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함안군의 외진 산골에서 6·25 전쟁 중에 태어난 나는, 또래의 동무들이 초등학교 졸업도 못 하고, 심하면 남의 집 ‘애 보기’로 고향을 떠나는 가난한 시절, 가난한 동네에서 자랐다.

그래도 우리 집은 동네에서 제일 살기가 낫기도 했지만, 어머니 아버지의 남다른 교육열 덕분에 나는 마산시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은행에 취직하면 최고라는 상고를 졸업하고 취직하여 한동안 지냈지만, 아무래도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어서 독학으로 준비하여 대학교에 가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위를 받았다. 어릴 적부터의 꿈이던 시인이 되었다.

그때 나의 고향 마을은 물론이고 지방에서는 가까이 대하는 사람 중에 학식이 높거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봐서 나는 자칫 오만해질 수도 있었지만 애써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려고 애쓰고, 어떤 사람을 대하든 그 사람만의 장점을 찾아내고 그의 존귀함을 인정해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근저에는 아무래도 고교 시절 《불교학개론》부터 접하여 불교를 철학적으로 공부하고 《금강경》을 공부한 덕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젊은 날에 《금강경》을 읽고 나는 4상 중에 특히 아상(我相)을 없애려고 많이 노력하였다. 자만심과 아만심, 남에게 대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남을 무시하는 차별의식 등을 갖지 않고, 사람을 대할 때 그들이 가진 남다른 장점을 찾아내어 인정해주며, 그들을 나의 또 다른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항상 노력하며 살아왔다. 내 안에 사랑과 부드러움을 가지려고 늘 애쓰다 보니, 원래의 나는 강하고 급한 성격이었는데 지금 나를 대하는 사람은 거의가 부드러운 사람으로 인정해준다.

고교 시절 불교학생회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불교 종립대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고, 졸업 후에도 계속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살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언제나 부족하고 목마른 채로 좀 더 깊이 부처님 법을 공부해야지 생각만 하고 실천은 못 한 채 지내왔는데, 몇 년 전에 조계종 교육원의 의뢰로 《금강경》 번역본 운문화 작업에 참여하는 큰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범어와 한문에 조예가 깊은 스님 몇 분과 시인 네 사람이 4~5일간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작업을 하였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금강경》에 대해 새롭게 깊이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때부터 불교 공부에 대한 갈증을 새삼 더 느끼게 되어 여러 방면으로 공부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젊은 날 불법에 대해 공부하던 것과는 다르게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 고맙고 새로운 환희심이 인다.

그런데 같은 경전을 공부하면서도 젊은 시절의 관심사와 나이 들어서의 관심사는 서로 다르다. 《금강경》을 다시 배우면서, 젊은 날과 달리 지금 내가 꼭 지켜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상(衆生相)과 수자상(壽者相)을 없애는 일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많이도 절망하며 산다. 물론 남들이 겉으로 보는 ‘나’는 꽤 그럴듯해 보이는 면도 있지만, 정작 자신 속을 들여다보면 나란 존재는 얼마나 보잘것없고 한심한 존재인가. 뭐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앞으로 제대로 할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고, 나이 들면서 체력 탓을 하고 상황 탓만 하면서 안일한 생활에만 젖어가고 있으니 병 중에 큰 병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생각을 깨끗이 날려버리라는 부처님의 벼락이 떨어졌다. 중생이 중생이 아니고 본래 부처이니 내게 덮여 있는 이 무명의 구름을 걷어내면 있는 그 자리가 바로 푸른 하늘이 될 것 아닌가. 바로 부처가 될 것 아닌가. 나는 순간순간 다시 태어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부처이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나는 늦게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아 기르고, 직장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시간이 너무 없어서 “엄마는 늙어도 좋으니 너희 빨리 좀 커라.”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정작 아이들 다 커서 제 일을 하고 있고 육아나 가사에서, 또 직장에서도 놓여나서 자유로워졌는데, 돌아보니 이제는 열정과 감동으로 충만하던 젊은 날이 다 기울어가고 무슨 일을 하려 하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체력은 약해져 한계의식을 느낀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나무라시는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린다. ‘나이에 대한 상을 없애라. 나이에 끄달리지 마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 때문에 못할 일이란 없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도 새삼 귓가에 울려온다.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나는 잘 안 된다는 열등의식과 절망감, 나이 때문에 어렵다는 한계의식, 모두 조금씩 날려 보내고 넘어서자. 이상이 있는 한 나는 청춘이다.

스승이신 미당 시인께서 노년에 자주 하시던 ‘향 이백 세 주의−나는 2백 세까지 살 것’이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2백 세를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그러자면 70이나 80세는 아직도 젊은 청춘이 아닌가’ 하고 언제나 청춘의 나이로 살면서 열심히 시를 쓰시던 스승님의 마음가짐을 본받아야겠다.

《금강경》에서 끝없이 되풀이 강조하는 즉비논리(卽非論理)를 체감하고 육화하기는 아득히 멀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내가 지니고 있는 이 상병(相病)을 깨뜨리기 위해 우선 노력하자. 그러러면 목숨의 한계를 넘어서는 삶에 도전해야겠다. 우리 모두는 한계의식을 넘어 순간순간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부처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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