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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山寺)의 여훈(餘薰) / 임보
[60호] 2014년 12월 01일 (월) 임보 충북대 명예교수

나는 불자는 아니지만 산사(山寺)를 즐겨 찾는다. 산행을 하다가 만난 암자나 사찰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마음이 울적할 때면 집 가까이 있는 산사를 자주 찾아가곤 한다.

푸른 숲에 묻힌 오래된 절의 기와지붕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평화롭고, 계곡을 은은히 울리며 밀려오는 범종 소리를 듣는 것도 마음이 편안하다.

절의 산문(山門)인 일주문(一柱門)은 얼마나 멋스러운가? 좌우 한 개씩의 큰 기둥 위에 올라앉은 기와지붕은 운치가 넘친다. 수많은 부연을 달아 울긋불긋 단청한 모습이 마치 봉황의 날개 같기도 하다. 이 일주문에는 ‘○○산 ○○사’라고 사찰의 이름을 담은 편액이 걸려 있다. 자연을 받드는 선인들의 겸허한 마음이 그렇게 산의 이름을 앞세운 것인지 모르겠다.

이 일주문의 기둥이 하나인 것은 수행자에게 ‘일심’으로 정진해야 한다는 격려의 뜻이 담긴 것이라 하는데, 기둥에 걸린 주련(柱聯)이 아득하기만 하다. “천지동근 만물일체(天地同根 (萬物一體)” 천지만물이 한 뿌리, 한 몸이라 이르는 말이니 그 뜻이 얼마나 호연한가.

경내 계곡에 걸린 무지개 모양의 둥근 돌다리―홍교(虹橋)도 아름답고, 선사(禪師)들의 사리가 담긴 이끼 앉은 돌탑[浮屠]들도 그윽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 생존해 있을 때는 한소식 했던 선사들도 작은 돌탑 속에 안거한 채 묵언정진 조용하기만 하다.

절의 풍물 가운데 또한 볼 만한 것이 장독대다.

잘 닦인 수백 개의 오지 장독들이 대오를 잘 지어 햇빛에 반짝이며 정좌해 있는 모습들은 마치 선정에 들어 있는 선사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아니, 어찌 보면 검은 승복을 걸친 승병들이 출전을 앞두고 열병식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덩그렇게 자리 잡은 종각이나 고루에 올라가서 걸려 있는 사물(四物)들을 이것저것 들여다보는 것도 즐겁다. 범종(梵鐘)과 법고(法鼓) 목어(木魚)와 운판(雲版) 등의 사물은 장식과 단청이 황홀하다. 범종의 쇠북 소리는 인간의 영혼을 구제하고, 법고를 울려서는 짐승들의 영혼을 거두고, 목어와 운판은 어류와 조류들의 영혼을 다스린다고 하던가? 자비의 향훈이 사위에 가득 느껴지는 것도 같다.

문이 닫혀 있는 선방의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한 켤레의 하얀 고무신이 또한 시선을 끈다. 저 신발의 주인공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백 리의 오동꽃이 흐드러진 어느 《열반경》을 소요하고 있을까? 아니면, 어느 악귀의 꼬임에 빠져 가시밭길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요한 절의 경내를 거닐며 경쾌하게 울리는 목탁소리와 스님의 맑은 독경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는 것도 좋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숲에서 밀려오는 산새들의 영롱한 울음소리와 거송들의 가지 위를 스치듯 지나가는 흰 구름에 눈길을 보내는 것도 즐겁다. 연당이 있으면 연꽃을 들여다보아도 좋고, 석탑이 있으면 탑을 돌면서 법당의 기둥에 걸린 주련시를 중얼중얼 읊조려 보아도 무방하리라.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 덮였던 구름 걷히니 끝없는 하늘 드러나고, 수많은 강에 물이 담기니 강마다 달이 뜨네…….

뭐니 뭐니 해도 절의 압권은 역시 대웅전이다. 본존불상을 모신 법당을 보면 그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금물을 입힌 우람한 불상, 붉게 타고 있는 촛불, 향긋한 향내를 풍기며 피어오르는 향불 연기 그리고 넓은 대청마루, 천정에 가득 매달려 있는 기원의 연등들……. 백팔 배를 정성껏 올리고 있는 중년의 보살들을 바라보는 것도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사찰에서 가장 마음을 끄는 것은 전각의 높은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風磬)이다. 이 작은 종을 울리는 십자형 추 끝에는 물고기 형상의 얇은 쇠붙이를 매달아 놓았다. 바람이 그 물고기를 흔들면 풍경이 울리게 된다. 허공을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 참 아이로니컬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날개를 지닌 새를 매달거나 구름의 형상을 한 운판(雲版)을 걸 수도 있을 터인데 물고기라니……. 물고기는 수면(睡眠) 상태에서도 눈을 부릅뜨고 있다고 해서 수도자의 나태와 방일을 경계하는 의미라고는 하지만 어쩐지 석연치가 않다.

나는 풍경에 매달려 허공에 떠 있는 이 물고기를 ‘해탈어(解脫魚)’라고 부르고 싶다. 수중의 물고기도 해탈하게 되면 공중을 날 수 있다. 하물며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날개를 다는 일이야 그리 대수이겠는가? 아마도 그런 계시를 담고 있는 것만 같다.

아, 누구신가?
허공에
물고기를 매달아
날개를 기르시려는 이!
― 졸시 〈풍경(風磬)·2〉 전문

산사를 찾게 되면 며칠 동안은 마음이 평안해서 좋다. 절의 여훈(餘薰)이 내 몸속에 남아 세속에 찌든 내 마음을 ‘힐링’이라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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