 말이 경외스럽게 느껴졌다. 그때까지 나는 삶에 대한 어떤 존재론적인 고뇌와 성찰을 하지도 못했는데 내 친구는 간절함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치열한 정신으로 시를 써야겠다고 다짐할 때마다 용맹정진하는 스님이 된 옛 친구를 생각한다. 비록 진리를 향해 가는 도반(道伴)은 되지 못했지만, 내 곁에 스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스님이 내 친구인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는 눈으로만 세상을 보았는데 내 친구는 세상을 마음으로 보았다. 그는 해와 바람과 흙과 물, 나무와 풀이 우리와 한몸이란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자유는 곧 내 언어의 자유라는 것밖에 몰랐는데 그는 언제부터 다른 사람은 봄바람처럼 대하고 자신에겐 추상같았을까.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바르게 알고 실천에 힘쓸 수 있었을까.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그에게는 있었던 것일까.

스님이 된 옛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저는 자신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생이 지나가야 다시 붓다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아 저는 깨달은 이를 만난다 해도 그를 알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깨달은 이들도 무한한 노력을 통해 그곳에 도달했을 것이다.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 없음과 어둠은 나의 있음을 깨닫게 하는 심연의 근거가 된다고 깨달은 이들이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무엇이 두려워 쉬운 싸움에서나 이기려고 버둥대는 것일까.

그럴수록 우울은 우물처럼 깊어지고 그럴 때일수록 세상을 돌아오지 않는 시간처럼 내게 등을 돌려버리는데도 그러고 있는 것일까. 요즈음의 두려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무엇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20년 전, 처음으로 친구의 선방을 찾았을 때 나는 말보다 절하는 것으로 옛 친구 일우 스님을 만났다. 큰 것에 서원(誓願)을 세워 작은 것에도 불만이 없는 스님이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그날, 잘 때도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처럼 정신이 깨어 있는 스님에게서 풍경소리를 들었다.

모든 숭고한 것들은 두려움을 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처럼 내 침묵에 파문이 일고, 그때처럼 나 자신이 궁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대웅전 앞에 피어 있던 불두화(佛頭花) 앞에서 나는 그만 우두커니가 되고 말았다. 우두커니가 되어 저 불두화는 누구를 위해 피어 있는가 묻지도 못했다. 묻지도 못한 그 질문에 부처님이 대답을 주신다.

“삼천대천세계 온 세상의 땅 위에 나는 나무와 풀이 많지만 저마다 그 이름과 모양이 다르다. 구름이 가득히 퍼져 일시에 큰 비가 내리면 모두 크기에 따라 비를 맞는다. 한 땅에서 자라고 같은 비를 맞는다 해도 그 종류와 성질에 따라서 꽃피움과 열매 맺음이 모두 다르니라.”

지금도 나는 어린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듯이 간곡한 마음으로 일우 스님이 된 옛 친구 상금이를 그리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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