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하고도 3개월을 살고 있다. 이곳 광교에서.

지난해 6월, 5년 4개월 동안 살던 광주시 퇴촌을 등지고 이주민 택지지구에 둥지를 틀 때만 해도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소란의 정도가 인간의 인내력을 실험하는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과장을 조금 섞으면 해가 뜨기도 전에 건물 공사는 시작됐다. 4층 높이의 소위 ‘아시바(비계(飛階), scaffolding)’에서 집어던지는 철근 등 장비들이 바닥과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소음, 그 이상이었다. 그 소리에 깨서 그 소리와 함께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 생활은 주민들에게는 ‘지옥(?)’에 버금가는 고통, 그 자체였다. 어디 그뿐이랴. 출퇴근 시간을 가리지 않고 도로를 무단 점유한 채 시멘트를 붓는 대형 공사 차량의 횡포와 ‘배째 정신’으로 무장한 인부들의 안하무인적인 행동은 ‘견딜 수 있으면 견뎌봐’ 그 자체였다.

오랜 세월을 마음공부에 쏟았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내게도 견디기 힘든 날들이었다. 급기야 어느 일요일 아침보다 이른 시각, ‘쿠당탕탕탕’ 소리와 지게차 소리에 분노 게이지를 누르지 못하고 집 앞 공사 현장을 찾아가 따졌다. 평상심(平常心)이 무너진 것이다. “내가 책임자”라는 사람과 목소리를 높이고 집에 와서도 분을 풀리지 않았고 급기야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내용은 이랬다.

“수원시 영통 구청장님! 이의동 이주자 단지에 사는 사람입니다. 이곳은 지난봄부터 공사가 한창입니다. 얼마나 부지런한지 새벽 6시부터 철근 등을 집어 던지는 소리에 단 하루도 편히 잠을 자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같은 주민으로 살 사람들이 하는 일이니까 참았습니다. 물론 공사로 인한 양해의 말이나 미안하다는 말 따위는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해체 공사를 하면서 가림막조차 하지 않았지요. 심지어 오늘(일요일) 새벽, 돌을 내리는 지게차 사장님께서는 ‘일요일에는 잠 좀 자자’는 말에 ‘불러서 일하는데 왜 뭐라 그러느냐. 잘못한 것 없으니 경찰을 부르든지 맘대로 해라’는 등 공권력을 업신여기는 말까지 해가며 당당하게(?) 일을 하시더군요. 저를 포함한 주민들은 노이로제 수준입니다. 이 무더운 여름에 창문조차 열지 못하고 사는 심정, 이해가 되시는지요. 얼마 전에는 기중기에서 패널과 지지대 등이 떨어져, 아찔했습니다. 다행이겠지요.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영통구청장님! 감사합니다. 안전 불감증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제 옆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셔서요. 아, 또 있군요. 오늘 아침, 젊은 돌 사장님의 당당함에 감탄했습니다. ‘구청에 민원을 넣든지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하더군요.

공사 책임자라는 분은 ‘통행에 불편을 준 적도 없는데 지역 주민들에게 왜 미안해야 하느냐’며 당당하게 말하셔서 저를 주눅이 들게까지 했지요. 힘없는 구민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나, 우울한 일요일입니다.
공무에 바쁘신 공무원분들께 폐가 될까 봐 그동안 한 말씀도 못 드리고 쥐죽은 듯 살았는데 오늘 처음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일 찾아뵐지 말지를……. 영통구청장님. 편안하신 휴일 되세요.”
비아냥까지 양념으로 들어 있다.

결국 가림막도 일부지만 설치하고 공사 시작 시간이 늦춰지는 등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큰 틀이 바뀌지는 않았다.

지금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고 건물 외벽에 붙이는 돌을 갈아내는 소리가 여전히 소란하다. 그러나 그날만큼 마음이 볶이지는 않는다. 이상하다. 아니다, 이상하지 않다. 역시 나를 괴롭힌 건 나였고 내 마음의 장난이었던 게다. 그놈에게 또 속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다니, 참으로 멀었다.

《선문염송(禪門拈頌)》을 뒤적이다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한 승려가 도일선사(道一禪師)에게 어떤 것이 도(道)인가를 묻자 선사가 답한다. “평상심이 바로 도니라(平常心是道).”

도(道)란 특정인들만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라는 뜻이겠는데, 일상의 나에겐 넘기 힘든 세 낱말이다. 매일매일 유혹을 넘지 못하고 걸려드니 눈 감기 전 피안(彼岸)에 닿겠는가, 반성하는 요즘이다.

나 같은 범부에게 평상심이란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것인가 싶은 불손한 마음만 스멀스멀한 계절을 지나가고 있다. ‘처처(處處)부처’라는데 그날 공사장 부처는 왜 보지 못했을까, 중생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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