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양순
건축사·한서대 겸임교수

6·25의 포연이 채 가시지 않은 휴전 다음 해 봄이었지만, 영랑사 입구부터 마당에 이르기까지 수십 그루 벚나무에는 진분홍 겹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하지만 마당의 흙빛조차 환해지고 어린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는 절 마당의 벚꽃과 달리, 대웅전의 낡은 단청에선 울긋불긋한 동네 상여가 떠올랐고 진채색 탱화도 거룩함보다는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2학년, 봄 소풍에서 시작된 첫 만남은 중학교까지 두어 번 더 이어졌지만 첫인상은 변함이 없었다.

이후 절을 찾은 것은, 전공을 전통건축에 두고 대학원에 진학한 후였다. 신라의 초석 연구를 위해 경주의 폐사지를 답사하였고, 이후 〈한국의 누정건축〉이란 학위논문을 쓰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전국의 사찰을 답사하게 되었다.
누정은 삼척의 죽서루나 밀양의 영남루, 남원의 광한루, 진주의 촉석루처럼 관청에서 지은 큰 누각도 있고, 작은 정자들도 있다. 대부분의 정자는 경치 좋은 곳에 지어져 선비들의 풍류를 즐기는 데 쓰였지만, 평야 지대에서는 들판 가운데 모정(茅亭)을 지어 들밥을 먹거나 잠시 쉴 때 사용하기도 하였다.

궁궐의 경우, 창덕궁 비원은 정자들의 보고라 할 만큼 다양한 형태의 정자가 즐비하다. 반상가에서도 독립된 정자를 두거나 사랑채 등에 정(亭)이나 각(閣)의 현판을 걸기도 하였다. 그러나 빠질 수 없는 누각의 보고가 있으니 바로 사찰이다.

명산대찰은 대체로 일주문부터 개울을 함께하고, 물을 건너는 자리에 누각이 하나쯤 있게 마련이다. 선암사의 강선루는 홍교인 승선교 아래에서 올려다봐야 그 아름다움의 진가를 알 수 있고, 송광사 우화각과 이를 이고 있는 홍교의 물그림자는 선경이 따로 없다. 절에는 문루가 있게 마련이니 전등사의 대호루, 쌍계사의 팔영루, 범어사의 보제루가 한 예이다. 이들 문루의 아래층은 통로로 쓰이고 위층은 강당이나, 고루와 종루로 쓰인다.

부석사에 가보라. 안양루 가파른 계단을 천천히 내디딜 때마다 유려한 지붕선으로부터 금빛 나는 벽체로 전이되는 황홀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단아한 공포와 배흘림기둥까지 짜릿하게 다가오는 무량수전의 모습. 산지(山地)형 사찰의 경우, 누각 밑의 계단을 오르면 대부분 이와 같은 풍경을 보게 된다.

전주 송광사 종루 안은 내공포가 사방대칭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현하였고, 고창 선운사 만세루의 Y 자 종보는 로마올림픽의 실내경기장을 설계한 구조주의 건축가 네르비(P.L. Nervi)의 디자인을 우리 선조가 먼저 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뿐이 아니다. 개심사 계단 가운데 청정하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다듬지 않은 주춧돌에 맞춰 문짝 귀퉁이를 도려낸 송광사 침계루, 굽은 나무를 그대로 쓴 개심사의 종루 등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심성을 갖춘 스님과 역학적 자신감을 가진 장인정신의 합일에서 이뤄진 우리만의 아름다움이다.

누정 공부 때문에 찾은 사찰은 어린 시절의 무섭기까지 한 부정적 인상에서 국역 출간된 팔만대장경 전질을 구입하는 것으로 반전되었다. 하지만 졸업 후 현대건축을 하면서 전통건축에서 멀어지다 보니, 절 또한 관심에서 멀어졌다. 진정한 사찰건축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은 근년 들어 건축에 관한 시를 모으면서부터이다.

절집은 변함이 없건만 보는 눈이 달라지니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그런 연유인지, 4년 전 황순원문학관 관장으로 계시던 김용성 선배를 만나고 오던 중 일행과 함께 수종사를 찾게 되었다. 신록이 녹음으로 변해가는 늦봄날, 운무 자욱한 운길산을 스피커의 독경소리와 함께 걸어 절에 올랐다. 마당 가 정자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와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한순간 운무는 사라지고 창공 아래에는 두물머리가 선계처럼 펼쳐져 있었다.

북한강 뒤로하고 수종사 오르는 길/ 갈참나무 가파른 길 운무 속에 잠겼구나/ 새소리 바람소리 스님의 독경소리/ 그 옛날 수종소리 아닐지라도/ 고집을 멸하면 열리는 니르바나/ 누구나 여기 오면 되리라 자유 하는 자// 운무를 헤치고 수종사 당도하니/ 구름 속에 싸인 절집/ 신선처럼 거니는 손/ 독경소리 은은한 다향 구름을 걷어내니/ 한눈에 두물머리 도원경일세/ 고집을 멸하면 열리는 니르바나/ 누구나 여기 오면 되리라 자유 하는 자

40여 년 만에 시심을 일깨운 수종사의 감흥은, 노랫말로 시를 다듬고 스스로 곡을 붙이는 데까지 이르렀다. ‘아마’의 솜씨지만 기회가 되면 수종사에 주고 싶다. 하지만 세 번에 걸쳐 연을 맺은 나의 절에는 불(佛) 법(法) 승(僧)의 삼보가 없다. 아무려나 절집 예찬도 연은 연이려니, 시간 나는 대로 절을 찾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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