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한글도 못 알아들으시오?”

며칠 전 국정감사 현장에서 한 국회의원이 그 앞에 선 증인을 향하여 큰 소리로 호통치며 한 말이다. 이 장면을 텔레비전 뉴스에서 본 나는 깜짝 놀랐다. 눈으로 보는 문자인 한글을 어떻게 귀로 알아듣는다는 말인가? 이렇게 ‘한글’을 ‘한국어’와 동의어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꽤 많다.

우리 불교계에서도 경전이나 의례의 ‘우리말화’를 추진하면서 용어상 ‘우리말’이나 ‘한국어’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한글’로 잘못 표기한 예가 더러 있다. ‘한글대장경’ ‘한글반야심경’ ‘한글의식문’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이는 대장경이나 《반야심경》을 표기하는 문자가 한글이라는 뜻이지 우리말로 번역된 대장경이나 《반야심경》이라는 뜻은 아니다. 공부 삼아 우리말과 한글의 사용용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민현식 박사(현 국립국어원장)가 국립국어원 소식지 〈새국어소식〉 제3호(한글날 특집호, 1998년 10월)에 “세종께서 우리말을 만드셨다고요?”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은 어느 독자가 기고한 내용을 언급한 것인데 내용은 이렇다.

독자: 세종대왕은 우수한 우리말과 글을 만들었는데 특히 한글은 언어 구조가 간단하고 단순하여 쉽게 배울 수가 있습니다.

민현식 교수: 세종이 우리말을 만들었다는 것은 잘못이다. 또한 어느 나라 말이나 고유한 가치가 있으므로 이를 우열로 평가하는 것은 19세기 유럽의 언어 진화론자들이나 가졌던 편견이다. 따라서 한글이 우수하다는 것은 괜찮으나 우리말까지 우수하다고 함은 국수주의적(國粹主義的) 발상이다. 위에서 ‘언어 구조’는 말의 구조이므로 한글은 말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도 ‘문자 구조’로 고쳐야 맞다. 이처럼 ‘말’과 ‘글자’, ‘국어’와 ‘한글’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민현식 교수의 말처럼 ‘한국어’와 ‘한글’을 정확히 구별하지 못하고 문자인 ‘한글’을 ‘한국어’로 잘못 아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그 이유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려우나 학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그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첫째, 오랜 역사를 가진 조선어학회가 1949년 최현배 선생이 이사장이 되면서 한글학회가 되었는데 그로 인해 일반 사람들이나 학자들이 ‘조선어학회’가 ‘한글학회’가 되었으니 ‘조선어’와 ‘한글’을 동의어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둘째, 주시경 선생이 1913년에 ‘훈민정음’을 ‘한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한글’을 ‘한국어’로 오해하여 쓰는 예가 많아졌다. ‘한글’의 ‘글’이 곧 ‘글자’인데도 이를 잊은 까닭이다. 셋째, 가장 현실적인 원인은 한글이 세종대왕의 애민 사상으로 창제되었고, 과학적 문자의 형태와 음성학적으로 다양한 소리를 구사할 수 있다는 우수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한글을 문자라기보다는 우리말 자체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한글’과 ‘한국어’ 그리고 ‘우리말’에 대한 개념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공부를 조금 더 해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어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편찬)을 포함한 주요 10여 가지의 사전들과 관련 문헌을 참고하여 종합해 보면 한글과 우리말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한글=훈민정음                         
1) 우리나라의 고유 글자(자음+모음)의 이름.
2)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하여 창제한 훈민정음을 1913년에 주시경 선생이 처음으로 ‘한글’이라고 쓰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한국어(韓國語)=한국말=국어(國語)= 우리말 
1) 한반도 전역 및 제주도를 비롯한 주변의 섬과 해외동포를 포함한 모든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
2) 현재 한국인이 사용하는 ‘고유어+한자어+고어(사어)+현대어+외래어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

여기서 잠시 우리말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말은 우리 민족의 기원 및 형성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이 서남만주와 한반도에 정착한 시기부터 고조선·부여·고구려·옥저·동예·한 등의 나라에서 사용한 우리말은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변천해 왔는데,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어, 신라어, 백제어가 있었지만 문헌에 남은 언어의 편린으로 보아 삼국의 언어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었다. 고려조에 들어와 삼국의 언어가 방언적 부분은 남아 있지만 통합된 우리말이었고 그것이 조선조에 들어와 조선어가 되었으며 그 조선어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어가 되었다. 이렇게 고조선에서부터 오늘날까지 한반도에서 이어온 우리 민족의 언어인 우리말은 4,000여 년의 역사를 가지지만 조선의 세종조 이전까지는 그 말을 표기할 문자가 없었다. 신라 시대에는 한때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는 ‘우리말 표기법’으로 이두(吏讀)가 있었으나 서민의 문자 구실은 하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세종대왕이 일반 백성도 쉽게 배우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훈민정음, 즉 한글을 창제하여 반포했다. 이것이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다 쉽게 배우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문자 한글이다.

이것이 우리말의 역사요 우리말을 표기하는 한글이 탄생한 배경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이런 개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우리말과 한글의 의미를 혼용하고 있다. 그 연원은 아마도 동국역경원에서 출판한 ‘한글대장경’이란 명칭 때문이 아닌가 싶다. 동국역경원은 1962년 우리말로 번역한 경전을 출판하면서 중국의 ‘건륭대장경(乾隆大藏經)’이나 일본의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과 같이 우리 대장경의 특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를 붙이고자 했다. 이때 어떤 분이 ‘한글대장경’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다. 모임에 참석한 분들은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동의하여 결정되었다고 한다. 한글과 우리말의 개념적 차이를 명확히 몰랐던 점도 있고 한글로 표기되었으니 무방하게 생각한 것이다.

만약 그때 그 뜻을 명확히 밝혀서 ‘한글대장경’ 대신 ‘우리말대장경’이라고 했다면 오늘과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문제가 지적되자 앞으로는 명칭을 ‘우리말 반야심경’ ‘우리말 의식문’으로 고치겠다고 한다. 늦기는 했지만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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