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그리스도인의 참여불교 탐구

 * 이 글의 제목 ‘사랑, 지혜를 만나다’는 해방신학자 알로이시우스 피어리스 신부가 불교−그리스도교 대화에 대해 쓴 책의 제목 Love Meets Wisdom에서 따온 것임을 밝혀 둔다.

테니스와 수학?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서로에게 가장 먼 종교들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두 전통 사이의 거리는 지리적으로도 멀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각자의 출생지를 떠나 세계로 퍼져 나간 ‘선교적 종교’지만 근대 이전까지는 서로를 직접 만난 적이 많지 않다.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어 간 방향이 지리적으로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불교의 다르마는 ‘동쪽’을 향했고, 그리스도교의 복음은 ‘서쪽’을 향했다. 그리고 역사가 흐르면서 그리스도교는 ‘서양종교’가 되었고 불교는 ‘동양종교’가 되었다.

물론 근대 이전에 불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접촉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록 장외(藏外) 경전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기원전 1, 2세기 무렵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밀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은 그리스계 왕 밀린다와 불교 승려 나가세나 사이의 대화를 담고 있다. 서양 쪽의 기록에 따르면 서기 1, 2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 불자들의 공동체가 있었고 인도에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 중 하나인 클레멘트도 붓다와 불교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멀리 동쪽으로 이주해 간 그리스도인들도 있었다. 서방교회 내부의 교리투쟁에서 패배해 이단으로 정죄되었던 네스토리우스파는 박해를 피해 중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정착했다. 하지만 근대 이전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은 제한적이었다. 불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지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본격적으로 만나게 한 것은 불행하게도 근대 이후의 제국주의였다.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은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으며 ‘종교적 정복자’로 불교 세계에 들어왔다. 이 시기 불교가 정치적 힘을 갖고 있지 않았던 동북아시아에서는 불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대립이 심각하지 않았지만, 불교가 지배적 종교였던 동남아시아에서는 두 전통 사이의 종교적, 정치적 대립이 있었다. 예를 들면 19세기 말 스리랑카 파나두라에서 불교 학승들과 개종한 그리스도인 데이비드 드 실바 사이에 있었던 ‘대논쟁’은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립을 악화시켰고, 그 부정적 여파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근본주의 그리스도인들의 공격적 선교로 인해 아시아의 불자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확산되고 있다.

20세기 이후의 세계화는 불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지리적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은 식민주의의 지원을 받으며 전 세계로 전파되었고, 불교의 다르마도 이민과 개종을 통해 서양에 뿌리내렸다. ‘그리스도교 국가’로 여겨졌던 미국은 세계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다양한 나라가 되었고, 불자들의 수도 357만 명에 이른다. 식민지화 이후 가톨릭이 지배적 종교가 된 남미에도 불교 공동체가 존재한다. 특히 한국은 불자와 그리스도인들이 비슷한 수와 힘으로 공존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세계 ‘모든 곳’에 있다. 이렇게 두 전통 사이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불자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지적, 영적, 윤리적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대화에 참여하는 불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의 공통점보다 차이를 더 많이 느낀다. 그리스도교는 인격적 유일신 신앙에 기초한 구원의 길이고 불교는 신 없는 해탈의 길이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을 영혼을 지닌 존재로 보지만 불교는 무아적 존재로 본다. 이 세계와 우주의 존재를 그리스도교는 신에 의한 무로부터의 창조(ex nihilo)로 설명하고 불교는 연기(緣起)에 의한 생성과 변화로 설명한다. 그리스도교는 타력적 구원을 믿는 반면, 불자들은 자력적 해탈을 추구한다. 그래서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와 대화했던 토마스 머튼은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를 ‘테니스와 수학’의 차이에 비유했다. 그만큼 서로 비교하기 어려운 비대칭적 관계라는 의미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두 전통은 이천 년 동안 다른 사회적, 종교적 환경에서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두 구원의 길을 시작했던 붓다와 예수의 삶도 너무 달라 보인다. 붓다는 사회적 약자에게 자비로웠지만 사회적 강자들과 충돌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크샤트리아 출신이었던 붓다는 정치권력의 후원을 받으며 상대적으로 평화롭게 40여 년 동안 가르침을 펴고 열반에 들었다. 반면 가난한 소작농 출신이었던 예수는 로마 정치권력과 유대 종교권력에 모두 도전했고, 결국 젊은 나이에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이런 붓다와 예수의 근본적 삶의 차이로부터 사회적 불의, 악, 폭력에 대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입장 차이가 생겨났다.

그러나 붓다와 예수의 차이는 역사적 조건의 차이일 뿐이다. 틱낫한은 만약 붓다가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다면 예수처럼 십자가에 처형당해 죽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두 전통의 지적, 영적 차이가 서로를 부정하고 배타하는 이유일 수도 없다. 차이는 상호 배움과 상호 변혁의 조건이다. 새로운 것은 원래 남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서로 다를수록 배울 것이 더 많고, 배움의 열매도 더 크고 풍요롭다. 그래서 존 캅은 “불교화된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화된 불교는 그들의 차이를 통해서 서로의 전통과 인류의 문화를 계속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고, 아널드 토인비도 천 년 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이야기될 것이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일 것이라고 한다.

불교-그리스도교의 대화는 세계화 시대의 긴급한 요청이기도 하다. 가장 보편적 인간 경험인 고통은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마존에 산성비가 내리고, 나스닥 지수의 작은 변동이 가난한 나라들에 거대한 경제적 쓰나미를 일으킨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만이 아니라 지구의 재앙이다. 세월호 참사도, 가자의 학살도 세계의 비극이다. 전 지구적 고통은 전 지구적 구원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한 종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또한 오늘의 종교 다원 세계에서 불자만의 구원이나 그리스도인만의 구원을 추구하는 것은 종교적으로 편협하고 윤리적으로 무책임하다. 구원의 길인 종교들은 서로 대화하며 함께 일해야만 한다. 불교-그리스도교 대화도 전 지구적 고통과 구원의 지평 위에 설 때만 시대적 의미를 얻게 된다. 그것이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서로에 대한 ‘무지’와 ‘대립’에서 ‘대화’로 변화시킨 인연 혹은 섭리일 것이다.

물론, 최근의 마하보디 사원의 그리스도교 선교 사건에서 보듯, 무지와 대립의 시대를 계속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그럴수록 대화가 더 필요하다. 종교적 폭력은 두려움에서 생겨나고, 두려움은 무지에서 생겨나고, 무지는 대화의 부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타자를 만나고 대화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이지만, 두렵다고 해서 대화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인간은 대화를 통해 배우고 변화하고 성숙한다. 그러니 이웃종교와의 대화는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가슴 설레야 할 일이다. 이 글은 이웃종교에 대한 두려움보다 설렘과 호기심이 더 큰 한 그리스도인이 불교, 특히 참여불교와 대화하면서 배운 것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불교는 참여불교다”

막스 베버는 불교를 반사회적 신비주의 종교로 분류한다. 베버 말고도 많은 이들이 불교를 세계 부정적인 종교로 이해한다. 불교는 피안적이고, 내세적이고, 수동적인 종교라는 것이다. 물론 불교에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 불교는 사회적 긴장과 갈등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한다. 고통의 해결에서도 사회의 구조적 변화보다는 개인의 내면적 변화를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산티데바는 모든 세상을 가죽으로 덮는 것보다 각자 가죽 신발을 신는 것이 더 쉬운 해법이라고 가르친다. 불자들은 세상 속에서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개인의 내적 변화가 우선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선악 이원론을 피하려다 보니 정치적 참여에도 다소 소극적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불교 역사 안에 사회참여 전통이 언제나 있어 왔다는 사실이다. 불교는 초지일관 지혜와 자비의 불가분리성을 강조해 왔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은 모든 불교의 근본 이상이다. 깨달은 자는 반드시 중생을 교화하고 구원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서의 ‘상’과 ‘하’를 시간적 선후관계로 보기도 하지만, 지혜의 추구와 자비의 실천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 더 본래적인 뜻이다. 그래서 한국의 참여불자들은 좌구보리 우화중생(左求菩提 右化衆生)이라는 표현으로 지혜와 자비의 병진을 강조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붓다 자신이 ‘최초의 참여불자’였다. 붓다는 극심한 차별과 폭력의 시대에 평등한 수행 공동체를 만들고 평화를 위해 애썼다. 예를 들면 브라흐민 출신 제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불가촉천민인 수니타를 공동체에 받아들였고, 비록 세 번 거절하긴 했지만 결국 양모인 왕비 마하파자파티 고타미가 이끈 오백 명 여성들의 출가를 허용했다. 그리고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도 했다. 그의 두 혈족인 사키야 족과 콜리야 족이 로히니 강물의 사용을 놓고 전쟁을 벌이려고 할 때, 붓다는 전장으로 직접 가서 두 부족에게 물었다. “물이 중요한가, 생명이 중요한가?” 그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물음에 깨우친 두 부족은 전쟁을 포기하고 함께 사는 길을 택했다. 또한 붓다의 가르침에는 가난과 폭력의 연관성을 드러내는 일종의 ‘사회분석’도 있다.

가난한 이에게 소유를 주지 않음으로 인해 가난이 퍼졌고, 가난이 퍼지면서 도둑질이 늘어났고, 도둑질이 늘어나면서 무기를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고, 무기를 사용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도 많아졌다.

현대적 개념으로 풀어보면, 붓다는 폭력의 원인이 경제적 불평등임을 분석함으로써 분배정의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붓다의 사회적 가르침과 행동은 그를 영적 지도자로만 여기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붓다가 되기 전의 싯다르타 고타마는 사키야 족의 ‘왕자’였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그는 부왕 숫도다나와 부족의 현인들로부터 정치지도자가 되기 위한 교육과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았을 것이다. 정치적 격변과 전쟁의 시기에 새로운 수행 공동체를 만들고 이끌어야 했던 붓다는 영적 지도력만이 아니라 정치적 지도력도 발휘해야 했다. 실제로 그는 현실 정치와 지혜롭게 관계 맺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붓다가 사회와 정치의 원리와 작동방식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승불교의 보살 이상도 불교의 사회참여 사상과 실천의 중요한 한 전거로 이해할 수 있다. 개인적 해탈을 강조하는 상좌부(上座部, Theravāda)불교의 아라한 이상과 달리 대승불교의 보살 이상은 고통받는 모든 존재의 구원과 해탈을 추구한다. 큰(mahā) 수레(yāna)를 뜻하는 ‘대승(大乘)’이라는 표현 자체에 이미 보살의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다. 대승의 보살은 모든 존재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열반에 드는 것을 스스로 유예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장보살의 이상에서 보듯이, 고통받는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보살은 지옥으로까지 뛰어든다.

상좌부불교는 작은(hīna) 수레(yāna)라는 의미의 소승불교(小乘佛敎)로 폄하되어 왔다. 개인의 해탈에만 집착한 나머지 중생의 사회적 고통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늘의 참여불교 운동은 상좌부불교 전통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다. 그 이유는 상좌부불교가 붓다 당시에 제정된 수행 공동체의 규칙과 생활방식을 원형 그대로 지켜온 것과 관련이 있다. 상좌부불교의 출가자들은 붓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형태의 경제행위에도 종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전적으로 재가자 공동체에 의존해야만 한다. 그 결과 재가자들은 출가자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하고 출가자들은 재가자들을 영적으로 지원하는 호혜적 관계가 만들어졌다. 그런 호혜적 관계의 구체적 형태가 탁발(托鉢) 전통이다. 출가자들은 2,500여 년 동안 매일 마을에 가서 탁발을 해왔다. 자연히 마을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게 되면서 그들의 상담자, 교육자, 치유자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참여불교 형성의 한 토양이 된 것이다.

이처럼 역사 속의 불교 전통들은 사회적 고통에 응답하며 참여하는 자비의 길을 걸어왔다. 그것은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이루고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바라나시로 걸어가 지혜와 자비의 수행공동체를 만든 스승 붓다의 길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틱낫한은 분명하게 말한다. “모든 불교는 참여불교다.”

세계 참여불교의 풍경

물론 ‘참여불교’는 역사적으로 현대에 나타난 불교운동이다. 참여불교의 기원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갈린다. 일부 학자들은 근대 이후 서양문화를 접하게 된 불자들이 인권, 평등, 정의와 같은 서구적 가치의 자극을 받아 참여불교를 형성했다고 본다. 실제로 참여불교 사상가들 상당수가 서양에서 공부하거나 생활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태국의 술락 시바락사는 영국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인도 달리트 불교의 지도자인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의 영향을 받았다. 틱낫한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했다. 따라서 그들이 서양 사상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반면 참여불교를 생겨나게 한 가장 중요한 동인을 불교의 전통적 가르침을 사회적으로 재해석하고 적용하는 노력에서 찾는 입장도 있다. 두 관점 모두 일리가 있다. 또한 두 관점 중 어느 하나를 배타적으로 선택할 필요도 없다. 불교는 언제나 ‘관계적’으로 존재해 왔다. 참여불교도 밖으로부터 영향과 안으로부터 각성이 관계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생겨난 운동이다.

현대 참여불교와 전통적 불교 모두 고통의 실상을 직시한다. 하지만 고통의 ‘사회적 차원’에 대한 관심의 정도에서 차이가 있다. 전통적 불교는 내적 세계를 태우는 탐욕, 분노, 무지의 불에 주목하지만, 참여불교는 외적 세계를 태우는 불에도 주목한다. 《법화경(法華經)》의 “온 세계가 불난 집(三界火宅)”이라는 이야기는 오늘의 전쟁과 폭력의 시대에는 영적 비유가 아니라 사실적 표현처럼 들린다. 베트남 전쟁의 참화 속에서 ‘참여불교’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하며 고통의 현실에 뛰어들었던 틱낫한은 베트남을 “불의 바다 속의 연꽃”으로 표현했다. 이때의 불은 단지 마음을 태우는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만이 아니라 실제로 생명을 파괴하는 폭력도 의미한다. 서양세계가 베트남 전쟁을 보는 시각을 결정적으로 바꾼 틱쾅둑의 소신공양도 온 세상이 불에 타고 있음을 깨닫게 하려는 자기희생적 보살의 행위였다.

‘하나의 불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불교들’이 있듯이 참여불교 운동에도 역사적 경험과 지향에 따라 다양한 흐름이 존재한다.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사상적 깊이를 가지고 있는 각각의 참여불교 운동을 소개하려면 수십 권의 연구서들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참여불교의 다양한 흐름을 유형적으로 간결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참여불교의 다양한 유형 중 하나는 급진적 평등주의이다. 인도의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 박사가 이끈 달리트 해방 불교운동이 그 한 예이다. 불가촉천민을 가리키는 말인 달리트는 ‘억압받는 이들’ ‘산산이 부서진 이들’을 뜻한다. 그 자신이 달리트였던 암베드카는 수천 년 동안 달리트를 부정(不淨)한 존재로 차별해 온 힌두 종교에 맞서기 위한 대안적 종교로 불교를 선택했다. 그의 지도에 따라 1956년 10월 4일과 5일 이틀 동안 낙푸르에서 약 50만 명의 달리트가 불교로 개종했다. 그런데 암베드카는 전통적 불교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그는 힌두교와 불교 전통이 공유해 온 업과 환생의 교리를 비판했다. 철학적으로는 무아의 교리와 모순된다는 것이었지만, 실천적으로는 업과 환생의 교리가 달리트에 대한 차별을 수천 년 동안 정당화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암베드카의 불교는 전통적 불교와 다르다. 실제로 그는 달리트 불교를 ‘새로운 수레’를 뜻하는 나바야나(Navayana)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불교를 선택한 그의 목적이 종교적이기보다는 사회적, 정치적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암베드카의 새로운 불교는 붓다가 창시한 원래의 불교에 가까웠다고 본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붓다는 이미 2,500년 전의 계급사회 속에 평등 공동체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이런 평등의 정신은 오늘의 불교적 여성운동, 소수자 운동과도 맥을 같이한다.

참여불교의 또 다른 유형적 특징은 철저한 평화주의이다. 베트남의 틱낫한은 전쟁과 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보호하고 평화를 재건하기 위해 참여불교 운동을 전개했다. “평화를 만들고 싶거든 먼저 평화로워져야 한다.”는 그의 가르침은 폭력에 맞서면서 그만 폭력에 물들었던 이들에게 큰 영감과 도전을 주었다. 캄보디아의 마하 고사난다도 평화의 이상을 철저하게 체현한 이다. 크메르루주에게 그의 전 가족이 학살당했음에도 그는 증오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내전이 끝났을 때 마하 고사난다는 크메르루주에 대한 어떤 형태의 보복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대신 ‘진리의 순례(Dhammayietra)’를 통해 상처 입은 캄보디아인들이 마음과 삶에 평화를 되돌려 주었다. 그에게는 평화를 위해 걷는 것이 곧 명상이요 수행이었다. 그는 말한다. “모든 걸음이 명상이고, 모든 걸음이 평화다!” 달라이 라마도 티베트를 폭력으로 강점한 중국에 대한 미움과 보복 대신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여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폭력의 희생자들이었던 참여불자들은 “증오는 증오가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서만 그치게 된다.”는 《법구경》의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했다.

참여불교는 선과 악을 나누는 ‘정치적 정의’나 악을 심판하는 ‘징벌적 정의’에 소극적이지만, 고통과 악을 예방하는 ‘경제적 정의’에는 적극적이다. 그런 유형의 대표적 사례는 스리랑카의 A.T. 아리야라트네가 이끄는 사르보다야 슈라마다나 운동이다. 사르보다야 운동은 불교사상에 기초해 마을 공동체의 경제적 개발, 교육, 환경 개선 등을 시도해 왔다. 현재 스리랑카의 23,000여 마을 중에 15,000여 마을이 사르보다야 마을이니 “정부 다음 가는 조직”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길을 만들고 길은 우리를 만든다.”는 슬로건이 말해주듯, 사르보다야 운동은 개인의 내적 변화와 사회의 외적 변화를 동시에 추구한다. 또한 평화운동에도 힘을 써, 힌두 타밀 세력과 신할리스 불교 민족주의 세력 사이의 군사적 충돌이 계속되고 있을 때 불자 청년들을 힌두 지역에 보내고 힌두 청년들을 불교 지역에 보내 함께 일하게 했다. 최근에는 큰 도시들에서 약 백만 명이 참여하는 평화명상도 매년 실시하고 있다.

‘정치적 정의’의 실현에 적극적인 참여불교 운동도 있다. 태국 참여불교 운동의 지도자인 술락 시바락사 박사의 사상과 활동이 대표적이다. 그는 참여불교의 이론적 정교화에 기여해 왔고, 국제참여불자네트워크(INEB)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른 참여불자들과 달리 정치적 정의에 대해 적극적인 시바락사는 평화를 위해서는 먼저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참여불교 운동도 정치적 정의 실현에 적극적이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경험해 온 일제강점, 분단, 독재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한용운, 백용성이 참여한 1919년 3·1 운동, 1970~80년대의 ‘민중불교’ 운동,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의 다양한 참여불교 운동은 민주주의와 통일이라는 정치적 정의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미얀마의 아웅 산 수 치가 벌여 온 민주화 운동도 같은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참여불교 운동의 유형은 주로 아시아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다. 그런 다양한 유형을 공유하면서 세계 참여불교를 더 다채롭게 하고 있는 것이 서양의 참여불교 운동이다. 지면의 한계상 구체적 사례를 소개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고, 여기서는 서양 참여불교의 특징 세 가지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째, 서양의 참여불자들은 사회분석과 비판에서 적극적이고 능숙하다. 그것은 서양 불교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서양에서 불교가 확산된 것은 아시아 불자들의 이민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지만, 20세기의 민권운동, 반전평화운동,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세대가 서구문명과 그리스도교에 회의하게 되면서 대안적으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들 중 일부는 역사의식을 버리고 내적 세계로 도피하기 위해 불교를 선택하기도 했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비판적 정치의식과 불교의 영적 수행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런 역사적 경험과 노력 덕분에 서양의 참여불교 지도자들은 ‘사회분석’과 ‘마음분석’ 능력을 겸비하고 있다.

서양 참여불교의 두 번째 특징은 민주적이고 평등한 문화이다. 전통적 불교든 참여불교든 재가자의 물질적 지원을 받는 출가자 중심의 아시아 불교와 달리 서양 불교는 재가자 중심의 ‘생활불교’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세속적 직업과 가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불교를 수행하고 가르치는 불자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출가자와 재가자 사이의 영적 위계주의가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다. 또한 20세기 서양의 급진적 여성운동 덕분에 불교 공동체 안의 양성평등도 잘 정착되어 있다. 서양의 영향력 있는 불교 스승들 가운데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세 번째 특징은 서양의 참여불자들은 불교-그리스도교 대화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대부분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직간접적으로 자란 서양불자들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가 깊다. 그리고 뒤에 더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불교의 종교적 포용성 때문에 자기 신앙을 버리지 않은 채 불교 명상 수행을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많다. 실제로 그리스도교 성직자이면서 동시에 선사(禪師)인 이들도 있고, 불교와 그리스도교 전통을 동시에 수행하는 ‘불교적 그리스도인(Buddhist-Christian)’도 있다.

아시아와 서양의 참여불교 운동은 이상과 같은 내적 다양성을 보이면서도 ‘불교 에큐메니즘’을 실현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교회의 일치를 뜻하는 에큐메니즘이라는 표현 대신 한국불교에서 말하는 ‘통불교(通佛敎)’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의 참여불교 운동은 종교문화적으로 상좌부불교, 대승불교, 티베트불교 및 신흥불교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고, 지리적, 정치적으로도 국가의 경계를 넘는 전 지구적 불교운동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고통과 구원이 전 지구적으로 연관된 세계화 시대의 참여불교는 가장 엄밀한 의미의 ‘세계불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여불교가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선물

종교 간 대화의 목적은 ‘개종’이 아닌 ‘변화’이다. 대화는 남을 이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함으로써 자아를 변화시킨다. 불자들과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그동안 자신의 전통에서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고, 잊었던 것을 기억하게 되고, 버렸던 것을 되찾게 되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대화를 통해 불자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하지만 그 선물이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던 관념을 깨뜨리고,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하고, 편안한 것을 불편하게 하는 도전이기도 하다. 그런 도전이 담긴 선물 꾸러미를 풀어보자.

첫째, 연기(緣起)의 관계론이다. 불교사상의 핵심은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상호의존적 연기의 진리이다. 나가르주나(龍樹)는 그 진리를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가르침으로 풀어 설명한다. 이런 연기의 관계론에 따르면 독립적이고 고립적인 ‘나’는 존재할 수 없다. ‘나’라고 하는 것은 본디 비어 있고, 오직 ‘나 아닌 것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나’로 존재할 수 있다. 이런 나와 나 아닌 것의 불이(不二)에 대한 지혜는 고통받는 모든 존재에 대한 자비를 샘솟게 한다.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으니 남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다. 그래서 비말라키르티(維摩詰)는 “중생이 아프므로 나도 아프다.”고 말한다. 불교의 이런 연기적 관계론은 불자들이 아니어도 동의할 수 있다. 마틴 루서 킹도 그 진리를 선포했다. “모든 생명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한 운명으로 묶여 있는 우리는 상호성의 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의 지혜는 ‘고통을 받는 이들’과의 연관성만이 아니라 ‘고통을 주는 이들’과의 연관성도 인정하게 한다. 즉 나는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불교적 연기의 지혜에서 비롯하는 자비는 정치적으로 무차별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참여불자들은 정치적 대립의 상황에서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는다. 만약 편을 들어야만 한다면 ‘모두’를 편든다. 틱낫한의 〈나의 진정한 이름들로 나를 불러다오〉라는 시는 이런 무차별의 지혜와 자비를 아름답게, 그리고 아프게 표현한다.

나는 작은 난민선에서
해적에게 강간당한 후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은
열두 살 소녀
나는 아직 볼 줄도 사랑할 줄도 모르는 가슴의
그 해적.

불교의 이런 불이적 관계론은 정의를 위해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충격과 도전을 준다. 1980년대, 폴 니터는 암살부대의 폭력을 막기 위해 엘살바도르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출국을 앞두고 한 불교 명상수련회에 참석한 그는 버니 글래스먼 선사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지혜를 구한다. 그때 선사가 말한다. “당신이 그 암살부대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만 그들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불이의 관계론은 정의의 이름으로 악인에게 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도전이다. 그러나 도전이 클수록 배움도 크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그만 자기의(自己義, self-righteousness)에 빠지기도 한다. 또한 ‘악’에 분노하다 ‘악인’을 증오하기도 한다. 그들은 마음 안팎에서 타오르는 폭력의 불길 때문에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럴 때 불교의 불이적 지혜와 자비는 그리스도인의 저항을 정화하고 사랑을 확장해 줄 수 있다. 악인과 내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악인에게 저항하면서도 악인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 예수를 따르는 길이기도 하다.

참여불교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두 번째 선물은 모든 형태의 집착으로부터의 자유이다. 불교적 자유의 철저성은 ‘절대적 비-절대주의’로 나타난다. 불자들은 불교의 가르침도 절대화하지 않는다. 붓다도 자신의 가르침을 뗏목에 비유했다.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고 길을 가야 하듯, 자신의 가르침도 해탈에 이르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선가에서는 그것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표현한다. 중요한 것은 달을 보는 것이지 손가락을 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선의 급진적 자유로움은 공(空), 다르마, 붓다와 같은 불교의 최고 상징에도 절대성을 부여하지 않는 데서 드러난다. 임제 선사는 사자후를 토한다. “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죽여라!”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뜻이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그것의 역사적 실재가 ‘하느님 나라’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는 내재적이면서도 초월적이다. 지금 여기에서 ‘이미’ 실현될 수 있는 나라이지만, ‘아직’ 오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내재적 ‘이미’와 초월적 ‘아직’ 사이의 창조적 긴장이 그리스도교 역사관의 핵심이다. 문제는 둘 중 하나에, 특히 내재적 ‘이미’에 집착하고 절대화할 때 생긴다. 하느님 나라를 역사 속의 정치체제로만 추구하게 되면, 정치적 혁명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희망보다는 좌절을 더 많이 하게 된다. 하느님 나라는 역사 속 정치체제로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신앙이든 이념이든 역사적인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절대화는 지속적 좌절을 초래한다. 모든 역사적 이념과 체제는 강을 건너기 위한 뗏목과 같다. 뗏목에 집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 속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를 배울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불교의 세 번째 선물은 철저한 비폭력 평화주의이다. 그리스도교도 대부분의 종교와 마찬가지로 평화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정의를 이루고 지키기 위한 폭력을 조건적, 제한적으로 인정한다. 그리스도교 정치사상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오거스틴의 ‘정의로운 전쟁’ 사상은 폭력에 대한 그리스도교 교회의 전통적 입장을 대표한다. 정의를 위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해방신학도 가난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그리스도교는 의로운 폭력을 인정하지만 불교는 어떤 형태와 목적의 폭력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틱낫한은 “모든 폭력은 불의”라고 말한다. 불교적 평화주의의 철저성은 외적 폭력만이 아니라 내적 폭력을 거부하는 데서 나타난다. 1990년대 후반, ‘국제평화회의’ 종교지도자들이 멕시코 치아파스 지역을 방문했다. 거기서 멕시코 정부의 억압과 폭력을 목격하고 분노한 종교지도자들은 정부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자 했다. 이때 불교 측 참가자 하나가 조용히 손을 들고 말했다. “우리 불자들은 아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니터는 불교의 그런 비폭력 정신과 태도가 가장 진지하고 영감 넘치는 종교 간 대화를 갖게 했다고 회고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열정적으로 단호하게 외친다. “평화를 원한다면 정의를 위해 일하라!” 불자들은 평정 속에, 하지만 마찬가지로 단호하게 말한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로워져라!”
물론 이런 비폭력 평화주의가 강자의 폭력에 침묵하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폭력의 목적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폭력을 멈추는 것이다. 《법구경》은 가르친다.

모든 존재가 폭력에 떤다.
모든 존재가 죽음을 두려워한다.
남을 너 자신처럼 여기면서,
남을 죽이지도 남이 죽이게 하지도 마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남을 죽이지 말라”는 개인윤리적 행동과 “남이 죽이게 하지 말라”는 사회윤리적 행동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폭력은 중지되어야 한다. 물론, 평화적으로!

네 번째, 불자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물은 영적 수행법이다. 그리스도교에도 다양한 형태의 영성 수행법이 있지만 불교만큼 정교하게 체계화되어 있지는 않다. 16세기의 종교개혁으로 시작한 개신교는 가톨릭 수도 전통의 많은 부분을 버렸다. 또한 가톨릭의 영성 수행법도 불교의 수행법에 비교해 보면 덜 체계적이다. 오랫동안 가톨릭 수도자로 선 수행자로 살아온 마이클 홀러런 신부는 “그리스도교가 영감에서는 뛰어나지만 영적 기술에서는 부족하고, 이상과 내용에서는 강하지만 방법에서는 약하다.”고 고백한다. 그런 점에서 불교의 수행법은 그리스도교 영성의 샘이 다시, 그리고 더 세차게 흘러나올 수 있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불교의 수행법은 특히 사회변화를 위해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사회참여적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물음 중 하나는 내적 변화를 위한 영적 수행이 먼저인가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사회적 실천이 먼저인가이다. 물론 그리스도교의 응답은 둘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냐시오의 ‘활동 중 관상(觀想)’이라는 성찰이나 ‘노동이 곧 기도’라는 베네딕트 규칙을 그런 의미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관상과 활동을 구분하고, 둘 중에 관상에 우선성을 주는 경향이 있다. 토마스 머튼도 관상과 활동을 ‘샘’과 ‘개울’에 비유함으로써 둘의 필수성을 강조하면서도, 결국 샘과 같은 관상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샘이 없으면 개울로 흐를 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개울이 없으면 샘에서 나오는 물은 흐를 수 없다는 반론도 여전히 가능하다.

불교의 수행법은 다양하지만 근원에서는 하나로 통한다. ‘마음챙김’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마음챙김은 몸, 생각, 느낌,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챙겨 알아차리며 하는 모든 것이 명상이요 수행이다. 선가에서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을 모두 선(禪)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뜻이다. 이런 불교적 마음챙김의 영성으로 보면 관상과 활동, 명상과 행동은 둘이 아니다. 또한 마음챙김 수행은 세계긍정적, 세계변혁적 영성을 가능하게 한다. 마음을 챙겨 하는 모든 것이 수행이기에 수행을 위해 세계를 떠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수행을 위해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마하 고사난다는 말한다. “불자들은 사원을 떠나 인간 경험의 사원, 고통 가득한 세계의 사원으로 들어갈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세계가 곧 수행과 구원의 장소이다.

이와 같은 불교의 마음챙김 수행법을 불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배우고 실천할 수 있을까? 휴고 에노미야-라쌀 신부가 처음 선을 배우게 되었을 때 야마다 코운(山田耕雲) 선사에게 물었다. “저는 그리스도인인데 선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선사가 별 이상한 질문을 다 듣는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신부님은 몸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불자든 그리스도인이든 상관없이, 몸만 있으면 선 수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 영성 수행법의 가장 큰 차이는 종교적 경계의 유무이다. 간단히 말해, 불자는 하느님께 기도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인은 명상을 할 수 있다. 실제로 불교 명상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이런 점 때문에 불교학자 리타 그로스는 불교의 명상은 그리스도교의 기도와 달리 ‘종교적으로 중립적’이라고 한다.

한편, 틱낫한은 종교마다 마음챙김이 있고,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즉 그리스도교적 마음챙김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공감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오랫동안 불교 사상과 영성을 깊이 연구해 온 스리랑카의 해방신학자 알로이시우스 피어리스는 필자와 대화 중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의 영성은 원래 마음챙김이었습니다. 성서적 영성은 하느님에게 깨어 있고 가난한 이에게 깨어 있는 영성입니다.” 사도 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7)고 가르쳤을 때 의미했던 것도 그런 마음챙김의 영성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처럼 원래 그리스도교에 있었던 마음챙김의 영감과 이상을 실현할 기술과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불자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결론을 대신하여

대화가 깊어지면 우정이 생긴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대화도 우정도 일방적이지 않다. 상호적이고 호혜적이다. 불자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선물만큼 그리스도인들도 불자들에게 줄 선물이 있다. 이 글의 중심 주제가 아니기에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결론을 대신하여 한 가지만 말해 본다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관심과 사랑’이 불자들에게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선물이자 도전일 것이다. 정치적으로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았던 아베 마사오조차도 불교가 깨달음 지상주의, 정적주의(靜寂主義)를 피하려면 그리스도교로부터, 특히 해방신학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운동가들에게 자비명상을 가르치면서 해방신학과 대화하고 있는 존 매크란스키도 “해방신학으로부터 불자들이 배워야 할 것은 깨달은 이는 사회적 주변부로 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방신학과의 대화를 통해 불자들은 가난하고 무력한 이들을 위한 ‘사회적 지혜’와 ‘사회적 자비’를 계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고도로 복잡한 고통의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교하고 예리한 사회적 지혜가 필요하다. 사회적 지혜가 불교의 전통적 지혜와 다른 것은 ‘고통의 사회적 차별성’을 마음 챙겨 알아차리는 것이다.

즉 전통적 지혜는 모든 인간이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데 주목하지만, 사회적 지혜는 인간은 각자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다르게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런 사회적 지혜로 고통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정확히 인식할 때 고통을 없애는 사회적 자비가 가능하다. 불교 수행자이며 학자인 데이비드 로이가 탐욕, 분노, 무지를 ‘자본주의 시장경제’ ‘군산복합체’ ‘상업미디어’의 제도화된 삼독으로 설명하는 것도 그런 사회적 지혜의 한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불교적 사회이론, 사회적 지혜와 사회적 자비의 형성과 심화를 위해 불자들과 해방신학자들의 대화가 더 필요할 것이다. ■

 

정경일 /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숭실대 철학과, 한신대 신학대학원, 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 졸업.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 철학박사. 주요 논문으로 “Compassion and Confrontation: A Buddhist-Christian Response to a World of Suffering” “Liberating Zen: A Christian Experience” 〈사랑의 십자가와 지혜의 보리수〉 〈붓다의 땅에서 다시 만난 예수〉 〈애도, 기억, 저항: 세월호 ‘안의’ 민중신학〉 등이 있고, 역서로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공역)가 있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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