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순
강원일보 논설실장

며칠을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였다. 아침 라디오 방송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번 한 주는 비가 오는 날이 많겠다는데, 그 이번 주가 소풍 가는 날이다. 초등학생 시절이다. 단골 소풍 장소는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이었다. 어린 마음에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하늘을 먼저 쳐다본다. 먹구름이 밀려오면 마음이 초조해진다. 소풍 가는 날이 엉망이 되지는 않을지…….

초등학교 때 오대산 월정사와 입구의 전나무 숲은 필자의 영원한 안식처였다. 오대산의 자연이라 하면 전나무 숲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사람이 많다. 오대산 전나무 숲이 언제부터 조성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북대의 나옹 스님에게 소나무가 죄를 지어 오대산 산신에 의해서 쫓겨났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다른 산과 달리 오대산의 중심 수종은 전나무다. 한편 조선 중기에 오대산 사고(史庫)가 건립되면서 인근 주변 40리가 금역(禁域)으로 지정되어 나무의 무분별한 벌채가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오대산 전나무 숲은 원시림과 같은 장관을 연출할 정도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좋은 목재를 탐하던 일본인들이 오대산에 철도를 놓으면서까지 나무들을 무분별하게 벌채했다. 일제강점기의 오대산 사진에 철도가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대산은 아직까지도 거목의 많은 전나무를 품에 안고 있다. 전나무는 소나무에 비해 피톤치드의 발생량이 많아, 도시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을 편안하면서도 상쾌한 휴식으로 인도한다. 오대산은 힐링과 명상에도 최고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월정사는 오늘날에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전나무 숲의 그 곧음과 푸름으로 승가(僧伽)의 얼을 오롯이 지키고 있는 한국불교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나이가 들어 조금씩 이해해 나간다.

2012년부터 개방된 오대산의 산길인 ‘선재(善財)길’은 월정사와 잘 조화를 이루며 매우 운치 있는 여유로 삶에 평안과 행복을 선사한다. 원래 올레길이나 둘레길과 같은 걷는 길들은 중세 유럽의 유명 성당들을 참배하는 순례길에서 시작된 것이다. 월정사를 둘러보며 최고의 자연과 자장 율사 이래 1,600년 불교의 역사를 간직한 성산(聖山)을 걷는 자체만으로 최상의 복전(福田)이다. 

월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계곡의 울창한 수림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동대 만월산을 뒤로하고, 그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는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 앞으로, 여름에는 맑고 시린 물에서 열목어가 헤엄치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금강연에 오대산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월정사는 오대산의 중심 사찰로서 신라 때부터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개산조 자장 율사에서부터 근대의 한암, 탄허 스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름난 선지식들이 머물던 곳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태어난 고향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고향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간평리. 필자는 1970년대 평창군 도암면 유천리에 있는 도성초교를 다녔다. 교가는 “오대산 정기 받은 유천 발판에……”로 시작된다. 아마도 졸업하기까지 6년 동안 수백 번은 불렀을 것이다. 그래서 오대산과 월정사는 불교에 대한 이해도 없으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어린 시절 탄허 스님을 자주 뵙고 그분의 말씀도 많이 듣고 자랐지만 입적하신 이후에야 탄허 스님이 당대 최고의 선지식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정도였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오대산 월정사는 필자의 3형제에게 큰 안식처였다. 우리 형제는 일요일이면 당시 ‘3,000리 호 자전거’를 타고 월정사를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부처님께 108배를 올리고 점심 공양을 했다. 일주일에 유일하게 쌀밥 구경하는 날이다. 그야말로 염불보다 잿밥(?)에 눈멀었던 어린 시설의 추억이 기억의 창고에서 오롯이 피어나고 있다. 모습은 영락없는 까까머리 ‘동자승’이었다. 자전거가 고장 난 날이면 두 발로 월정사로 향했다. 그래서일까, 나이 들면서 등산은 하나의 취미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됐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내년 봄 매화나무에도 연한 붉은 꽃이 피어날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매년 오대산 비로봉의 ‘등산 행차’에 나서는 것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칼바람을 맞으며 오대산 비로봉에 오를 때마다 그동안 살아온 여정을 살피며 ‘비우고 또 비우자’며 반성하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자 깨달음이다. 가득 차는 것은 오래갈 수 없고, 인생에 있어 무엇이든 간에 가득 채웠다기보단 채워가는 것에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오늘도 월정사 경내를 둘러보고 부처님께 합장했다. 그리고 오대산 비로봉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상념에 잠겼다.

‘인연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오랜 바람의 결과이자 선택과 창조의 결과다. 아주 작은 인연이라도 소중히 여기며 그 인연을 가꾸고 키워 가다 보면 그 인연이 또 다른 인연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곤 한다. 모든 인연은 무심히 바라보면 그냥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다. 하지만 꿈이 있고 그 꿈에 늘 집중하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크고 작은 인연은 모두 꿈을 이루기 위한 선물로 변한다.’
나무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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