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자 막스 뮐러(Max F. Muller, 1823~1900)는 괴테가 “하나의 언어만 아는 사람은 아무 언어도 모른다.”라고 한 말을 빌려 “하나의 종교만 아는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금언을 남겼다.

뮐러는 성경의 《창세기》에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언어가 있었다는 것에 영감을 얻어 ‘언어’와 ‘종교’를 치환하여 이 경구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뮐러의 의도는 어떤 종교가 보편성을 가지려면 자신의 종교 이외에 다른 종교를 알아야 자신의 종교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종교인이라면 자신의 신앙을 공동체 안에서 객관적으로 사고해야 하고, 신앙적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의 울타리를 벗어나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열린 생각이 한국의 종교사회에서는 먹혀들지 않는 것 같다. 지난 7월 초순경 한 신문은 기독교인들의 ‘땅 밟기’를 기사화했다. 내용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불교성지인 인도 ‘부다가야 사원’에서 기독교계의 한국인 남성 2명과 여성 1명이 “하나님만이 오직 구원”이라며 선교 기도를 하고 기타를 치며 찬송가를 불렀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처럼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기독교 전파를 위한 것이었다. 이 장면이 그대로 인터넷에 동영상으로 올라와서 양식 있는 사람들의 혀를 차게 만들었다.
기독교인들의 이 같은 공격적 선교, 무례한 전도는 이번만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 줄기가 제법 길다. 10여 년 전인 2004년 7월경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기독교 청년 학생 연합기도회’에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로서 서울의 시민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기독교인들은 수도 서울을 지키는 영적 파수꾼”임을 선포했다.

그런가 하면 2006년 6월경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개신교 대규모 청년 부흥회’에서 우리나라 지도 위에 범어사, 안국선원 등 전국의 주요 사찰 94개 이름을 적은 청년들은 다 함께 “이 사찰들이 무너지게 기도하자”라는 구호를 외쳤다. 2010년 10월경부터는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개신교 청년들은 서울 봉은사와 대구 동화사에 들어가 ‘땅 밟기’를 하면서 절이 무너지라고 기도했다.

심지어 동화사 법당에서는 ‘몇 해 전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었던 것도 대구에 부처가 많아서 생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일은 이후 해외로 번져나갔다. 몇몇 개신교 신자들은 불교의 나라 미얀마로 가서 스님 앞에서 복음송가를 부르고, 기도하고, 불교를 사탄으로 규정하고 찬송가 38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를 부르기도 했다. 이번 부다가야 사건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땅 밟기’를 하는 개신교인들의 주장은 그 나름의 신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성경의 말씀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신명기 11장)라는 구절과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6일간 하루에 한 번씩 돌고 7일째 되는 날은 7번 돌아라”(여호수아 6장) 등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성을 돌아라󰡑라고 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것과 전쟁이라는 물리적인 폭력을 쓰지 않고 성을 함락시키려고 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에 여리고성이 전쟁을 하지 않고도 무너진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과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믿음과 사랑이 ‘비폭력의 승리’라는 축복을 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 일어나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땅 밟기’는 구약시대의 성경을 왜곡하고 기독교 신앙을 전면 부정하며 벌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들의 ‘땅 밟기’는 올바른 믿음과 사랑을 실천하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는 성경을 해석하는 데에서 부분이 아닌 전체를 살펴야 하는데 부분만 해석할 경우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여기서 일어나는 빗나간 선교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폭력적 행위일 수밖에 없다. 이는 120년이 넘게 한국 개신교가 쌓아온 실천적 사랑과 봉사의 금자탑을 무너뜨리며 종교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일 뿐이다.

다양함이 공존하는 시대에 기독교에만 진리가 있다고 사고하는 것은 무지한 발상이 아닌가.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폭력적인 행위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성한 사찰에서 선교하는 것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이들의 ‘땅 밟기’는 일제가 한반도의 정기를 차단한다며 자행한 ‘쇠말뚝 박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폭력이다. 전국의 명산 여기저기에 쇠말뚝을 박는다고 민족의 정기와 지맥이 끊어질지도 의문이듯 땅 밟기를 한다고 불교가 망할 것이란 생각은 미신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런 생각으로 저지른 만행이 사회적 종교적 갈등을 유발한다는 데 있다. 이런 대립적이고 투쟁적인 행동들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사소하지만 위험한 행동들이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쇠말뚝으로 박힌 민족의 상처가 있는 자리에 다시 종교적 땅 밟기로 우리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해서는 안 된다. 막스 뮐러가 한 “하나의 종교만 아는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은 ‘진리 독점주의’에 대한 경고다. 하나님도 무지한 사랑과 믿음을 앞세운 종교적 이기주의로 민족의 불화와 종교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타 종교 밟기’를 좋아하실 리 없다.

‘땅 밟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의문이 생긴다. 그렇게 성숙하지 못한 실천적 신앙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영화 〈친구〉에서 선생님의 대사를 인용해 묻는다.

“느그 아부지 모하시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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