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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종교적 폭력과 종교제국주의 / 박종천
[62호] 2015년 06월 01일 (월) 박종천 baummensch@naver.com

1. 종교제국주의, 신냉전의 시대적 징후
 
21세기에 들어와서 종교적 폭력은 지구적 공포로 확대되고 있다. 희망에 찬 21세기를 악몽으로 시작하게 한 2001년 9·11 사건은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항공기를 납치하여 자살테러를 감행함으로써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빌딩을 무너뜨리고 버지니아의 미국 국방성 펜타곤이 공격을 받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20세기의 냉전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 이데올로기 대결이었다면, 21세기의 신냉전은 종교와 민족 및 국가가 얽혀 있는 새로운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9·11 사건은 냉전에서 신냉전(New Cold War)으로 변화하는 역사적 분수령이었다. 이제 종교는 화해와 평화의 사도가 아니라 갈등과 분쟁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9·11 사건에서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은 ‘이슬람주의’를 종교적 폭력으로 표출함으로써 큰 충격을 주었으며, 헌팅턴(Samuel P. Huntington, 1927~2008) 같은 학자들은 참혹한 폭력으로 얼룩진 지구적 갈등을 종교가 중심이 되는 문명 간의 충돌로 단정했다. 그러나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의 종교전쟁 혹은 문명충돌이라는 프레임은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지구적 차원의 정치·경제적 갈등을 종교 혹은 문명의 차원으로 환원하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9·11 사건을 비롯한 종교적 폭력이 지구적 차원의 새로운 냉전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과 분쟁은 종교 대 종교 혹은 문명 대 문명의 대립으로 단순하게 치환될 수 없으며, 종교적 가치와 세속적 사회, 민족(nation)과 국가(state), 정치·경제적 차원과 종교·문화적 차원이 결합된 제국(empire)−식민지(colony)의 제국주의적 위계질서와 그 질서를 구성하는 욕망과 갈등이 복합적으로 결합하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나치 독일과 협력한 기독교부터 최근의 이슬람국가(IS)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제국주의적 위계질서에 순치되어 제국주의 일부로 동화되거나 제국주의 질서에 저항하면서도 또 다른 종교제국주의의 실현을 꿈꾸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위는 종교제국주의를 매개로 삼아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물리적 폭력 또는 문화적 폭력을 동반하는 종교의 정치화와 정치의 종교화라는 현상을 낳고 있다.

2. 세속국가와 다종교 상황: 근대적 종교분쟁의 배경

21세기의 서막을 종교적 테러로 연 9·11 사건은 세속적 제국과 종교적 식민지가 종교제국주의의 양면으로 갈등하는 양상을 잘 보여주었다. 서구의 주류 언론들은 주로 극단적인 이슬람원리주의자 혹은 종교근본주의자들의 ‘일탈적 테러’가 초래한 끔찍한 폭력과 그에 따른 무고한 사람들의 참혹한 희생과 공포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상징적 장소인 성당이나 교회가 아니라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을 공격했을까? 만약 종교 대 종교의 갈등이었다면, 테러리스트들은 성당이나 교회를 공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겨냥한 목표인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 질서와 그것을 지탱하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는 국제적 제국 질서의 상징이었다. 종교적 가치 대 세속적 문화, 제국 대 식민지의 대립과 갈등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국제 질서를 대표하는 장소가 신중하게 선택된 것이다.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의 관점에서 미국은 석유를 비롯한 물질 자원을 강탈했을 뿐만 아니라 타락한 자본주의적 세속문화를 주입하면서 종교적 정신까지 오염시키는 악(惡)이었다. 9·11 사건은 전통적 종교의 성스러운 가치를 상실하게 한 돈과 권력, 곧 자본주의적 세속화와 제국주의적 국제질서에 대한 상징적 공격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9·11 사건은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의 참모습을 상실한 채 엇나간 일탈이 아니었다. 이슬람주의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오히려 미국에서 세속화로 인해 상실한 종교적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이슬람 종교부흥운동이었으며, 정치−경제−문화를 아우르는 후기 식민지 상황에서 식민지를 지배하는 제국의 정치·경제적 세계질서에 대한 저항 혹은 제국주의 질서를 전면으로 거부하는 혁명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임하면서, 세속적인 욕망에 심각하게 오염된 미국의 종교제국주의적 영향력을 차단하고 이슬람의 가치를 새롭게 부흥시키려는 목적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었다.

9·11 사건 당시 모하메드 아타와 그의 동료들이 미국의 막대한 경제력과 막강한 군사력에 맞서 겨우 몇 개의 칼을 들고 신앙심만으로 테러에 나선 점도 대단히 상징적이다. 공격의 대상이 지닌 상징성을 고려해 볼 때, 그것은 이슬람 대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대립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세속화된 미국의 야만성에 맞서서 이슬람의 종교적 가치를 회복하려는 의도를 잘 보여주었다. 그들은 미국이 이룩한 자본주의의 물신주의적 행태, 종교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대중문화의 야만성과 세속국가의 제국주의적 폭력성이 이슬람을 포함하여 전 세계를 불신앙과 세속화로 타락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슬람주의자들은 미국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도덕으로부터도 벗어나서 불신앙과 세속화의 타락으로 치달은 까닭을 영적 무지 혹은 야만을 뜻하는 ‘자힐리야(jahiliyyah)’로 명명하고 비판했다.

알 카에다(Al-Qaeda)를 비롯해서 많은 이슬람주의자들이 즐겨 읽는 기념비적 저작 《이정표들》에서 저자 쿠트브(Sayyid Qutb, 1906~1966)는 이슬람 이전의 야만스런 영적 무지의 시대를 뜻하던 ‘자힐리야’를 단순한 무지를 넘어서서 신의 주권에 대한 적극적인 도전으로 재해석했다. 그리하여 자힐리야는 이슬람 이전의 무지와 야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대세계를 병들게 하는 야만적인 불신자들의 무지한 세속화의 경향으로서 성전(聖戰) 지하드(jihad)의 극복 대상이 되었다. 이런 시각에 보면, 미국이 쌓아놓은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위상은 무지와 야만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신에 대한 적극적인 반항과 파괴적인 불신앙으로 만들어진 바벨탑으로서 철저한 발본색원의 대상일 뿐이었다.

더욱 주목할 만한 대목은 이 사건이 기본적으로 종교 대 종교의 분쟁이 아니라 이슬람주의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종교적 가치와 세속화된 국가 사이에서 빚어진 갈등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는 세속화된 국가다. 미국 헌법에 나오는 정교분리(政敎分離) 조항은 근대의 계몽주의적 이성이 다종교 상황을 배경으로 등장한 세속 국가에서 종교의 영향력과 그 권위에 기댄 전통적 도덕성을 일정하게 축소시킨 결과였다. 그렇게 축소된 만큼 개인의 자유로운 취향과 욕망은 실현의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되었다. 전근대에는 종교가 안정적으로 문화적 취향과 욕망을 사회적 도덕으로 규제했으나, 세속화된 근대에는 종교와 분리된 취향과 욕망이 문화적 유행을 선도하면서 시장의 영역이 활성화되었다.

전통적 종교의 가치를 신봉하는 관점에서 보면, 종교와 문화의 분리 현상은 종교와 분리된 세속문화가 공적 영역에서 종교를 퇴거시킬 뿐만 아니라 종교문화의 고매한 정신을 오염시킴으로써 많은 문제점을 파생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위험을 드러낸다. 실제로 쿠트브는 미국 방문 당시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젊은이들이 어느 순간 서로 몸을 밀착한 채로 춤을 추는 현장을 지켜보면서 경악했는데, 이는 종교가 특정한 시간, 공간, 기능에 국한된 채 사적 영역으로 축소되면서 인간의 생활을 구성하는 공적 영역에서 축출되는 양상을 목격한 데서 비롯된 충격이었다. 종교적 가치에 지극히 충실한 사람에게 경건한 예배의 몸짓과 자유분방한 세속적 춤의 몸짓이 공존하고 거룩한 성소(聖所)가 세속적 사교의 장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타락이었다. 그뿐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축출되어 사적 영역으로 제한된 종교적 신앙과 실천마저도 오염되고 타락한 세속문화에 의해 물들어 버린 것이었다.

이슬람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세속화의 물결은 제국주의적 세계질서의 확장에 따라 서구의 그리스도교 문화권을 넘어서 경건한 이슬람 지역까지 유입되었으며, 그에 따라 세속화의 오염과 타락은 이슬람마저 병들게 했다. 따라서 문화제국주의의 구조를 따라 식민지로 전락한 아랍세계를 정신적으로도 전염시키는 파괴적 세속문화를 차단하고 그러한 유통경로를 지탱하는 제국주의적 세계질서에 저항하는 것은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당연한 선택이었다.   

한편, 근대적 세속화에 대한 종교적 저항은 흔히 근본주의(funda-mentalism)로 불리는 경향을 강화시켰다. 근본주의는 1920년대 미국 개신교 내부에서 자유주의 혹은 근대주의를 비판하면서 등장했는데, 현재는 과거의 위대한 종교적 원칙과 전통으로 복귀하려는 흐름을 의미하는 용어로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다. 근본주의는 고대의 이상적인 종교적 원칙이나 전통을 강조하고 있으나, 그러한 주장과 실천은 어디까지나 근대성에 대한 반응으로 새롭게 구성된 것이다.

서구는 그리스도교가 사회를 완전하게 지배하던 중세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정치와 경제 및 문화의 각 영역이 종교적 지배에서 벗어나서 자율적인 영역으로 분화되는 세속화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을 통해 공적 영역에서 퇴출된 종교는 더 이상 국가의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여 사회를 효율적으로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통과 이단의 구분을 사회적으로 관철시킬 만한 정치적 권력을 상실한 단일한 종교적 권위는 다종교 상황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다종교 상황은 종교마저 개인의 자유로운 문화적 취향과 선택 앞에서 경쟁하는 시장적 상황을 만들었으며, 그것이 세속화와 연결되면서 민족 혹은 국가와 연결된 다양한 종교적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세속화는 다양한 교파의 분열을 가능하게 했으며, 다종교 상황에서 촉발된 분열과 통제의 갈등 속에서 서구는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종교전쟁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유럽의 근대 민족국가는 종교의 영역을 더욱 축소하고 종교에서 분리된 공적인 국가 영역을 구축했다.

 나아가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표방하며 등장한 근대적 세속국가가 문화제국주의적 확장을 거듭하면서 비서구 사회에서도 세속화의 흐름이 일어났다. 비서구권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인도, 터키 등 후기식민지 엘리트들은 근대성과 세속화에 대한 자유주의적 모델을 내면화하면서 서구적 세속사회의 모델을 일정하게 수용했으나, 이에 대한 반발로 근본주의 혹은 민족주의적 색채를 지닌 정당들이 집권하는 경우도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종교전통이 공적 영역을 재장악하는 방식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알 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처럼 혁명종교화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3. 최대주의와 최소주의로 본 종교제국주의

세속화와 다원화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성의 출현은 지구적인 문화제국주의의 구조 속에서 종교적 분쟁과 폭력의 배경이 된다. 특히 종교적 분쟁은 종교가 국가와 민족, 제국과 식민지 사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양상이 가능하다. 종교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규제하려고 하는 세속국가 중심의 모델과 종교의 영향력을 극대화하여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는 모델, 종교제국주의를 확장하려고 하는 모델과 종교제국주의를 해체하려고 하는 모델 사이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례들이 나타나게 된다. 미국처럼 종교의 문화 지배를 최소화하는 최소주의적 모델의 세속국가가 있는가 하면, 이란처럼 종교의 문화 지배를 최대화하는 최대주의적 모델의 종교국가가 있다. 또한 제국주의 일본처럼 국가신도(國家神道)를 중심으로 다양한 종교들을 순치된 문화적 식민지로 만들면서 제국−식민지의 위계적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종교제국주의 유지−확장 모델이 있는가 하면, 알 카에다나 이슬람국가처럼 종교제국주의를 전면적으로 저항하고 해체하는 저항−해체적 모델이 있다.

종교는 전통적으로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의미의 토대로 기능했으나, 근대 이후에는 문화의 한 영역으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종교학자 링컨(Bruce Lincoln)은 전자를 최대주의(maximalism), 후자를 최소주의(minimalism)로 설명했다. 최대주의는 종교가 인간 사회의 모든 문화적 측면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지배적 확신인 반면, 최소주의는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종교가 국가의 개입에서 독립적인 한정적 영역에서 특권을 보호받으면서 활동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최대주의에서 최소주의로 이행하는 흐름은 구미 그리스도교 문화권의 근대 세속국가 모델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된다. 유럽과는 달리 내부적으로 종교전쟁을 겪지 못한 비서구 지역에서는 굳이 종교의 영향력을 최소화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도리어 그러한 최소주의가 문화의 안정성과 위엄 및 통합성을 위협하는 서구 종교제국주의의 강요로 경험되었다. 최대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종교제국주의의 식민지배는 거룩한 것을 세속화하고 종교적 신념과 실천 및 공동체 질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것이다.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구축되는 세속적 질서는 종교적 가치를 근간으로 형성되는 전통적 질서를 파괴한다. 돈으로 대표되는 욕망이 거룩한 종교적 가치를 밀어냈다는 비판적 문제의식은 극단적인 테러로 발현되기도 한다. 예컨대, 종교적 가치를 외면한 채 세속화된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적 세계 질서의 심장을 부수려고 했던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1957~2011)의 알 카에다의 테러는 최소주의에 대한 최대주의의 격렬한 저항이었다. 

최소주의 모델은 유럽과 구미의 서양인들이 문화제국주의 차원에서 전 세계를 식민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최소주의 모델은 탐욕과 폭력 및 과학적 탐구에 대한 종교의 견제와 간섭을 최소화했고, 그에 따라 경제적 부와 산업기술 및 국가의 정치적 권력은 확대되었다. 이러한 모델은 제국에서 식민지로 수용되어 문화제국주의의 긍정적 측면으로 선전되었다. 종교의 전파는 문명의 수혜로 이해되었고, 그런 문명의 수혜 차원에서 제국의 식민지배도 정당화되었다.

실제로 서구 그리스도교는 비서구권으로 진출하면서 두 가지 선교 전략을 취했다.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라는 담론의 활용과 더불어 학교, 병원 등 ‘문명’의 혜택을 전수함으로써 인심을 얻는 ‘문명선교’의 문화적 실천이 그것이다.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라는 담론은 제국의 세속국가 모델이 식민지 국가의 종교전통과 정치 영역을 분리함으로써 식민지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정교분리는 서구에서 종교전쟁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세속국가의 결실이었지만, 비서구권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확보함으로써 전통 종교를 몰아내고 식민지를 선교로 정복할 수 있는 종교제국주의의 중요한 담론으로 활용되었다. 종교적 정복을 정당화하는 문명의 논리는 식민지의 전통종교들을 ‘이단(heresy)’이나 ‘이교(pagan)’ 등의 미개한 ‘미신(superstition)’이나 ‘야만’으로 규정하여 거세함으로써 종교제국주의적 양상을 드러내었다. 제국의 종교는 식민지에 침투하고 확장하면서 야만적인 전통 종교를 대체하는 세련된 문명 종교로서 수용되고, 문명의 이름으로 종교제국주의는 정당화된다.

 4. 종교제국주의에 대한 반응
    :정치의 종교화와 종교의 정치화 및 혼종적 변용

이러한 종교제국주의에 대한 반응은 종교문화적 차원에서 후기 식민지로 편입되는 적극적 수용 및 변용, 9·11 사건처럼 극단적인 테러로 분출되는 적극적 저항, 제국주의 종교문화와 식민지의 전통적 종교문화를 혼종적으로 변용하는 양상 등으로 전개된다. 이 가운데 적극적 저항의 양상은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으므로 생략하고, 여기서는 종교의 정치화를 통한 수용과 정치의 종교화를 통한 변용 및 혼종적 변용의 양상을 검토할 것이다.

1) 종교제국주의를 수용하는 종교의 정치화

적극적 수용은 정교분리의 세속국가의 근대적 틀 아래 종교의 정치화 양상으로 구현된다. 세속화된 근대국가의 세계질서 아래 사회적 영역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상실한 종교들은 시장상황으로 내몰리면서 각종 정치·경제적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에 따라 국가에 대해 정치적으로 일정하게 견제하고 협조하면서 사적 영역으로 국한된 종교가 공적 영역과 공모하는 방식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정치화되고 있다.

종교제국주의가 수용되면, 선교사에 대한 식민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이루어진다. 식민정부는 선교사들에게 교육과 의료서비스 맡기는 대신, 선교사에게는 선교의 기회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식민지에 유용한 방식과 한계에 따라 의식적으로 선별된 현상유지 종교를 지원한다. 식민지 사람들이 구원의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유럽의 지식과 권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그들이 처방해준 대로 신앙과 실천을 수용해야 하며, 이에 따라 전통적 신앙과 실천을 포기하고 개종해야 한다. 이렇듯 종교의 정치화 모델은 제국주의적 질서 내에서 전반적으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현상유지 종교로 구조화된다.

이념적 차원의 정교분리는 실제적 차원에서 정치와 공모하는 종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미국의 근본주의적 개신교인들이 결성한 도덕적 다수파(Moral Majority)는 이교도들, 낙태주의자들, 페미니스트들, 양성애자들 등 다양한 양상으로 미국을 세속화하려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문화적 제국의 위치에서 문화제국주의적 질서의 현상유지에 협조하면서도 종교적 근본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종교의 정치화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이에 비해 현대 한국의 사례는 문화적 식민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의 정치화 양상을 선보이고 있다.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라는 근대적 담론의 틀을 수용하면서 유교 전통을 거세하고 불교의 중심적 역할을 사적 영역으로 축소시켰을 뿐만 아니라 민간신앙을 미신의 영역에 가두는 데 일정하게 성공했다. 새롭게 유입된 그리스도교는 종교의 자유라는 틀 안에서 문명선교에 성공했다. 나아가 한국 개신교가 서구 그리스도교를 수용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문명선교의 미명 아래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활발한 세계선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정복주의 선교 전략을 취하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거부감을 초래하는 한계를 노정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개신교는 종교제국주의를 내면화하고 주도적으로 확장시킨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에서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는 종교제국주의의 확장을 위한 통로로 적극 활용된다. 종교적 관용은 그 주도권을 잃지 않는 한계 내에서만 의미가 있다. 따라서 종교의 정치화는 제국주의적 위계질서와 경쟁시장의 문화 헤게모니를 장악한 종교의 최대주의적 양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유형은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과 시장 및 국가를 강조하는 세속화론의 최소주의와 명확히 구분된다.

2) 종교제국주의를 변용시키는 정치의 종교화

이와 반대로 제국주의 종교문화와 식민지의 전통적 종교문화를 변용함으로써 정치가 종교화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정치적 권력에 종교적 권위를 부여하는 모델이다. 정치의 종교화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전제하면서도 정치권력이 종교화하는 국가주의 종교 모델로서, 천황이 신의 자손임을 역설하는 일본의 국가신도 또는 나치 독일의 국가주의 기독교가 대표적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억압 아래 타 종교 전통의 사람들도 신사참배에 참여함으로써 국가신도를 정점으로 하는 위계적 종교문화에 편입된 식민지 조선의 사례는 천황과 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의 종교화 사례로서 주목할 만하다. 국가신도 체제는 제국주의 일본이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제국주의 종교문화를 정당화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치가 종교화되는 양상을 선보였다.

이러한 시스템 아래 종교들은 교리와 실천을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에 맞게 변용시켰다. 제국주의 일본에서 불교가 취했던 방식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제국주의 일본에서 정토진종은 천황의 위패를 아미타불상 옆에 두고 직접 전쟁에 나서는 방식을 통해 종교를 국가주의를 주입하는 제도로 편입시켰으며, 이에 따라 불교의 포교는 세속국가의 군사적 침략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었다. 이는 상인과 군대의 진출에 앞서 선교사가 먼저 들어갔던 서구 그리스도교의 제국주의 선교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를 사회적 구조로 정립했던 서구와는 달리, 일본 제국은 정치−종교−경제 등이 유기적으로 일체화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정치의 종교화는 종교의 정치화를 수반하며, 실질적으로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는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한 종교의 복속이 현실화된다.

더욱 유의할 대목은 정교의 분리와 종교의 자유에 따라 사적 영역에 국한되었던 종교가 공적 영역에 자리 잡은 국가의 정치적 권력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변용된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불교는 전쟁을 비롯한 국가적 폭력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끔 교리를 변용하여 근본적 교리마저도 수정할 정도로 과감한 재해석을 감행했다. 예컨대, 일본 임제선종의 스님이자 학자인 이치카와 하쿠겐은 “저벅저벅 행진하라든가 탕탕 쏘라는 [명령을 받는다면] 이는 [깨달음]에 관한 최고 지혜의 발현이다. 내가 말하는 선과 전쟁의 일치는 [현재 수행 중인] 성전의 마지막까지 확장된다.”는 선언을 한 적이 있다. 선 수행을 전쟁과 일치시킴으로써 주저없는 살인은 지혜의 발현이 되고, 전쟁은 거룩한 수행이 되었다.

나아가 국가적 폭력은 종교적 수행과 일체시되고, 종교적 깨달음과 국가에 대한 충성이 합일된다. 일본 임제선종의 종정이었던 야마자키 에키주(1882~1961)는 선(禪) 수련을 통해 자아를 제거함으로써 ‘주권자와 백성의 일치’가 바로 ‘선의 무(無)에 대한 깨달음’과 통한다는 점을 주장하는 군인 선(禪)을 주창했다. 괴로움을 낳는 번뇌망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심신을 비우고, 아집을 버리는 무아의 수행을 통해 비워진 공간에는 국가에 대한 절대적 충성이 자리 잡게 되고, 국가로부터 시달되는 부당한 폭력까지도 성화(聖化)되기에 이른다. 예컨대, 일본 군국주의를 대표하는 스기모토 고로(1900~1937) 중령은 “황국의 전쟁은 성전이다. 그것은 거룩한 전쟁이다. 황국의 전쟁은 위대한 자비의 실천이다.”라고 역설했다. 이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자비의 실천으로 승격되는 아이러니가 실현된다. 그리고 절대적 충성을 종교적 이상을 위한 순교와 완성에 견주기까지 한다.

이렇듯 정치의 종교화는 파시즘적 국가권력의 폭력적 실현을 위해 종교적 수행과 국가적 폭력을 일체화시킨다. 근본주의가 그토록 비판했던 세속적 행위들이 종교적 가치로 재해석되면서 종교적 근본 원칙이 있어야 할 곳에는 국가의 명령이 자리를 잡는다. 또한 일본불교는 선 수행과 사무라이의 검술을 일치시키고 군국주의적 전쟁에도 결합시켰을 뿐만 아니라, 선의 깨달음을 군사, 정치, 관료, 교육, 예술, 상업 등 모든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는 ‘힘’의 문제로 보면서 종교를 모든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정치의 종교화는 종교의 정치화처럼 종교의 최대주의가 아니라 정치의 최대주의와 종교의 최대주의가 결합한다는 점에서 종교제국주의의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3) 제국주의 종교문화와 식민지의 전통적 종교문화의 혼종적 변용

종교의 정치화와 정치의 종교화는 제국주의 혹은 후기 식민지 엘리트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제국주의 종교문화의 양태들이다. 이에 비해 식민지 대중들의 관점에서 보면, 제국주의 종교문화와 식민지의 전통적 종교문화를 혼종적으로 변용하는 양상이 부각된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주도하는 제국 혹은 식민지 엘리트들과는 달리, 대중들은 문화제국주의의 장치와 효과를 일정하게 수용하면서도 제국주의 종교문화를 전통적인 종교문화와 뒤섞어서 이질적인 잡종들을 만들어 낸다.

개화기 조선에서는 서양식 병원과 학교는 교회와 함께 근대적 문화제국주의의 일환으로 등장했는데, 이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반응은 초기에는 거부와 저항으로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888년에 퍼졌던 유언비어 사건이다. 1888년 6월 10일경에 서울에서는 ‘영아소동(櫖兒騷動, the Baby Riots)’이 발생했다. 당시 서울에는 “외국인들이 어린아이를 유괴해다가 외국에 팔거나, 잡아먹거나, 눈알과 염통을 빼서 약을 만든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에 격분한 백성들이 외국인들을 위협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기독교는 문명의 시혜로서 등장한 의료, 교육과 함께 일부씩 수용되기 시작했다. 의료 영역에서는 개화기 대한제국에서 한의원과 서양의학을 겸비하는 병원이 출현했으며, 교육 영역에서는 1883년 원산학사가 서당교육에 근대교육을 가미한 개량서당으로 등장하고,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들은 한문교육을 일부 수용하는 등의 양상이 나타났다. 이런 과정 중에 서양에서는 사적 실천에 불과했던 새벽기도가 정한수 치성이나 도교 수행의 한국적 실천과 혼종적으로 결합하여 교회 차원의 공적 실천으로 변용되기도 했고, 무속적 열정은 대부흥 운동으로 연결되었으며, 유교 상례의 영향을 기독교적으로 재구성한 추모예배 등도 나타나게 되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종교적 습합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예컨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은 아프리카 노예들이 천주교의 제의와 아프리카의 주술을 혼합하여 만든 부두교의 사례는 식민지 대중들이 문명교화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고 혼종을 통해 새로운 문화적 가능성을 창출하는 주체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이러한 혼종성은 “단순한 절충이 아니라 서구 근대성을 수용하면서도 그 자체를 뒤틀어 버림으로써 제국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굴절시키는 능동적인 대응”으로서 가치가 있다. 혼종적 변용은 문화적 식민지 상황에서 제국주의 선교/포교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거나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제국주의의 욕망을 일정하게 굴절시키는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한편, 혼종적 변용의 양상은 종교제국주의적 욕망을 굴절시키는 방식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제국주의를 실현시키는 방식으로도 구현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2001년 봉은사와 동화사에서 일어난 개신교인들의 땅 밟기 기도 사건과 2011년 미얀마의 법당과 인도의 마하보디 사원에서 있었던 한국 개신교인들의 땅 밟기 기도 사건 등이 있다.

‘땅 밟기 기도(Payer Walking)’는 신사도운동 단체, 예수전도단, 인터콥 등 개신교 선교단체들의 정복주의적 선교 방식 중 하나로서, 1989년 이후 등장한 영적 도해(Spiritual Mapping) 사상에 따라 각 지역을 주관하는 귀신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복음화하는 주술적 기도다. 개신교의 땅 밟기 기도는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아서 여리고 성을 정복한 성경의 기록을 연원으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통적인 주술적 방식을 정복주의 선교와 혼종적으로 결합하여 변용시킨 의례적 몸짓으로 구현되었다. 이렇듯 종교제국주의의 욕망은 주술−의례적 정복주의의 행태를 거침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5. 종교제국주의의 경계를 넘어서

종교제국주의의 욕망은 이분법의 분별의식을 근간으로 삼아 타자에 대한 배타적 지배와 정복을 실현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신앙과 자힐리야로 이슬람과 세속화된 기독교문화를 규정하고, 기독교 근본주의가 하느님과 악마라는 대립구도 속에서 선과 악의 이원론을 실체화했듯이, 힌두교 근본주의는 다르마(dharma, 法)와 아다므라(adharma, 不法)의 대립으로 힌두교와 이슬람을 규정했으며, 《마하바라타》에서 크리슈나(Krishna) 신이 아르주나(Arjuna)에게 내적 평화를 얻기 위한 수도행보다 형제간 전쟁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장면을 파괴된 정의를 회복하는 것이 의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선과 악의 이분법을 정치적 폭력으로 표출하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1992년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의 이슬람 바브리사원 공격은 2000년대까지 대규모 폭력과 폭탄 테러로 번졌다.

평화의 종교로 알려진 불교 역시 종교제국주의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일본 제국주의의 불교는 물론, 불교적 전륜성왕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는 아쇼카 왕조차 자신의 제국질서에 복속되지 않는 주민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제국주의적 모습을 보였다. 그에게 법(法, Dharma)은 중생을 자유롭게 하는 불법(佛法)의 권위가 아니라 제국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권력이었을 뿐이다. 그 질서에 동화되지 못하는 자들은 제국의 질서 유지를 위해 불법(不法)으로 규정되고 제거되어야 했다. 현대 스리랑카의 불교계 싱할라족 차별과 박해정책이 힌두교계 타밀엘람 해방호랑이의 격렬한 저항을 초래한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종교제국주의는 이원론적 세계관과 타자와의 경계 구축을 통한 질서의 재구축이라는 메커니즘을 분쟁의 잠재력으로 삼고, 의례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 폭력과 성스러움을 연계시킴으로써 폭력을 성화하고 심지어 의무화하기까지 한다. 실제로 종교적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주적 전쟁의 레토릭을 동원하기도 하고, 폭력적 갈등을 수반하는 대의명분을 성화하기 위해서 의례적 행동을 고안하기도 한다. 예컨대, 9·11 사건에서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은 테러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전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정화하고 기도를 멈추지 않았는데, 이러한 의례적 행위는 세속주의에 물들어 있는 세계를 종교적으로 정화하고 성화시키는 우주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종교적 권위가 정치적 권력으로 나타날 때에는 그에 대한 지지와 저항도 함께 구현되기 마련이다. 일정한 전통에서 질서(cosmos)의 구성은 ‘타자(the other)의 구성’을 전제로 한다. 타자와 구분되는 경계의 설정이 자기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인 질서는 타자를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어내고 정점에서 저변화한 타자를 지배함으로써 제국과 식민지의 제국주의적 역학관계를 형성한다. 중심/정점과 주변/저변의 이분법 속에서 주변화되고 저변화된 타자는 문명에 대응하는 야만, 빛/선이 결여된 어둠/악으로 자리매김되어 전통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메커니즘 속에서 증오와 폭력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이분법적 경계는 자기 전통과 타자를 구분할 뿐만 아니라 내부에 있는 적을 향하기도 한다. 실제로 종교적 갈등의 가장 강렬한 형태는 전통 내부에서 정통과 이단을 구분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단은 근접성과 절연성의 강한 연합으로서, 사회적 갈등이 한창일 때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이에 따라 사회적 갈등이 불거질 때 근본주의자들은 개혁적인 온건파를 전통을 전복하는 근대주의자로 간주하여 증오와 테러의 대상으로 삼곤 한다. 최근 이슬람국가가 요르단을 비롯하여 같은 이슬람 지역의 무슬림들조차 학살과 테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후기 식민지적 상황에서 타자를 향한 증오가 내부를 향하기도 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종교제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정복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원론적 경향을 극복해야 한다. 이원론은 질서를 부여하는 잠재력이 있다. 기존 질서의 현상유지에도 이원론적 구도는 도움이 되며,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해체하는 운동에서도 이원론은 힘을 발휘한다. 이원론은 대체로 자기를 절대화하고 대상을 상대화하는 법이다. 실제로 종교는 늘 절대적인 진리를 발언한다. 그런데 종교적 교리와 실천의 절대성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다원적인 현실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종교의 절대성을 지키고 모든 문화 영역에서 그것을 관철시키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다원화된 시장적 경쟁 상황을 소거하기 위해 폭력을 동반한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종교적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종교의 절대성을 존중하면서도 이원론적 시각이 적대적인 폭력으로 실천되지 않도록 만드는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종교제국주의를 지탱하는 정치·경제적 자원의 분배를 공정하게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중세의 십자군 운동은 이슬람 지역의 물적 자원들에 대한 탐욕으로 전개되었으며, 미국에 대한 아랍인들의 분노 표출 역시 석유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적 세계질서 지배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었다. 또한 기존의 세계질서 속에서 다양한 정치·경제적 자원을 독점 혹은 과점을 하면서 우월한 위상을 확보했던 현실에 만족하면서 현상유지를 강화하는 자세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래야 선민의식, 문화적 우월성 향유, 자기도취적 나르시시즘을 벗어나서 종교 간 이해를 위한 유대를 증진시킬 길이 열린다. 실제로 대부분의 종교는 문화적 헤게모니 장악보다 생존이 목표이기 때문에 지리적 영역을 넘어서 제국주의적 선교/포교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특정한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지구적 차원에서 구성되는 제국주의적 위계질서를 해체 혹은 완화시키면, 종교적 갈등과 폭력은 상당히 완화될 수 있다.

종교적 최대주의자들이 배타적 근본주의로 전락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종교적 폭력으로 표출되는 배타적 근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이한 종교전통의 최대주의자들이 세속화의 문제점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종교적 공론장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공론장은 상대 종교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대성을 지향하는 상대 종교의 진지하고 성실한 면모에 대한 이해와 교감을 나누는 과정이 된다. 이를 통해 종교제국주의의 욕망은 일정하게 완화될 수 있다.

무지는 공포를 낳고, 공포는 폭력을 빚어낸다. 다시 폭력은 공포를 만들고, 공포는 무지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갈등과 분쟁으로 몰아넣는 폭력의 악순환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는 계기는 폭력과 공포를 낳는 무지로부터 벗어나는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 남에 대한 무지는 실은 자기에 대한 무지이기도 하다. 종교의 절대성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자기 전통과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틀렸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동이(同異)’를 ‘시비(是非)’로 치환해서는 안 된다. 남에 대한 이해는 나에 대한 성찰로 승화될 수 있다. 이런 이해와 성찰을 통해 우리는 절대적인 신이나 진리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겸손함을 배울 수 있으며, 최소한 상대 종교 전통이 올바른 진리나 구원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진리나 구원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자체를 부인하지 않을 정도의 여유는 갖게 된다.

오늘날 구조화된 종교적 폭력을 극복하기 위해서 종교제국주의를 해체하거나 완화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쿠란》의 경구처럼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남을 적대하지 않는 지혜와 여유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진리는 암흑 속에서부터 구별되니라.
만약 저들이 싸움을 단념하면 너희도 적대행위를 멈춰야 하느니라.
— 《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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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천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철학박사). 주요 저술로 〈성호학파의 친족의식과 의례생활−광주안씨 종계를 중심으로〉 〈한국종교문화의 역동적 이해〉 등의 논문과 《일기를 통해 본 조선후시 사회사》 《예, 3천년 동양을 지배하다》 《다산 정약용의 의례이론》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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