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광식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명예교수

산사에 머물면서 새벽 예불이나 저녁 예불 전에 범종 소리를 듣는 마음은 평온하고도 그윽하다. 멀리 떨어진 산사에서 은은하게 울려오는 타음(打音)에 이은 원음(原音)과 여운음(餘韻音)의 맥놀이소리를 따라가는 것도 잔잔한 기쁨을 자아낸다.

돌이켜보면 사바세계에는 무수한 소리가 존재한다. 모든 것이 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의 소리, 중생의 소리를 관찰하는 보살이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소리가 탐음(貪音)인지, 진음(嗔音)인지, 치음(痴音)인지를 감별하고 그 탐진치 삼독심의 성질을 감별하여 여러 방편을 써서 중생을 제도한다.

뎅~ !

한글로 종소리를 표현하자면 의성어 ‘뎅’이고, 원음과 여운음이 길게 이어짐을 굳이 표현하고 싶으면 ‘뎅~’ 또는 ‘데~ㅇ’ 정도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한글은 훈민정음 28자 중 24자를 사용하고 있다. 다른 나라 글자들에 비해 읽기가 수월하고, 비교적 소리의 표현범위가 넓은 편이다. 자음 14자를 초성에 사용하고, 모음 10자를 중성에 사용하면 140자가 된다. 여기에 종성을 더하고, 복자음, 복모음 등을 더하면 구성될 수 있는 글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초·중·종성의 조합이 특징인 한글을 초기 컴퓨터의 용량 때문에 조합형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행정 전산망에 완성형 한글이 사용된 때에는 표현 안 된 한글 글자가 많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한글로 자연의 소리를 표현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다.

자연의 소리와 각 나라 사람들의 언어에 사용되는 소리의 음가를 비교적 더 근사하게 표현하는 글자는 없을까? 음운학에 문외한이지만, 그 가능성을 보았다.

1985년 봄에 곡성 태안사에서 청화 큰스님을 처음 친견하고 받은 책이 《금강심론(金剛心論)》이다. 집에 와서 열어보니 토씨만 한글일 뿐 거의 한자투성이였다. 그냥 덮고 싶었지만 큰스님께서 아주 소중한 책으로 여기시는 듯하니 애써 조금씩 읽기 시작하였다. 그중에 눈에 쉽게 들어온 것이 ‘제1편 제3장 관음문자(觀音文字)’였다. 눈에 익숙한 한글 자모가 보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익숙한 “ㄱ ㄴ ㄷ……  ㅏ ㅑ ㅓ……”가 보이니 엄청나게 반가웠다.

그러나 그도 잠시, 청화 큰스님의 은사이신 금타 대화상께서 1947년 2월 8일에 조선어학회에 〈관음문자 공포취지문〉을 보냈으나, 조선어학회에서 4개월 가까이 해독을 못 하고 끙끙거리다가 5월 29일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요지의 답신을 아주 쉬운 순한글로 보낸 것을 발견하자 다시 어깨가 무거워졌다.

금타 대화상께서는 물론 답신을 받자마자 사흘 만인 6월 1일 자로 다시 재답신을 보내는 성의를 보이셨지만 그 후는 조선어학회로부터 소식이 끊긴 듯하다.

한글이 24자모인 데 비해, 금타 대화상의 관음문자는 자음[母愛音] 11자, 모음[父和音] 6자의 17자모를 기본으로 해 87자의 자모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숫자는 불교의 법수와 연관된 심오한 뜻을 내포한 것은 물론이다. 예를 들면, 6모음은 6식(六識)에 대응하고, 11자음은 75법 중 11색법(色法)에 대응하며, 기본 17자모는 금강계 9회 만다라 중 제7 이취회(理趣會) 17존위(尊位) 수와 대응하고, 총 87자륜(字輪)은 6무위(無爲)의 81사혹(思惑)의 87과 대응하는 등이다. 관음문자의 87자륜은 6무위의 81사혹을 대응하기도 하지만, 근경식(根境識)의 18계의 분류와도 대응하여, 46근음(根音; 6識音 포함)과 41경음(境音)의 87자륜이기도 하다.

음운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대화상께서 30여 년 연찬해 완성했다는 관음문자의 깊은 뜻을 속속들이 알아채기 힘들다. 그 응용과 완성은 역시 음운학자의 몫이 될 것이다.

대화상의 과학 저술인 《우주의 본질과 형량》은 이미 유수한 물리학자분들과 함께 공부하며 해석본을 만든 바 있지만, 《관음문자》는 유수한 음운학자분들과 함께 공부하며 해석본을 만들 기회를 갖고 싶다. 

관음문자로 종소리를 표현하면 귀일(歸一)의 1병종음(一竝終音)인 ‘ㆁ-’을 받침으로 하는 ‘’이 된다.
관음문자의 내용을 게송으로 축약 표현한 관음자륜송(觀音字輪頌)의 일부를 옮겨보면, “…… 소리의 한 가닥 종소리란 중생을 깨우치는 대방편으로, 하나의 음향(音響)에 법보화(法報化)의 3신(三身)을 겸하니, 소리 시작 이전과 소리 마친 이후는 허공과 같은 법신의 경계요, 천만율동은 화신의 경계이며, 시종(始終)을 관통함은 보신의 경계이니, 먼저 법신의 경계에 안주하여 보화의 경계를 간별(揀別)할지라. 연명십구관음경(延命十句觀音經; 夢授經)에 이르기를 세상의 소리를 관찰[觀世音]하고 부처님께 귀의(南無佛)하라. 본래부터 부처님과 인연이 있는 중생이니 3보에 인연 있음이 곧 상락아정 열반사덕의 인연이라……”이다.

《몽수경(夢授經)》의 뜻을 여기에서 비로소 명쾌하게 알게 되었다. 나름대로 풀어썼는데 오류가 있다면 그 허물은 모두 나의 몫이다.

공성상(空性相) 일여(一如)의 3신1불(三身一佛)이신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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