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초발심이 다시(?) 일어 절을 열심히 찾을 때, 나는 참 행복했다.

당시는 대구 KBS 총국장 시절로 대구는 객지였지만 좋은 절과 스님이 많아 주말이면 절에서 많이 보냈다. 그래서 어느 지역신문에 〈산이 좋다, 절이 좋다, 스님이 좋다〉라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절에서 지내는 하룻밤. 묘한 밤 소리와 절 분위기, 새벽이면 머리를 두들기는 도량 청정 목탁 소리, 연달아 법고, 운판, 목어, 범종, 새벽을 깨우는 법음이 퍼지면 새벽예불과 참선 그리고 공양 후 스님과의 차담 등…… 갓 입을 벌린 석류를 닮은 보석 같은 경험들이었다. 연휴 때는 청도 운문사나 경주 불국사나 기림사에서도 신세를 졌다. 당시 초파일 운문사에서 건진 〈사월 초파일〉이란 졸시 한 편을 소개해 드린다.

선한 일 많이 한 적 없지마는
남을 위해 산 적 많지 않지마는

오늘 하루,
당신 앞에 무릎 꿇어
잘못했다고
그래도 복은 많이 주십사고
빌고 빌었더니

오냐
사는 게 얼마나 힘들더냐고
와준 것만 해도
복 받을 일이니
아무 걱정 말고
오늘 같이 살라 하시더라

절 분위기가 좋아서든 좋은 스님을 찾아서든, 복을 많이 주십사 하는 이른바 기복적인 믿음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종교를 지식으로 배운 사람일수록 기복신앙에 대해 부정적 견해가 많은 줄 안다. 물론 기복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복은 무엇이며 구함(집착)이 없는 기도는 가능한지, 기복만의 신앙은 그 생명력이 얼마나 길지, 이런 데 대한 공부의 깊이도 없으면서 나는 기복신앙은 하근기나 하는 일로 치부한 적이 있다. 그래서 입시 철이 되면 영험 있다는 팔공산 갓바위에 모여든 인파를 보며 흥밋거리로 지나쳤다. 그런데 막내의 대학 재수를 앞두고 집사람과 같이 갓바위 부처님께 아들의 합격을 빌고 있는 나를 본다. 역시 나약한 인간이라, 믿는다는 행위는 고매한 가치보다 이런 가까운 데서 시작하는데 말이다.

사실 나의 소박한 종교관은 여느 불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로병사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씻기 위한 어떤 형태든, 믿는다는 행위는 지역, 문화, 역사, 인종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시간의 풍화작용에도 때와 장소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적어도 천 년 이상을 지구상에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믿지 않은 타 종교라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배타성과 이기성을 쉬이 버릴 수 없는 한계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불교의 포용성과 세상 만물은 연계되어 있다는 연기성과 자리이타라는 대승 정신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산책을 하다가도 예불문을 염송하며 “연기무아 동체대비 생명존중 세계평화”라는 스스로 짜깁기한 구절을 무엄하게 끼워 넣어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기복이든 기도든 얼마나 절실했던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폐찰을 일구어 어엿한 기도 도량으로 가꾼 어느 스님의 말씀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기도는 될 때까지 하면 꼭 이루어집니다. 《화엄경》 말씀처럼 지극한 정성과 간절한 마음, 확신하는 신심으로 기도는 될 때까지 하면 꼭 이루어집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업과 복의 차이로 빨리 이루어질 수도 있고 늦게 성취하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서 선한 원을 세워 기도와 일념을 한순간도 놓치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렇다.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면 한두 가지 기념될 만한 것을 챙겨온다. 업무상이든 여행이든 꽤 많이 다녀왔건만 지금 가까이에 놓고 보는 건 하나도 없는 같다. 많은 책을 샀건만 손때가 묻은 책 한 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언제 한 번이라도 절실하게 꾸준히 해온 일이 있었는지, 스스로 부끄러워할 뿐이다.

나무아미타불을 염송을 만 일 동안 지속하는 ‘염불만일결사’를 이끄는 존경받는 원로 법조인이 있다. 관해 안동일(75). 그는 1998년 8월 6일 건봉사에서 수행결사의 입재식을 가졌다. 2025년 12월 21일까지니까 아직 4천여 일이 남았는데 이 결사를 이끌던 김재일 법사는 고인이 되었다. 그때 나도 결사에 합류하기를 권유받았지만 “다음에……” 하다가 세월만 흘러갔다. 인생도 그러하리라. 인생을 잘사는 길은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사는 행위가 아니다. 한 번뿐인 금쪽같은 인생을 낭비하는 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좀 오래된 얘기지만 지인들과 기도발 잘 받는다는 남해 보리암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주차장에서 암자까지는 걸어서도 제법 먼 거리다. 휴일이라 불자와 관광객이 섞여 길은 꽤 붐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행과도 만났다 헤어지기를 거듭하던 중 유독 허리가 심하게 굽은 할머니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 보살은 절로 오르는 경사도가 있는 산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염불을 계속하며 올라갔다. 드디어 절 지붕이 보이자 그쪽을 향해 절하며 기도하기를 수차례, 그리고 절 안으로 들어서며 가는 곳마다 절과 염불을 거듭한다. 그리고 한참 후 어느 법당 앞에서 가지런히 놓인 스님 신발을 보고 절하기를 반복하는 보살을 다시 보았다. 시간이 꽤 지나 내려오면서 그 할머니 보살을 다시 만났다.

“할머니, 지극으로 염불과 절을 하시던데요. 그리도 간절한 염원이 있습니까?”
“하모(그럼) 우짜든지 우리 손자 새끼들 명 질고(길고) 복 많이 받고 잘살게 해달라고 빌었지 뭐. 빌면 무쇠도 녹는다 안 카나 함 무쇠도 녹고말고……”

시간이 흐르고 장소를 바꿔 알고 지내던 스님과 함께 경주 남산을 오르게 되었다. 남산은 삼국시대의 불상이 다 들어와 있다는 보물창고다. 탑골 마애 조상군을 비롯하여 칠불암 마애석불, 불곡마을 석불좌상 일명 할매부처를 만났다. 바로 우리 할머니다. 손자들을 당신 목숨처럼 아끼시던 우리 할머니, 바로 보리암의 할머니다. 졸시 〈할매부처〉는 이렇게 인연을 이어간다

할매야/ 할매야/ 우리 할매야// (중략) 천년에 또 수백년/ 심심하지도 않더냐/ 외롭지도 않더냐// 누가 코 베어가고 귀 잘라가도 / 인심 좋게 웃는 얼굴/ 뭐가 그렇게도 좋더냐/ 새끼들 우리 새끼들 우짜든지 명 질고/ 복 많이 받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비는 재미로/ 이리 앉아 있지 않노// 할매 할매 우리 할매/ 정말 우리 할매야/ 낮이 밤 되고 밤이 낮 되어도/ 사시장철 앉아 있는 우리 할매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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