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본노자》와 ‘초기불교’를 통해서

1. 들어가는 말 : 노자와 붓다, 만남의 역사

이 글에서는 ‘노자와 붓다, 무엇이 같고 다른가’의 문제를 《초간본노자(楚簡本老子)》와 초기불교를 중심으로 논의해보려고 한다.
인도에서 태어난 붓다와 중국에서 태어난 노자는 대략 기원전 6세기경에 태어났다. 태어난 시기가 야스퍼스가 말하는 이른바 차축시대(車軸時代, die Achsenzeit, Axial Age)로 비슷하다. 이렇게 태어난 시기가 비슷하다는 것 외에, 노자와 붓다 사이에 사상적 종교적 연관성을 따지던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중국 종교사에서 불교와 도교 사이에 진검승부가 벌어지던 당(唐)나라 때(7세기 무렵)의 일이다. 즉 당나라는 선비족 계열의 귀족 이연(李淵)이 세우고 지배한 왕조였기에 《도덕경(道德經)》을 지은 노자(老子)가 이씨(李氏)-이름은 이(耳), 자(字)는 담(聃)-이므로 정권 차원에서 도교에 대한 지원이 전폭적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곧 불교 차별로 이어졌다. 이때 불교를 이론적으로 누르기 위해 노자화호설(老子化胡說)이 대두된다. 노자가 오랑캐 땅인 인도에 건너가 석가모니로 다시 태어나 오랑캐들을 가르쳤다는 설이다. 물론 불교 측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삼성화현설(三聖化現說)’을 주장하게 된다. 붓다가 중국으로 3인의 제자, 즉 유동보살(儒童菩薩), 광정보살(光淨菩薩), 마하가섭(摩訶迦葉)을 파견하여 각각 공자, 안회, 노자로 태어나게 하였다는 주장이다. 당나라 왕실은 당연히 ‘노자화호설’의 편을 들게 된다.
어쨌든 중국사상사에서 본다면, 오경웅(吳經熊)이 쓴 《선(禪)의 황금시대》에서, 중국에서 새로 태어난 불교인 ‘비범한’ 아이인 선(禪)이 아버지인 불교보다도 어머니인 도가사상을 더 닮았다고 표현하였듯이, 불교와 도가사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장자와 선종의 발상은 서로 닿아 있다. 양쪽이 모두 ‘인간 내면-정신의 자유’와 ‘언어에 대한 회의와 부정’으로 향하는 점이 통한다. 중국 송대 도원(道源)이 지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서 말하는 ‘부모미생이전(父母未生以前)의 너(汝)’라는 발상도 《장자》에서 나왔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올 때 노장사상의 개념을 근거로 불교가 번역되는, 이른바 격의불교(格義佛敎)는 불교와 도가사상의 친밀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격의(格義)란 말은 《고승전(高僧傳)》에 나오는데, 격의에서 ‘의(義)’는 ‘말의 뜻’을, ‘격(格)’은 ‘의배(擬配)’ ‘추량(推量)(=재다, 헤아리다)’으로 ‘비슷하게 짝짓다, 빗대다’⟶‘비슷한 말-개념(=유사어)에 기대/빗대/비겨서 번역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격의의 형태로 중국에서 도가와 불교 사이의 가족유사성을 발견해낸 것은 일단 비슷한 뜻을 가진 다른 말과 개념을 헤아려 무엇이든 ‘중국식’으로 대치, 변용하는 오래된 전통적 방법론이라 할만하다.
이 글에서는 붓다와 노자 사이의 동이점에 주목하는데, 먼저 논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 붓다와 노자의 사유방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2. 무엇을 어떻게 논의할 것인가

1) 불교와 도가사상 관련 연구의 문제점
현재 한국에서 ‘불교와 도가사상’을 비교한 예는 그다지 많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연구서로서 김항배의 《불교와 도가사상》이 있다. 이 책에서는 불교와 도가사상의 유사점을 다음 네 가지로 파악한다. ① 우주와 인생의 실상을 통찰하려는 사유 경향, ② 인식 방법론, ③ 모든 대립과 투쟁을 종식시키고 모든 생물의 대화해(大和諧)와 대평화(大平和)를 지향, ④ 어떤 권위나 도그마에도 맹목적으로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모든 생명들로 하여금 참 자유를 해득하게 하려는 이상, ⑤ 진정한 나[我]를 찾으려는 비판정신이 그것이다. 그런데 애당초 이 논의는 불교 전체와 도가사상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논의의 범위가 너무 넓고 또한 다초점 렌즈처럼 결론을 얻기가 어렵다. 더욱이 불교의 전개, 도가의 전개가 방대하고 사상적 내용도 편차를 보이기에 어느 시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논의하는가에 따라 결론도 매우 다를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2) 불교의 전개와 아함경(阿含經)
일반적으로 불교는 초기불교와 후기불교로 나눌 수 있다. 초기불교에는 ‘근본불교⟶원시불교⟶부파불교(아비달마불교): 소승불교’가, 후기불교에는 ‘대승불교’가 속한다. 따라서 초기불교는 붓다와 그의 직제자(直弟子)들의 가르침이다. 붓다의 생생한 가르침은 아가마(Ȁgama)=아함경(阿含經)[동남아시아 상좌부 불교에서는 팔리어로 된 니카야(nikāya) 즉 경전(經典)]에 전해진다. 팔리어본의 니카야는 한역본 아함경에 해당하는 거의 비슷한 내용의 경전이다.
부파불교는 석가모니 입멸 이후 여러 부파로 분열된 시대의 불교이다. 부파불교에서는 아비달마 즉 존재(법)의 해석-분석을 본령으로 하여 석가모니의 가르침(교설)에 대한 이론적 정비를 하여 불교의 철학적 사색을 정밀하게 한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이 가운데 상좌부 계통을 잇는 불교가 전개된다.
기원 전후로 일어난 신불교로서 대승불교는 문학적으로 탁월한 경전을 많이 탄생시키며 공의 철학, 유식철학을 전개한다. 이렇게 하여 불교는 중국, 한국, 일본, 티베트에도 전파되며 각 지역의 에토스-마인드와 만나 독자적인 사색과 전개를 보이기도 한다.
기원후 7~8세기 이후 인도에는 대승불교를 이어가면서 이를 비판적으로 초극하려 하며 성불(成佛)의 방법에서 독자적인 주장을 내세우는 밀교가 융성하게 된다. 나란다 사를 비롯한 불교연구의 중심이 된 각지에서 밀교화가 진행되었다. 이처럼 불교를 일의적으로 규정하기란 어렵다.
아함경이나 《율장》의 불전(佛傳)에서 석가모니 가르침에 대한 기술은 다양하다. 기록-서술한 자의 ‘해석’ 즉 ‘잡음’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엄경》 등 대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의 깨달음에 대한 새로운 표현이 부여된다. 이처럼 석가모니의 깨달음 해석에 대해서 불교 내부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석가모니의 깨달음이 이것이다’라고 ‘믿는 것’이 불교의 각 ‘종파’의 전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노자》의 여러 판본
붓다의 사상 전개가 다기하듯이, 노자의 사상 또한 일의적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①《초간본노자(楚簡本老子)》⟶②《백서본노자(帛書本老子)》⟶③《왕필본노자(王弼本老子)》⟶④ 현행본 노자 식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있고 아래처럼 그 세부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① 《초간본노자(楚簡本老子)》: 1993년 10월 호북성(湖北省) 형문시(荊門市) 사양구(沙洋區) 사방향(四方鄕) 곽점촌(郭店村)에 있는 전국시대의 분묘에서 초(楚)나라 사상가의 것(기원전 300년 이전)으로 추정되는 804개나 되는 죽간(竹簡), 즉 문자가 새겨진 대나무 쪽에 쓰인 1만 3천여 글자의 문헌이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도가 저작으로서 발견된 《노자(老子)》 3편을 곽점촌 초묘의 죽간 《노자》 줄여서 《초간본노자》 혹은 《죽간본노자》라 한다. 《초간본노자》는 마왕퇴 백서보다 2세기나 더 연대를 소급할 수 있다.
② 《백서본노자(帛書本老子)》 : 1973년 12월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백서(帛書) 《노자老子》가 발굴되었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168년경이다. 백서란 ‘비단(帛)에 글을 쓴 책(書)’=‘비단으로 된 책’이다.
백서 《노자》에는 갑본(甲本), 을본(乙本) 2종이 있다. 갑본은 진대(秦代)의 판본이고, 을본은 한대(漢代)의 판본이다. 을본은 갑본을 토대로 다듬어진 것으로 보인다. 갑본에 쓰인 많은 가차 자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어떤 표준 글자 속으로 흡수되어 갔고, 그 결과가 을본에 반영되었다. 두 종류 다 지금의 체제와 달리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의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자》 상·하편을 도경·덕경이라는 이름을 붙이거나 《도덕경》이라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덕도경》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이 《덕도경》의 형태는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도경에서 도만 논하고 덕경에서는 덕만 논하는 것이 아니며, 양자의 내용이 서로 뒤섞여 있다. 지금의 체제와 좀 다른 백서 《노자》의 내용은 통행본(王弼本을 대표로 해서)과 비교할 때 분장 체제, 문자 등에서 약간 차이를 보이나 현행본과 80% 이상 일치한다. 따라서 거의 같은 판본의 계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노자》의 최초 주석가인 한비자가 처음 보았다는 《노자》가 이 백서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백서본노자》는 《초간본노자》를 대대적으로 개편한 책이라 생각된다.
③ 《왕필본노자(王弼本老子)》 : 위(魏)나라의 천재적 사상가로서 23세에 죽은 왕필(王弼, 기원후 226~249)이 ‘16세쯤’에 주석을 단 판본으로 오늘날 흔히 쓰이는 《노자 도덕경(老子 道德經)》이다. 왕필은 당시까지 내려오던 여러 텍스트를 자신의 일관된 틀 속에서 정비, 재구성하여 탁월하게 주석한 것이다. 현재까지도 훌륭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④ 현행본 노자: 이후 대체로 이에 근거하여 송대(宋代)의 목판 인쇄가 성행함에 따라 현행본 노자가 유통되기에 이른다.
위의 주요 판본을 내용 면에서 대비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판본면 2. 내용면
초간본 노자
 ↓
백서본 노자

기원전

기원후

왕필본 노자
 ↓
현행본 노자  백서본 → 왕필본
 
덕편, 도편

도-덕 동등  
도편, 덕편

도 (상위)
덕 (하위)
 ◦도·덕의 상하 구별 없음
◦덕은 내재적, 도는 외재적이라는 차이뿐, 개념적 가치는 동일  ◦도는 상위, 덕은 하위
◦우주론적인 관점에서 도를 덕보다 상위에 둠
 3. 형식면
 백서본 → 현행본
 ◦분장(分章)없이 전체 연결
◦구두점은 있으나 분장(分章)되어 있지 않음  ◦81장으로 나뉨
◦언제 지금의 형태로 되었는지는 불분명

초간본에는 없지만 백서본, 왕필본에는 등장하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과 같은 구절들에서 초월적인 상도-상명과 같은 사유방식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도가사상의 전개선상에서 이른바 ‘도(道)’를 중시하는 그룹[道派]들이 큰 세력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도생일(道生一), 일생이(一生二), 이생삼(二生三), 삼생만물(三生萬物)”의 멋진 도식이 나온다. 반면 초묘 죽간본인 《태일생수편(太一生水篇)》에 보이는 ‘태일생수(太一)生水)’의 사상에서는 ‘물’을 중시한다. 《태일생수편》의 전반부에 우주생성론이 있는데, 그 과정에 ‘도(道)’는 드러나 있지 않고, ‘태일(太一)’을 절대자로 하는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글을 지은 사람은 ‘도’가 아니라 ‘태일’을 우월적인 존재로 평가하여 우주생성의 중심에 앉힌 것으로 보인다. 결국 ‘태일생수’파는 중국사상사 속에서 쇠퇴, 소멸하고 ‘도’파(=《노자》의 ‘도’파)가 최종 승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역사 속에서 진시황 전후 출현하는, 중국 내의 ‘문명-제도-권력의 통일’제국 사유 모형에서는 ‘물’보다는 ‘도’가 유용했을 것이다. 어쨌든, ‘초간본에서 백서본·왕필본으로’ 전환하며 초월적인 ‘상도-상명’의 사유방식을 모색한 것은 ‘사상’이 ‘정치권력-시대성-대중성’과의 연계라는 더욱 너른 차원으로 나아갔다는 점에서-이것을 불교를 염두에 두고 억지로 분류를 시도한다면- ‘소승 도가’에서 ‘대승 도가’로 전환을 보이는 대목들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더욱이 ‘대승 도가’의 절창 단계는 ‘장자(莊子)’이며, 그 오케스트라는 ‘[노자+장자]+도교’의 연계에 이르러서 가능했다.


3. 붓다와 노자, 무엇이 같고 다른가?

위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붓다와 노자의 논의 범위를 좁혀야 할 필요성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초간본노자》와 붓다와 그의 직제자(直弟子)들의 가르침이 담긴 아함경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미리 말해둔다면, 근본불교의 연기법(緣起說), 무아(無我), 사제설(四諦說), 팔정도(八正道), 중도(中道)는, 노자에서 말하는 무(無), 자연(自然) 등의 의미와 일부 닮아 있으나, 여러 면에서 내용이 다르다. 나(我, 自)의 긍정과 부정, 현상 세계의 인정과 불인정, 항상됨(常)의 인정과 불인정, 사대(四大)의 차이점 등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붓다와 노자의 사상적 동이점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1) 나(我, 自)에 대하여
붓다는 ‘나(我, 自)’를 부정한다. 아함경에서는 ‘나(=자아)’에 해당하는 것이 ‘명(정신적 존재)+색(물질적 존재. 地水火風=四大)’ 즉 ‘오온(五蘊 혹은 五陰)’=‘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다. 오온의 ‘온’은 집적(=여러 가지 인연화합물)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skandha’의 번역어이다. 나(=자아, 我, 自)는 오온의 인연법 즉 연기(緣起) 법칙에 의한 ‘화합물’이기에 결국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무상(無常)과 무아(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를 이끌어낸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여기 두 개의 갈대 묶음이 있다고 하자. 그 두 개의 갈대 묶음은 서로 의존하고 있을 때는 서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그러나 두 개의 갈대 묶음에서 어느 하나를 떼어낸다면 다른 한쪽은 넘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저것이 없으므로 이것 또한 없는 것이다.

“수루나(輸屢那)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신체는 불변하느냐, 변하느냐?”
“세존이시여, 변합니다.”
“변한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이냐, 즐거운 것이냐?”
“세존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변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을 관찰하여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본질’이다고 할 수 있겠느냐?”
“세존이시여,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에 대해 노자는 ‘나’(自·我)를 긍정’한다. 그가 준거로 삼는 개념이 바로 자연(自然) 즉 ‘스스로 그러하다’이다. 노자에는 《초간본노자》와 《왕필본노자》를 포함하여 ‘자연’의 용례가 4회 나온다.

悠兮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느긋이 그 ‘말’을 ‘귀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공’이 이루어지는데도 백성들이 모두 “내가 스스로 그렇게 한다”라고 말한다.

希言自然.
말수가 적어진 것이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도는 (만물들이) 스스로 그러한 것을 본받은 것이다.

是以聖人……以輔萬物之自然, 而不敢爲
그래서 성인은 ……만물이 스스로 그러한 것을 도와서, 감히 하지 않는 것이다.

노자의 ‘자연(自然)’은 명사가 아니고, ‘스스로(저절로가 아님) 그러하다’의 뜻이다. 다시 말해서 즉 남(=타자)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 스스로의 힘에 의해 그렇게 생성, 발전, 변화, 전개해 가는 것을 형용한 ‘형용사 혹은 형용동사’이다. 예컨대, 천지자연(天地自然: 천지가 스스로 그러하다)처럼 천지만물에 내재하는 힘(작용, 활동)을 형용한 것이다.
따라서 현대적 의미의 자연(nature) 즉 우리 바깥 세계에 존재하는 물리적 대상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연이란 말은 ‘스스로 그러하다’(《노자(老子)》 쪽의 해석)는 개체적 의미와 ‘저절로 그러하다’(《장자(莊子)》 쪽의 해석)는 전체적 의미의 두 뜻을 모두 가지고 있다.
어쨌든 노자에서는 ‘나’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긍정되고 있다. 스스로 그러한 것은 부정되지 않고 긍정됨으로써 우주만물의 객관적 법칙으로서 용인된다. 그렇다면 도-자연-무는 모두 실체로서 긍정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존재가 자연에 근거하니, 당연히 도(道)도 긍정된다. 이것을 노자는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 했다. 자연은 다른 말로 하면 ‘무(無)’이다. “천하의 만물(=개별 사물들)은 ‘유’(有, 있음 일반)에서 생겨나왔고, 유는 ‘무’(無)에서 생겨났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고 할 때의 ‘무(無)’이다.

2) 현실 세계의 인식에 대하여
근본불교에서는 연기법에 입각하여 ‘오온개공(五蘊皆空)’을 논한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5위 75법’을 내세워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주장하나, 대승불교로 넘어가면 용수에 의해 다시 아공법공(我空法空) 논의로 지속된다.
《초간본노자》에서는 아공법유(我空法有)니 아공법공(我空法空)이니 하는 식의 논의에는 별 관심이 없다. 노자의 관심은 개인이든 최고 리더든 모두 ‘스스로 그러한 것(자연)’에 근거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초간본노자》 갑본 제1장에서는 “지모를 끊고 괴변을 버리면(絶智弃辯), 백성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백배나 된다(民利百倍)”로 시작하여, “소박함을 드러내고 순박함을 간직하며(示素保樸), 사사로움을 줄이고 욕심을 적게 한다(少私寡欲)”로 끝맺고 있다.
이렇듯 노자는 천지만물의 현상세계도 그대로 ‘유’로서 인정하고, 자연에 입각한 욕망도 긍정한다. 궁극적으로는 욕망이나 작위를 줄이고 줄여 가서 무위-자연에 이르자는 것이다(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계속 마이너스를 시켜가서 결국 무위자연에 도달하자는 것(損之又損, 以至於無爲)이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자신의 삶의 긍정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붓다처럼 ‘나와 세계가 무상(無常)하므로 고통(苦)이다’라는 식의 부정적 논법은 보이지 않는다.

3) 상(常)에 대하여
붓다는 상(常: 현재의 지속)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체는 ‘무상(無常)’하다. 덧없다. 모든 사물은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소멸한다(生住異滅). 이루어져서, 머물다, 무너지고, 공한 것이 된다(成住壞空). 무상하기에 그것을 ‘고통(苦)’으로 여긴다. 사고(四苦), 팔고(八苦) 등등, 모두 고통이다. 총괄하여 일체개고(一切皆苦)라 한다. 붓다는 말한다.

모이는 성질을 가진 것은 모두 흩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비구들아, 신체·감각·표상·의지·의식은 무상하다. 이것들을 일어나게 한 원인과 조건도 또한 무상하다.
비구들아, 무상한 것에서 일어난 것들이 어떻게 영원하겠는가?

붓다는 무상한 것이니, 고통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통을 만드는 것들은 모두 벗어나야만 한다. 그런데 이에 비해 노자는 ‘스스로 그러한(자연)’ 우주의 모든 작용은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각하고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그러한(자연)’을 노자는 ‘상(常)’ 즉 ‘항상된 것’이라고 표현한다.

조화하는 것을 항상된 것(常)이라 하고,
조화를 아는 것을 명철함(明)이라 하고,
생명을 일부러 보태려는 것(益生)을 괴이하다고 하고,
마음이 기를 부리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사물이 강해지면 쇠퇴하게 된다(物壯則老).
이것은 도를 따르지 않음을 말한다.

아울러 《왕필본노자》 제7장에서는‘천장지구(天長地久)’의 지속성을 운운하며 ‘天-久(시간성-지속성), 地-長(공간성-연장성)’을 인정한다. 이미 주어진 ‘천지=시공간’의 항상성(常)을 인정하고 부정하려 들지 않는다.
노자는 한술 더 떠서, 사람 다스리고 하늘 섬김에 ‘인색(아낌)’만 한 것이 없다고 하면서, 이러한 기본 원리에 충실한 것이 바로 ‘뿌리를 깊게 하고 바탕을 굳게 다지는 것’ ‘오래 살고 멀리 내다보는 도’라고까지 말한다.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데 ‘아낌(吝嗇, 농사짓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오직 인색할 뿐이다. 이로써 ‘일찍 (무위자연의 도에) 따르는 것’이다.
‘일찍 (무위자연의 도에) 따르는 것’을 ‘두텁게 덕을 쌓는다’고 말한다.
두텁게 덕을 쌓으면 ‘이겨내지 못할 것이 없다.’
이겨내지 못할 것이 없으면, 그 ‘끝(끝 간 데=극한)을 알 수가 없다’.
그 끝을 알 수가 없게 되면, 나라를 소유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이) 나라(를 다스리는) 어미(=근본)를 소유하면 장구(=영원)할 수가 있다.
이것을 뿌리를 깊게 하고 바탕을 굳게 다지는 것(深根固柢)이라 하며, ‘오래 살고 멀리 내다보는 도(長生久視之道)’라고 한다.

4) 사대(四大)에 대하여
붓다는 우주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의 ‘집합(蘊)’ 즉 오온(五蘊)을 말한다. 신체를 포함한 ‘물질세계=외부세계’인 ①색(色), ‘정신세계=내부세계’의 작용인 ②감각(受), ③표상(想), ④의지(行), ⑤의식(識)을 말한다. 오온은 우주의 극미와 극대, 세(細)와 추(麤)를 모두 포함한다. 이 가운데 색은 네 가지의 구성요소=사대(四大)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긍정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苦)의 요인들로서 부정되고 만다. 붓다는 말한다.

“세존이시여, ‘고(苦), 고’ 하시는데, 어떤 것을 고라고 합니까?”
“라타(羅陀)야, 신체는 고요, 감각은 고요, 표상은 고요, 의지는 고요, 의식은 고다. 라타야, 나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은 이렇게 관찰하여 신체를 싫어하고 떠나며, 감각·표상·의지·의식을 싫어하고 떠나 거기에 집착하지 아니한다.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해탈에 이른다.
이에 대해 노자의 사대(四大)는 좀 다르다. 더욱이 그것들은 부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자연’=‘도’ 안에서 모두 있는 그대로 긍정되고 있다.

어떤 무엇(한 물건: 物)이 있었는데, 혼연일체로 이루어진(=混成) 무엇이었다.
그것은 소리로도 들을 수 없고, 형체로도 보고 만질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다른 것과 짝을 이룰 수 없는 것으로) 혼자 우뚝 서 있으며, 작용을 바꾸지 않는다.
두루 운행하여서 쉬지 않는다. 그래서 천하의 어미(母)가 될 수 있다.
나는 천지 이전에 있었던 그 무엇의 이름(=본명)을 모른다. 본래 이름이 없으니 부를 수도 없지만 억지로 별명을 붙여서 ‘도’라고 해둔다. 억지로 이것을 대(大: 위대함 광대함)라고 이름 붙인다.
(중략)
그러므로 도(道)도 크고, (그 작용에 의해 만들어져 그 원리를 내재한) 천(天)도 크고, 지(地)도 크고, 왕(王, 인간의 대표)도 크다.
이 세상(域=우주)에는 네 가지의 큰 것, 즉 도·천·지·왕(인)이 있는데, 왕은 그 중의 하나의 구성요소로 존재한다.
사람은 땅을 본받았으며, 땅은 하늘을 본받았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았으며, 도는 ‘스스로 그러하다’(自然)는 것을 본받은 것이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여기서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는 것은 도(道) 그 상위 차원에 다시 모범으로 할 만한 자연이 또다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대(四大)의 논리적 프로세스는 ‘자연⇨도⇨천⇨지⇨인’이 아니라 ‘도(=자연)⇨천⇨지⇨인’이 된다. 다시 말하면 ‘도법자연’은-다른 문자적 표현도 가능하겠지만- 도의 ‘내용을 새롭게 해석하여’ ‘스스로 그러하다’는 형용사(혹은 형용동사)로, 세계와 사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자율성·능동성’을 한정해둔 것이다.
도를 실현하는 가장 궁극적인 요소는 천지이다. 그 가운데 인간이 위치한다. 따라서 노자가 말하는 사대는 붓다가 말하는 사대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아니다. 이미 우리 앞에 드러나 있는, 우주의 중핵 구성 요소들인 ‘①도(=자연), ②천, ③지, ④인’은 종래 유가에서 상정한 삼대(三大) 즉 삼재(三才)=삼극(三極)인 천지인(天地人)을 넘어서 있음을 과시한 것이기도 하다.

5) 투쟁에 대하여
노자와 붓다 어느 쪽이든 ‘투쟁’을 부정하며, 비폭력 평화사상을 지지한다.
붓다는 살생을 하지 말라고 한다. “살생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뿌리를 파헤치는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말년에 붓다는 코살라 국의 비두다바 왕이 석가족을 멸망시킬 때에, 그 폭력 앞에 저항하지 않았다. 《쌍윳따니까야》에는 붓다와 뿐나의 대화 가운데 무저항 비폭력주의가 잘 드러나 있다.

“뿐나여, 그러나 만약 쑤나빠란따까의 사람들이 그대를 몽둥이로 때리면 뿐나여,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존이시여, 만약에 쑤나빠란따까의 사람들이 저를 몽둥이로 때리면, 그때 저는 이와 같이 말하겠습니다. ‘나를 칼로 베지 않으니 쑤나빠란따까의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쑤나빠란따까의 사람들은 아주 친절하다.’ 세상에 존경받는 분이시여, 그때는 이와 같이 말할 것입니다. 바른 길로 잘 가신 분이시여, 그때는 이와 같이 말할 것입니다.”
“뿐나여, 그러나 만약 쑤나빠란따까의 사람들이 그대를 칼로 벤다면 뿐나여,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존이시여, 만약에 쑤나빠란따까의 사람들이 저를 칼로 벤다면, 그때 저는 이와 같이 말하겠습니다. ‘나에게 날카로운 칼로 목숨을 빼앗지 않으니 쑤나빠란따까의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쑤나빠란따까의 사람들은 아주 친절하다.’ 세상에 존경받는 분이시여, 그때는 이와 같이 말할 것입니다. 바른 길로 잘 가신 분이시여, 그때는 이와 같이 말할 것입니다.”
“뿐나여, 그러나 만약 쑤나빠란따까의 사람들이 그대에게 날카로운 칼로 목숨을 빼앗으면 뿐나여,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존이시여, 만약에 쑤나빠란따까의 사람들이 저에게 날카로운 칼로 목숨을 빼앗으면, 그때 저는 이와 같이 ‘세존의 제자는 육체적 관점이나 생명적 관점에서 오히려 괴로워하고 참괴하고 혐오하여 자결하길 원한다. 나는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자결하겠다.’라고 말하겠습니다. 세상에 존경받는 분이시여, 그때는 이와 같이 말할 것입니다. 바른 길로 잘 가신 분이시여, 그때는 이와 같이 말할 것입니다.”
“뿐나여, 훌륭하다. 훌륭하다. 그대가 그러한 자제력을 갖추고 있다면 쑤나빠란따까 지방에서 지낼 수 있다. 그대는 지금이 그때이다라고 하고자 하는 일을 행하라.”

노자 또한 다투지 않는 것(不爭)을 원칙으로 한다. 즉 성인의 통치에서는 백성과 다툼이 없어야 백성 위에 군림할 수 있으며, 전쟁을 해서는 안 되며 부득이 전쟁을 하는 경우라도 절대로 기뻐할 일이 아니라 상례를 치르는 마음으로 임해야 함을 언급한다.

성인이 백성의 앞에 있는 것은
몸을 뒤로 물리기 때문이다.
그(성인)가 백성의 위에 있는 것은
그들에게 말을 낮추기 때문이다.
그가 백성 앞에 있지만
백성들은 (그를) 해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천하가 즐겁게 (그를) 떠받들며 싫다하지 않는 것은
그가 다투지 않음(不爭)으로써 다스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하가 잘 그와 더불어 다툴 수가 없다(天下莫能與之爭).

군자는 평상시에는 왼쪽을 높이고,
전쟁을 할 때에는 오른쪽을 높인다.
그러므로 “병기는 군자의 기물이 아니다(兵者, 非君子之器也)”라고 말한다.
병기는 부득이 해서 쓰는 것이다.
조용히 담담한 것이 제일이니, (전쟁을) 미화하지 말라(弗美).
전쟁을 미화한다면, 이것은 살인을 좋아하는 것(樂殺人)이다.
대저 살인을 좋아하고서는 천하에 뜻을 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길사에는 좌측를 높이고, 상사(=흉사)에는 우측을 높인다.
이 때문에 (일군을 통솔하는 낮은 위치의) 편장군은 좌측에 자리하고
(전군을 통솔하는 가장 높은 지위의) 상장군이 오른쪽에 자리하는 것은
상례에 따라 자리를 잡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을 죽였기에,
비통한 마음으로써 임하며
전쟁에 이겼으면 상례로써 마무리한다.

6) 욕망에 대하여
붓다는 번뇌의 불꽃을 꺼버리는 것 즉 니르바나(Nirvana)를 목표로 한다. 열반적정(涅槃寂靜)이 수행의 궁극 목표이다. 붓다는 말한다.

이 인생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때문이다. 나는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격렬한 탐욕의 불꽃이 없어지면 불안이나 괴로움도 없어진다. 훨훨 타오르던 불도 그 땔감이 다하면 꺼져버리는 것과 같다. 그것을 나는 열반이라고 한다.

나의 가르침은 열반에 이르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가 이 거룩한 수행을 하는 것은 모두 열반에 이르기 위한 것이며, 열반에서 끝나는 것이다.
 
노자는 욕망을 줄여서 ‘자연=스스로 그러하다’의 범위에 그치는(=만족하는) 선에서 긍정한다. 전면 부정이 아니다. 더욱이 그는 생명, 신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
노자는 가능한 한 “(안다고 하는 자들의 감각과 인식의) 구멍을 막고, 그 문을 닫으며(閟其穴, 塞其門), 그 (지식과 감각의) 빛을 주위와 조화롭게 하고 티끌과 통하게(和其光, 通其塵)”하라 한다. 인간의 날카로운 감각과 인식을 자연스러운 경지에까지 누그러뜨려서 ‘빛나는 태양’처럼 해서는 안 되도록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심이 죄를 범하게 하고, 욕심의 결과 죄는 자꾸 증대되어 끝내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가게 된다는 것이다.

죄는 욕심 부리는 것보다 더 무거운 것이 없고
허물은 (자기 것으로) 얻으려는 것보다 분에 넘침이 없고
화는 만족을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이미 가지고 있는 그 상태로) 만족함을 아는 것이야말로
(죄·허물·화가 없는) 항상 만족함의 상태이다.

이름[명칭]과 몸[생명], 어느 것이 절실한가?
몸과 재화, 어느 것이 소중한가?
얻음과 잃음, 어느 것이 병통인가?
심한 애착은 반드시 큰 대가를 치른다.
(중략)
그러므로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아서,
(개인적 생명이든 통치자의 정치적 생명이든) 장구할 수 있다.

7) 삶에 대하여
붓다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은유적 이야기에서 보듯이, 인생을 ‘생로병사’의 ‘고통(苦)’ 속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런 고통 속의 삶은 본래 허망한 것, 환영(幻影), 포말(泡沫) 같은 것이라 상정하였다. 애당초 붓다의 생모가 마야(摩耶) 즉 환(幻, Maya)이 아니었던가? 그는 마야에서 태어나서 결국 삶이 마야임을 깨닫고, 그의 색신(色身)을 다시 마야 속으로 떠나보냈다. 붓다는 삶을 허망한 것으로 부정하고 있다.

비구들아, 갠지스 강의 물결을 보아라. 잘 살펴보면 거기에는 실체도 없고 본질도 없다.
비구들아, 어떻게 물결에 실체와 본질이 있겠는가?
신체(色)는 물결, 감각(受)은 물거품, 표상(想)은 아지랑이, 의지(行)는 파초, 의식(識)은 허깨비, 이것이 세존의 가르침이다.

이에 비해 노자는 긍정한다. 즉 노자는 ‘아자연(我自然)’을 목표로 한다. ‘아자연’이란 ‘내가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식이다.

가장 높은 덕을 가진 왕(太上)은 아래 사람들이 그가 있음을 알 뿐이요(知有之).
그다음의 왕은 아래 사람들이 그를 친근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親而譽之)
그다음의 왕은 아래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며(畏之)
그다음은 아래 사람들이 그를 업신여긴다(侮之).
윗사람의 미더움이 부족하여서, 아래 사람들의 불신이 생긴다.
느긋하게 ‘말’(모든 언어적 지시사항)을 가볍게 시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완수되는데도, 백성들이 모두 “내가 스스로 그렇게 한다”라고 말한다(百姓皆謂我自然).

남이 밖에서 시키는 것=‘타연(他然)’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자연(自然)’이라면 최상의 삶으로 긍정한다. 매사 ‘내가 스스로 한다’는 의식 속에서 살아가면 행복한 삶이다. 최상의 통치는, 리더가 있건 말건 각자 ‘나 스스로가 한다’는 의식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사회가 바로 이상사회이다.
4. 나오는 말 : 노자와 붓다, 그 사유의 토대

위의 논의를 총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순서 내용 노자 : 붓다
1 나(我, 自) 긍정⟷ 부정
2 현상 세계 인정⟷불인정
3 상(常) 긍정⟷부정
4 사대(四大) 人·地·天·道(=自然)↔地·水·火·風
5 투쟁, 전쟁 부정(공통)
6 욕망 긍정⟷부정
7 삶 긍정⟷부정


우리는 논의를 통해서, 노자는 기본적으로 제왕학이자 통치의 기술이고, 불교는 해탈의 가르침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두 사상의 근저에는 공통적으로 자유와 평화, 자연과 자치, 그리고 비폭력이라는 사유가 흐르고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공통점을 뺀 차이점을 두고 볼 때, 한 가지 물음을 던질 수 있다. 두 사상이 발상법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물음에 대해 일찍이 풍우란(馮友蘭, 1895~1990)이 간명하게 정리한 바 있다.

첫째, 외계 실재론을 근거로 출발하였기에 공(空) 이해에 변화가 일어난다. 불교는 일반적으로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를 표방하여, 외계를 허망하다고 보는 ‘공(空)’ 사상이 강하지만, 중국인은 실재론의 입장이어서 외계를 ‘객관적 실재의 세계’라고 한다. 그래서 ‘공’의 해석이 달라진다. 즉, 이 세계는 이미 있는 것(有. 실재)이긴 하다. 그러나 諸法은 거짓 명칭이고 진실이 아니기(假號不眞)에 유니 무니 하는 실체를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실[眞]이 없는 것이고 ‘공’이라는 논리를 편다(⟶僧肇의 〈不眞空論〉의 ‘不眞空義’).
둘째, 인간의 부단한 활동을 중시하기에 열반(涅槃) 이해의 변화가 일어난다. 불교는 ‘열반적정(涅槃寂靜)’으로 열반, 다시 말해서 최고의 경지를 영적부동(永寂不動, 영원히 적막부동)한 것이라 하나 중국인은 사람의 ‘활동’(⟶天行建, 君子以自强不息)을 중시한다. 여기서 ‘열반’의 존재방식이 변한다. 그래서 인간의 최고목표는 天人合一(合德)의 ‘성인(聖人)’이란 인생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셋째, 자기완성에 대한 낙관·긍정이 있기에 수행법의 변화가 일어난다(積漸⟶頓悟成佛). 불교에서는 수행의 과정이 계급제(카스트제도)와 윤회의 사상의 영향 때문에 일반적으로 ‘시간’을 들여서 추진하는 단계적인 것(시간의 경과를 중시: 積漸)인 특징을 가진다. 그런데 중국인은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人皆可以爲堯舜)’는 낙관적·성선론적 전통에 기반하기에 ‘일천제(一闡提: 부처가 될 가능성이 없는 자)도 성불(成佛)할 수 있다’ 하며 ‘단박에 깨닫는 것(頓悟)’을 주류로 한다(⟶道生의 頓悟成佛).

풍우란은 중국적 전통의 세 가지 기초 위에 인도불교를 수용하고 전개했다고 본다. 풍우란의 정리에 따르면 중국인들의 사유는 대단히 합리적이고 현실적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은 세계-존재와 인간-인생 방면에서 인도의 사유와 동일하지 않으며, 이런 ‘중국’의 시공간에서 불교는 합리적으로 재조정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노자와 붓다의 사상을 비교할 경우 몇 가지 더 짚어볼 것이 있다.
첫째, ‘구상과 추상’에 대한 문제이다. 아서 라이트(Arthur Wrig-ht, 1913~1976)는 《중국사와 불교(Buddhism in Chinese History)》에서 불교의 중국 유입 이전 이미 정해져 있던 ‘상반된’ 토대와 그에 따른 ‘인간 이해의 차이’를 지적한다.

인간 이해에 있어, 두 문화전통은 불교의 침투가 시작될 때는 서로 상반되었다. 중국인들은 각 개인의 인성을 상세히 분석하는 면이 적었던 반면, 인도인들은 심리학적 분석을 고도로 발전시켰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나타냈다. 중국인들은 시간과 공간 모두를 유한한 것으로 생각했고, 시간을 일생·세대 또는 정치적 시대 개념으로 파악하였다. 반면 인도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무한한 것으로 여기며, 인생의 단위를 넘어 우주적 영원성 속에서 시간을 파악하였다. 이 두 전통은 사회적·정치적 가치기준에서 더욱더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가족주의와 개별주의적인 윤리관은 격변기에서도 중국인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던 반면, 대승불교는 가족의 범주를 초월한 구원론과 보편적 윤리관을 가르쳤다. 중국 사상가들이 이상적 현세의 모습에 그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반면, 인도의 사상가들과 불교의 승려들은 내세의 추구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

아서가 말하듯이, 중국적 사유는 기본적으로 인성과 세계(시공간)의 ‘현상’을 긍정하는 구상적(具象的) 사유이다. 앞서서 풍우란도 지적하였듯이, 중국적 사유는 현상적 실재를 인정하고서 출발한다. 여기서는 추상적 사유가 한계를 갖기 마련이다. 노자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사고 유형의 저편에, 인도 좁게는 붓다의 사상이 자리했다. 즉 붓다는 개인의 심리적 내면세계에 집중하고 또한 시간과 공간의 극대·극미 세계를 ‘초월’하는 형태를 보인다.
둘째, 직관과 분석의 문제이다. 노자의 경우 이른바 ‘시적(詩的)’인 관점처럼 “있는 그대로를 직관하라! 그 너머를 더 이상 물어 들어가지 마라!”고 한다. 괴테처럼 직관된 ‘근본현상=원현상(Urphänomen)’ 그것 이상은 더 묻지 말라는 정신이 노자 철학에도 들어 있다. 이것을 ‘시적 정신’이라 해도 좋겠다.
셋째, 노자에게는-물론 장자의 경우는 다르지만- 윤회론이 없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불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윤회적 사유는 《초간본노자》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 점은 백서본·왕필본 《노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장자》에서는 ‘고기⇄새’;‘나⇄나비’ 혹은 ‘나⟶닭⟶탄환⟶말’과 같이 변화해가는 이른바 물화(物化)의 관점이 있다. 이것을 억지로 불교와 대비시켜 말한다면 도가적 ‘윤회’론이라 하겠다. ■

 

최재목 / 영남대 철학과 교수.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원 철학사상연구과 졸업(석사, 박사). 하버드대, 동경대, 라이덴대, 북경대 등에서 연구하였음. 한국양명학회장 역임. 저서로 《노자》 《내 마음이 등불이다: 왕양명의 삶과 사상》 《동아시아 양명학적 전개》 《동아시아 문화공동체》 《동양철학자 유럽을 거닐다》 등과 역서 다수. 시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권의 시집이 있음. 현 한국일본사상사학회장.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