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가족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아직 더 건강하게 사실 수 있는 나이였다. 아버지는 자존심이 무척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음이 여렸다. 자존심이 강하고 마음이 여려 세상 사는 걸 힘들어했다. 아버지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 젊은 날의 꿈을 모른다. 아버지는 서라벌 예대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다시 동국대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어릴 때 아버지의 대학 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동국대학교 잔디밭에서 교복을 입고 친구분들하고 찍은 사진이었다. 부모의 젊은 날 사진을 보는 기분은 낯설다. 낯설고 아련하다. 시간의 봉인에서 풀려난 이미지들이 사각 소리를 내면서 부서진다. 막연한 시간으로 여행에 잠시 아연해진다.

인간의 죽음은 인간의 시간의 기록일까? 아버지와 함께한 50년이 내 안에 기록돼 있다. 오래된 사진처럼 이미지들은 시간 속을 유영한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도 많은 사진이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 기억 속에는 내 사진도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 생기기 전 아버지의 꿈도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이 기억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 기억은 남은 자의 몫인가?

우리 시대의 자식들처럼 나도 아버지를 미워하곤 했다.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어 아버지를 닮은 자신을 본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혼자서 산에 올랐다. 산을 오르며 아버지를 생각했다. 나무벤치에 앉아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 미워하지 않겠다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따뜻한 몸에서 차가운 몸으로 변한 아버지는 관 속에 담겨 화장터로 옮겨졌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의 유골이 나왔다. 이내 유골은 작은 상자 속에 담겼다. 아버지의 뼈는 오랫동안 따뜻했다. 가까운 절에 아버지의 영가를 모셨다. 절 뒤 예쁜 감나무에 빨간 감들이 열렸다. 가을빛이 기울고 있었다.

그 사이 날은 차가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 맑은 가을날 오후가 저물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차가워진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묵묵히 절을 내려왔다. 절에서 작은 풍경을 하나 샀다. 그리고 내 띠에 맞는 단주도 하나 샀다. 풍경은 베란다 거실 유리창에 걸었다. 그리고 단주는 아버지의 유골을 담았던 상자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썼던 모자와 함께 넣었다. 바람이 불고 풍경 소리가 들리면 아버지가 오셨나 생각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은 맑은 가을날이었다. 아버지를 화장하는 날도 맑은 가을날이었다. 이제는 육체의 흔적도 사라진 아버지를 두고 온 그날의 가을 오후는 너무 평화로워서 아득했다. 아름다운 감나무가 있는 아득한 가을날 오후였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동경이야기〉에서 할머니가 죽고 난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는 언덕에 서서 옅은 아침 안개가 서려 있는 바다를 바라본다. 할아버지 곁으로 며느리가 다가온다. 옆에 다가와 선 며느리에게 할아버지는 말한다. 오늘은 날이 맑겠구나. 슬픔은 파도처럼 다가왔다 멀어진다. 슬픔은 물결처럼 흔들린다. 오즈 영화의 맑은 가을날이 생각났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절에 가면 엄마가 절을 하는 동안 나는 툇마루에 앉아 볕이 옅게 든 마당을 오랫동안 바라보곤 했다. 혹은 쭈그리고 앉아 흙바닥 사이에 돋은 풀들을 오랫동안 바라보곤 했다.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했고 평온했다. 절에서만 나는 그 향을 맡으면서 나는 정체 모를 슬픔 때문에 괜히 몸을 떨었다. 슬픔이 조금씩 차오르는 이상한 기분에 난감해 했다. 슬픔은 짓궂은 얼굴을 하고 나를 따라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가족들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밥을 먹고 술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예전과 다름없어 보였지만 공허했다. 빈자리는 아니었다. 우리의 일상은 아버지와 함께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다. 공허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잔잔한 슬픔이 그 공허를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아버지는 일요일 아침이면 향을 피우고 경을 읽으셨다. 《묘법연화경》이라는 경이었다. 나는 나중에야 그게 《법화경》인 걸 알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읽으셨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경을 읽고 절을 하고 경을 읽고 절을 했다. 일요일 오전은 아버지 경 읽는 소리와 향냄새가 집안에 가득했다. 일요일 아침이면 나는 조용한 슬픔에 젖곤 했다.

인간의 삶은 인간의 시간의 기록일까? 아버지와 함께한 오랜 시간, 때로는 미워했고, 때로는 아파했고, 때로는 그리워했던 그 시간의 기록은 이제 아버지를 떠났다.

그 시간의 기록들은 이제 나의 몫이 되었다. 아버지의 시간은 나의 시간이 되었다. 함께한 시간도 함께하지 않은 시간도 나의 시간이 되었다. 내가 함께하지 못한 아버지 젊은 날의 꿈의 시간들을 생각한다. 아버지는 무슨 꿈을 꾸셨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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