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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각사(銀閣寺) 툇마루에서 / 김인숙
[60호] 2014년 12월 01일 (월) 김인숙 전 관동대 일어일문학과 겸임교수

일본의 천 년 수도라는 교토(京都). 매년 5천만 명의 사람들이 발을 들인다는 그곳을 처음 찾아간 것은 25년 전의 여름이었다. 처음 갈 때만 해도 많은 것을 기대했는데 정작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정말 미치도록 더웠다는 것뿐이었다. 일본의 여름이라는 것이 어찌나 맹렬한지 나는 그만 더위를 먹고 길바닥에서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다. 다행히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더위 때문에 사람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에게 교토란 정말 미치도록 무서운 더위만 가득한 도시로 기억되었다. 그 때문일까, 그 뒤에도 일본을 몇 번 더 방문했지만 나에게 교토는 다시는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이 되고 말았다.

처음 찾아갔을 때 있었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기피하고만 싶던 땅, 그 교토와 나는 올해가 되어서야 드디어 화해를 했다. 계기는 간단하다. 전공인 일본문학 연구를 위해 꼼짝없이 1년을 일본에 체류하게 된 것이다. 나는 지난봄, 여름이 오기 전 벚꽃 흩날리는 따사로운 봄날의 교토 거리를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유유하게 거닐게 되었다.

돌아보면 25년 전, 그렇게 더위를 먹어가면서도 필사적으로 찾아가고자 했던 것은 킨카쿠지(金閣寺) 때문이었다. 교토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르는 곳, 그래서 그 이름을 따로 불러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금빛의 누각. 인도의 녹야원에서 그 이름을 따온 로쿠온지(鹿苑寺)라는 너무나 불교적인 이름을 본명으로 가지고 있음에도, 금각사라는 속된 이름이 더 어울리는 그곳. 나는 그곳에 들러 미시마 유키오(三島 由紀夫)가 〈금각사〉라는 소설에서 불을 질러서라도 독점하고 싶어 했던 탐미적 황금빛을 경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금각사에 대한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더위를 먹었던 탓도 있고 또 세월이 지나서 잊어버리기도 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이번에도 제일 먼저 발걸음을 옮긴 곳이 금각사였다. 교토 일주는 언제나 금각사로 시작해야 한다는 어떤 불문율이라도 있는 것처럼. 

하지만 재회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것은 인간관계뿐만은 아닌 모양이다. 25년 만에 다시 찾은 금각사는 기대하던 그곳이 아니었다. 금칠한 누각은 변함없고 연못 위에서 흔들리는 금빛 그림자 역시 여전했지만 뭔가 허전했다. 압도적인 존재감과는 달리 내가 금각사라는 건물을 욕망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단순하고 제한적이었다. 누각 앞에 파여 있는 커다란 연못 끝자락에 서서, 금각사와 그 건물이 드리우는 황금빛 물그림자 옆에 자신의 모습을 슬쩍 끼워 넣는 것, 그리고 조용히 셔터를 누르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 의식이 끝난 후 나에게 남겨진 일이라고는 금각사 건물 뒤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조용히 경내 밖으로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금빛이 주는 화려함은 눈에 들어오는 것도 빠르지만 사라지는 것도 결코 느리지 않았다.
‘겨우 사진 한 장 찍으려고 이렇게 허겁지겁 이곳에 왔단 말인가?’

뭔가가 아쉬워진 나는 자신에게 되물었다. 나의 수고스런 행각이 아무런 보상도 못 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뭔가 알 수 없는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금각사를 나선 후 발길을 옮겨 도착한 곳에 이르러서야 알 수 있었다. 나에게 그 답을 가르쳐 준 곳은 바로 긴카쿠지(銀閣寺)였다. 금각사를 잘못 쓴 것이 아니다. ‘은빛 누각’의 은각사다. 금빛을 내뿜던 금각사와 대칭되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새로운 화려함을 기대하게 하는 곳. 지쇼우지(慈照寺)라는 멀쩡한 이름이 있는데도 은각사라고 불리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곳.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곳은 금각사와 비슷한 이름을 가졌지만, 너무나 성격이 다른 곳이었다. 금각사가 금빛이라고 해서 은각사마저 은빛인 것은 아니다. 아니, 은빛은 고사하고 반들거리는 니스 칠조차 입지 못한 무채색의 낡은 절이다. 이 또한 어떤 의미에선 배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야말로 교토에서 경험한 가장 기분 좋은 배신이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은각사는 은빛이라고는 털끝만큼도 남아 있지 않은 고색창연한 갈색의 사찰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금각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선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안뜰에 쌓인 모래로 정성스럽게 깎아 올린 기하학적 구조물들. 삐걱대는 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정방형의 정원들. 그 사이의 공기를 조용히 흔드는 한 줄기 바람. 금각사나 은각사나 힘을 가진 지배자들이 지은 절이긴 마찬가지지만 그 취향은 정반대였다. 금각사가 자신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지은 절이라면, 은각사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지은 절이었다. 어쩌면 갈색의 가람에 은각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자체가 금각사에 대한 어떤 조롱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툇마루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안뜰을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교토라는 곳에서 원했던 것은 이런 바람이었던 것이다. 화려한 불각이 아닌 고즈넉한 옛 절의 틈새에서 불어오는 이 공기.

금각사에서 느꼈던 아쉬움 역시 이런 갈증이었으리라. 은각사는 그런 갈증을 채워주는 곳이었다.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오히려 퇴락하기까지 했지만 조용한 바람을 실어주는 곳. 그 사이로 하얀 벚꽃 비를 내려주는 곳.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 주는 곳. 그 은각사의 툇마루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는 사이 젊은 승려가 갈고리를 들고 나와 모래 정원을 훑고 지나갔다. 언제나 그렇듯 지금까지 제로로 수렴되었던 흘려보낸 시간, 떠나와야 했던 공간들의 파문으로 언제 자리에서 일어서야 할지 알지 못하는 내 긴 그림자마저 승려의 갈고리에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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