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서
한국화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하던 일을 바꾸게 되었다. 하던 일을 바꾸게 되었다는 건 아주 다른 패턴으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학교 저 학교로 다니며 수업을 하고 주말이나 밤중에 그림 작업을 하던 게 일과였다면 지금은 한 장소에 정물처럼 들어앉아 나를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나날을 보낸다. 동적인 생활에서 정적인 생활로 바뀐 것이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한 3년은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아니 큰 그림 그릴 공간이 없으니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으므로 아예 붓 잡을 엄두를 내지 않는다.
시간에 쫓겨 다니느라 헐떡거리던 사람이 기약 없는 손님을 기다리며 우두커니 앉아 책을 읽거나 좁은 책상에서 손장난 같은 소품을 그리며 소일하고 있으니, 그런 일들이 의미 없이 느껴지거나 시들해질 때면 질척대는 시간 때문에 지루하고 힘이 든다.

어쩌다가 이런 꼴로 앉아 있는가 싶기도 하고 창 너머로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을 보며 쓸쓸해하기도 한다. 햇볕 좋은 날엔 의자를 밖에 내놓고 앉아 향 좋은 차를 마시며 등을 쏘이기도 해보지만, 요즘엔 미세먼지 때문에 그마저 맘껏 누려보지도 못한다.

남아나는 게 시간이다. 남아나는 게 시간이니 생각이 넘쳐난다. 생각을 버리라는데, 마음을 비우라는데, 시도 때도 없이 불쑥 과거 어느 한때로 돌아가 어린 날의 내가 떠오르기도 하고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목이 메기도 하며 엊그제 친구와의 꺼림칙한 일로 개운하지 않기도 하다. 해도 해도 놓아지지 않는 자식 생각 때문에 애면글면하는 건 또 어떤가.

뒤로 물러설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때가 있었다. 그 무렵 우연히 지방 일간지에 특집으로 실린 〈부사의방(不思義房)〉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음지에 갇혀 있는 강호제현들의 담론들을 강호동양학이라는 학문으로 개척해나간다는 자부심으로 조용헌 선생이 기도터를 순례하며 쓴 글이다. 글을 읽기도 전에 먼저 깎아지른 절벽 가운데쯤에 겨우 한 사람 누울 만한 자리에 암자를 짓고 도를 닦았다는 부사의방 사진을 보며 전율이 일었다.

부사의방은 미륵신앙의 개창자라는 진표 율사가 백제 유민으로 태어나 고행 끝에 도통한 내변산 마천대(지금의 의상대)의 기도터다. 그곳에 가려면 20여 미터가 넘는 높이를 굵직한 동아줄을 타고 절벽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암자는 불타 없어지고 기왓장 몇 점과 뒷면의 절벽 1.5m 높이에 쇠말뚝 하나가 박혀 있는데 이규보가 기록한 ‘쇠줄로 그 집을 잡아매고 바위에 못질을 했다.’는 그 쇠말뚝이다. 내변산 쪽에서 바라다보면 깎아지른 절벽에 주먹만 한 암자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었을 것이니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바다의 용이 만든 ‘불가사의한 방’으로 느껴졌을 만도 하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의 풍경은 고만고만한 나무들이 우거져 잘 다듬어진 융단처럼 보여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이다. 실제로 진표 율사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는데 지장보살이 나타나 떨어지는 진표의 몸을 받아 올렸다고 한다. 정진을 계속하자 이번에는 미륵보살이 나타나 계시와 권능을 주어 이후로 진표는 미륵불의 화신이 되어 망해버린 백제 유민의 한을 어루만져주는 구세주가 되었던 것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도 닦는 일이란 목숨을 걸고 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의 고행과 참회를 해야 하는 일이다. 동행도 없이 한없는 외로움과 고독을 씹으며 홀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그림 그리는 일은 일종의 도 닦는 일이다. 안고수비(眼高手卑). 눈은 다락같이 높은데 손이 따라가 주질 않는다. 그림 그리는 사람의 딜레마다. 의도대로 되지 않는 그림 때문에 질질 끌려다녀야 했다. 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렇다고 불평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욕심을 버려야 했다. 세상이 놀랄 만한 그림을 그리겠다는 허황한 욕심을 버리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가. 그저 할 수 있을 만큼만, 반 발자국만큼만 나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30년, 그림 속으로 빠져 들어가다 보면 나는 없어지고 그림 그리는 붓질 소리만 사각사각 들렸다. 그 시간이 좋았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이다. 그저 붓 잡은 손만 움직일 뿐, 나는 없어지고 보이지 않는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그림이 그려지는 듯싶었다. 작품이 좋은들 내가 받을 칭찬이 아니니 우쭐대거나 교만해지지 않았다. 형편없다고 몰매를 맞아도 내 알 바 아니다, 그려진 결과에 대한 판단은 내 소관이 아니다, 관람자가 할 일을 내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그림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림 그리는 일만이 도 닦는 일이겠는가.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노력이야말로 도 닦는 일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을 것 같은 절체절명, 백척간두의 ‘부사의방’에 서 있다고 느껴질 때엔 움직이지 말고 고행을 하든 참선을 하든 그 자리에서 마음을 비워볼 일이다. 다 내려놓을 일이다. 진표처럼 도통은 못하더라도 ‘한 소식’ 아니, ‘반 소식’이라도 듣게 될는지 누가 알겠는가. 혹여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올지 누가 알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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