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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논단] 프란치스코 교황과 한국천주교의 틈에 관한 이야기 / 이창익
2014년 9월 2일 열린논단
[0호] 2014년 09월 22일 (월) 이창익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HK연구교수

1. 종교에 대한 ‘비종교적인 기대’에 관하여

   

이창익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HK연구교수

저는 8월 17일 영화관 입구에 있던 모 신문사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일반 국민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간단한 인터뷰였습니다. 약간 거리를 두고 교황의 방한을 바라보고 있던 저는 조금 혼란스 러워졌습니다. 먼저 일반 국민이 교황에게 열광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로마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이 ‘종교적인 맥락’에서 일반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세월호 참사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 속에서 교황에게 거는 일반 국민들의 ‘심리적 기대감’이 일정 정도 존재했고, 1984년과 1989년에 방한했던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추억도 여기에 한몫 거들었다는 생각 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황을 통해 일반 국민이 만난 것을 그저 ‘종교’라고 표현해도 좋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일반 국민은 교황을 통해 ‘비종교’를 만났고, 한국천주교와 개신교와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의 종교들이 교황을 통 해 ‘자기 종교’를 만났다고 말해야 옳은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종교는 타종교와의 비교를 통해 ‘자기 종교’를 보는 데 익숙합니다.

그러나 교황 방문과 관련하여 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은 교황 방문이 한국사회에 던져준 긍정 적인 메시지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교황 방문을 통해 ‘자기 종교’에 대한 내적 비판에 착수한 자성의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불교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이 광화문이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버젓이 시복식을 거행하는 것 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타종교가 상당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공개적으로 가톨릭을 비판할 경우 ‘자기 종교’가 쩨쩨해지거나 옹졸해 보일까봐 비판을 자못 삼갔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종교 다원주의의 규칙’을 위반 하게 될까 저어하는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교황 방문이 다른 종교들에게 ‘잘못된 의식’을 심어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뭐라 표현해 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저 그것을 ‘광화문을 차지하고자 하는 종교적 욕망’이라고만 말해 두고 싶습니다. 앞으로 광화문 광 장이 종교적 의식과 집회의 장소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제가 가진 종교에 대한 불신감의 표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현존하는 많은 종교들에 ‘종교의 모델’을 제시한 종교입니다. 저는 불교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억측일지는 몰라도, 저는 이차돈의 순교를 통한 불교 전래에 대한 이야기가 천주교의 순교에서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참수당한 이차돈의 목에서 흰 젖이 흘러 나왔다는 이적의 이야기 역시 그러합니다.

   

많은 이들은 1984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김포공항에 내려 땅에 입을 맞추던 장면을 아직 생생히 기억할 것입니다.

1984년 5월 3일에서 5월 7일까지의 일정으로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식과 순교자 103인 시성 식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방한했습니다. 이후에 그는 1989년 10월 5일부터 3일간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에도 참석하기 두 번째로 방한했습니다. 그런데 1984년 교황의 방문과 2014년 교황 방문은 많은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1984년 5월 요한 바오로 2세는 광주를 방문하여 전남도청과 금남로를 통과하며 5.18 민중항쟁의 희생자들에게 위로의 메시 지를 던졌습니다. 대한민국이 여전히 군부 독재의 그늘에 아파하고 있던 시절, 교황의 방문은 꽤 큰 ‘종교적 흥행’을 거두었습 니다.

군사정권 시절 국민들이 공개적으로 말하기 힘든 문제를 대신 말해줄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교황이었습니다. ‘말의 감옥’ 에 갇혀 있던 국민들에게 교황이 ‘잃어버린 말’을 되돌려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조차 존재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교황 이미지가 우리에게는 매우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교황은 군사정권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로 인해 사람들은 어쩌면 ‘성스러움’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이미지를 그렸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종교가 ‘소도(蘇塗)’이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들의 종교에 기대하는 것과 현실 종교의 모습은 매우 다릅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종교가 ‘마지막 의지처’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그저 종교적 기대라고 표현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오히려 종교를 통해 표출된 ‘비종교적 기대’라고 하는 게 더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이후에 한국천주교는 예전보다 정치적으로 보수화되는 움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정부의 협조 없이는 교황 방문이나 시성식 같은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요한 바오로 2세가 역으로 군사정권에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 역시 존재했습니다. 종교가 내미는 손길은 ‘약’일 수도 있지 만, 동시에 ‘독’이 될 수도 있는 ‘파르마콘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무리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발언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로마 가톨릭의 목소리입니다. 교황의 ‘비종교적 언어’는 결국 ‘종교적 언어’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번 교황의 방문에서 일반 국민의 ‘비종교적 기대’와 로마 가톨릭의 ‘종교적 기대’ 사이의 틈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불교가 이번 교황 방문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그러한 틈의 존재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2.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기(傳記)와 한국천주교회의 역사

며칠 전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교황 방한이 중국 선교를 위한 교두보 마련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한 한국천주교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일련의 최근 ‘교황 담론’ 안에서 별로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시복식의 논리’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역사’로 가득차야 할 종교사가 ‘죽음의 역사’로 채 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죽음도 불사하는 신앙이 가장 ‘성스러운 것’으로 칭송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로 달한 이후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일반 국민들이 걸었던 기대감도 비슷했습니다.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외침 속에서 일반 국민들은 교황에게 ‘우리가 할 수 없는’ 어떤 일을 해달라는 기대감을 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감이 얼마나 충족되었는지에 대해 별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기대의 충족’이 아니라 ‘기대의 확인’만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국가 내부적인 문제를 ‘외부자’가 풀어주기를 기대하는 심리 자체를 비판하는 시각 역시 존재합니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이 예상치 못한 행보를 자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이번 방한에서 그가 보여줄 ‘파격(破格)’에 대한 일정한 기대감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황의 ‘파격’은 상당히 절제된 파격이었으며, 그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교황의 방한이 타종교에 대한 미친 영향은 교황의 영웅적 행보가 아닌 다른 데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 교황, 방탄이 되지 않아 언제라도 저격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소형차를 타고 다니는 교황, 어린이와 노인, 그리고 가난한 자와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새로운 순교’라고 주장하는 교황, “교회가 동성애·낙태·피 임 등을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더욱 자비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성 커플의 결혼 주례를 서는 교황, 미혼모의 아이에게도 세례를 주는 교황…

우리는 한국천주교의 현실이 그러한 교황의 행보와 얼마나 불일치하는지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이러한 불일치에 주목이 일어나야 할 장소는 다름 아닌 ‘한국천주교 내부’일 것입니다.

이것은 ‘선어록’과 ‘현실’을 혼동하는 불교의 많은 단면에서도 노출되는 장면일 것입니다. 여전히 불교는 ‘상근기’와 ‘하근기’ 의 위계를 내포하면서, 즉 불교라는 종교가 만들어내는 ‘개인적 편차’에 대한 지속적인 선입견을 노출하면서 자신의 전통을 세우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독신(獨身)의 정치학’ 또는 ‘정절의 정치학’에 의한 구별짓기라고 생각합니다. 독신은 수행의 방 편이나 조건으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종교적 위계의 동력으로도 기능합니다. 제가 로마 가톨릭과 불교를 비교하면서 맨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러한 ‘독신과 정절의 수사학’이 낳는 고질적인 종교적 병폐였습니다.

최근 수십 년간 로마 가톨릭은 페도필리아(pedophilia), 즉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라는 명목으로 숱한 공격을 받았으며, 미국에서는 많은 성당이 매각되는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태가 비단 로마 가톨릭의 문제만은 아니라 고 생각합니다. 로마 가톨릭이 그저 앞서 ‘불교의 미래’를 보여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종교 안에서 ‘정절의 수사학’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절의 수사학’만으로는 이제 종교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동성애, 이혼, 낙태와 관련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은 붕괴된 ‘정절의 수사학’이 낳은 필연적 소산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여전히 한국천주교는 ‘성(性)과 죽음’이 그리는 종교적 지형을 쉽사리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 생각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천주교는 한국 근대사를 천주교의 ‘순교 성인’으로 가득 채우는 작업과 전국에 흩어진 성인의 순교지를 ‘성지화’하는 작업을 병렬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시간과 공간의 성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인화 작업’은 로마 교황청의 도움 없 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곳곳에 순교의 흔적을 새기려는 한국천주교의 ‘성지화 작업’은 정부의 협조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교황의 방한은 한국천주교의 생존이 걸린 이 두 가지 사업의 초석의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아마 불교가 긴장감을 갖는 대목도 이 부분일 것 같습니다. ‘종교 다원주의’는 근대세계 속에서 종교가 존재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일종의 에티켓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에티켓이 배후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암투를 감추는 장막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는 종교끼리 서로 자기 종교의 색깔을 지우자는 약속도 아니고, 종교의 경계선이 옅어졌다는 기호도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 다원주의’는 종교의 다름과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자기 종교’의 특유성, 고유성, 전통성을 강조하기 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 다원주의’는 강자의 발언이며, 강자끼리의 약속입니다. 신종교 및 작은 종교들이 ‘종교 다원주의’ 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는 일은 무척 어렵습니다. 우리는 다원성 자체가 그리는 ‘권력의 지형’에 주목해야 합니다.

개신교는 ‘교회’를, 불교는 ‘사찰’을 중심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성지화’와 ‘성인화’라는 다른 종교적 전략을 구사 합니다. 물론 ‘성인화 작업’은 논리적으로 한국유교사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성지화 작업’도 불교 및 여타 종교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성인화’든 ‘성지화’든 모두 ‘비종교인의 역사학’ 및 ‘비종교인의 지리학’과 갈 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와 관련하여 흔히 등장하는 국립공원 내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 징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근대와 역사와 지리에는 불교, 천주교, 개신교, 동학, 증산교, 통일교 등 많은 종교들의 흔적이 아로새겨진 곳이며, 아직 온전히 점령되지 않은 ‘새로운 과거’로 존재합니다. 비록 수많은 시도가 있었을지라도 아직 한국 근대사 서술은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투어리즘(tourism)’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국토의 박물관화’ 작업도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성지화, 명소화는 관광으로 위장된 종교의 ‘흔적 남기기’와 ‘힘겨루기’의 현장입니다.

서소문은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에 시성된 103위 성인가운데 44위가 순교한 곳이자, 2014년 8월 시복된 124 위 가운데 27위가 순교한 곳입니다. 따라서 한국천주교에서는 오래 전부터 서소문 공원의 단독 성지화 작업을 추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 형장이었던 서소문은 전봉준, 홍경래 등이 처형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역사 만들기’가 ‘남의 역사 지우기’라는 것을, ‘나의 성지 만들기’가 ‘남의 성지 지우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한국천주교의 ‘국토 성지화 욕망’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일례로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천진암 성지’는 천주교 수원교구의 주도로 10년 계획의 ‘천진암 대성당’를 공사를 진행중입니다. 천진암은 조선 시대의 암자로 과거에 박해를 피해 찾아온 천주교 신자들에 피난처를 제공했다가 그 여파로 불탄 곳입니다. 불교 일각에서는 교황의 이번 방한에서 천주교 전래 초기에 불교가 준 도움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에 대해 섭섭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천주교에서는 이곳을 성지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보호했던 불교 암자에 천주교 성지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진풍경’, 아니 ‘살풍경’이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2 또한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처형된 대구 관덕정에 조성된 천주교 성지인 ‘관덕정 순교기념관’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처럼 한국천주교의 성지화 작업은 땅에 새겨진 타종교의 흔적에 천주교의 순교사를 ‘덮어쓰기’한 전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황의 방한 뒤에 감추어진 이러한 이율배반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란 리본을 달면서 “고통 받는 사람들 앞에 중립은 없다”라고 말했지만, 염수정 추기경은 “세월호 문제 와 관련해 자꾸만 우리의 힘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족들도 어느 선에서는 양보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염수정 추기경은 이러한 발언으로 인해 많은 이들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김수환 추기 경 같은 ‘종교적 스타’의 등장은 해당 종교를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외부를 지향하고 내부를 돌보지 않을 때, 언젠가 해당 종교는 겉과 속이 다른 ‘분열증’을 앓게 될 것입니다. 저는 다른 종교처럼 불교계에서도 자체적으로 국회의원을 배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떤 스님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불교의 위기의식이 이 정도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종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하는 종교’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종교가 종교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후일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에서 해답을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비판에 비판 을 더하고, 나아가 비난에 비난을 더할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최근에 안동에 간 적이 있습니다. 소위 ‘종갓집’의 종택을 둘러보면서, 왠지 모를 습쓸함함을 느꼈습니다. 종택은 이미 ‘브랜드’가 되었고 ‘관광’과 ‘한옥 체험’을 위한 장소로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혈연에 속한 ‘위대한 조상’의 업적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역사화해야 합니다. 학자와 종택의 상호 의존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 다. 한국 유교가 이전에는 ‘책’과 ‘문서’에만 주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 유교는 자신들이 간과한 ‘공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유교적 공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 유교사는 이제부터 초보적인 단계에서 다시 씌어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교가 만든 공간은 ‘신자 없는 공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신자 없는 종교’는 우 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현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한국천주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교황의 메시지와 한국천주교의 행보가 과연 얼마나 일관성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이것이 바로 한국천주교, 나아가 로마 카톨릭의 현주소는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인간의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종교의 죽음은 두려운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은 교황이 어떤 차를 이용할 것인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교황은 항상 그랬듯이 방탄 차량을 이용하지도 않았고, 그 대신 기아자동차의 1600cc급 소형차인 ‘쏘울’을 선택했습니다. “참으로 그답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14년 봄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 마피아와 로마 가톨릭의 고질적인 유착 관계를 끊기 위해 ‘마피아 파문’이라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3살짜리 유아의 살해에서 촉발된 이 사태로 인해 일각에서 는 마피아의 교황 살해에 대한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여전히 방탄차를 타지 않습니다. ‘죽을 테면 죽여 보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장하는 ‘새로운 순교’을 약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 은 교황의 살해가 아닙니다. 행동의 모델로서 그가 미칠 파장에 대한 염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어떤 동기에서든 ‘성스러움에 대한 갈증’이 우리 사회의 기저에서 들끓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듯합니다. 어떤 논리로도 풀리지 않는 심리적 영역이 존재하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중요한 것은 교황이나 가톨릭이 아니 라, 우리 사회가 지닌 이러한 ‘심리적 공백’의 문제라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종교의 시선에서 볼 때 이러한 ‘심리적 공 백’은 분명히 매력적인 ‘포교의 공간’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종교적 해결’에 대해서는 조금 더 조심스러울 필 요가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심리적 공백’이 ‘영성’이나 ‘초월’이나 ‘수행’ 같은 개인적 차원에서 치유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상처 받은 각 개인을 자기 종교로 데려와 치유한다는 단순한 종교적 해법이나, 사회적 차원에서 집전되는 의례에서 특정 종교가 수행하는 기계적 기능에 의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러한 종교적 노력을 폄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최영 장군 당굿’, ‘서울 새남굿’, ‘해원굿’, ‘무혼굿’, ‘진혼굿’ 등이 열리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불교계에서도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여기저기서 ‘천도재’와 ‘수륙재’를 봉행한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종교가 해야 할 역할이 ‘죽음’으로 한정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누구도 ‘세월호 의 교학’을, ‘세월호의 신학’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종교의 역할을 주검을 처리하고 영혼을 천도하는 데 그치지 않습 니다. 종교는 삶의 근원적인 난제를 종교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종교 언어는 정치 언어에 종속 되어 질질 끌려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교황과 관련하여 눈여겨볼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교황이라는 ‘상징적 존재’의 모호성에 있습니다. 교황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인이자 도시국가인 바티칸시국의 원수입니다. 정교분리의 근대적 공간 속에서 완벽하게 정교일치를 구현하고 있는 곳 이 바티칸시국입니다. 그러나 교황과 다른 국가의 만남은 ‘국가의 만남’으로 묘사되기보다는 ‘국가와 종교’의 만남으로 묘사됩 니다. 바티칸과 교황은 근대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예외적인 공간이자 예외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바티칸의 상징적 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교황은 세계 각지에 이산되어 있는 교구들을 지배하는 수장입니다. 그러므로 가톨릭은 근대적인 국 민국가의 영토 경계선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종교적 영토’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바티칸시국은 교황이 절대권력을 휘 두르던 옛시절이 남긴 유물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티칸은 가장 체계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종교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많은 종교들이 지향하는 종교 모델로 존재합니다.

1984년에 요한 바오로 2세는 프랑스 선교사 10명과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한국 순교자 93명을 성인으로 선포하는 시성 식을 집전했습니다. 중세 시대 이후 바티칸 지역 밖에서 열린 최초의 시성식이었고, 한국은 세계에서 4번째로 성인을 많이 배 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103위 가운데 기해박해와 병오박해의 순교자 79위는 1925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열린 시 복식에서 복자가 되었고, 이후 1968년에 다시 24위가 바티칸 시복식을 통해 복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4년에는 ‘자발 적으로 가톨릭을 받아들여’ 순교했다는 사실이 ‘기적’으로 인정되어 103위 모두가 성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103위 시복식과 시성식을 주도했던 것은 1836년 입국한 ‘파리외방전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 국하기 전의 초기 순교자들은 103위의 시복식과 시성식에서 누락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달리 2014년 시성식은 기존에 누락된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외부의 시각이 아니라 내부의 시각으로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공식적으 로 재정립하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는 ‘한국 천주교사’와 ‘성인의 역사’를 일치시키려는 노 력의 소산이 바로 이번 시복식의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진산사건으로 유명한 윤지충이 복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2014년 시복식은 ‘한국 종교사’와 ‘한국 천주교회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한쪽에서는 신주를 불태우고 조 상 제사를 거부한 윤지충이 ‘배교자’일 테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순교자’이자 ‘성인’된 셈입니다. 게다가 윤지충은 ‘최초의 순 교자’라는 점에서 그의 살과 피 위에 세워질 앞으로의 한국천주교사는 많은 갈등의 소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2014년 광화 문 광장의 시복식은 그만큼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2014년 8월 16일 시복식 이후 한국천주교에서는 다시 복자 124위의 ‘시성’ 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124위 복자는 하 나의 안건이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한 건의 기적 심사만 통과하면 124위 복자 전체가 성인 반열에 오른다고 합니다. 또한 천 주교에서는 최양업 신부에 대한 시복을 재추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 위’에 대한 시복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모든 시복과 시성의 작업이 완료되면 한국천주교사는 ‘순교의 역사’에서 ‘성 인의 역사’로 다시 씌어질 것입니다.

가톨릭은 여전히 ‘성인(聖人)의 자격’을 심사하면서 ‘기적의 존재 유무’를 가립니다. 성인이 되려면 최소 두 번의 기적을 보여주어야 하며, 복자(福者)의 경우에는 순교 자체가 기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기적의 증거가 없어도 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자가 성인이 되려면 다시 ‘기적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가장 흔한 기적은 병자의 치료입니다. 가톨릭은 기적이 사라 진 시대에, 아니 기적이 존재하기 힘든 시대에 ‘기적’을 여전히 교리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복식은 온전히 ‘종교적인 사 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한국 종교계 또는 불교계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받고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제 안에서 맴도는 그러한 혼란의 맥을 조금이나마 풀어보는 것이 그나마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말씀의 전부가 아닐까 했습니다. 특정 종교에 속하지 않은 저로서는 교황의 방한이 타종교에 미친 영향에 대해 경험적인 차원 에서 말씀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일부에서 ‘교황 신드롬’이라고 말한 그 현상의 이면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을까 생각 하고 있습니다.

8월 15일 오후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기독NGO 단체인 ‘예수재단’(대표 임요한 목사)이 ‘진리수호 구국기도회’를 개최하면 서 천주교인들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예수재단은 그때까지 10일째 광화문광장에서 구국기도회를 열고 있었다고 합니다. 8월 16일에는 시복식이 열리는 광화문에서 불과 600미터 정도 떨어진 청계천 한빛공원에 ‘로마 가톨릭·교황 정체 알리기 운동 연 대’ 소속 회원 300여 명이 모여 가톨릭과 교황 제도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들은 가톨릭에 대해 ‘이단’과 ‘마귀’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고, 예수는 신이지만 마리아는 사람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교황을 ‘적그리스도’이자 ‘우상’으로 간주했던 개신교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닙니다. 언론에서는 자극적으로 ‘물리적인 충돌’을 운운했지만, 저는 그냥 ‘작 은 해프닝’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개신교인은 교황은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여전히 가톨릭은 ‘비성경적’이고, 오로지 구원은 ‘성경’과 ‘복음’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또한 일각에서는 ‘교황 신드롬’에 속수무책인 한국 개신교의 현재 위상을 참담해 하는 개신교 내부자들의 비판적 목소리도 한껏 고양되었습니다. 베드로의 후계자임을 주장하는 ‘교황’의 존재는 개신교의 ‘적통 의 식’에 대한 가장 위협적인 요소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황이 입국한 8월 14일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성남 서울공항에 가서 교 황을 맞았습니다. 교황이 비티칸 시국의 수장이긴 하지만 최고의 예우를 다한 셈입니다. 그러나 천주교라는 종교에 대한 이런 극진한 예우가 타종교의 눈에 그리 편한 광경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종교가 ‘정치적 상처’에 이용되는 경우는 많습니다. 종교 는 항상 사태에 모호성을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황의 방문이 현재 한국의 어수선한 정치적 상황에서 ‘치유’였는지, 아니면 ‘이용’이었는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교황은 8월 15일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만난 세월호 유가족으로부터 ‘세례’를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를 수락했습니다. 교황은 8월 17일 오전에 주한 교황청 대사관에서 세월호 참사로 숨진 고(故)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수원교구 신자)에 게 세례를 주고 자신과 같은 이름인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주었습니다. 이호진 씨는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6kg의 십 자가를 지고 안산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그리고 8월 15일에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봉헌된 대전 월드컵 경기장까지 900km 의 여정을 도보로 순례했다고 합니다. 그는 5만여 명이 참여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한 교황에게 자신이 진 십자가를 전달했습니다. 교황은 이 십자가를 교황청으로 가져 가겠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를 지고 도보 순례한 고(故) 김웅기 군의 아버지 김학일 씨도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 영혼이 담긴’ 십자가를 교황에게 전달했습니다. 교황은 이 십자가도 로 마 교황청으로 가져가겠다고 했습니다.

8월 16일 시복미사는 방송 3사에 의해 생중계되었고, 경찰 추산 17만 5천 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교황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선물 받은 노란 리본을 방한 기간 내내 달고 있었으며, 시복미사 직전 카퍼레이드 도중에 세월호 농성천막 앞에 서 차에서 내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호를 만나 위로의 말을 전했습니다. 김영오 씨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농성 중이었습니다. 김영오 씨는 교황에게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 달라. 그리고 세월호를 잊지 말아 달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8월 18일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명동성당에서 ‘화해와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기 전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서정기 성균관 관장, 박남수 천도교 교령, 정교회 한국대교구장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대주교 등 12명(혹은 20여 명)의 종교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종교간의 대화와 상호 인정을 강조했습니다. 타종교 지도자들은 교황의 미사 에도 참여했습니다. 당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38선 철조망으로 만든 ‘가시면류관’ 과 ‘파티마의 성모상’을 교황에게 봉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7명, 새터민, 납북자 가족, 밀 양과 강정 마을 주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참여했습니다. 당일 명동성당은 한국사회의 갈등이 집약적으로 전시되고 있는 ‘상징적 공간’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 공간에 교황은 ‘평화와 화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이 현재 한국천주교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종교계의 제반 문제를 적나라하게 노출 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이 라틴 아메리카의 ‘종교적 스타’를 교황으로 선출했던 것은 로마 카톨릭의 ‘진보 의 상징’ 이 아니라 ‘궁지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 가톨릭의 위기에 대한 일종의 타개책이었을 것입니다. 불교계 역시 ‘종교적 스타’에 대한 지속적인 갈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성철 스님, 법정 스님 이후에 혜민 스님과 법륜 스님 같은 ‘스타’가 배출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몇몇 스타의 연기로 구성되는 드라마일 수 없습니다.

퍼포먼스는 늘 한계에 봉착 합니다. 왜냐하면 종교가 ‘이미지’로만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사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람을 위해 종교를 버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창익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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