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게 찾아온,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책

이창숙 지음
인북스
1990년대 중반부터 불교계 안팎에서 여성불교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이래, 지난 20여 년 동안 여성불교에 관한 제법 많은 수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박사 논문을 발표한 시기도 그즈음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불교의 양성평등 수준은 사회적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성불교에 대한 무성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발표된 지 20년이 지난 논문이 새삼 단행본으로 출판된 것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책이 시효가 지나서 쓸모없이 되어버린 세상”(p.6)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희망과 무관하게, 여성에 대한 차별은 불교계의 제도, 관행, 관념의 차원에서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첫째, 제도적 측면에서 비록 석가모니 붓다 재세 시에 여성 출가가 허용되었지만, 아시아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출가자들을 위한 수행과 교육의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았으며 종교지도자 역할도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다. 여성출가 역시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허용되었는데, 이는 훗날 여성차별의 빌미가 되었다. 붓다가 왜 처음부터 여성출가를 허용하지 않았는지, 왜 유보조건을 달았는지에 대하여 국내외 여성불교학자들의 연구가 다각도로 진행되었다. 그중 하나인 ‘비구니팔경계’에 대하여 대부분의 연구는 확정할 만한 증거는 아니지만 석가모니 붓다가 제정한 것이 아니라 훗날 비구승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정황적 단서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비구니 승가가 있는 곳은 한국과 대만, 베트남, 일본 일부에 불과하다. 동남아시아 불교국가의 ‘매치’라고 불리는 여성출가자들은 승가의 정식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에 비구니 승가가 갖는 제한적 독립성마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서양 여성들이 주도하여 티베트, 부탄, 스리랑카, 태국 등에서 비구니 승가 복원이 시도되었으나 스리랑카에서 비구승의 적극적인 협조로 비구니 승가가 복원되었을 뿐, 티베트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는 비구승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비구니 승가가 존재하는 지역에서도 여성출가자에 대한 차별이 불식된 것은 아니다. 조계종의 경우, 비구니는 각종 직위의 피선거권이 제한되며 종단의 대의기관인 종회의 총 81석 중 10석만 할당되어 있다. 최근의 연구가 지적하듯 조계종 종법 가운데 양성평등에 반하는 조항이 상당수 존재한다.

둘째, 관행의 차원에서 불교 안에서 여성의 지위는 남성의 위치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지난 62호 《불교평론》 논단에서 옥복연이 주장한 것처럼 남성출가자 중 상당수가 비구니팔경계의 여성차별적 성격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백 세 비구니가 일 세 비구에게 절하라”는 항목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제도적 제한은 없지만 공찰 주지와 종무직, 각급 단체의 대표직이 거의 남성출가자들로 채워지고 있으며 종단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출가자와 여성종무원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관행은 여성의 능력을 불교발전에 활용하는 것마저 어렵게 만든다. 대만 비구니의 활약상과 비교해보더라도 아쉬운 대목이다.

셋째, 관념의 차원에서 여성출가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제도와 관행의 이면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저자가 여성성불 사상을 학위논문 주제로 삼게 된 동기가 되었던, “여자들, 해봐야 별수 있나. 내생에 남자 몸 받는 것밖에”라는 식의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는 남성출가자는 최근 많이 줄었지만,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종교적 자질과 사명을 가진 존재로서 인정하기보다 남성출가자를 위한 보조자 정도로 여기는 남성출가자의 인식은 거의 변함이 없다.

여성출가자마저도 스스로 여성차별을 내면화하여 “다음 생에 남자 몸 받기”를 발원하고 있는데,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생각이 남성출가자, 때로는 여성출가자를 통해 재가여성들에게 주입되어 여성 스스로 자신의 삶을 비하하고 다음 생을 기다리는 비주체적인 신행생활을 하도록 조장할 뿐 아니라 다시 여성출가자에 대한 여성신도의 차별과 여성신도에 대한 여성출가자의 차별로 되먹임되고 있다는 데 있다.

저자의 말처럼 “드러내놓고 여성을 비하하는 종교는 거의 없지만”(p.14) 종교계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차별은 뿌리가 깊고 그 양상도 단순하지 않다. 벌써 몇 년 지난 일이지만, 한 여성단체에서 개최한 여성불교 세미나 자리에서 여성출가자에 대해 차별적 견해를 발표하는 비구 스님에게 불편한 심정을 토로한 여성토론자가 있었다. 뜬금없게도 세미나가 끝난 후, 이 여성단체 임원 중 한 사람이 그 여성토론자에게 참회를 요구한 사건이 벌어졌다. 알고 보니 그 임원은 그 비구 스님의 신도였다. 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계에서 여성차별의 문제는 남성 종교지도자에 대한 여성신도들의 태도와 혼재되어 있어서 종교적 권위와 구별되기 어렵고 ‘여성에 대한 여성의 차별’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위의 경우처럼 남성 종교지도자가 여성차별적 성향을 가질 때 여성신도들이 비판적 견해를 갖거나 밝히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이와 같은 여성차별의 현실을 만든 원인으로 부파불교 시대에 등장한 ‘여성불성불론(女性不成佛)’과 ‘변성남자성불론(變成男子成佛論)’을 지목한다. “출가, 재가를 막론하고 불자의 궁극 목표가 성불”이기 때문에 만약 여성 성불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여성이, 적어도 종교적 차원에서, 열등한 존재라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여성이 성불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교리적 논쟁이 진부한 감이 없지 않지만, 여성의 지적 능력에 대한 편견이 불식된 현대사회에서조차 여성의 종교적 능력에 대한 불신과 편견이 공고하다면 저자의 주장처럼 여성성불의 원칙을 확인하고 그 사실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여성차별을 불식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불교경전에서 여성성불에 대한 긍정적 진술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판단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대상으로 정해진 초기경전에 나타난 여성에 대한 붓다의 언설, 비구니 승가 성립과 관련한 율장 조항들, 그리고 여인오장설과 불신(佛身)에 관한 부파불교 시대 문헌들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거기에 밀교를 제외한 대승불교 성불사상까지 방대한 내용을 다루면서 저자는 이런 종류의 글이 흔히 빠지기 쉬운 감정적인 치우침 없이 시종 차분하게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 책의 큰 덕목 중 하나이다.
남성 중심의 출가교단에서 여성성불에 대한 긍정적인 진술은 교주인 붓다 자신의 언설에 기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제2장에서 저자는 초기불교 문헌에 나타난 붓다의 발언 속에서 여성성불에 관한 긍정적 진술을 확보하고 여성에 대한 부정적 진술에 대해서는 당대 인도사회의 여성 인식과 비교하여 여성차별을 옹호하는 발언이 아니라는 점을 성공적으로 설득해낸다.

후대의 ‘여인오장설(女人五障說)’ ‘여성불성불론’ ‘변성남자성불론’ 등이 붓다의 여성관과 어긋나는 주장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제3장은 부파불교 시대의 불신관을 고찰하는 데 할애된다. 32상을 갖춘 몸이 붓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면 음마장상을 가질 수 없는 여성이 붓다가 될 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가 지적하듯 이 논리는 여성불성불론에 가장 강력한 논점을 제공해주어, 지도자로서 여성의 자질을 부정하는 여인오장설과 더불어 교단으로부터 여성을 배제하는 논리로서 기능했다.

하지만 붓다에 대한 신격화로 인해 남성조차 성불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주장은 더 엄밀한 논증이 필요하다. 특히 불신관은 이 책의 내용이 여성성불로 한정되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을 논증하는 데 큰 무리가 없지만, 대승불교의 기원과 관련된 새로운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제4장에서 검토하고 있는 여성성불 사상은 ‘일천제성불’로 대표되는 불성론과 얽혀 있는 매우 복잡한 논의의 일부로서, 저자는 한국 불교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교리발달사의 관점을 수용하여 여성성불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대승불교의 여성성불 사상이 붓다의 뜻을 계승한 논리라는 저자의 해석을 타당성 있게 주장하려면 여래장사상이 붓다의 가르침과 일치하느냐는 비판불교의 문제 제기를 비롯하여 남방불교에서 주장하는 ‘대승비불설’과 경전의 진위, 후대 찬술의 문제 등에 대해 적절한 대답이 준비되어야 한다.

여성성불은 대승불교의 원칙과 일치하기 때문에 여러 경전에서 논의되고 있다. 그럼에도, 부파불교 시대 이후에도 여성성불을 인정하기까지 상당한 저항이 계속되었던 것 같다. ‘남성으로 변신한 후에야 성불할 수 있다’는 궁색한 논리는 이런 정황을 반영한다. 특히 《법화경》 〈제바닷다품〉에 나오는 용녀의 변성성불 이야기는 이 경이 유포된 만큼 여성의 의식과 현실을 제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저자는 3세기 전반 인도에서 변성남자성불설과 동시에 여신성불설이 존재했으며, 용녀의 변성성불 이야기가 비구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제바닷다 교단과의 관계에서 나온 것인 만큼 《법화경》의 여성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오히려 같은 경전의 〈권지품〉에 나오는 비구와 동격으로 비구니가 수기를 받는다는 내용이 《법화경》의 대표적인 여성관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본원사상, 수기사상과 여성성불의 관련성을 검토하고, 여성을 설주로 내세운 《승만경》의 여래장사상에 의거해 여성도 성불할 수 있음을 원론적으로 증명한다. 여신성불을 주장한 경전으로 《승만경》 《유마경》 《해룡왕경》 등이 거론되는데, 이 책에서 크게 다루고 있지 않지만 반야공을 증명하는 실례로서 《유마경》에 나오는 남성의 여성화, 여성의 남성화는 사리불로 대표되는 장로 불교의 여성차별을 비판하는 논리로서, 여성에 대한 진일보한 태도를 보여준다.

불교의 평등사상에 근거해 맺음말에서 저자는 ‘불교는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발언은 이 책의 논리적 결론이라기보다 일종의 선언에 가깝다. 문헌에 나타난 여성에 대한 기술, 특히 여성성불에 대한 기술은 불교사에서 실제 일어난 여성차별의 심각성과 현실적 형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방불교에서 오래전에 끊어진 비구니 수계를 복원하는 것조차 난망한 현재, 여성도 성불할 수 있다는 원칙의 확인만으로는 부족하다. 비구니 승가의 설립과 운영, 나아가 재가불자의 신행생활에 관련된 여러 쟁점이 개인이 아니라 여성 일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의 주장처럼 여성해방이 남성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개혁하는 것이라면 여성성불 사상이 사회구조의 개선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더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것은 여성불교 논의에서 교리 이상의 중요성이 있다.

성불의 원론적 가능성과 현실적 가능성, 그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조건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담론이 의식을 지배한다 하더라도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연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존경받는 불교 여성지도자이자 여성성불 사상을 높이 외치는 그 여성단체의 임원이 왜 그처럼 반여성적인 태도를 취했는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여성에 대한 불교교리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여성의 종교적 자질을 인정했으며 그 가능성을 확대한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숱한 제약 속에서 비구니 승가가 유지되었으며 일부 여성출가자들이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점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여성출가자와 여성불자들이 불교발전에 기여한 공로도 정당하게 인정받아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장로니게》에 수록된 여성출가자의 아라한과 증득 사례는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훌륭한 증거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여성의 견성 사례가 소개되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논의된 내용은 지난 20년간 이루어진 전문연구자들의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양성평등에 대한 불교계의 인식을 재고하기 위한 이 책의 시의성은 변함이 없다. 저자가 좀 더 일찍 용기를 내어 출판했다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에게 이 책이 읽히는 것이 담론과 실천을 연결하는 첫 번째 걸음이 되지 않겠는가? ■


명법 / 능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동 대학원 미학과 졸업(박사). 해인사 국일암에서 성원 스님을 은사로 득도. 운문승가대학 졸업. 주요 저서로 《선종과 송대 사대부의 예술정신》 《미국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등과 〈서양 현대예술에 나타난 선과 오리엔탈리즘〉 〈한국불교의 세계화 담론에 대한 반성과 제언〉 외 논문 다수가 있다. 원효학술상 수상.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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