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기

동아시아 문명에 영향을 끼친 두 가지 큰 서쪽 문명이 있는데 하나는 인도[西域]의 불교이며 다른 하나는 서양[泰西]의 과학과 기독교이다. 동아시아의 신도가[새로운 노장사상]는 불교가 동아시아에 들어오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하여 불교의 공(空)을 무(無)로 해석하여 이른바 격의불교(格義佛敎)의 육가칠종(六家七宗)을 생기게 하였다. 유교사상은 불교와 신도가의 영향으로 새로운 유학[Neo-Confucianism]으로 나타났다. 이 신유학은 공자, 맹자, 순자 등으로 대표되는 시원유학[Original Confucianism]과도 다르고 특히 한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오경(五經) 중심의 경전유학[Classical Confucianism]과 차별화된 유학이다.
신유학은 당나라 시대의 이고(李翶)의 복성(復性) 사상과 한유의 원도(原道) 사상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그 내용은 정욕에 얽매어 이기심에 가려져 있던 도덕적 본성[仁義]을 회복하여 인간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번뇌에 얽매인 중생이 깨달음을 통하여 부처[Buddha]가 될 수 있다는 불교와 그 유형[Paradigm]이 매우 비슷하다. 본격적인 신유학은 본성을 천리(天理)라고 보고 이를 내세워 불교의 공(空) 사상과 도가의 무(無) 사상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면서 탄생하였다. 양명학과 주자학은 신유학의 중요한 두 흐름[思潮]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주자학은 본성이 바로 천리라는 성즉리(性卽理)를 주장하여 이것을 성리학이라고 하며 간단히 줄여 이학(理學)이라고 한다. 양명학은 마음이 바로 천리라는 심즉리(心卽理)를 제창하여 이것을 심학(心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사상과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정도전은 불교를 비판하는 《불씨잡변》을 쓰기도 하였으며 〈심기리(心氣理)〉 편에서 불교는 심(心)을, 도가는 기(氣)를 중심으로 하는 가르침인 데 비하여 유학은 이(理) 즉 천리를 중시하는 학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천리는 심과 기를 아우르는 데 반하여 심과 기는 서로 포섭을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불교는 심학이요 유교는 이학이라고 주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는 주자학을 정통으로 삼고 불교를 이단으로 간주하여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펼쳐나갔다. 주자학자들은 심지어 왕양명의 심학을 불교의 심학과 같은 이단으로 배척하였다. 주자학은 불교에 대하여 배타적이었으나 양명학은 불교에 대하여 친화적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양명학을 주체적으로 도입하여 독자적 심학을 수립한 하곡학(霞谷學)이 있었으나 물밑에 숨어서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복류(伏流)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유학은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다. 내성은 자기의 인격수양에 힘써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것[修己]이며, 외왕은 수신(修身)을 통하여 가정[齊家] 국가[治國] 천하[平天下]를 안정시키는 것[安人 혹은 治人]을 말한다. 유학의 성인은 인륜[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을 극진히 잘 발휘한 이상적 모델이 되는 사람을 말한다. 내성[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은 불교의 영향으로 신유학에 와서 그 깊이가 심화되고 그 넓이가 확대되었다.
중국철학사로 저명한 신리학자(新理學者) 펑유란(馮友蘭)에 의하면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의 마음[心]은 mind였지만 이후의 마음은 Mind가 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전자는 신체와 분리되지 않는 마음을 가리키고 후자는 그것을 초월한 마음 즉 큰마음[大心]이 된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무한심의 자극으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양명학의 선구라고 하는 육상산(陸象山)은 “우주가 바로 내 마음이며 내 마음이 곧 우주이다.” “우주의 일이 내 마음의 일이며 내 마음의 일이 바로 우주의 일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마음은 우주에까지 확대되었다.
양지(良知)라는 말은 맹자에서 유래하였지만, 왕양명에 이르러 양지는 마음의 본체[心體]로서 무한심(無限心)이 되어 모든 것[천지 만물]의 존재근거[天理]로 확대되었다. 그러므로 왕양명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이 홀로 알 때에[獨知] 이것이 온 우주[乾坤] 모든 존재[萬有]의 터전이다”라고 하였는데 독지란 양지의 다른 표현이다. 왕양명은 “양지가 조화의 정령(精靈)이며 이러한 정령이 하늘을 낳고 땅을 낳으며 귀신을 이루고 상제를 이룬다. 모든 것이 이로부터 나온다.”고 하여 천지는 물론 상제(上帝)까지도 양지가 생성한 것이라고 주장 하였다.
 

2. 양명학이란 무엇인가

양명학이란 명(明)나라 시기에 당시 부정부패로 얼룩진 혼란한 사회를 바로 잡기 위하여 왕양명(王陽明, 1472~1529)이 제창한 철학을 가리킨다. 양명학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업적 위주의 학문[爲人之學]이 아니라 뜻을 세워[立志] 자기의 훌륭한 인격완성을 위한 학문[爲己之學]을 말한다. 인간은 미완성의 존재이다. 유학은 그 완성의 목표가 바로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다.
왕양명은 18세 때 명대 초기 주자학자인 누량(婁諒)으로부터 격물치지를 통하여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가 근무하는 관서에는 대나무가 많았는데, 그는 21세 때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이치[理]가 있다는 주자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정원에 있는 대나무를 취하여 일주일 동안 연구[格竹]하였으나 병이 나서 그만두었다. 그는 성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불교와 노장을 공부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사상에는 불교와 가까운 점이 많이 발견된다. 그는 양지를 설명하면서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든가 항상 깨어 있음[常惺惺]이라는 불교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양지가 바로 성인 문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37세에 유배지 용장(龍場)에서 깨달을 때까지 20년간 여전히 격물치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다. 이 문제가 바로 그가 해결하려는 화두였다. 그는 환경이 극도로 험난한 유배지 생활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며 돌무덤까지 만들어 놓고 천명(天命)을 기다렸다. 어느 날 밤중에 격물치지의 뜻을 크게 깨달았다 “성인의 길은 내 본성이 스스로 넉넉한데 이전에 사물에서 이치를 구한 것은 잘못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心卽理].”고 도를 깨우친[覺道] 체험을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이것은 외적인 이치[理]를 내적인 것으로 돌린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이었다.
주자학은 마음 밖에 사물과 그 이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연구하여 지식을 넓히는 것이 격물치지이다. 주자는 《대학》의 격물치지에 대한 전(傳)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이를 자신이 만들어 보충하였다 거기에는 주자의 철학이 녹아들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지식을 넓히는 것이 사물을 연구하는 데 있다는 것은 나의 지식을 넓히려고 하면 사물에 다가가서 그 이치[理]를 끝까지 캐물어 가는 데 있음을 말한다. 대개 인간 마음의 영특함[人心之靈]은 지각을 가지고 있지 않음이 없다[莫不有知].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天下之物] 이치를 가지고 있지 않음이 없다[莫不有理]. ……자기가 이미 알아낸 이치를 가지고 더욱 캐물어 나가서 그 끝에까지 이름을 추구하여 힘을 씀이 오래되어 어느 날 하루아침에 환하게 툭 트여 관통하게 되면[豁然貫通] 많은 사물들의 현상[表]과 본질[裏] 상세한 내용[精]과 전체 대강[粗]이 이 마음에 이르지 않음이 없고, 내 마음의 온전한 본체와 큰 작용[吾心之全體大用]이 밝혀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일러 사물이 연구되었다[物格]는 것이며 이것을 일러 앎의 지극함[知之至矣]이라는 것이다.

주자는 인식론적으로 격물치지를 설명하였다 인간의 탁월한[靈] 인식능력[知]이 외적인 대상물 안에 있는 사물의 결[理]을 끝까지 캐물어서 밝혀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되면 사물의 현상과 본질, 정수와 대강[outline]을 하루아침에 환하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인식능력이 사물에 이르러서[至] 그 사물의 이치를 궁구한다[卽物窮理]는 것이다.
주자학의 이치는 사물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所以然之故]과 윤리적으로 마땅히 따라야 할 도덕법칙[所當然之則]이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이치[理]는 존재 이유[物理]와 당위 규범[윤리]이 하나로 되어 있다. 서양의 과학은 만물의 까닭[所以然]만 묻고 당위[所當然]는 거기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였다. 주자학은 전자보다는 후자 즉 당위적 규범인 예(禮) 문제에 더 중요성을 부여하였다.
이 외재적인 사물들과 그 규범들을 잘 연구하는 것을 격물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외물에 이르러야[至] 한다고 생각하였다. 주자는 외물의 존재를 인정하는 실재론자이다. 주자는 격물을 ‘외물에 다가가서 그 이치를 캐묻는다[卽物窮理]’고 해석하였다. 따라서 격(格) 자를 이른다(至)는 의미로 풀이하여 격물은 외물에 이르러 그 이치를 캐묻는 것이라고 하였다.
왕양명은 이에 반대하며 격(格)이란 ‘바로잡는다[正]’라고 풀이하였다. 그는 “물(物)이란 일[事]이다. 대체로 뜻[意]이 발동한 곳에는 반드시 그 일이 있다. 뜻이 있는 곳의 일을 어떤 것[物]이라 한다. ‘격’이란 바로잡는다[正]는 것이다. 그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아 바른 데로 돌리는 것을 말한다. 그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는 것은 악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바름으로 돌아가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이것을 일러 바로잡을 격(格)이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왕양명은 ‘물’을 역동적으로 일어나는 사건[事, event]으로, ‘격’을 ‘바로잡다’로 풀이하였다. 이것은 정태적으로 고정된 외물에 이르는[至]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활 속에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正行爲]을 격물로 간주한 것이다.
왕양명은 어버이 그 자체가 일물(一物)이 아니라 어버이 섬김[事親]이 일물이요, 책 그 자체가 일물이 아니라 독서가 일물이라고 했다. 뉴스에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아버지를 시해한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다 그 아들에겐 시친(弑親)이 일물이다. 이 잘못된 의도에서 생긴 행위[不正]를 바로잡아 바른 데로 돌리는 것[事親]이 바로 격물이다. 주자에서 격물치지는 외물을 연구하여 지식을 넓히는 것임에 반해 왕양명의 격물치지는 바르지 못한 사태의 행위를 바로잡아 양지를 드러내는 치양지(致良知)를 말한다.
이와 같이 양명학은 사물이 나의 마음과 의미(意味)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마음 밖에 어떤 것이 있다는 주장을 판단중지[epoche]시키고 “마음 밖에 아무것도 없으며[心外無物]” 따라서 “마음 밖에 아무 이치도 없다[心外無理]”고 주장하였다.
이 명제에 대하여 선생이 남진에서 노닐 때 어떤 벗이 바위 가운데 있는 꽃나무를 가리키며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 천하에 마음 밖에 사물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처럼 꽃나무가 깊은 산중에서 저절로 피었다가 저절로 떨어지는데 나의 마음과는 어떤 상관이 있는가?” 선생이 대답하였다. “자네가 이 꽃을 보지 않았을 때에는 이 꽃과 자네 마음은 다 같이 고요했었는데 자네가 와서 이 꽃을 보자마자 이 꽃의 색깔이 일시에 분명하게 된 것을 보아 이 꽃이 자네 마음 밖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네.”
마음 밖에 아무것도 없다[心外無物]는 명제는 외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산속에서 저절로 피었다가 저절로 지는 꽃은 그것을 보는 마음과 연관되었을 때 의미를 갖는다는 말이다. 내가 아직 보지 못했을 때 그 꽃이 존재하는지 않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판단중지[epoche]를 하였을 뿐이다. 의식[心] 속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다[無物]’고 말했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물(物)은 마음과 독립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의미 연관성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물의 본성[天理]도 나의 마음을 떠나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양지가 바로 본성이요 천리인 까닭에 “마음이 바로 천리이다[心卽理].”라고 주장하였다. 왕양명이 주장한 것은 천리인 양지와 양지를 펼치기 위한 공부가 바로 치양지이다
왕양명의 만년(晩年) 철학은 치양지(致良知)로 요약된다. 이것은 양지를 현실 생활에 실현한다[致]는 말이요 양지에 의한 행위 즉 양지[知]를 일상생활에서 실천[行]한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知)는 지식 혹은 지각(知覺)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지행합일이란 지식과 행위의 합일이 아니라 양지에 의한 행위, 행동하는 양지, 즉 양지를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양지란 무엇이며 지식 혹은 지각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양지는 경험적[見聞] 지식 혹은 지각에서 유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선천적이다. 그렇지만 지각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지각과 함께 드러나며 결코 지각에 의하여 막히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양지는 도덕적 심미적 법칙인 천리(天理)이며 이것이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마음의 본체[心體]라는 것이다. 셋째 양지는 옳고 그름[是非]과 좋고 싫음[好惡]을 즉각적으로 아는 도덕적 심미적 판단 능력이다. 넷째 양지는 남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고 이것을 슬퍼하고 아파할 줄 아는[惻怛] 마음이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보고 모두 다 뼛속까지 슬픔을 느끼고 가슴 아파하는 것이 바로 양지라는 것이다. 다섯째 양지는 성인이나 보통 사람[凡人]이 모두 가지고 있는 영특한 밝음[靈明]이며 심미적인 즐거움[樂]의 본체이다.
이러한 양지가 구체적 행위로 드러나는 것을 지행합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양지를 현실생활에 실천하는 것을 치양지라고 한다. 우리는 지식과 행위의 합일을 지행합일로 오해하고 있다. 그것은 주자학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주자학에서는 지식과 행위는 언제나 둘로 나뉘어 있어 먼저 알고 난 뒤에 행한다는 선지후행(先知後行}을 주장한다. 그래서 왕양명은 알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知行分離] 당시 지식인을 비판하기 위하여 지행합일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아직 알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외적인 지식으로 알았다 하더라도 내적인 양지로 아직 깨우치지 못한 것을 말한다. 외적인 도덕 지식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내적인 자각이 아직 안 되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양지에서 나온 도덕적 자각이 더 근본적임을 역설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심[好色, 好貨, 好名]이 양지를 가려버리면 도덕적 자각이 생길 수 없다. 마치 구름이 태양을 가리면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구름이 걷히면 태양이 환하게 드러나듯이 욕심에 가려진 양지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치양지의 공부이다. 우리가 본심인 양지를 잃어버리고 사리사욕에 사로잡히면 세월호의 비극처럼 꽃다운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끔찍한 일이 생긴다. 이러한 재해를 막으려면 양지를 되찾는 길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치양지 공부이다.
왕양명은 “나의 평생 강학은 치양지 세 글자일 뿐이다.”라고 하면서 치양지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나의 양지설은 백번 죽고 천번 어려운 가운데 얻은 것이다. ……학자들이 그것을 쉽게 얻어 구경거리로 삼아서 놀까 두렵다. 현실에서 공부하지 않으면 이 양지를 저버릴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신호의 반란과 기타 지방의 도적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천백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험난한 현실에서 체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왕양명은 양지를 실현하기[致良知]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다. 첫째 묵좌징심(黙坐澄心), 둘째 성찰극치(省察克治), 셋째 물망물조(勿忘勿助) 그리고 사상마련(事上磨鍊)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초학자를 위하여 정좌법을 가르쳤다. 그것은 불교의 좌선(坐禪)과 유사한 방법이었다. 이것이 ‘잠자코 앉아 마음을 가라앉힘[默坐澄心]’인데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사물 혹 기(氣)의 간섭을 받아 양지가 자기 본래의 빛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의 동요를 극복하여 심체를 회복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불교의 좌선입정(坐禪入定)과는 달리 흐트러진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수방심(收放心)을 보충적으로 사용한 방법이었다. 왕양명은 정좌 중에서 쉽게 나타날 수 있는 허깨비[幻像]인 광경(光景)을 경계하였다. 우리는 정좌를 하면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공부를 하는데 마음의 본체를 보지 못하고 마음을 대상화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마음의 그림자가 나타나는데 이것을 광경이라 한다. 학생들은 정좌 공부를 하면서 광경을 구하거나 효험(效驗)을 얻으려고 하였다
왕양명은 초학자들이 마음이 들뜰까 경계하여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마음을 가라앉혀 맑게 하는[默坐澄心]’의 공부법을 가르쳤다. 욕심을 다스리려고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으면[靜坐] 온갖 잡념이 떠오르는데 이것을 끊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 방법은 두 가지 폐단이 생기었다. 하나는 움직임을 싫어하고 조용함만을 좋아하여 아무런 생기가 없는 고목처럼 될 병폐에 빠질 우려가 있었다. 다른 하나는 형이상학적 해석이나 미묘한 깨달음[玄解妙覺]에 힘써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너무 어려워 좀 더 알기 쉬운 공부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왕양명은 소극적인 조용한[靜坐] 공부에서 적극적이며 역동적인 공부로 전환했다.
둘째 성찰극치(省察克治)의 방법이다. 제자 맹원(孟源)이 조용히 앉아 있으면[靜坐] 생각이 복잡하여 강제로 그것을 금지하고 끊어버릴 수가 없다고 하자, 왕양명은 “단지 생각이 싹트려고 움직이는 곳에서 반성하여 살펴보고 그것을 다스려라.”고 대답하였다. 왕양명은 현실을 벗어나 공허한 생각을 하고 신기한 것에 사로잡힌 제자들의 폐단을 구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자신을 살피고 욕심을 다스리는[省察克治] 공부를 하여 천리[양지]를 보존하고 인욕을 제거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성찰하여 자기를 극복하고 다스리는 공부는 틈을 둘 때가 없다. 마치 도둑을 몰아내듯이 아주 깨끗이 쓸어내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일이 없을 때에는 언제나 여색이나 재물, 명예 등을 좋아하는 사욕을 하나하나 찾아내서 반드시 병의 뿌리[病根]를 뽑아 제기하여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해야만 비로소 통쾌하게 된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항상 온 눈으로 살피고 온 귀로 듣고 있다가 한 생각이 싹터 움직이자마자 곧바로 제거해 버린다. 못을 끊고 쇠를 자르듯이 단호하여 잠시라도 그것을 방편으로 허용해서는 안 되고 몰래 간직해서도 안 되며 그것의 출로를 내어주어서도 안 된다. 그래야만 비로소 참되고 착실한 공부이다. 바야흐로 말끔하게 쓸어 낼 수 있어서 극복할 사욕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자연히 팔짱을 끼고 앉아 있어도 잘 다스려지는 때가 생긴다.

이것이 성찰극치의 공부인데 사려가 싹이 터 움직이려 할 때 어지럽게 일어나는 사념을 철저히 뽑아내어 제거해 버리는 방법을 말한다.
셋째 방법은 어떤 일을 하건 잊지도 말고[勿忘] 조장하지도 말라[勿助長]는 것이다. 왕양명은 맹자의 올바른 행위[義]를 그치지 않고 축적해가는 집의(集義)를 치양지의 방법으로 삼았다. 맹자는 ‘집의’를 말하면서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라[勿忘勿助長]’고 하였다. 이것은 도덕법칙[義]을 밖에서 찾는 고자(告子)의 의외설(義外說)의 병통을 고치기 위한 것이었다. 왕양명이 맹자의 집의 공부를 중시한 것도 도덕원리[理]가 밖에 있다고 하여 외물에 나아가 이치를 캐묻는[卽物窮理] 주자학의 공부법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왕양명은 이렇게 말하였다. “군자의 학문은 평생 동안 단지 집의하는 한 가지 일뿐이다. 마음이 그 마땅함[宜]을 얻는 것이 바로 올바름[義]이며 양지를 실현할 수 있다면 마음은 그 마땅함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올바름을 쌓는 것도 다만 양지를 실현하는 것[致良知]일 뿐이다.” 잊어버림도 조장도 그 마땅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생기는 병통인데 왕양명은 집의를 통하여 치양지를 한 것이다.
이 모두가 치양지의 방법이지만 더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하였다. 그것은 일상생활에 역동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사상마련(事上磨鍊)이다. 왕양명은 “그대가 조용히 마음을 기르는 것만 알고 이기(利己)적인 자기를 극복하는 공부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일에 부딪혔을 때 마음은 사욕에 기울어져 버린다. 우리는 반드시 일을 해가면서 자신을 연마해야 비로소 확고히 설 수가 있고 조용해도 마음이 안정되고 움직여도 마음이 안정될 수 있다.”고 하였다 치양지는 조용함과 움직임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자기가 하는 일에서 양지를 발휘하는 것이다. 왕양명은 불구덩이에 들어가서 불순물[私慾]을 없애고 순금[양지]만이 남도록 자기가 하는 일 위에서[事上] 자신을 갈고 닦아야[磨鍊] 한다. 이것을 사상마련이라고 한다.
어떤 관리가 오랫동안 왕양명의 강의를 청강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학문은 매우 좋기는 하지만 공문서를 관리하고 소송을 처리하는 일이 번잡하여 학문을 할 수 없습니다.”
선생께서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언제 그대에게 공문서를 관리하고 소송을 처리하는 일을 떠나 허공에 매달려 강학하라고 가르친 적이 있는가? 그대에게는 이미 소송을 판결하는 일이 주어졌으니 그 소송의 일에서부터 학문을 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격물(마음이 사물과 관계된 일을 바로잡음)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소송을 심문할 경우에 상대방의 응답이 형편없다고 화를 내서는 안 되며 그의 말이 매끄럽다고 기뻐해서는 안 된다. 윗사람에게 부탁한 것을 미워하여 자기 뜻대로 보태어 그를 다스려서는 안 되며 그의 간청으로 인해 자기 뜻을 굽혀서 그의 요구에 따라가서도 안 된다. 자기 사무가 번잡하다고 멋대로 대충 판결해서도 안 되며 주변 사람이 비방하고 모해한다고 그들의 의견에 따라 처리해서도 안 된다. 이 수많은 생각들은 모두 사사로운 것이며 단지 그대만이 스스로 알고 있으니 반드시 세심하게 성찰하고 극복하여 오직 이 마음에 털끝만큼의 치우침과 기울어짐이라도 생겨 타인의 시비를 왜곡시킬까 두려워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격물치지[치양지]’이다 공문서를 관리하고 소송을 처리하는 일들은 실학(實學)이 아닌 것이 없다. 만약 사물을 떠나서 학문을 한다면 도리어 공허한데 집착한 것이다.” 치양지는 구체적인 일에서 실천되는 실학이다 더 정확히 말해 양지실학이다. 이것은 하곡학의 실심실학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3. 양지와 불성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불교는 불성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이 붓다[Buddha, 覺者]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양명학은 양지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양명 심학과 대승 진상심의 심학은 양자가 모두 궁극적 의미의 본심을 건립하여 모든 존재의 의거와 최종 가치의 근원으로 삼는다. 이 본심은 어느 때 어느 곳에나 존재하지 않음이 없다. 설령 어둡고 가려진[昏蔽] 미망(迷妄) 속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 본심은 비록 미혹 속에 있지만, 터럭만큼도 줄어들지 않는다. 이 본심은 스스로 원래 그러하다. 이 본심을 깨닫는 것은 단지 그 본연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본심은 이로 인하여 조금도 늘어나지 않는다. 본심은 바로 성인이 되고[成聖] 부처가 되는[成佛] 근거이다. 전자를 양지라고 하고 후자를 불성이라고 한다.
대승불교 중 진상유심(眞常唯心) 계통은 진실하게 상주하는 여래장(如來藏)을 모든 존재[萬法]가 의거하는 바라고 생각하였으며 마음의 본성은 깨끗[淸淨]하기 때문에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고 말하였다 모든 중생은 이 여래장의 공덕으로 괴로움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어[離苦得樂]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모우 쫑산[牟宗三]은 이렇게 말하였다.

대승기신론이 제출한 마음은 바로 초월적 진상심(眞常心)이다. 이 진상심은 모든 존재[一切法]가 의거하여 머무는 곳[依止]이다. 이른바 일체법이란 바로 생사유전의 일체법 및 청정무루(淸淨無漏)의 일체법을 포괄한다. ……일체법은 모두 여래장 자성청정심에 의지하는데 바로 여래장 자성청정심이 두 문[二門]을 열어낼 수 있음을 표시하였다. 하나가 생멸문인데 생사 유전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다른 하나는 진여문인데 바로 청정한 법계문을 열어냄을 말한다. 이와 같이 ‘한 마음이 두 문을 연다[一心開二門]’는 구조로서 철학사상에서 하나의 중요한 국면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공통적 모형이기에 보편적 적용성을 가지고 있다.

모우 쫑산 선생은 ‘한 마음[一心]’을 초월적 진상심이라 하였는데 사실은 중생심(衆生心)을 가리킨다. 진상불교에서 보면 중생은 초월적 진상심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중생이 아직 성불(成佛)하지 못하였을 때는 이 진상심이 무명(無明)에 덮여 있어 여러 가지의 허망한 경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한 마음’은 결코 중생의 여래장 자성 청정심으로만 설명할 수 없고 동시에 중생이 무명에 가리어진 잡염 생멸심도 가리킨다. 이것이 바로 ‘한 마음이 두 문을 연다.’는 구조를 말한다. 두 문은 하나의 마음으로 통일되어 있으며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생멸을 말하면 바로 진여를 언급하게 되고 진여를 말하면 곧 생멸을 떠나지 않는다.
진여와 생멸 두 문은 서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진여가 본체[體]가 되고 생멸은 현상[相]이 된다. 진여의 본체를 들어 보일 때 생멸의 현상을 떠나지 않고 생멸의 현상을 들어 보일 때 진여의 본체를 떠나지 않는다. 마치 진흙과 도자기 관계와 같이 진흙을 떠나면 도자기가 없고 도자기를 떠나면 진흙도 없는 것처럼 진여와 생멸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부처의 자리에서 중생을 보면 일체중생은 모두 여래 지혜의 덕상(德相)을 가지고 있다. 모두 성불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부처는 중생을 부처와 동등하게 본다. 이것이 돈교(頓敎)이다. 그런데 중생의 자리에서 부처를 보면 중생이 비록 부처가 될 수 있지만, 중생이 부처가 되려면 반드시 52개 계위(階位)의 오랜 수행을 거쳐야 비로소 부처 자리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점교(漸敎)이다.
양명학에서 인간이면 누구나 다 양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 생활에서는 갖가지 사욕[물욕 색욕 명예욕] 때문에 양지가 가려져 있다. 이 가려진 사욕을 걷어내고 현실생활에서 양지를 실현하는 것이 치양지이다. 양명학도 불교의 돈점 이중 구조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양지는 인간의 본래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양명은 한편으로 “당장 그 자리가 바로 올바름이다[當下卽是].”라고 하였으며 자기 학생을 가리켜 “가슴속이 원래 성인이다[胸中原是聖人].”라고 말하였으며 또한 “길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성인이다[滿街人是聖人].”라고 언급하였는데 이것이 돈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기의 양지설은 “백번 죽을 뻔하고 천 번의 환난 중에서 얻은 것이다[從百死千難中得來].”라고 하면서 이것을 쉽게 보아 일종의 구경거리[光景]로 삼아서 놀지 말라고 하였다. 반드시 시시각각 뼈를 깎는 공부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수확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점교이다.
왕양명의 사구교(四句敎)와 왕용계의 사무설(四無說)은 바로 불교의 돈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왕양명은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 마음의 본체이다[無善無惡心之體].”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이 의지의 움직임이다[有善有惡意之動].” “선을 알고 악을 아는 것이 양지이다[知善知惡是良知].” “선을 위하고 악을 버리는 것이 격물이다[爲善去惡是格物].”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사구교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왕용계(王龍溪)는 마음의 본체[心體]가 무선무악이라면 나머지 의지[意] 양지[知] 격물[物]도 역시 무선무악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을 사무설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하여 전덕홍(錢德洪)은 “심체는 천명의 본성이어서 원래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습심(習心)이 있어 의념상의 선악이 나타난다. 바로잡고[格] 드러내고[致] 참되게 하고[誠] 바르게 하고[正] 닦는[修] 것은 바로 저 성체(性體)를 회복하는 공부이다. 만약 의지에 원래 선악이 없다면 공부 역시 말할 필요가 없다.”고 왕용계의 의견을 반박하였다.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게 되자 이것을 스승에게 바른 해답을 구하였다. 왕양명은 날카로운 근기의 사람[利根之人]과 보통사람[中下根之人]을 나누고 전자는 심체를 현장에서 자각하는 것을 중시하며 후자는 습심을 제거하는 공부를 중히 여긴다고 보았다. 그리고 왕용계는 본체상의 깨달은 날카로운 사람으로 전덕홍은 의념상의 공부를 하는 보통 사람으로 보고 두 제자의 견해가 한편에 치우쳐 있음을 상기시키고 서로 보충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용계에게는 덕홍의 공부가 필요하고 덕홍은 용계의 본체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의 장점을 취하여 자신을 발전시킨다면 학문은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왕양명은 이근(利根) 등 불교의 용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있다. 사구교에서 왕용계는 돈교를 전덕홍은 점교를 각각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왕양명의 심학은 많은 방면에서 불교의 선종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주자학자들은양명학을 선학(禪學)이라고 비평하였는데, 왕양명은 젊었을 때 불교와 노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꺼리지 않고 말하였다. 그는 “나 역시 어려서부터 불교와 노장[二氏]을 독실하게 뜻을 두었다. 스스로 일컫기를 이미 얻은 바가 있었으며 유자(儒者)는 배우기 부족하다고 비평하였다. 그 후 오랑캐 땅에서 3년을 살면서 성인의 학문이 이와 같이 간단하고 쉬우며 넓고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30년의 기력(氣力)을 잘못 사용한 것을 스스로 탄식하고 후회하였다. 대체로 불교, 노장의 학문은 그 미묘함이 성인[공자]과 단지 터럭만큼의 사이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을 보면 왕양명은 결국 불교에서 유교로 되돌아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유교와 불교가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털끝만큼의 사이[間]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주자학자처럼 적극적으로 불교를 이단이라고 배척하지 않았다. 어떤 이가 이단이 무엇인지 질문하였는데 왕양명은 “보통 사람[愚夫愚婦]과 같은 것은 동덕(同德)이라 하고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을 이단이라고 한다.”고 대답하였다. 양지는 성인이나 보통 사람이 다 같이 가지고 있는 밝은 덕[明德]이다. 보통 사람과 동일한 명덕(同德)을 밝히는 것이 정통이고 어둡게 하는 것이 이단이라는 말이다. 왕양명은 어떤 때는 불교의 개념을 가지고 질문에 대답하기도 하였다.

선을 생각하지도 않고 악을 생각하지도 않을 때 본래면목을 알아차린다. 이것은 불교가 본래면목을 아직 알지 못한 이를 위하여 이 방편을 설정한 것이다. ‘본래면목’은 우리 성인 문하[聖門]의 이른바 양지이다. 이제 이미 양지를 알아차림이 명백하니 이와 같이 말할 필요가 없다. ……(유교와 불교의) 겉모양(體段) 공부는 대체로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불교는 자사(自私) 자리(自利)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같지 않을 뿐이다.

왕양명은 불교의 불성[본래면목]과 양지가 같은 것임을 분명히 언급하였다. 불교와 양명학의 겉모습 공부도 대략 비슷한데 다만 아주 작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불교가 출가를 하여 인륜을 저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을 개인적인[私] 자기 이익[利]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더 구체적으로 말하였다.

불교는 현상[相]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은 현상에 집착한다. 우리 유학은 현상에 집착한다. 그런데 사실은 현상에 집착하지 않는다. ……불교는 부자의 얽매임을 두려워하여 오히려 부자를 도피해 버린다. 군신의 얽매임을 두려워하여 오히려 군신을 도피해 버린다. 부부의 얽매임을 두려워하여 부부를 도피해 버린다. 모두 이것은 군신 부자 부부를 위하여 현상에 집착한 것이기에 곧 도피해야 한다. 우리 유가 같으면 부자가 있으면 그에게 어짊[仁]으로 대처하고, 군신이 있으면 그에게 의로움[義]으로 대처하고, 부부가 있으면 그에게 분별[別]로 대처한다. 어찌 부자 군신 부부의 현상에 집착한 적이 있겠는가?

불교는 모든 존재[諸法]는 자아의 실체[無我]가 없고 모든 현상[諸行]을 무상하다고 생각하여 생사고해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한다. 따라서 인간 사회의 모든 관계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려고 한다. 유교는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의 인륜을 중심으로 이러한 불교의 출세간적[出家] 태도를 비판한 것이다. 유교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내성외왕’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왕양명은 불교는 내성에는 충실하지만 외왕에는 소홀히 하였다고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질문하였다. “불교도 마음을 기르는 데 힘쓴다. 그러나 요컨대 이것으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어째서인가?” 선생이 대답하였다. “우리 유교는 마음을 기르지만 사물을 떠나 버린 적이 없다. 단지 그 하늘의 법칙[天則]이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따랐을 뿐인데 바로 이것이 공부이다. 불교는 오히려 사물을 모조리 끊어버리려 한다. 마음을 환상(幻相)을 짓는 것으로 간주하고 점차로 허무적멸[虛寂]에 들어가 버린다. 세간과 아무런 교섭이 없는 듯하다. 그러므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여기서 왕양명은 마음을 기르는 공부 목적에 유교와 불교의 차이점을 말하고 있다. 유교의 양심(養心)은 사물과의 의미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법칙을 어기지 않고 사욕을 제거한다. 반면 불교의 마음 기름[養心]은 사물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무애(無碍)를 추구하므로 허무적멸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세간의 가정 국가 천하의 구체적인 문제[外王]를 잘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 보살은 보리심(菩提心)을 발휘하여 무량무변(無量無邊)한 중생을 제도하여 성불(成佛)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중생을 제도함[度衆生]’은 유가의 ‘천하를 다스림[治天下]’에 상응할 수 있다. 유교는 어짊[仁]으로 현실 세계의 타락 전쟁 등의 난세를 다스려 안정된 삶을 살게 하는데, 불교는 자비심으로 중생을 제도하여 모두 고통을 떠나 즐거움을 얻게 한다,
유교와 불교의 착안점은 결국 같지 않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만약 철저히 아법(我法) 이공(二空)을 깨달아 불도(佛道)를 성취할 수 없다면 여전히 구경원만(究境圓滿)이 아니다. 설령 천하가 안정되고 백성이 즐거이 살더라도 번뇌가 제거되지 않으면 복보(福報)가 사라져 육도(六道) 윤회 중에 떨어진다. 윤회를 해탈하여 불생불멸의 열반에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중생을 제도한다[度衆生]는 것은 결코 중생을 어떤 낙토(樂土)에 이끌어 주면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중생은 반드시 자기 수양[自修]과 자기 증득[自證]을 거쳐서 몸소 자기가 체득하여 깨달아야 비로소 해탈할 수 있다. 이것을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다. 그러므로 불교는 개체성을 중시한다. 중생이 지은 업[karma]은 바로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것[自作自受]이다. 각 사람의 업력에 이끌려 각자가 과보(果報)를 느끼므로 타인이 대신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중생을 제도한다는 말은 중생이 스스로 제도한다는 것이며 보살은 중생을 제도하는데 조연(助緣)일 뿐이다.
불교의 개체성을 중시하는 데 비하여 유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즉 인륜을 중시한다. 이것은 윤리성 사회성 정치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 유교와 불교가 크게 구별된다. 유교는 현실적 인간을 출발점으로 하여 도덕수양의 격물, 치지, 성의, 정심에서 정치이상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내성외왕’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요컨대 불교는 개체성을 유교는 인륜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다른 것이다. 내성외왕은 천지만물 일체론으로 나타난다.
왕양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인은 천지만물을 일체(一體)로 삼는 사람이다. 그는 천하를 한 가정처럼, 중심 되는 나라[中國]를 마치 한 사람처럼 본다. 만약 형체를 사이에 두고 너와 나를 나눈다면 소인이다. 대인이 천지만물로 일체를 삼을 수 있는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의 어짊[仁]이 본래 이와 같이 그것은 천지 만물과 하나가 된 것이다. 어찌 대인뿐이겠는가? 비록 소인의 마음도 그렇지 않음이 없다. 그가 스스로 작게 하였을 뿐이다. 이 까닭에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반드시 깜짝 놀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것은 그 어짊[仁]이 어린아이와 일체가 된 것이다. 어린아이는 그래도 같은 인류[同類]이다. 새와 짐승이 슬피 울고 벌벌 떠는 것을 보면 반드시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것은 그 어짊이 새와 짐승과 일체가 된 것이다. 새, 짐승은 그래도 지각을 가지고 있다. 풀, 나무가 꺾인 것을 보면 반드시 걱정스러운[憫恤] 마음이 생긴다. 이것은 그 어짊이 풀 나무와 일체가 된 것이다. 풀 나무는 그래도 삶의 의지가 있는 것이다. 기와 돌이 깨어진 것을 보면 반드시 아까운[顧惜] 마음이 생긴다. 이것은 그 어짊이 기와 돌과 일체가 된 것이다……. 명덕을 밝힌다는 것은 그 천지만물 일체의 본체를 세우는 것이며 백성을 친애한다[親民]는 것은 그 천지만물 일체의 작용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덕을 밝힘은 반드시 친민에 있어야 하고 친민은 바로 그 명덕을 밝히는 까닭이다.

이것은 유가의 어짊[仁]으로 만물일체의 의미를 발휘한 것이다. 어진 마음[仁心]은 성인과 보통 사람 모두 가지고 있는 양지를 가리킨다. 왕양명의 만물일체론은 위와 같이 인간 금수 초목 와석의 친소(親疏) 원근(遠近)의 등차적 사랑[仁]을 표시한다. 그리고 명명덕이 내성이라면 친민은 외왕에 해당한다.
이것은 불교의 무연대자(無緣大慈)와 동체대비(同體大悲)와 비슷한 면이 있다. 제불보살(諸佛菩薩)은 중생에 대하여 큰 자비심을 갖는다. 인연[緣]은 조건이며 ‘무연’은 조건이 없는 것이다. 자(慈)는 자애를 말하며 무조건으로 중생을 자애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무연자비’이다. 중생과 자기가 똑같이 일체임을 이해하면 일체중생의 고통을 없애주고 자상(自相) 타상(他相)을 없애는 것이 ‘동체대비’이다. 이것은 타인이 고통을 벗어날 수 없으면 바로 자기의 결함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중생이 제도될 수 없다면 바로 자기의 깨달음이 아직 원만하지 못한 것이다 ‘동체대비’의 이타(利他) 사업 가운데에서 바로 보리대도 상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자아가 실현되어 성불(成佛)의 궁극적 목적에 도달한다. 일체중생이 모두 정각(正覺)을 성취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가 내재해 있다 요컨대 왕양명의 만물일체론은 불교의 동체대비론과 상당히 가까운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왕양명의 만물일체론은 실천상에서 친소원근의 등차가 있는 데 반해 불교의 동체대비는 ‘중생이 평등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4. 맺는말

왕양명은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양지(良知)를 마음의 본체[心體]로 간주하였으며 일점(一點) 영명(靈明)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천지 만물이 이 영명을 떠난다면 천지 만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양지가 천지 만물의 근거이며 또한 주재자라고 보았다. 양명은 천리는 사람의 마음에서 끝내 없앨 수 없고 양지의 광명은 영원히 빛을 발한다고 하였으며 세상을 떠날 때 “내 마음이 빛이다[吾心光明].”라고 하였다.
이 점에서 진상(眞常) 불학의 불성과 양지는 매우 유사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명학은 어디까지나 유학인 만큼 사상마련(事上磨鍊)을 통한 외왕을 강조하는 점에서 불교와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는 인륜을 바탕으로 하므로 어디까지나 그 중점이 세간적(世間的)이다 그러나 불교는 모든 번뇌가 집착에서 생기므로 이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점에서 출세간적(出世間的)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서양의 민주와 과학 그리고 최근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새로운 신유학을 만들어 가고 있다. 과거의 공동체[가정과 국가]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공동체인 시민사회가 생겨났다. 따라서 현대 신유학 특히 현대 양명학은 시민사회에 알맞은 새로운 외왕[新外王]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것은 과거 동아시아에서 부족하였던 과학과 민주 그리고 자본주의를 양명학과 융합시키는 일이다. 그것은 시민사회에서 남의 의견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 자율적 독립성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여 자기를 속이지 않는[無自欺] 양지를 자기가 하는 일에서 실현하는 것[事上磨鍊]이다. 이러한 자율성이 결여되면 윗사람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며 순하게 길들여진 백성이 된다. 이런 풍토에서 독재자가 나오는 것은 어느 때나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건전한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양지에 의한 행위 즉 지행합일이요 치양지이다. ■

 

정인재 /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동 대학원 철학과 졸업. 타이완 중국문화대학 철학박사. 영남대, 중앙대, 서강대 철학과 교수, 한국양명학회 회장 등 역임. 주요 논저로 〈육상산의 심학〉 〈양명심학의 연구〉 〈양지현성론〉 등의 논문과 《선의 향연》 《중국철학특강》 《중국철학의 인간학적 이해》 《전습록》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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