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春園)과 동리(東里) 사이에서

1. 들어가며

소설은 본디 남의 이야기를 내 목소리로 다시 말함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나 아닌 다른 이의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나를 바라보는 복합적 시선이 목소리로 육화된 것이다. 그러하기에 소설에는 언제나 사람살이의 마땅함과 그러하지 못함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갈등과 번뇌와 모색과 일탈과 좌절과 일어섬이 어지러이 변주된다. 소설 쓰기는 그러므로 남으로 살아가기의 불가능함을 확인하는 제자리 맴돌기에 묶임과 다르지 않으리라. 하나 늘 소설은 그 제자리 맴돌기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다시 맴돌이에 나선다. 그리 하지 않으면 안 될 무엇인가가 신비로이 멀찍이서 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인 양 소설은 언제나 맴돌이를 알고도 그것을 향한다. 쉼없는 벗어남과 일탈이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그 길을 다시 나서는 것은 무릇 어리석음과 썩 다르지 않겠으나 그것이 또한 세사의 욕망에 찌든 인간에게 주어진 길임에 쉬 그 업을 벗어던지지 못한다.
창공의 별을 보고 가야 할 길을 향해 나아갔던 고대 희랍인들을 한없이 부러워하던 한 사내는 세계를 향한 가녀린 인간의 도저한 행보와 그에 이어지는 거대서사를 지나 인간 본성에 대한 물음을 향했던 도스토옙스키에서 비로소 소설의 시작을 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랐던 많은 이들 역시 인간 본성의 처절한 자기부정과 찾아낼 수 없음을 알기에 더욱 처절한 몸짓으로 재현될 수밖에 없는 근대소설의 주인공들을 연민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살펴 왔었다. 근대소설을 두고 누군가의 삶이 재현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그 삶을 곁눈질하는 우리의 삶이 마주 세워지는 또 다른 삶의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근대소설이 정답을 찾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길 떠나기의 계속을, 시시포스의 고통을 부러 가슴에 담아보려는 치기 어린 몸짓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은 아니었겠는가.
이러한 소설의 무거움을 앞에 두고 우리 근대소설을 살필 때 소설이 불교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실례를 찾는 것은 썩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 이유를 불교라 불리는 사유체계 혹은 가치체계와 우리 근대소설의 가치와 지향이 사뭇 다른 길을 바라보고 있었던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며, 우리 근대문화의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외래종교의 확산과 그로 인한 삶의 방식의 급변에서 또 다른 이유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는 근대소설 일반의 미학적 지향이 현세적이고 목적 지향적이며 개별 주체의 실존적 결단과 실천을 통한 수평적 관계 맺기를 지향하는 데 비하여, 불교는 내세적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근대 일반의 경험적 세계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영겁의 초월세계와 윤회의 실타래로 얽힌 번민을 극복함을 수양의 끝자락으로 삼고 있다. 그러기에 본질적으로 둘 사이에는 마주 섬이 불가능한 커다란 간극이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벼이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적 차원에서 볼 때, 서구 중심의 근대질서로 재편되는 새로운 세계 체제의 형성 과정에서 주체적 기획과 결단을 기반으로 한 자주적 개혁과 실천이 기회를 박탈당했던 굴욕적인 식민 체험이 우리 근대문학 일반의 지향을 현세적이고 구체적인 데로 향하게 강제하였음에서도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 근대소설에서 이른바 ‘불교성’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지향 혹은 특성을 찾는다는 것은 소설의 소재나 주제라 불릴 수 있는 매우 좁은 범위의 어떤 것으로 ‘불교성’을 환원하지 않고서는 애초에 가당치 않은 일이 될 수도 있겠다. 매우 평면적이면서도 단순하게 ‘불교’와 관련된 얘깃거리를 소설 속에 담은 작품이라는 느슨한 규정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온전히 불교와 우리 근대소설의 관련에 대해 살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미학적 접근을 요구하는 새로운 작업일 수밖에 없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불교성’이라는 개념 혹은 표현을 조금은 분명하고 한정적으로 규정하고 근대소설 일반의 속성과의 관련 속에서 그것의 소설적 재현의 편폭을 가늠하는 것이 실질적이고 유용한 성과를 기대하는 효과적인 길을 열어 줄 수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래에서는 조금 에둘러 가되 문학다운 접근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곧 불교의 사유체계와 수행정진의 묘법을 앞에 두고 그것이 소설의 의장을 빌어 어떻게 질적 체계적 실질적 형상으로 구체화되었으며 그 성취의 정도는 어떠한가를 가늠함이 마땅할 것이나, 거꾸로 우리 근대소설에서 불교의 자장 아래 놓일 수 있다고 판단되는 작품들이 불교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서사화하였는지, 그 과정에서 불교는 저작자의 시선에 의해 작품 안과 밖에서 어떤 의미로 재규정되었는지를 살피는 방법이 그것이다. 물론 이조차 한 편의 짧은 에세이를 통해서는 그 첫걸음도 채 떼어 놓을 수 없는 크고 깊은 논의를 펼쳐야 하는 것임 역시 자명하다 할 것이다.


2. 공동체의 마땅한 마음갈이로서 불교-춘원(春園)

우리 문학에서 불교와 관련된 소설작품을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빚어낸 작가로 춘원(春園)을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다. 우리 근대문학의 형성 및 본격적인 전개 과정에서 춘원은 항상 맨 앞자리에서 우리 근대문학의 가치체계에 대한 나름의 입장을 밝히고 실천하였던 인물인바, 본인이 원하였는가와는 상관없이 항상 춘원은 우리 근대문학의 주요 거점으로 자리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더하여 그는 문인으로서뿐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현실 문제를 진단하고 나름의 실천 방안을 청년들에게 제시했던 민족지도자이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동학과 천도교로 이어지는 종교와의 인연으로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고, 계몽문학의 선편을 쥔 문단의 거두로 자리매김되면서부터는 기독교와 가까운 연을 맺는다. 그러던 춘원이 스스로 불법을 깨치고 수행을 통한 마음갈이에 나서게 된 계기는 자신의 세속적 삶이 한계에 봉착하고 민족계몽과 민지계도의 방편이 막다른 길에 다다름에 따른 환멸과 절망의 끝자락이었음은 가볍게 볼 문제는 아니라 하겠다. 적어도 춘원에게 불교와의 만남은 고아 소년이 세상을 홀로 살아가도록 이끌어준 선험적 원체험으로서의 동학과 천도교나, 새로운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새로운 사유체계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서구 근대문명의 씨앗이었던 기독교 문명담론의 만남과는 의미가 달랐을 것이다. 그 종교들과는 구별되는 불교 나름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물음을 춘원이 스스로에게 되돌리고 나름의 답을 구하고 이를 다시 문학적 실천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계기로 무척 큰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겠다.
춘원의 소설 작품들 가운데 불교와 관련지을 수 있는 작품들로 주목할 만한 것은 1939년 9월 《문장(文章)》에 발표한 〈육장기(鬻庄記)〉이다. 이 작품은 그 규모가 썩 크지 않음에도 춘원이 불교를 어떤 시각에서 받아들이고 근대소설을 통해 불교를 살피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춘원은 자신의 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 간다. 평생을 살기 위해 손수 자하문 밖 홍제동에 마음을 다해 지은 집을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했던 일을 제자 박정호에게 편지 형식을 빌려 토로하는 이 소설에서 춘원은 불가의 사성제(四聖諦)를 빌려 자신의 깨달음을 전하며 마음을 다스리려 애쓰고 있음을 드러낸다. 소설의 의장을 빌려 오기는 하였으나 조선 근대문단의 거두로 행세하다 세태의 급변에 스스로 물러나 불가에 귀의한 개인의 마음자리의 한 자락을 보여 주는 작품이 이것이다.
청년기부터 조금의 실패도 없이 탄탄대로를 걸어오면서 조선의 근대문화를 이끌어 가고 민족의 미래를 방향 지었던 민족지도자였다가 일순 삶의 자그마한 걸림돌 앞에서 조금의 효과적인 응전을 행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리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느낄 수밖에 없었던 처절한 자기부정과 절망이 작품의 첫머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춘원 특유의 절제와 경계와 성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적 경험을 공동체의 지향으로 확대하여 제시하려는 춘원 특유의 시선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소소한 일상의 작은 재물 앞에 힘없이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앞에 두고 춘원은 자기반성의 첫 자리에서 곧바로 인간 전체의 자기반성과 삶의 성찰로 옮겨 간다. 자기 자신 불교와 만나 스스로의 마음자리를 돌아보고 깨달음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대중과 나누고 현세의 실천으로 가치 있게 하려는 시선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보다 조금 앞서 역시 《문장》에 발표한 〈무명(無明)〉(1939. 2) 또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화자 ‘나’가 감옥에서 만난 세속적인 인간군상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품의 제목 ‘무명’은 세속의 욕망에 의해 삶의 진정성이 가려진 채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가리킨다. 좁고 답답한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이 벌이는 사소한 다툼을 관찰자의 시선에서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는 이 작품은, 직접적으로는 세속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군상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본질적이고 큰 삶의 가치와 지향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근원적 한계에 대한 불가의 가르침을 암시하는 표제를 갖고 있다. 그러하기에 위에서 살펴본 〈육장기〉와 함께 본격적으로 불가의 가르침을 내면화하고 자신 삶의 지향과 민족공동체의 복원 방책을 고민하는 춘원 특유의 성찰적 시선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작품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감옥에서 벌어지는 이전투구를 차분하게 관찰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술자 ‘나’에 의해 진술되는 다양한 다툼과 반목은 고스란히 식민지 조선 민중이 처한 암담한 미래와 신산스런 삶의 현장으로 환기되는바, 이 작품은 춘원이 불교를 통해 얻고자 했던 깨달음이 향하는 바가 어디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하겠다.
그렇다고 서술자 ‘나’가 단순히 그들의 삶을 관찰하는 방외인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적극적으로 그네들의 다툼을 중재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나름의 방책을 제안하려 애쓴다. 감옥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처한 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여 벌어지는 반복과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그네들에게 불가의 가르침을 조금씩이나마 일러주고 불경을 읽게 하면서 조금이라도 그네들을 다독이고 감싸 안으려 애쓴다. 이러한 ‘나’의 행보는 고스란히 춘원 개인의 성향과 마주 세울 수 있는 모습이다. 비록 감옥에 있는 그네들이 불가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불경을 읽는 것이 진실한 깨달음을 향한 구도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이 전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네들이 조금이라도 불법을 향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네들의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방책을 제시하려 애쓰고 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죽어서 분명히 지옥으로 안 가고 극락 세계로 가능기오?”
하고 그 가는 눈을 할 수 있는 대로 크게 떠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생전에 이렇게 중대한, 이렇게 무거운 질문을 받아본 일이 없었다. 기실 나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하여 확실히 대답할 만한 자신이 없었건만는, 이 경우에 나는 비록 거짓말이 되더라도, 나 자신이 지옥으로 들어갈 죄인이 되더라도 주저할 수는 없었다. 나는 힘 있게 고개를 서너 번 끄덕끄덕 한 뒤에,
“정성으로 염불을 하세요. 부처님의 말씀이 거짓말 될 리가 있겠습니까?”

위 진술은 춘원 자신이 불법을 받아들이고 이를 대중과 나누려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할 것이다. 곧 민족공동체를 바르게 이끌어 갈 방책을 얻고자 함이 춘원이 불가에 귀의하고 자신의 마음자리를 다스리는 까닭이라 여겨지는 것이다. 〈육장기〉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잠깐의 옥고를 치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여겨지는바, 춘원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삶의 다양한 부면들을 불가의 가르침과 자신의 깨달음을 조화시켜 대중들과 소통하고 민족공동체의 삶을 복원시키려는 춘원 특유의 삶의 태도가 이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하겠다.
비슷한 시기에 춘원(春園)은 장편 《이차돈(異次頓)의 사(死)》(〈조선일보〉 1935. 09. 28~1936. 4. 12)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우리 문학에서 본격적으로 불교를 전면에 앞세운 작품으로 꼽히는바, 춘원은 중국으로부터 불법을 들여와 대중을 교화하는 데 큰 족적을 남긴 역사 속의 인물 이차돈의 간략한 사적(史蹟)을 춘원 특유의 감성적 필법으로 ‘인간화’함으로써, 역사기술의 평면성을 극복하고 살아 숨 쉬는 깨달음과 감화의 큰 힘을 소설의 힘을 빌려 대중과 나누는 데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춘원이 생명을 불어넣은 이차돈은 속세의 인간에서 불법의 화신으로 환생함에 있어 춘원이 동시대인들에게 마땅히 지녀야 할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대변하는 인물의 위상을 지닌다.
일찍이 춘원이 〈무정(無情)〉을 통해 우리 앞에 내보였던 완벽한 자기절제의 인간형 이형식은 계몽을 앞서 이끌어 나갈 민족지도자로서 조금의 흠결도 지니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춘원은 이 작품을 통해 근대인으로서 이형식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근본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 이해의 방편으로서 불교의 깨달음을 제시한다. 1910년대 조선의 자기이해와 새로운 세계를 펼쳐 나갈 수 있다는 자기확신이 서서히 무너져내린 자리에서 춘원이 대안으로 찾아간 곳이 불교의 넓고 깊은 세계였다. 그랬기에 그는 이차돈이 보여준 자기희생이 공동체 전체를 구원하는 밑불이 되었음을 감동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새로운 지도자상을 제시하려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개인의 안위와 안락한 삶을 결연히 떨쳐내고 진실된 삶의 가치를 깨닫고 이를 공동체의 구원으로 넓히고자 스스로를 희생했던 이차돈의 죽음을 신비로우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춘원은 식민지 조선인들을 이끌어갈 새로운 시대 지도자의 마땅한 모습을 제시하려 하였던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시선은 《원효대사(元曉大師)》(〈매일신보〉 1942. 3. 1~10. 31)를 통해 불교의 토착화 혹은 전통 민간신앙과 불교의 새로운 접합 양상에 대한 춘원 나름의 해석을 드러내는 것으로 변주된다. 앞서 《이차돈의 사》가 이차돈의 영웅적 행적을 형상화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한 개인의 주체적 결단과 자기희생을 통한 공동체의 구원을 중심에 둘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할 때, 《원효대사》에서는 수많은 설화와 토착신앙, 특히 신라의 화랑도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민간신앙을 바탕에 둔 신비주의적 가치체계가 불교의 통합적이고 근원적인 성찰과 수양의 체계와 화해롭게 결합되는 양상을 원효라는 인물의 성장담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원효대사》는 추상적 차원에서 개인의 결단과 희생을 드러내는 데서 멈췄던 《이차돈의 사》를 가뿐히 뛰어넘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춘원은 그다음 자리에 공동체를 전제한 불교의 경계를 놓는다. 곧 불교와 민족을 마주 세우는 것이다.
이차돈이 자기희생을 통해 공동체의 각성을 촉구하였다면 원효는 공동체와 함께하는 실천의 방책을 제시하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이다. 원효의 개인적인 번민과 암중모색, 그리고 그가 만나는 수많은 이들의 세속적 삶에 대한 원효의 성찰적 시선들이 향하는 곳에는 여전히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환원될 공동체가 놓여 있다. 춘원에게 불교는 이처럼 민족공동체를 향한 개인의 결단과 희생과 실천의 새로운 지침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것이며 이는 자신을 포함한 조선의 지식인 집단이 지녀야 할 삶의 태도이자 실천의 지침으로서 승인되어 마땅한 가치준거로 제시된다 하겠다.


3. 세계의 새로운 이해로서 불교-김동리(金東里)

춘원이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물론 현실적인 민족지도자로서의 행보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외부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서 찾는 것이 우선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 근대문학이 제모습을 갖추어 가고 수많은 우리말 작품들이 쓰이는 짧지 않은 시간을 아울러 춘원은 단 한 차례도 문학의 지도급 인사로 대우받고 행세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춘원이 우거에 은거하고 불교에 귀의할 무렵 조선 문화계는 춘원을 비롯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썩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춘원은 〈무정〉의 이형식에게 투영하였던 근대 청년 지식인의 단호한 결단력과 순결한 자기희생의 삶의 자세를 오롯이 장년의 새로운 민족지도자를 형상화하고자 함으로써 불교와의 만남을 세속으로 이어내려 애썼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달리 동리(東里)는 불교를 비롯한 초월적 세계 자체를 근대소설의 의장으로 새롭게 해석하려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드러낸다.
동리 소설과 불교의 관련을 살피는 데 가장 먼저 눈길을 주어야 할 작품은 비교적 초기작에 속하는 〈솔거(率居)〉(《朝光》 1937. 8)이다. 이 작품은 대체로 낭만주의 예술관에 바탕을 둔 초월적 세계를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는바, 현실의 인물과 상상의 화가 솔거를 이어주는 초월적이고 낭만적인 예술의 가치는 고스란히 현세와 초월계를 이어주는 불가의 인연으로 확대된다. 그러하기에 동리의 이 작품을 비롯한 초기작들이 낭만적인 예술가 소설의 계보에 놓임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불교와 근대소설의 새로운 만남의 양상을 열어 주는 첫머리에 이 작품을 놓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곧바로 불가로 귀의하는 세속인을 낭만적으로 그려내고 있지는 않다. 춘원이 자신의 사적 경험을 민족공동체의 구원으로 향하는 매개에 불가의 가르침을 놓은 것에 비할 때, 동리는 훨씬 냉정하고 또 소설답게 그러한 낭만적이고 선험적인 서사를 구축하는 길을 피한다.
대신 동리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재호가 여전히 불법에 귀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꿈에서 솔거를 만남으로써 은근하게 자리시킨다. “문짓문짓 물러가며 안개처럼 퍼지드니 별안간 그의 몸덩이는 우뚝한 산으로 변해 버렸다. 산에서는 퍼런 소나무가 너울거리고 새들이 울고……”는 재호와 솔거의 인연이 계속되어 감을, 그리하여 현세의 재호 욕망이 세속의 찌든 때를 벗어던지고 진실된 깨달음과 실천의 결단으로 옮겨 가는 그 끝자락 어디에선가 진실된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인연의 끈이 이어지고 있음을 내보이는 진술이다. 물론 재호는 현실에서 자신이 온 힘을 다해 그려내고자 했던 관음상을 끝내 그려내지 못한 채 예술에서 종교로의 귀의를 선택하지만, 이는 온전한 깨달음과 성찰을 바탕에 둔 속세를 벗어남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그는 다만 꿈이라는 몽환적 장치의 힘을 빌려 가느다란 인연의 끈을 이어가는 데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실제적이지 않은 ‘꿈’임에도 불구하고 인연의 가느다란 끈을 남겨 두었음은 또한 동리다운 안배라 할 것이다.
동리(東里) 소설과 불교의 관련을 살피는 데 결코 빠지지 않는 작품은 〈무녀도(巫女圖)〉(《中央》 1936. 5)이다. 이 작품은 기독교와 무속신앙의 대립이라는 표면서사의 갈등구조와 나중에 장편 《을화(乙火)》로 개작되면서 더욱 강화된 결말의 죽음을 아우르는 비장미에 힘입어 샤머니즘이 소설과 만난 드문 수작(秀作)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은 분명 무속신앙과 기독교의 대립이 빚어내는 근원적 갈등과 가족서사의 비극성으로 인해 그 자체로 훌륭한 서사구조를 지닌 작품으로 충분히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작품은 동리가 무속과 기독교를 아우르는 종교 일반의 본질에 대해 어떤 시각을 지니고 있는지를, 그리고 불교를 통해 그 갈등이 어떻게 해소되고 한층 깊은 깨달음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의 중심 갈등의 한 축을 이루는 욱이는 어머니 모화에게 자신이 기독교도임을 밝힌다. 그는 “절간에서 불도가 보기 싫어 달아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욱이에게 기독교는 “명랑한 찬송가 소리와 풍금 소리 성경 읽는 소리 모여 앉아 기도를 올리고 빛난 음식을 향해 즐겁게 웃음 웃는” 사람들로 환기된다. 어린 나이에 절에 맡겨졌던 욱이는 ‘달아났’고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이 또한 운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인바, 모화는 욱이에게 씐 귀신을 떼어 놓는 굿을 통해 욱이의 운명을 거스르려 한다. 끝내 죽음으로 귀결되는 결말은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최종의 결단으로 운명을 거스르는 개인의 실존적 결단으로 의미화되는바, 욱이가 불가를 떠남도 기독교를 만남도 그리고 결말의 죽음도 동리(東里)의 시선에서는 숙명을 벗어나 운명을 개척하는 실존적 결단으로서 초월적 세계와 세속의 만남이 형상화되었다 하겠다.
동리의 소설에서 불교를 가장 완성도 높게 그려낸 작품은 역시 〈등신불(等身佛)〉(《사상계》 1961. 11)이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을 모티프 삼은 이 작품은 학도병으로 끌려간 화자가 탈출하여 새로운 삶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만난 인연을 형상화한다. 앞서 춘원의 《이차돈의 사》가 자신의 희생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깨달음과 삶의 질적 고양을 목적하는 자기희생을 형상화하였던 것과 비교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춘원이 이차돈의 희생을 통해 형상화하려 하였던 것이 불교를 매개로 현세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었던 데 비해, 동리는 불교를 현세의 공동체와 연결짓지 않는다. 위에서 살폈던 〈솔거〉나 〈무녀도〉와 마찬가지로 동리는 불가의 가르침을 세속의 공동체 구성원들과 나누고 깨달음에 앞선 이들이 대중을 교화하는 계몽의 연장선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동리는 현세를 초월하는 세계를 향하는 진실된 삶의 매개로 불가의 가르침과 깨달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학도병으로 끌려갔던 조선인 청년이다. 가까스로 부대에서 탈출하여 숨어든 곳이 중국 어느 곳의 산사였는데, 그곳에서 그는 “바른편 손 식지 끝을 스스로 물어서 살을 떼어낸 다음 그 피로써 다음과 같이 썼다. 원면살생 귀의불은(願免殺生 歸依佛恩)” 이를 통해 그는 불가와 인연을 맺는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가 만난 것은 절 깊은 곳에 자리한 “못생긴 부처”였다. “허리도 제대로 펴고 앉지 못한, 머리 위에 조그만 향로를 얹은 채, 우는 듯한, 찡그린듯한, 오뇌와 비원(悲願)이 서린 듯한, 그러면서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콱 움켜쥐는듯한, 일찍이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그러한 어떤 가부좌상”을 만난다. 혈서를 씀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얻은 화자가 소신공양으로 부처가 된(엄밀히 말해 부처가 되었다고 중생들이 믿어 부처로 모셔진) 등신불을 만나는 대목은 이 작품이 지닌 서사적 완성도의 빛나는 지점이 된다. 큰 북소리를 들으며 한꺼번에 깨달음에 이르는 마지막 장면보다 화자가 등신불과 마주 서서 섬세하게 표정을 살피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대목은 동리가 소설을 통해 불교를 마주 세우는 특유의 시선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할 것이다.


4. 그리고 또 다른 시선

윤후명은 〈검은 숲, 흰 숲〉(《부활하는 새》 1985)에서 춘원이나 동리와는 조금 다른 시선을 드러내 보여준다. 근대소설이 불교와 만날 수 있는 가능한 방법 가운데 소설 쪽에 가장 가까이 서 있으려 한다면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작은 실험의 결과를 윤후명은 소녀와 스님 사이에 자리한 자신의 불안한 자리로 은유하여 소설로 빚어낸다.
독일에 유학하고 있는 옛 연인을 통해 환기된 검은 숲과 크리스마스이브에 산등성이에 소복하게 쌓인 흰 눈이 만들어 낸 흰 숲을 병치하며 화자이자 서술자인 ‘나’는 눈을 헤치고라도 교회를 향하려는 소녀와 딱히 바쁠 길 없는 눈길을 살펴 가는 스님을 두루 아우르는 통합적이고 초월적인 성찰의 계기와 마주하게 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눈 덮인 숲길을 지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세 사람의 동행자들 이야기라 요약될 수 있는 이 이야기는 종교를 직접 언급하면서 기독교와 불교를 서로 마주 세우고 있다. 그럼에도 윤후명은 이를 선택의 혹은 결정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기독교냐 불교냐의 선택의 문제로 환원하거나 둘 가운데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길을 향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이렇게 비켜서는 데서 멈춘다. 그는 “나는 헤매오기만 했다. 삶? 종교? 또 무엇? 모든 것이 엉터리였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날라리 인생을 살아왔든, 나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악을 미워하는 정의로운 인생길에 접어들고자 노력해왔지, 아무렴. 가자 가자, 높이 가자, 더 높이 가자. 아무렴.”이라 되뇌인다. 조금은 ‘정답’스러워 보이기에 조금은 이야기의 긴장을 쉬 놓아 버린 듯 보이는 이 맺음은 “더 높이 가자”의 이어짐으로 보충된다. 이야기의 맨 마지막 진술은 “불쌍한 ……내 꼬락서니!”이다. 다시 길을 찾아 떠나는 자신의 결단을 앞에 두고 스스로를 비하함이란. 하나 이 진술이 자기비하로 여겨지지 않게 다시 긴장을 부여하는 것은 앞선 이야기가 향하던 데서 찾아 마땅하다. 흰 숲과 검은 숲의 대립도, 둘 가운데 하나의 선택도, 기독교와 불교의 승패도 아닌 쉼 없는 삶의 여정의 깨달음을 향한 한 사내의 결단이 주는 무거움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진술된 결단을 그리고 스스로를 낮춤이 빚어내는 겸허함을 삶의 긴장으로 환원시켜주는 것이다.
윤후명의 이 작품은 불교와 기독교의 대립이나 주체 선택의 문제로 깨달음을 환원하여 단순화시키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오히려 ‘나’가 눈 덮인 산길을 마주하고 스님과 소녀 사이에서 불현듯 마음을 울리는 무엇으로 찾아낸 그것은 더욱더 마음 깊은 곳에서 삶의 가치와 세계의 체계에 대한 개안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더 큰 열림으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탕아(蕩兒)의 귀환으로 평면화되는 깨달음의 서사를 넘어서는 이런 방식의 결말짓기는 삶이 지속적인 전개와 순환과 변주를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받아들임이 마땅하다는 것을, 그리고 수많은 번뇌와 질곡과 망설임 앞에서 주저앉거나 되돌아서지 않기만 하면 된다는 평범하고도 차분한 가르침을 자연스럽고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다. 앞서 살폈던 춘원과 동리가 현세의 거대서사로 환원되는 불교와 새로운 우주 질서를 구축하는 매개로서의 불교를 우리 근대소설과 마주 세웠다면, 이 작품을 통해 윤후명은 세속의 인간 욕망을 다스리고 삶의 본질을 깨닫는 불가의 가르침을 지극히 현세적이고 이기적이며 또한 영악한 현대인들이 어떤 시선에서 마주함에 옳은가에 대한 가능한 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음에서 불교와 소설이 서로를 마주 보는 또 다른 한 가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5. 결론을 대신하여

앞서 춘원(春園)과 동리(東里)를 통해 우리 근대문학이 불교를 다루는 시선 두 가지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춘원이 예의 계몽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여전히 드러내며 불가의 깨달음을 대중과 나누고 세속의 공동체와 불가를 이어주는 매개로 자신의 역할을 쉼 없이 찾아가려 했던 것과, 동리가 초월적이고 본질적인 새로운 세계를 향하는 길목에서 불교와의 만남과 깨달음을 형상화했던 것은 우리 근대소설이 불교를 다루는 커다란 두 갈래 길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근대소설은 본래 지극히 현세적이고 개별적인 주체의 탐색과 좌절을 서사화함에서 그 본질적 특징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교가 소설과 마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주인공으로 형상화된 누군가의 방황과 깨달음이라는 종교 체험의 증도가(證道歌)로 환원되는 것 이상은 가능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춘원이 이를 예의 계몽적 시선에서 동시대 민족공동체의 현실적 삶으로 환원하여 소설과 마주 세웠던 것이나 동리가 근본적 성찰을 통해 운명의 개척과 새로운 세계질서의 구축을 향한 디딤돌로 소설을 꾸려 낸 것 모두는 증도가로 환원되지 않으면서도 우리 근대소설이 불교를 넓고 깊은 시선에서 아우르고 재구조화하려는 문학의 건강한 긴장을 지녔음을 확인하게 해 주는 소중한 성과였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종교적 깨달음과 실천을 강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세속의 욕망과 갈등과 번뇌를 아무런 반성 없이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은 깨달음과 실천의 융합 속에 소설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서형범 /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주요 논문으로 〈傳統 知識人 丹齋 申采浩의 省察的 主體로서의 글쓰기 의식〉과 〈이청준 〈이어도〉에 나타난 인물들의 서사적 기능의 치환 양상 연구〉 등과 《개화기 서사양식과 전통지식인의 성찰적 여정》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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