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평생에 한 번은 불문에 들어 수행하는 나라 라오스.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나라 라오스.

오래전부터 그곳을 가기로 해놓고도 내 안에 든 신마(身魔)로 인해 한동안 미뤄야만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짐을 꾸리고 비행기에 올랐다. 내 그림책 《사라진 벌들을 찾아 나선 꿀벌구조대》가 라오어로 번역돼 나와 그곳의 한국계 기업인 랑상 미디어의 초청을 받아서였다. 그게 지난 5월 30일이었다. 필자는 행사를 주관하는 휴먼 인 러브 재단의 김영후 이사장과 작가 고정욱, 임정진, 고수산나와 수도 비엔티안 공항에 내렸다.

첫눈에도 라오스는 남방의 이국적 정서가 가득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이 나라는 거리 곳곳에 프랑스풍의 건물들이 구석구석에 들어차 있었다. 남방국가에 프랑스풍 건물이라니, 일제 강압 통치를 경험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 모습들은 예사롭지 않게 내 눈에 들어왔다. 제 나라를 지키지 못해 백성들이 겪었을 고단한 일상이 남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리에서 만난 더운 나라 특유의 가벼운 옷차림들은 여기가 동남아시아의 배꼽 라오스임을 실감케 했다.

라오스에 머무는 동안 나의 눈과 마음을 강하게 끈 것은 라오인의 선조들이 이뤄낸 화려한 불교 유산이었다. 라오스는 헌법 전문에 ‘조국에 대한 신봉, 불교를 존중’할 것을 명시한 불교국가다. 헌법 7조는 ‘불교를 국교로 한다. 왕은 그 최고의 보호자가 된다’ 제8조는 ‘왕은 열렬한 불교신도가 아니면 안 된다’고 명시할 정도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라오스는 여기저기에 남방불교의 정취가 살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찾아갔던 탓루앙 사원의 신비한 아름다움은 잊을 수 없다.

탓루앙 사원은 일명 황금사원으로 불릴 정도로 기둥과 벽면을 온통 금빛으로 칠해 놓은 사찰이다. 한국사찰과 달리 일주문이나 사천왕상 오색단청은 보이지 않았지만, 황금색 사리탑에 석가모니의 머리카락과 가슴뼈가 모셔져 있다는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절이었다. 원래 이 절에는 에메랄드 불상이 있었는데 이는 타이에서 약탈해갔다고 한다.

나는 보리수나무가 우뚝 서 있는 경내를 천천히 거닐었다. 우리나라의 불교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한국의 사찰 분위기와 비교하다 생뚱하게도 계단 앞에 앉아 그곳을 지키는 한 마리 호랑이를 봤다. 날카로운 이빨을 내보인 채 으르렁거리는 저 모습은 어디서 본 걸까?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 지방의 한 박물관에서 본 돌 호랑이가 퍼뜩 떠올랐다. 작은 귀에 부리부리한 눈, 뭉툭한 코, 번뜩이는 어금니 등을 왜 그렇게 표현한 걸까? 그것은 가장 무서운 존재가 익살스럽게 다가와서 하나의 생명체로 재탄생되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리를 옮겨 다른 사원도 둘러봤다 절 이름이 왓시사켓이란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귀가 없는 부처, 코가 떨어져 나간 부처, 목이 잘린 좌상(坐像)들을 봤다. 이 나라도 많은 외침을 겪었던 때문인지 문화재들이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 것이 많지 않아 보였다. 무참히 목이 잘린 부처상을 유심히 바라보다 우리나라의 처지를 떠올렸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불과 100년도 안 되는 시간만 거슬러 올라가도 우리도 저들과 비슷한 신세였다. 무수한 외세 침략을 받았으며 수많은 목숨을 잃었고 셀 수 없을 정도의 문화재를 강탈당했다. 오늘도 아침 신문에서 미국에 가 있다는 수월관음도 기사를 읽으며 해외에 흩어져 있는 불교문화재와 그 외의 보물들을 어떻게 하면 찾아올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여러 생각에 사로잡혀 불상들 사이를 오가던 내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근엄한 표정의 관리인이었다. 그 안쪽은 출입금지 구역이니 더 이상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뒤돌아서 같이 갔던 일행들을 찾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관람을 끝낸 뒤 빠르게 사찰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아쉬웠던 건 그 하나하나의 생김새를 조금 더 살펴 가슴에 담지 못한 것이다.

라오인들의 생활 속에 뿌리내린 불교는 어떤 모습일까 살펴봤다. 민중들에겐 기복신앙적인 측면이 강해 보였다. 스님들은 아침 5시면 십여 명이 줄을 서서 민가로 탁밧(탁발)을 나섰다. 과거에는 하루에 한 끼 식사했지만 요즈은 두 끼 식사를 한다고 했다. 부족한 단백질 섭취를 위해 자유롭게 육식을 하는 모습이 우리와 다른 점이었던 것 같다.

여행 전엔 사원에서 행해지는 법회(法會)에 참석도 해보고 스님들의 법문(法門)만큼은 꼭 들어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행들과 함께 꽉 짜인 일정에 따라 초·중·고등학교와 대학 및 국립도서관에서의 도서기부 및 강연과 라오스 문인협회 소속 작가들과의 간담회에 우선 참석해야만 했던 연유로 그런 겨를을 갖지 못했다.

다만 차를 타고 가며 혹은 길을 걷다 눈빛이 맑은 이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욕심을 내려놓은 사람은 영혼의 가볍고 편안함이 얼굴에 드러난다더니 스님들 표정이 그랬다. 그 순간 나 자신도 마음을 고요하고 편안하게 유지할 방법은 없는 걸까 생각해봤다.

나는 라오스에서 그런 마음의 평화를 얻기를 갈구(渴求)했다. 그러면서 다음 여행 땐 아내와 함께 시간을 내 달빛 도시라고 불리는 위엥 짠을 다시 찾을 것을 다짐했다. 그때는 무엇인가를 급하게 얻고 구하기보다는 얻고 구하려는 마음 그 자체를 지운 상태로 방문하리라 속심을 굳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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